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어의 법칙을 실현시킨 일등공신
패트릭 웰런(Patrick Whelan)은 클린룸(청정실) 방진복의 안면 덮개 너머로 일이 진행되는 모습을 살펴본다.
그의 앞에는 토스터 크기의 반짝이는 유리 조각이 있는데, 이 유리 조각은 무게를 줄이기 위해 파낸 부위가 커서 기묘한 토템처럼 보인다. 웰런의 팀은 그것을 커피 탁자 크기의 알루미늄 구조물에 붙이고 있다. 금속과 유리 모두 미세한 오차를 제거하기 위해 몇 주 동안 연마 과정을 거쳐 섬뜩할 정도로 매끄럽다. 앞으로 24시간, 접착제가 굳는 동안 작업자들은 유리와 금속이 서로 정확하게 결합하도록 신경을 곤두세워 관찰할 것이다.
웰런은 기구를 향해 손짓하며, “이것들은 마이크로미터 수준의 정밀도로 배치될 것이다.”라고 필자에게 말했다.
근처 기술자 한 명이 그가 너무 가깝다고 우려하며 소리쳤다. “물러서요!”
“안 만졌어요! 안 만졌어요!” 웰런이 웃으며 말했다.
이곳에서 정밀성은 매우 중요하다. 필자는 미국 코네티컷주 윌튼(Wilton)에 위치한 독일 회사 ASML의 클린룸에 들어와 있다. ASML은 세계에서 가장 정교한 리소그래피(lithography) 장비를 제작한다. 리소그래피는 트랜지스터, 와이어 및 기타 마이크로칩의 필수 소자를 만드는 데 중요한 과정이다. 이 장비의 가격은 1억 8천만 달러(약 2천 1백억 원)로, 이를 이용하여 13나노미터 수준의 정확도를 가지는 마이크로칩을 빠른 속도로 생산해낼 수 있다. 인텔이나 TSMC가 세계에서 가장 빠른 최첨단 컴퓨터 프로세서를 생산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높은 수준의 정밀도가 요구된다. 네덜란드의 ASML 본사에서 조립된 완성품은 소형 버스 크기이며, 레이저로 주석 액체 방울을 초당 5만 번 폭발시켜 고에너지 자외선의 특정 파장을 생성하는 시스템을 포함해 10만 개의 작고 조직화된 메커니즘으로 채워져 있다. 이 장비 1대를 고객에게 배송하기 위해서는 보잉 747기 4대가 필요하다.
“이 기술은 매우 까다롭다. 복잡성 측면에서는 아마도 맨해튼 프로젝트에 견줄 수 있을 것이다.” 인텔의 리소그래피 책임자인 샘 시바쿠말(Sam Sivakumar)은 말한다.
이곳 윌튼에서 웰런과 그의 팀이 만들고 있는 유리 금속 모듈(glass-and-metal module)이 특히 중요하다. 이 모듈은 극자외선(EUV, extreme ultraviolet)이 방출되는 동안 앞뒤로 빠르게 움직이면서 마이크로칩을 만드는데 필요한 다양한 패턴을 운반할 것이다. 패턴을 통과한 빛은 접시 크기의 실리콘 웨이퍼(wafer)로 튕겨 내려와 모양을 새긴다.
웰런은 한 모니터 앞으로 우리를 이끌었다. 그곳에서는 한 유리 금속 모듈이 앞뒤로 빠르게 움직이면서 테스트되는 과정이 보였다. 이 모듈의 무게는 30 킬로그램에 달하지만 눈 깜짝할 사이에 빠르게 움직인다.
“이 모듈이 가속하는 속도는 전투기보다 더 빠르다.” 웰런은 바짝 깎은 턱수염과 안경을 보호구로 가린 채 말했다. “무엇이든 느슨한 부위가 있다면 날아가게 될 것이다.” 게다가 그는 이 기구가 나노미터 수준에서 특정 지점에 정지해야만 한다고 말했다. “그러니까 지구상에서 가장 빠른 것이 가장 작은 지점에 멈춰서는 것이다”

CHRISTOPHER PAYNE

CHRISTOPHER PAYNE
빠른 속도와 높은 정확성을 동시에 유지해야만 무어의 법칙(Moore’s Law)을 따라잡을 수 있다. 무어의 법칙이란, 약 2년마다 반도체의 집적도가 2배 상승하여 반도체의 가격이 저렴해지고 성능은 향상된다는 관측을 말한다. 트랜지스터를 더 빽빽하게 채울수록 칩 주변에서 전기 신호가 빠르게 전달될 수 있다. 60년대 이후, 반도체 제조업체들은 대략 10년을 주기로 파장이 더 짧은 새로운 형태의 빛을 도입하여 소자의 크기를 줄여왔다. 하지만 90년대 후반, 제조업체들은 193 나노미터 파장에서 벽에 부딪혔고, 다음에 무엇을 해야 할지 열띤 토론을 벌였다. 상황은 점차 악화되었다. 반도체 제조업체들은 무어의 법칙을 유지하기 위해 점점 더 복잡한 설계와 기술을 사용해야 했지만, 이후 20년 동안 성능을 향상시키는 데 성공했다.
그 후, 2017년에 ASML은 당장 산업 현장에 투입할 수 있는 극자외선 노광장비를 공개했다. 이 장비는 파장이 단 13.5 나노미터에 불과한 빛을 이용한다. 파장이 짧은 덕에 반도체 제조업체들은 트랜지스터를 이전보다 더 촘촘하게 배치할 수 있었다. CPU는 계산 속도, 전력 효율 및 경량화 측면에서 향상되었다. 극자외선 수준의 정밀도를 가진 1세대 반도체들은 이미 구글과 아마존 같은 대기업에서 사용되고 있다. 이를 통해 언어 번역, 검색 엔진 결과 산출, 사진 인식, 심지어 GPT-3(생성적 사전학습 변환기 3)와 같이 소름 끼칠 정도로 인간과 비슷하게 말하고 쓰는 AI의 성능이 향상되었다. 또한 극자외선 혁명은 소비자들의 일상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 ASML의 장비가 애플의 스마트폰과 맥, AMD 프로세서, 삼성의 노트10+폰을 포함한 제품용 반도체를 만드는 데 사용되기 때문이다. 극자외선 장비가 보편화됨에 따라 우리 일상의 단말기 성능은 향상되고 전력 수요는 줄어들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극자외선 기술은 반도체 설계를 단순화시킬 수 있어 반도체 제조업체가 웨이퍼당 더 많은 반도체를 더 빠르게 생산할 수 있게 한다. 그 결과 비용이 절감되어 소비자들도 부담을 덜 수 있다.
그 누구도 극자외선 리소그래피 방식이 성공할 수 있을지 장담하지 못했다. 극자외선을 조작하기란 너무 어려워서 전문가들은 수년간 ASML이 해법을 절대 찾을 수 없을 것으로 예측했다. 실제로 ASML의 라이벌인 캐논과 니콘은 이미 수년 전에 이를 포기했다. ASML은 이제 독점적 지위를 갖추었다. 첨단 프로세서를 만들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 장비가 있어야 한다. ASML은 1년에 단 55대 만을 생산하고 있으며, 이 제품들은 반도체 업계의 거대 기업들에 활발하게 판매되고 있다. 현재 100대 이상이 설치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무어의 법칙은 기본적으로 무너지고 있으며, 이 기계가 없다면 자취를 감추게 될 것이다.” 시장조사업체 CCS 인사이트(CCS Insight)의 연구 책임자인 웨인 램(Wayne Lam)은 말한다. “극자외선 없이는 어떤 첨단 프로세서도 만들 수 없다.”
단일 기업이 마이크로칩 생산의 핵심부를 독점하는 것은 극히 드문 일이다. 더 놀라운 점은 이 개발 과정의 어려움 그 자체이다. ASML의 성취는 90억 달러(약 10조 7천억 원)의 연구개발비용과 17년간의 연구, 끊임없는 실험, 조정, 그리고 유레카의 순간들로 이루어졌다. 극자외선 기법은 이제 현실이 되었고, 이 기술은 실제로 작동한다. 하지만 이를 실현하기 위해 들인 노력과 시간, 그리고 이 기술이 예측보다 뒤늦게 등장했다는 사실로부터 불가피한 의문을 제기할 수밖에 없다. 극자외선이 언제까지 무어의 법칙을 유효하게 할 것인가? 그리고 그 다음에는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가?

CHRISTOPHER PAYNE
조스 벤숍(Jos Benschop)은 오랜 기간 필립스에서 재직하다가 1997년 ASML에 입사했다. 그가 ASML에 입사했을 때 반도체 업계는 새로운 도전에 직면해 있었다. 수십 년 동안 반도체 제조 엔지니어들은 리소그래피 기술을 이용해왔다. 개념은 간단하다. 전선과 반도체를 구성 재료로 하여 전체 회로를 설계한 후, 이들을 식각하여 ‘마스크(mask)’를 제작한다. 이는 마치 티셔츠를 생산하기 위해 스텐실을 제작하는 것과 비슷하다. 그 다음 과정으로 각각의 마스크를 실리콘 웨이퍼 위에 놓고 빛을 조사하면(스텐실 위에 물감을 분사하는 것처럼) 이 빛은 웨이퍼 표면의 화학층인 ‘레지스트(resist)’를 경화시킨다. 그 후, 다른 화학 물질들로 표면을 처리하여 결국에는 표면에 패턴이 새겨진 실리콘을 얻을 수 있게 된다. 60년대에 반도체 제조업체들은 400나노미터 정도의 파장을 가진 가시광선을 이 공정에 사용했다. 그리고나서 그들은 248나노미터의 자외선으로 옮겨갔고, 그 다음에는 원자외선(deep UV)라고 불리는 193나노미터 파장의 전자기파를 사용했다. 이 과정을 통해 무어의 법칙은 수십 년간 유지될 수 있었다.
그러나 90년대 후반, 원자외선을 이용한 방식은 한계에 도달했고 이 방식으로는 회로를 더 세밀하게 구성하기 어려워졌다. 좀더 정밀한 반도체를 위해서는 새로운 광원이 필요해 보였다. 당시 ASML은 원자외선 리소그래피 도구를 팔고 있던 300명 규모의 작은 회사일 뿐이었다. 하지만 관련 사업을 이어 나가기 위해서는 회사의 명운을 건 연구 개발이 필요하다는 것을 곧 모두가 깨달았다.
크고 마른 풍채에 활기차지만, 한편으로 냉소적인 면이 있는 벤숍은 첫 번째 연구직 직원으로 채용되었다. 그는 1년에 두 차례 열리는 대규모 컨퍼런스에 참석하기 시작했다. 그 자리에서 주요 반도체 회사들과 정부 기관에서 나온 이론 전문가들이 고심하며 추후 어떠한 파장의 빛을 사용하여 반도체를 생산해야 할지에 대해 토론하곤 했다.
“그 다음 선수는 누구일까? (What would be the next kid on the block?)” 지난 여름 필자와 줌(Zoom)으로 대화할 때 벤숍은 그 당시의 분위기를 이렇게 표현했다. 전문가들은 몇 가지 방안을 고민했지만 모두 중대한 문제가 있었다. 한 가지 아이디어는 반도체에 패턴을 그리기 위해 이온을 분사하는 것이었다. 이는 이론적으로 가능한 방법이었지만, 그 누구도 이를 산업에 적용할 수 있는 규모로 실용화할 방법을 찾지 못했다. 전자빔을 쓰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일부는 파장이 짧은 X선을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그것도 그 나름대로 어려움이 있었다. 최종 아이디어는 X선에 거의 근접한 13.5나노미터 파장의 극자외선이었다. 그럴듯해 보였다.
문제는 극자외선이 완전히 새로운 형태의 리소그래피 장비를 필요로 한다는 것이었다. 기존 제품은 웨이퍼에 빛의 초점을 맞추기 위해 전통적인 유리 렌즈를 사용했다. 하지만 극자외선 빛은 유리에 흡수되어 사라져버린다. 만약 극자외선을 이용하여 초점을 맞추고 싶다면 우주 망원경에 사용되는 것과 같은 곡면 거울을 개발해야 할 것이었다. 설상가상으로 극자외선은 공기에도 흡수되기 때문에 기계 내부를 완벽히 밀폐된 진공으로 만들어야 했다. 극자외선을 안정적으로 생성하는 방법조차 난관에 속했다. 아무도 그러한 방법을 알지 못했다.
미국 에너지부(US Department of Energy)가 그러했듯 인텔도 이 아이디어를 중심으로 접근했다. 하지만 그들의 연구는 대부분 실험실 수준에서 이루어졌다. 산업 현장에서 사용할 수 있는 반도체 제조 리소그래피 장비를 만들기 위해서는, 반도체를 빠르게 대량 생산할 수 있는 신뢰도 높은 기술을 개발해야 했다.
3년간의 숙고 끝에 2000년 ASML은 극자외선을 정복하는 데 회사의 운명을 걸어보기로 했다. 그들은 비록 작은 회사였지만, 만약 성공한다면 거물로 발돋움할 기회였다.
벤숍이 “우리 스스로 모든 것을 진행할 추진력이 없었다.”라고 회상할 정도로, 해결해야 할 기술적 문제들이 너무 많았다. 그래서 ASML의 임원들은 기존 기계의 부품을 만들던 회사들을 소집하기 시작했다. 그중 하나는 수년간 ASML에 유리 렌즈를 공급하던 독일의 광학 회사 자이스(Zeiss)였다.
자이스의 엔지니어들은 X선 망원경에 쓰이는 초정밀 렌즈와 거울 제작 등 극자외선을 다루어 본 경험이 있었다. 그 비결은 극자외선 거울 표면에 실리콘과 몰리브덴(molybdenum)을 번갈아 도포하는 것으로, 각 층의 두께는 몇 나노미터에 불과했다. 이 코팅을 입힘으로써 거울 표면은 부딪히는 극자외선의 70%를 반사해냈다.
이제 문제는 이것들을 연마하는 방법이었다. 극자외선을 반사시켜 반도체에 초점을 맞추기 위해서는 총 11개의 거울이 필요했다. 이는 마치 탁구선수 11명이 서로 공을 주고받아서 목표물을 맞히는 것과 같았다. 나노미터 수준의 반도체 소자에 식각하는 것이 목표였기 때문에, 각각의 거울은 비현실적일 만큼 매끄러워야 했다. 아주 작은 결함이라도 극자외선 광자가 빗나가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좌) 광택이 도는 이 렌즈는 리소그래피 장비 내부에서 빛 강도를 조절하는 데 사용되는 에너지 센서 부품이다.
(우) 연마 장치를 가까이서 촬영한 모습. 이 사진 속 유리 조각들은 정확한 경사면에 맞춘 각도로 설정되어 있다.이러한 연마 장치는 ASML의 극자외선 장비 내부에 들어갈 소자를 연마하는 데 사용된다.

좌측 상단 사진 속 렌즈와 같은 일부 광학 장치는 위 사진처럼 기계로 연마한다. 소자 하나를 여러 단계를 거쳐 연마하는 과정에는 수 주가 소요된다. 기술자들은 나노미터 수준에서 매끄러운 정도를 정밀 점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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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기 감각을 설명하기 위해 예를 들어보자. 가령 일반 화장실 거울을 독일 땅만 한 크기로 확대하면, 거울 표면 요철의 높이는 대략 5미터 정도가 될 것이다. 자이스 엔지니어가 제작한 우주망원경용 극자외선 거울에 같은 비율을 적용하면 요철의 크기는 2센티미터밖에 되지 않는다. ASML용 거울은 독일만 한 크기로 따지면 표면의 결함이 1밀리미터보다 작아야 했다. “이는 세계에서 가장 정밀한 거울이다” 자이스의 차세대 극자외선 광학 개발을 책임지고 있는 피터 퀴르츠(Peter Kürz)는 말한다.
결함을 찾기 위해 거울을 검사하고 이온빔을 사용해 개별 분자를 녹여내며, 수개월에 걸쳐 표면을 점차 매끄럽게 하는 과정이 자이스의 업무에서 큰 부분을 차지한다.
자이스가 거울을 개발하는 동안, 벤숍과 다른 ASML 공급 업체들은 다른 큰 난제에 직면하고 있었다. 극자외선의 안정적인 흐름을 만들어 낼 광원을 제작하는 것이었다.
이 문제는 수년에 걸쳐 그들을 괴롭혔다.
극자외선을 생성하기 위해서는 먼저 플라스마를 발생시켜야 한다. 플라스마는 극고온의 까다로운 조건에서만 만들어지는 물질의 상태이다. 레이저 펄스로 리튬에 충격을 가하는 초창기 실험 이후, 그들은 리튬을 주석(tin)으로 교체해 더 많은 양의 극자외선을 생성해낼 수 있었다.
2000년대 초, 샌디에이고에 있는 회사 사이머(Cymer), 독일의 레이저 회사 트럼프(Trumpf)와 함께 ASML은 일종의 ‘루브 골드버그 장치(Rube Goldberg)* 장치’를 만들어냈다. 이 장치 안에는 주석을 액체 상태로 유지시키는 가열된 용기가 있다. 이 용기에 연결된 노즐에서 녹은 주석 한 방울이 기계 밑바닥 쪽으로 떨어지는데, 카메라 시스템이 이 과정을 추적한다. 이때 나오는 주석 방울의 크기는 “사람 머리카락 두께의 3분의 1이다.” 호주 태생의 기술 개발 부사장인 대니 브라운(Danny Brown)이 말한다. 주석 방울이 빛을 생성해내는 장치 중심부에 도달하면, 레이저 펄스가 주석 방울을 때린다. 레이저에 부딪혀 약 50만 켈빈(K)까지 가열된 주석 방울은 극자외선을 방출하는 플라스마를 생성한다. 이 장치는 초당 5만 번씩 주석 방울을 쏘아 부수면서 이 과정을 반복한다.
*아주 간단한 일을 몹시 복잡한 과정을 거치도록 설계된 기계를 일컫는 말
“간단한 과정은 아니다. 그렇게만 말해두자.” 브라운은 건조하게 말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그들은 마침내 안정적으로 극자외선을 생성할 수 있었지만, 브라운과 그의 팀은 이내 새로운 문제를 발견했다. 주석 폭발에서 나온 이온들이 광학 장치 표면에 침착되어 장비의 성능을 저하시키는 문제였다. 이를 제거하기 위해서는 극자외선 생성 장치 내부에 수소를 공급해야만 했다. 챔버 안에서 수소는 주석 이온과 반응해 이를 제거할 수 있도록 하였다.
하지만 그들의 일정은 예상보다 지연되고 있었다. 처음에 벤숍은 2006년까지 극자외선 장비를 ‘대량 생산’할 수 있을 것으로 예측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 시점까지 단 두 대의 프로토타입만 생산하는 데에 그쳤다. 프로토타입 장비는 역사상 그 어떤 리소그래피 장비보다 더 정교하게 패턴을 식각했다. 그러나 그 속도는 견딜 수 없을 만큼 느렸다. 광원은 여전히 너무 빈약했다. 리소그래피에서는 광자 하나하나가 중요하다. 빛이 강하면 강할수록 실리콘 위에 패턴을 만드는 속도도 빨라지게 된다.
한편, 이 장비는 믿기 어려울 만큼 복잡한 규모로 커지고 있었다. 웨이퍼를 움직이는 로봇팔, 레티클(회로 패턴을 고정시키는 큰 유리조각)을 지구 중력의 32배로 가속하는 모터, 그리고 10만 개의 부품들, 케이블 3천 개, 볼트 4천 개, 그리고 2킬로미터에 달하는 호스가 장비를 구성하고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이 모든 것은 서로 연결되어 있었다. 즉, 한 부분이 작동하면 다른 곳에 의도치 않은 문제가 생길 수 있었다. 예를 들어 극자외선 빛이 뿜어내는 열이 거울의 치수를 아주 미세하게 변형시킨 것으로 드러났다. 이로 인해 자이스와 ASML은 모든 변화를 감지하는 센서와 정밀 작동기를 사용해 거울의 위치를 이동시키는 소프트웨어를 만들어야만 했다.
“문제 하나를 해결하면 다음 문제로 넘어갔다.” 벤숍은 말한다. “산에 오를 때마다 다음에 오를 더 높은 산을 보게 되었다.”
마이크로칩 업계의 많은 전문가들은 ASML이 예정보다 몇 번이나 늦어지는 것을 지켜보면서 그들이 실패하리라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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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버코어(Evercore)의 반도체 산업 애널리스트인 C.J. 뮤즈(C.J. Muse)는 말한다. “전문가의 95%는 극자외선 방식이 결국 실패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ASML이 부지런히 극자외선 방식을 개발하는 동안, 나머지 업계는 가능한 한 원자외선의 성능을 극대화하여 반도체의 집적도를 향상시키는 기법을 개발하고 있었다. ‘이멀젼(immersion)’이라고 하는 한 기술은 칩 위에 수분층을 도포하여 입사광을 굴절시켜 더 미세한 회로를 생산할 수 있었다.
이에 덧붙여 리소그래피 엔지니어들은 ‘다중 패턴화(multiple patterning)’라고 알려진 기술을 개발했다. 더 세밀한 회로 구성을 위해 반도체 표면을 여러 번 패턴화하고 깎아내는 기술이었다. 이러한 접근으로 칩 소자를 20나노미터까지 축소시킬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변칙적인 방식은 반도체 제작 과정을 훨씬 더 복잡하게 만들기도 했다. 이멀젼 방식을 위해서는 섬세한 리소그래피 공정 도중에 물을 주입해야 했는데 이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다중 패턴화를 적용하도록 설계를 바꾸는 일 또한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반도체 설계자들은 깨달았다. 원자외선 기법에 한계가 다가오고 있었다. 그리고 모두가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2010년대 중반쯤 마침내 극자외선 기법이 성공할 기미가 보이기 시작했다. 브라운과 연구진은 주석 방울로부터 극자외선을 더 효율적으로 생성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 과학 문헌을 파고들었다. 플라스마 물리학을 연구했던 전직 대학 연구원으로서 그는 ASML 내에서 과학적 엄밀성에 집착하는 문제를 제기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CTO는 장난으로 그에게 ‘과학적으로 정확하지만 실용적으로는 쓸모없다(Scientifically Accurate But Practically Useless).’라는 문구가 새겨진 명판을 주기도 했다.
이번에는 과학 문헌에 깊게 파고든 보람이 있었다. 주석 방울에 레이저를 두 번 조사하면 훨씬 더 많은 극자외선을 생성할 수 있음을 알게 된 것이다. 1차 조사는 방울을 팬케이크처럼 납작하게 만들어, 백만분의 1초 후 2차 타격에서 더 많은 극자외선을 발생시킬 수 있게 하였다. 브라운 연구팀은 이를 실제 기계에 적용할 수 있는 방법을 개발했다.
다른 발견은 반갑게도 우연히 찾아왔다. 주석에 열을 가하는 능력이 향상됨에 따라, 수소가 제거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주석 이온이 거울에 침착되어 거울의 성능이 저하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들은 재밌는 사실을 발견했다. 장비를 정비하려고 열었을 때, 거울 성능이 기존보다 천천히 저하되는 것이었다. 이는 공기 중 산소가 오염 반응의 역반응을 일으키기 때문으로 밝혀졌다. ASML은 이따금 산소 소량을 주입하는 식으로 장비를 개선했다.
2017년 중반에 이 회사는 드디어 산업에 적용할 수 있을 정도로 빠르게 칩에 식각할 수 있는 데모 버전을 제작했다. 시간당 웨이퍼 125개를 처리할 수 있는 속도였다. 브라운은 샌디에이고의 그의 연구실에 앉아 네덜란드에서 데모 장비가 가동되고 있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는 무척 들떴다. 그는 마치 이제는 휴가를 갈 수 있다고 선언하듯, 하와이안 셔츠를 입고 있던 상태였다.
“즈즈즛 즈즈즛 즈즈즛 즈즈즛(zzzt zzzt zzzt zzzt) 하고 작동했다.” 그는 레티클이 움직이고 로봇팔이 30초마다 웨이퍼를 갈아 끼우는 과정을 회상하면서 위와 같이 말했다. 이는 “극자외선 리소그래피가 성공했다고 말할 수 있는 최초의 순간이었다.”
ASML은 비로소 그해에 반도체 제조에 혁명을 일으킬 기계를 출하할 수 있었다. ASML이 최첨단 도구에 대한 독점권을 가졌다는 사실을 시장이 깨닫자, 주식은 급속히 치솟아 549달러(약 65만 원)에 도달했고 회사의 시가총액은 거의 인텔 수준이 되었다.
필자 같은 기계광(gearhead) 눈에 이 기계는 정말 멋지고 근사해 보인다. 감탄이 절로 나올 엔지니어링이다. 필자가 윌튼을 방문했을 때, 그들은 장치의 상단부가 될 거대한 알루미늄 가공 블록을 보여주었다. 그 블록의 길이는 8피트(약 2.4미터), 너비는 6피트(약 1.8미터), 그리고 두께는 2피트(약 0.6미터)였다. 우주선 섀시처럼 번쩍이는 알루미늄에는 유리 레티클과 거대한 통 모양의 분자 펌프가 장착되어 있다. 각 펌프에는 분당 30,000회 회전하는 작은 날개가 포함되어 있어 기계 내부의 모든 기체를 빨아들여 진공을 만들어낸다. “실제로 분자를 하나하나 제거한다”라고 웰런은 말했다.
ASML의 주요 성취는 기계를 만드는 것보다 기계를 측정하는 데 있다고도 할 수 있다. 방진복을 벗은 후, 필자는 기계공작실을 방문했다. 그곳에서는 레티클을 만들기 위해 거대한 유리 덩어리를 깎고 있었다. 깎아낸 유리 조각은 연마 기계에 배치되어 이후 몇 주에 걸쳐 수백 시간 동안 서서히 연마 과정을 거치게 된다. 기계공작실 관리자인 기도 카폴리노(Guido Capolino)가 필자에게 말했듯, 그들은 유리 표면을 마이크로미터 수준의 정밀도에서부터 지속적으로 반복 측정하면서 연마 과정을 진행해 나간다. 그가 가리킨 연마 기계에서는 유리 조각이 연마 혼합물 현탁액 안에서 천천히 회전하고 있었다.
ASML 샌디에이고 공장의 이 장치는 극자외선을 발생시키는 장치의 부품인 방울 발생기를 테스트하기 위해 사용된다. 리소그래피 기기 내부의 거울은 극자외선 광원으로부터 나오는 주석 이온에 의해 오염된다. 거울에서 오염 물질을 제거한 후 이 기기를 사용하여 오염도를 측정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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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오차를 옹스트롬과 나노미터 이하 수준으로 제어할 수 있다.” 그는 말했다. 레티클에 유리를 쓰는 것은 필수적이다. 유리는 금속과는 다르게 가열해도 형태가 유지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리는 원하는 모양을 만들기가 굉장히 어렵다. 이는 앞으로 엔지니어가 개선해 나가야 하는 문제점 중 하나다.
극자외선 기술의 성공으로 ASML은 반도체 업계에서 찬사의 대상이 되었다. 리소그래피 업계의 40년 차 베테랑인 크리스 맥(Chris Mack)은 현재 반도체 제조용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회사인 프랙틸리아(Fractilia)의 CTO이다. 그는 다른 이들이 시도할 생각조차 못 했던 방식을 ASML이 성공해낼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의 순수하고 고집 센 인내 덕분이었다고 말한다.
“그들은 시도하고 또 시도했다.” 그는 필자에게 말했다. “그들은 한 가지 문제를 해결한 다음 새로운 문제를 만나면 또 그 문제에 도전했다. 이 문제들의 끝에 성공이 있을지 실패가 있을지는 누구도 알지 못했다. 그들은 그저 계속 시도했다. 그리고 훌륭하게도 그들은 절대 포기하지 않았다.”
이제 그들은 점점 더 작은 소자를 만들 수 있다. 인텔이나 TSMC, 삼성과 같은 대기업은 역대 최고로 빠르고 더 효율적인 반도체를 제작할 수 있다.
“우리 개발자들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인텔의 샘 시바쿠말(Sam Sivakumar)은 말한다. “무어의 법칙은 여전히 유효하다.”
더 많은 극자외선 장비를 가동하고 비용 상환이 이루어질수록, 이 기술은 점차 일상의 수많은 기기까지 확산해 적용될 것이다. 최소한 일정 기간 극자외선 혁명의 혜택에서 벗어난 한 곳이 있다면, 바로 중국이다.

중국의 기술적 위협을 우려하여 트럼프와 바이든 미정부는 네덜란드에 압력을 가해 ASML이 극자외선 장비를 중국에 판매하지 못하도록 했다.
중국이 자체적으로 극자외선 장비를 제작할 수 있을까? 많은 산업 전문가는 그럴 수 없을 것으로 본다. ASML이 극자외선 기술을 손에 넣은 데에는 독일과 미국, 일본 등 세계 각지에 있는 여러 기업과의 광범위한 협업이 필요했다. (일본 기업들은 리소그래픽 마스크에 중요한 화학물질을 생산한다.) 조지타운 대학(Georgetown University)의 보안 및 부상 기술 센터(Center for Security and Emerging Technology)에 분석가로 있는 윌 헌트(Will Hunt)에 따르면, 상대적으로 고립된 입지의 중국은 이를 자체적으로 생산해내기 쉽지 않아 보인다. “기술적 격차를 메우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는 말한다.
다만 다른 전문가는 이 상황이 단순히 중국이 극자외선 장비를 입수하는 것을 지연시킬 뿐이라고 주장한다. 통상 중국의 반도체 제조업체들은 대만의 TSMC나 한국의 삼성, 미국의 인텔 등이 예전에 사용하던 한 세대 이전의 장비를 사용한다고 C. J. 뮤즈는 말한다. 지금으로부터 몇 년 후, ASML 극자외선 장비 1세대가 구식이 되고 산업계가 새로운 모델로 이동하면, 그때 중국은 이 기기를 구입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실제로 ASML은 이미 장비 개선을 진행하고 있다. 차세대 기기에서는 ‘더 높은 NA(higher numerical aperture)’라고 알려진 기술 덕에, 극자외선 광선을 한층 더 정밀하게 조절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기술을 이용하면 10나노미터 넓이 미만으로 회로를 식각할 수 있다. 이러한 ‘더 높은 NA(higher-NA)’ 극자외선 장비는 더 큰 거울을 갖추게 될 것이며, 장비 자체도 더 커야 할 것이다. 인텔은 차세대 장비의 첫 고객이며, 2025년에 처음 이 장비로 제작한 반도체를 판매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ASML과 대부분의 전문가는 적어도 2030년까지 극자외선을 통한 반도체 기술이 진보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결국에는 반도체 개발자들이 원자외선을 오랜 기간 활용할 수 있도록 개발한 기술들을 극자외선에서도 재현해내야 한다.
하지만 다음 10년의 어느 순간, 높은 집적도를 추구하는 반도체 업계의 욕망은 이전보다 훨씬 더 어려운 문제들에 봉착하게 될 것이다. 우선 첫째로, 양자 문제가 심각해질 수 있다. 물론 이 문제는 이미 존재하는데, 현재도 ASML의 극자외선 기기를 사용하는 반도체 제조업체들은 ‘추계적 오류(stochastic error)’와 씨름해야 한다. 극자외선 광선은 자연적으로 빗나가서 반도체에 잘못된 회로를 생성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 문제가 아직 반도체 생산을 저하시킬 정도는 아니지만 반도체 제조업체들이 미세공정을 발전시킬수록 이 오차를 통제하기는 더 어려워질 것이다.
‘하이 NA’가 2030년까지 무어의 법칙을 유지할 것이라고 전제할 때, 그 이후에는 어떤 것으로 대체될 것인가? 산업 전문가들은 ASML이 계속해서 훨씬 더 높은 NA를 지닌 기기(higher-numerical-aperture devices)를 연구개발할 것으로 예측한다. 이 기기는 극자외선을 더 높은 정밀도로 조사할 수 있을 것이다. 동시에 반도체 개발자들은 미세공정을 더 발전시키지 않고도 반도체의 성능을 향상시킬 수 있는 방식을 개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가령 아키텍처를 위로 늘려 칩을 층층이 쌓아 3차원으로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극자외선 이후 어떤 리소그래피 기술이 나올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모른다. 인텔의 시바쿠말은 감히 추측하지 않는다. 맥은 하이 NA 극자외선 기술 이외에 ‘다른 어떤 기술도’ 활발하게 연구되고 있지 않다고 이야기한다.
윌튼의 클린룸에서 웰런은 필자에게 하이 NA 극자외선 장비를 구경시켜 주었다. 그는 거대한 셔터문을 들어 올리고서는 축구장 넓이만 한 새로운 클린룸으로 안내해주었다. 거대한 클린룸의 한쪽에서는 알루미늄 레티클 구조물이 반짝이고 있었다. 기존 극자외선 장비와 똑같이 생겼지만, 거실 크기 정도가 아니라 거의 지하철 한 량 급 규모였고 무게도 무려 17톤에 달했다. 이 기기를 들이기 위해 지붕에 크레인을 설치해야 했다.
“그러니까,” 웰런은 말했다. “바로 이 기기를 이용해 우리가 무어의 법칙을 이어나갈 수 있게 될 것이다”
클라이브 톰슨은 뉴욕시를 거점으로 활동하는 과학기술 저널리스트이며, ‘코더: 신인류 탄생과 세계 재구성(Coders: The Making of a New Tribe and the Remaking of the World)’의 저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