
AI로 항생제 내성에 맞선다…‘포스트 항생제 시대’ 막기 위한 과학자들의 도전
미국 펜실베이니아 대학교의 세사르 데 라 푸엔테(César de la Fuente) 생명공학·계산생물학 교수는 10대 시절 인생의 진로를 고민하며 인류가 직면한 심각한 문제들을 정리해봤다. 그는 각국 정부가 문제 해결에 지출하는 예산이 적을수록 더 높은 순위를 매기는 방식으로 목록을 배열했는데, 그 결과 목록의 최상단에는 ‘항생제 내성(AMR)’이 자리했다.
20년이 지난 지금도 항생제 내성 문제는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 악화됐다. 약물에 저항성을 갖도록 진화한 세균, 곰팡이, 바이러스가 일으키는 감염은 현재 매년 400만 명 이상의 사망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집계된다. 의학 학술지 《랜싯(The Lancet)》에 최근 게재된 분석에 따르면 해당 수치는 2050년이면 800만 명을 넘어설지도 모른다.
데 라 푸엔테 교수와 MIT의 제임스 콜린스(James Collins) 합성생물학 교수는 2025년 7월 물리학 학술지 《피지컬 리뷰 레터(Physical Review Letters)》에 발표한 에세이에서 어떤 항생제로도 치료가 안 되는 세균과 마주하는 ‘포스트 항생제 시대(post-antibiotic era)’가 다가오고 있다고 경고했다. 대장균이나 황색포도상구균처럼 지금은 기존 약물로 치료 가능한 일반 세균도 항생제에 내성을 갖게 되면서 치명적인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두 사람은 “항생제 개발 분야는 여전히 취약하다”면서 “높은 비용과 긴 개발 기간, 낮은 투자 수익률로 인해 연구가 활발히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데 라 푸엔테 교수는 AI를 활용해 전혀 다른 미래를 만들고자 한다. 그가 이끄는 펜실베이니아 대학교 연구팀은 항균 효과가 있는 펩타이드(최대 50개의 아미노산이 연결된 분자)를 찾기 위해 유전체를 광범위하게 탐색하도록 AI 도구를 학습시키고 있다. 그는 이렇게 찾아낸 펩타이드를 서로 다른 구조로 조합하고자 한다. 그중에는 자연에서 한 번도 관찰된 적 없는 형태도 포함된다. 그는 이런 방식으로 기존 약물에 저항성을 갖는 미생물로부터 인체를 보호할 수 있기를 바란다.
연구팀은 예상치 못한 곳에서 유망한 후보를 찾아냈다. 2025년 8월 펜실베이니아 대학교 ‘기계생물학 그룹(Machine Biology Group)’ 소속 과학자 16명으로 구성된 그의 연구팀은 ‘고세균(archaea)’이라 불리는 단세포 생물의 유전 부호 속에 숨어 있던 펩타이드에 관해 발표했다. 그에 앞서 연구팀은 뱀, 말벌, 거미의 독에서 후보 물질들을 발굴하기도 했다.
데 라 푸엔테 교수는 ‘분자 탈(脫)멸종(molecular de-extinction, 또는 ‘분자 복원’)’이라는 프로젝트도 진행하고 있는데, 이 프로젝트에서는 멸종된 종의 공개 유전 서열을 분석해 가능성이 있는 분자를 찾고 있다. 분석 대상에는 네안데르탈인과 데니소바인 같은 고인류는 물론, 털매머드 같은 대형 포유류, 고대의 얼룩말과 펭귄도 포함된다.
데 라 푸엔테 교수는 지구 생명의 역사 어딘가에서 오늘날에도 유용한 항균 방어 체계가 진화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사라진 유전 부호들의 ‘부활’을 통해 털매머드 DNA에서 ‘매머투신-2(mammuthusin-2)’, 땅늘보에서 ‘밀로도닌-2(mylodonin-2)’, 스텔러바다소에서 ‘하이드로다민-1(hydrodamin-1)’과 같은 화합물이 탄생했다. 지난 몇 년간 데 라 푸엔테 교수는 이러한 탐색을 통해 100만 개가 넘는 유전적 설계도 라이브러리를 구축할 수 있었다.
데 라 푸엔테 교수는 미국미생물학회, 미국화학회 등 여러 기관에서 받은 상으로 가득한 ‘트로피 진열장’도 갖추게 됐다. 또한 2019년 MIT 테크놀로지 리뷰는 항생제 발견에 계산적 접근법을 도입한 공로로 그를 ‘35세 미만 혁신가 35인’ 중 한 명으로 선정하기도 했다. 그는 실제 문제 해결에 AI를 활용하는 분야의 선도자로 널리 인정받고 있다. 이에 대해 MIT의 콜린스 교수도 “그는 해당 분야를 개척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실험실에서 직접 협업한 적은 없지만, 콜린스 교수는 항생제 탐색을 포함한 신약 개발에 AI를 활용하는 연구 분야의 최전선에 오랫동안 서 있었다. 2020년 콜린스 교수의 연구팀은 AI 모델을 활용해 광범위한 세균에 효과를 보이는 항생제 후보 ‘할리신(halicin)’을 예측했으며, 이 물질은 현재 전임상 개발 단계에 있다.
콜린스 교수는 “항생제 개발 분야에는 연구자들이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창의성과 혁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펩타이드 연구를 통해 데 라 푸엔테 교수는 이 분야를 한 단계 더 발전시켰다”면서 “그는 놀라울 만큼 재능 있고 매우 혁신적인 연구자”라고 말했다.
복잡하고 비효율적인 작업
데 라 푸엔테 교수는 항생제 내성을 ‘해결이 거의 불가능한’ 문제라고 표현한다. 그러나 그는 ‘거의’라는 단어에 탐구의 여지가 충분히 남아 있다고 생각한다. 그는 “나는 도전을 좋아한다”며 “항생제 내성 문제 해결이야말로 궁극의 도전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데 라 푸엔테 교수는 “항생제의 사용 및 오남용이 항생제 내성 문제를 악화시킨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약물을 찾고, 만들고, 시험하는 기존의 방식은 비용이 지나치게 많이 들고 종종 막다른 길에 이르기 때문에 항생제 내성 문제가 커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과거에 항생제 개발에 뛰어들었던 많은 기업이 결국 문을 닫았다”며 “결국 투자 대비 수익이 좋지 않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항생제 발견은 언제나 우연에 크게 의존하고 불확실성과 잘못된 방향 설정이 뒤따르는 복잡하고 비효율적인 작업이었다. 수십 년 동안 연구자들은 주로 무차별적이고 기계적인 방법에 의존해왔다. 데 라 푸엔테 교수는 “과학자들은 땅을 파고 물을 뒤지며 복잡한 유기 물질 속에서 항균 분자를 추출하려 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분자는 극도로 복잡할 수 있다. 연구자들은 합성 가능한 유기 분자 조합의 수를 대략 10의 60제곱 정도로 추산한다. 참고로 지구에 존재하는 모래 알갱이 수는 10의 18제곱으로 추정된다.
캐나다 맥마스터 대학교에서 생성형 AI를 활용해 실험실에서 합성 가능한 잠재적 신형 항생제를 설계하고 있으며 콜린스 교수와 함께 할리신 연구를 진행한 바 있는 조너선 스토크스(Jonathan Stokes) 화학생물학 교수는 “어떤 분야에서든 신약 개발은 통계 게임과 같다”면서 “한 번이라도 골을 넣으려면 충분히 많은 슛을 시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물론 그 슛은 ‘좋은 슛’이어야 한다. 그리고 AI는 연구자들의 조준 능력을 향상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데 라 푸엔테 교수는 “생물학은 하나의 정보원이며 일종의 부호 묶음과 같다”고 설명했다. 그는 “DNA 부호는 네 개의 글자로 이루어져 있고 단백질과 펩타이드는 20개의 글자로 구성되는데, 각 ‘글자’는 아미노산을 의미한다”면서 “내 연구는 항균 펩타이드(AMP)를 구성하는 글자 배열을 인식하도록 AI 모델을 학습시키는 작업”이라고 설명했다. 이어서 그는 “그러면 알고리즘을 통해 해당 부호를 채굴해 기능성 분자를 찾아낼 수 있다”며 “그 결과물은 항생제가 될 수도 있고 항말라리아제, 항암제가 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다만 현실적으로는 아직 갈 길이 멀다. 데 라 푸엔테 교수는 “이러한 항균 펩타이드들은 아직 사람을 치료하는 약물로 개발되지 않았고 용량, 투여 방식, 구체적 표적 등 결정해야 할 세부 사항도 많다”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항균 펩타이드가 매력적인 이유는 우리 몸에서 이러한 펩타이드가 이미 사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항균 펩타이드는 면역체계의 핵심 구성 요소로, 병원성 감염에 대한 첫 번째 방어선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다. 또한 일반 항생제가 대개 하나의 기전으로 세균을 공격하는 것과 달리 항균 펩타이드는 주로 다중 기전으로 작용한다. 항균 펩타이드는 세균의 세포벽과 내부의 유전 물질을 교란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다양한 세포 과정에도 영향을 미친다. 병원성 세균은 기존 약물의 단일 기전에 대해서는 내성을 진화시킬 수 있지만 여러 갈래의 공격을 동시에 가하는 항균 펩타이드에 대해서는 저항성을 발전시키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발견을 넘어 적용 단계로
데 라 푸엔테 교수의 연구팀 외에도 항생제 개발에 AI를 활용하는 분야의 경계를 넓히고 있는 연구팀은 여럿 있다.
데 라 푸엔테 교수는 주로 펩타이드에 집중하고 있으나 콜린스 교수는 저분자 발굴에 주력한다. 맥마스터 대학교의 스토크스 교수도 유망한 신분자를 식별하고 합성 가능성을 예측하는 모델을 개발하면서 저분자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콜린스 교수는 “연구자들이 신약 개발에 AI를 의미 있게 사용하기 시작한 지는 불과 몇 년밖에 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스토크스 교수 및 콜린스 교수와 함께 연구한 바 있는 스탠퍼드 대학교의 제임스 저우(James Zou) 컴퓨터과학 교수는 “불과 몇 년이라는 시간 동안 AI 도구가 크게 달라졌다”고 밝혔다. 이제 연구자들은 예측 모델에서 생성형 모델로 이동하고 있다.
저우 교수에 따르면 예측 모델을 사용하면 이미 유망하다고 알려진 대규모 후보 라이브러리를 선별할 수 있지만, 생성형 모델을 활용하면 완전히 새로운 분자를 처음부터 설계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지난해 데 라 푸엔테 교수의 연구팀은 하나의 생성형 AI 모델로 합성 펩타이드 세트를 설계하고 또 다른 모델로 이를 평가했다. 그런 다음, 두 개의 화합물을 선정했다. 이후 연구팀은 세계보건기구(WHO)가 항생제 내성 연구에서 최우선순위인 ‘위급(critical priority)’ 단계로 지정한 아시네토박터 바우마니(Acinetobacter baumannii)균에 감염된 생쥐를 대상으로 해당 화합물들을 시험했다. 그 결과 두 화합물 모두 감염을 안전하게 효과적으로 치료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이 분야는 여전히 ‘발견’ 단계에 머물러 있다. 현재 데 라 푸엔테 교수는 후보 물질을 임상시험 단계까지 끌어올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를 위해 그의 팀은 ‘에이펙스오라클(ApexOracle)’이라는 야심 찬 다중모달 모델을 개발하고 있다. 이 모델은 새로운 병원체를 분석해 유전적 약점을 찾아내며 이에 효과가 있을 것으로 보이는 항균 펩타이드를 매칭한 뒤, 해당 펩타이드로 설계한 항생제가 실험실 시험에서 어떤 성능을 보일지 예측하도록 설계됐다. 데 라 푸엔테 교수는 “이 모델은 화학, 유전체학, 언어 분석 기술을 결합해 작동한다”고 설명하면서 “아직 초기 단계이므로 완벽하게 작동하지 않더라도 차세대 AI 모델이 항생제 내성 문제 해결이라는 궁극적 목표로 나아가도록 방향을 제시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라고 덧붙였다.
데 라 푸엔테 교수는 AI 덕분에 인간 연구자들이 항생제 내성이라는 거대한 위협에 맞서 싸워볼 기회를 얻게 됐다고 생각한다. AI 기술은 이미 수십 년에 달하는 연구 시간을 단축했다. 이제 그는 AI가 생명도 구할 수 있기를 바라면서 “AI를 통해 우리가 살아가는 오늘날의 세계가 점점 변해가는 모습이 매우 놀랍다”고 말했다.
이 글을 쓴 스티븐 온스(Stephen Ornes)는 미국 테네시주 내슈빌에서 활동하는 과학 전문 작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