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메타버스 가상 세계가 현실 세계를 대체할 수는 없다”
인공지능(AI)과 메타버스 기술이 발달하면서 ‘불쾌한 골짜기(uncanny valley)’라고 하는 ‘실제 사람과 유사한 존재를 볼 때 받는 안 좋은 느낌’을 줄 만큼 기술적 완성도가 뛰어난 캐릭터가 등장하고 있다. 최근 TV 광고 모델로 맹활약하고 있는 3D 디지털 휴먼 등이 그러한 좋은 사례가 될 수 있다.
기술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가상과 현실 세계 사이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있다, 메타버스가 현실을 초월한 가상 세계를 의미하는 초월(meta)과 우주(universe)의 합성어라는 사실을 기억해둘 필요가 있다.
하지만 MIT 테크놀로지 리뷰 발행사인 DMK 주최로 9일 열린 ‘2021 AI 서밋 서울 2021’에 참석한 전문가들은 AI와 메타버스 기술이 이만큼 놀라운 수준으로 발전했지만 기술이 만든 세계가 현실을 완전히 대체할 수 있을지에 대해선 부정적인 입장을 나타냈다.
이틀 간의 행사 마지막 날인 이날 열린 ‘AI가 만들어 가는 메타버스 그리고 멀티버스’ 토론회에 참석한 알란 스미스슨(Alan Smithson) 메타버스(MetaVRse) 공동 창업자이자 최고경영자(CEO)는 “그런 기술이 우리의 삶과 인간성을 완전히 대체하길 원하느냐고 물으면 나는 ‘아니다’라고 답한다”면서 “AI가 만든 가상 세계를 통해 옷가게에 가서 원하는 제품이 있을 때 AI가 내게 그 옷이 어울린다고 말해주면 도움을 받겠지만, 그것이 현실을 대체한다는 것은 절대 불가능하다”고 못박았다. 또 경기장에서 3만 명의 사람들이 함성을 지르는 에너지도 기술로는 대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삼성전자 최연소 임원 출신으로 AI와 증강현실(AR), 가상현실(VR), 로보틱스 분야의 세계적인 리더이자 현 two.ai의 설립자이자 CEO인 프라나브 미스트리(Pranav Mistry) 역시 스미스슨 CEO의 말에 적극적으로 공감했다.
그는 “지금 현실과 똑같은 걸 만들자는 것이 아니다”라면서 “로봇의 힘을 빌려 작동하는 의수나 의족이 초인간적 능력을 발휘할 수는 있겠으나 무조건 인간과 똑같은 무엇을 만들자는 것은 아닌 식”이라고 덧붙였다.
다만 두 사람은 AI와 메타버스 시대에 과거에 생각할 수 없었던 뛰어난 기술이 등장한 점에 대해서는 모두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프라나브 CEO는 “메타버스 시대에 AI는 과거에는 불가능했던 자율적으로 새로운 뭔가를 창조한다”면서 “AI가 우리 인간을 따라하는 게 아니라 새로운 비주얼 콘텐츠를 만드는 자율성 가졌다”고 평가했다.
그는 이어 “지금은 AI가 텍스트, 보이스에서 비주얼로 넘어가는 단계이고, 미래의 AI는 과거의 텍스트 챗봇인 알렉사보다 비주얼한 쪽으로 진화할 것”이라면서 “비주얼 면에서 몸의 움직임과 얼굴 표정 등을 모두 잡아내는 게 힘들고, 행동 자체도 현실적이어야 하는데, 그게 바로 다음 단계에서 풀어야 할 일”이라고 설명했다.
메타버스와 AI가 크리에이터에게는 어떤 도움을 줄 것으로 보느냐는 좀 더 구체적인 질문에 대해선 그는 “메타버스 기술로 인해 가상과 현실 세계 사이의 연결성이 더 높아질 것”이라면서 “물리적인 것과 디지털적인 게 잘 연결될 거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스미스슨 CEO는 “AI의 역할이 메타버스에서 크리에이터의 능력을 무제한 발휘하게 하는 것”이라면서 그런 능력을 발휘하게 해주는 대표적인 회사로 ‘애니씽 월드(Anything World)’를 들었다. 이 회사는 개발자들이 인터랙티브한 3D 경험을 할 수 있게 도와주는 플랫폼이다.
두 CEO는 AI와 메타버스 기술의 악용에 따른 윤리적 문제가 생기는 걸 막을 장치가 필요하다는 데도 의견이 일치했다.
스미스슨 CEO는 “인류가 기술을 잘 사용하기 위해서 의사처럼 엔지니어도 선서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서 “선서를 하면 더 전문성을 띠지 않을까 보기 때문에 선서가 출발점이 되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프라나브 CEO는 “기술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 윤리적인 부분이라고 생각한다”면서 “사람들이 새로운 시도를 할 문을 열어줘야 하지만 윤리적 문제가 생기면 이에 대해 함께 대처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끝으로 두 사람은 AI와 메타버스 기술에 한국이 기여할 수 있다는 데 대해 기대감을 나타냈다.
프리나브 CEO는 “문화적으로 한국은 새로운 기술이나 혁신에 오픈되어 있으므로 메타버스나 AI 면에서 큰 기여를 할 것으로 기대한다”면서 “K팝과 <오징어 게임>의 사례처럼 미디어와 엔터테인먼트 사업과 소비자가 원하는 걸 모두 잘 알고 있는 한국이 인터랙티브한 미디어인 메타버스 분야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이어 “한국 투자자들도 밖으로 나가 새로운 지식을 공유하면 한국 경제에도 큰 도움이 될 수 있다”면서 “한국은 잘 준비가 되어 있다”라고 덧붙였다.
스미스슨 CEO도 “한국은 문화 혁신의 중심지”라면서 “우리는 한국 기업들과 협업하면서 기술의 한계를 넓혀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한국의 기업, 조직, 정부 모두 모두 메타버스 기술 등에 대해 알려고 노력하고, 마음을 열고 논의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이 세션의 모더레이터(좌장)는 차인혁 CJ 올리브 네트웍스 대표가 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