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탄소 배출 감소를 경제적 성공과 연동시킨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
지난 8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10여년 동안 최대의 기후 법안으로 여겨지는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에 서명했다. 이 법률을 통해 미국 정부는 2015년에 서명했던 파리 협정 의무를 이행하기 위한 정상 궤도로 다시 복귀했다.
인플레이션 감축법은 2030년까지 미국의 탄소 배출량을 40% 이상 감소하기 위한 구체적 조치를 담고 있을 뿐만 아니라 기후 변화에 접근하는 정책의 방식을 근본적으로 재구성한다. 인플레이션 감축법은 수십 년 동안 미국의 기후 정책이 탄소 배출량 감소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던 점을 이용하여 새로운 경제 성장에 투자할 수 있는 기회로 제시한다.
인플레이션 감축법은 친환경 제품에 세금 인센티브를 주어서 경제 성장을 유도한다. 예컨대, 미국 영토 또는 자유무역 파트너 국가들에서 제조된 전기 자동차 배터리, 풍력 발전용 터빈, 태양광 패널에 세금 혜택을 준다.
인플레이션 감축법에는 글로벌 에너지 전환에서 얻지는 경제적 기회를 활용하려면 새로운 정부 개입이 필요하다는 개념이 함축되어 있다. 청정 에너지 제조 분야에서 미국 정부의 직접적인 정책 개입은 연구개발(R&D)에 대한 공공 투자와 청정 에너지 시장의 지원에 주된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그러나 인플레이션 감축법은 워싱턴의 기존 산업정책과는 결별했다.
기후 변화를 경제적 기회로 재구성하려는 미국 정부의 노력은 타이밍이 늦은 감이 있다. 중국은 급성장하는 청정 에너지 산업에서 시장 점유율을 늘이기 위해 국가적 차원에서 정책 도구를 진작부터 사용해 왔다. 현재 중국은 전 세계에서 생산되는 태양광 모듈 전지의 85% 이상을 차지한다. 또한, 전기 자동차용 배터리 팩 조립 및 에너지 저장 배터리에 사용되는 리튬 이온 전지의 78%를 생산한다. 유럽연합 역시 야심 차게 기후 목표를 설정했다. 유럽은 산업정책을 통하여 청정 에너지 산업을 키웠고 자동차 제조업 등 국내 산업 분야들을 저탄소 비전에 맞게 전환했다.
인플레이션 감축법은 지난 8월에 하원과 상원을 통과된 이후 많은 갈채를 받았다. 백악관은 미국 의회를 통과한 단일한 기후 법안들 가운데 가장 영향력이 있는 법안이라고 평가했다. 과학자들은 인플레이션 감축법을 기후변화 전쟁의 전환점으로 여긴다. 인플레이션 감축법에 포함된 산업 정책 조항을 통하여 50만 개 일자리가 생겨난다는 점을 강조하는 관점도 있다. 실제로 태양광PV, 배터리 및 전기 자동차 제조업체들은 인플레이션 감축법이 서명된 이후 불과 몇 주 만에 미국 내 생산시설에 신규 투자를 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런 열정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국내 청정 에너지 산업을 구축하는 과정에서 여전히 만만치 않은 도전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이미 수십 년 동안 수십억 달러를 투자한 국제적 경쟁자들이 넘쳐나는 시장에 미국은 뒤늦게 진입하고 있는 셈이다. 중국은 거의 모든 태양광 공급망 부분을 장악하기 위해 500억 달러가 넘는 돈을 퍼부었다. 전기 자동차 배터리 분야에서 중국의 시장 지배력에 맞서고자 유럽연합은 2017년에 유럽 기업들이 전체 배터리 공급망에서 영향력을 가지도록 목표를 설정하고 동맹을 맺었다. 유럽연합은 국내 청정 에너지 공급망 구축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코로나19 팬더믹의 초기에 할당되었던 경제적 예산의 40% 이상을 청정 에너지 공급망 구축을 위한 녹색 산업 정책 이니셔티브에 사용했다.
전 세계의 풍력 에너지, 태양광 및 배터리 공급망을 대체하고 경쟁할 수 있도록 미국의 청정 에너지 산업을 구축하는 작업은 인플레이션 감축법이 제시한 기간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인플레이션 감축법의 세액 공제는 요건만 충족되면 거의 즉각적으로 적용되지만 미국의 제조 역량을 키우고 새로운 가능성을 발굴하려면 몇 달이 아닌 몇 년이 걸릴 수 있다.
만일 태양광, 풍력 에너지 및 배터리 제품들에 대한 미국의 공급망 구축이 예상보다 오래 걸린다면 청정 에너지 제품들은 정부의 자금 지원을 받지 못하게 되므로 배포가 늦어질 수 있다. 현재의 미국 기후 정책은 경제 정책에 명백하게 의존하는 형태가 되고 말았다. 그런데 경제 정책은 미국의 탄소 배출량을 줄이기 위한 활동을 복잡하게 만들 수 있다.
이런 정책 의존성은 특히 문제가 될 수 있다. 인플레이션 감축법이 규정한 국산 부품 생산 요건과 제조공장 재건 및 건축을 위한 대출 등 산업 정책 도구들은 미국 내에서 사용된 전례가 없다. 공급망 구축라는 목표를 달성이 예상과 달리 어렵더라도 인플레이션 감축법을 재조정하거나 수정하기는 곤란하다. 인플레이션 감축법이 기후 목표의 달성을 약화시키더라도 하원과 상원에서 이 법률안이 가까스로 통과되었던 점을 감안한다면 그 산업 정책 목표와 인센티브를 다시 수정할 수 있는 가망성은 거의 없다.
인플레이션 감축법은 새로운 산업 정책 수단들을 도입했지만 빠진 부분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인플레이션 감축법의 세액 공제를 받으려면 국내에서 제조한 부품이어야 한다는 요건을 따라야 한다. 이는 미국 기업들이 제조 능력을 구축할 수 있는 중요한 인센티브를 부여하지만 그 기업들이 그 목표를 달성하도록 돕는 적극적인 정책이 되기에는 부족하다. 엄밀히 말해, 이 법률이 청정 에너지 부문의 국내 제조공장 건설에 상당한 대출 및 보증을 제공하기는 하지만 일회성 투자는 미국 제조업을 위한 장기적인 해결책을 대체하지는 못한다.
미국 금융권은 특히 정부 규제에 크게 의존하는 청정 에너지 산업 속한 자국 업체들에게 자금을 지원하기를 꺼려했었다. 규모를 확장하려면 청정 에너지 기업들에도 훈련된 인력이 필요하다. 예컨대 새로운 커리큘럼을 개발, 인력 수요를 충족하기 위한 직업훈련, 청정 에너지 산업의 조정을 위한 투자가 요청된다. 인플레이션 감축법의 산업개발 목표를 달성하려면 법률 규정에는 없는 새로운 종류의 자금 조성과 훈련 기관이 필요할 것이다.
기후 정책을 경제 정책으로 재구성하는 일은 미국의 미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서 중요할 뿐만 아니라 정치적으로도 능숙한 전략이다. 청정 에너지 부문에서 일자리가 창출된다면 기후 변화를 아직 우선 순위로 보지 않는 유권자들이 많은 주(states)들을 포함하여 기후 정책을 지원하는 연합체를 새롭게 구축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인플레이션 감축법은 훨씬 더 광범위한 산업 변화의 출발점에 불과하다. 인플레이션 감축법이 제시한 경제 성장 목표를 달성하려면 장기간에 걸쳐 미국 제조업의 쇠퇴를 초래했던 구조적인 문제를 먼저 해결해야 한다. 인플레이션 감축법이 그 구조적 문제의 해결에 초점을 두지는 않고 있다. 기후와 경제적 결과는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따라서 구조적 문제가 계속 지속된다면 청정 에너지 산업의 성장과 더불어 파리 협정의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미국의 역량을 위태롭게 만들 수 있다.
*이 글을 쓴 조나스 남(Jonas Nahm)은 존스 홉킨스 국제대학원(Johns Hopkins School of Advanced International Studies)의 조교수이자 친환경 산업 전문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