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터뷰] LG AI연구원 이홍락 원장 “다음은 사이언티스트 AI, 가설-실험-검증 시대 온다”
2025년 AI 분야의 핵심 화두 중 하나는 AI가 단순한 생성 도구를 넘어 에이전트로 기능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최근 공개된 오픈AI의 ‘오퍼레이터(Operator)’와 구글의 ‘제미나이 2.0(Gemini 2.0)’은 이 흐름을 분명히 보여준다. 두 기술 모두 AI가 사용자의 지시를 받아 실제 작업을 수행하도록 설계됐으며, 이를 계기로 오픈AI와 구글은 에이전트 시장의 주도권을 두고 본격적인 경쟁 국면에 들어섰다.
이 변화는 컨슈머 서비스에 그치지 않고 기업 환경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AI는 보조 도구를 넘어 업무 흐름의 일부로 편입되고 있으며, 이에 따라 기업들은 단순한 도입을 넘어 조직과 업무 구조 전반을 다시 설계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AI 트랜스포메이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글로벌 AI 경쟁이 이처럼 실행과 구조의 문제로 진화하는 가운데, 우리는 국내에서 AI 연구와 산업 적용을 동시에 추진해온 대표적인 연구 조직을 찾아 향후 AI의 방향과 한국의 선택지를 들어봤다.
LG AI Research(이하 LG AI연구원)는 이러한 산업 현장의 요구 변화를 가장 가까이에서 축적해온 조직이다. 2020년 12월 7일 설립된 LG AI연구원은 출범 이후 제조·화학·바이오 등 LG그룹의 핵심 사업 영역에 AI를 실제 공정과 업무 흐름에 적용해 왔다. 설립 초기 연구원을 이끌었던 배경훈 초대 원장은 현재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을 맡고 있다. 설립 5주년이 지난 지금, LG AI연구원은 산업 현장에서 작동하는 AI를 통해 범용 AI와 산업 AI의 설계 기준이 갈라지는 지점을 구체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현재 약 300명 규모의 LG AI연구원을 이끌고 있는 이홍락 원장(공동 원장)은 파운데이션 모델과 에이전트 기술을 제조 현장의 실제 업무 흐름에 적용하는 작업을 총괄하고 있다. 그는 딥러닝이 아직 학계의 주류가 아니던 시절, 스탠퍼드대에서 앤드류 응(Andrew Ng) 교수 아래에서 연구를 시작했고, 이후 구글의 인공지능 연구 조직 구글 브레인에서 ‘트랜스포머’ 논문이 탄생하는 과정을 내부에서 지켜봤다. 연구실에 머물던 기술이 실제 산업 시스템으로 옮겨가는 전환점을 모두 거친 연구자이기도 하다. MIT 테크놀로지 리뷰 편집팀은 글로벌 AI 흐름과 에이전트 전환이 현실의 업무 구조를 어떻게 바꾸고 있는지, 그리고 제조·산업 현장을 기반으로 한 한국 AI의 경쟁력을 확인하기 위해 이홍락 원장을 만났다.
Q. 스탠퍼드에서 박사 과정을 밟으셨던 2000년대 후반은 지금 돌아보면 딥러닝의 여명기였습니다.
2006년부터 2010년까지 앤드루 응 교수님 밑에서 박사를 했습니다. 당시 딥러닝은 찬밥 신세였어요. 학계의 주류는 아니었죠. 하지만 동시에 무언가 새로운 것이 막 움트기 시작하는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제 연구 주제는 표현 학습(Representation Learning)이었습니다. 데이터로부터 유용한 정보를 자동으로 추출해내는 것이죠. 사람 얼굴을 학습시키면 모델이 스스로 눈, 코, 입이라는 구성 요소를 발견해냅니다. 음성 데이터에서도 마찬가지로 음성 인식에 도움이 되는 패턴을 자동으로 찾아냅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 자동화된 특징 학습 능력이 결국 딥러닝의 핵심 역량이 되었고, 지금까지 이어지는 큰 기술 발전의 토대가 된 셈입니다.
Q. 2016년부터 2020년까지는 구글 브레인에 계셨습니다. 당시는 딥러닝이 이미 폭발하던 시기였죠. 당시 상황은 어땠습니까.
구글 브레인은 당시만 해도 정말 작은 조직이었습니다. 초창기 멤버로 들어가서 여러 흥미로운 연구들을 목격했죠.
가장 아쉬운 것 중 하나는 ‘트랜스포머’ 논문에 참여하지 못한 겁니다. 논문의 제1저자로 유명한 아시시 바스와니(Ashish Vaswani) 박사가 제 바로 뒷자리에 앉아 있었거든요. 2016년 가을에 합류했는데, 그가 칠판에 뭔가를 그리면서 “이런 연구를 하고 있는데 한번 같이 해보자”고 제안했어요.
하지만 당시 제가 하던 다른 연구들도 있었고, 여러 프로젝트에 관여하다 보니 미처 거기에 참여를 못했습니다. 그 연구는 이듬해 라는 제목으로 세상에 나왔고, AI 역사를 바꿨죠.
Q. 2020년 미국 미시간대 정교수 자리를 그만두고 한국행을 결정하셨는데, 쉽지 않은 선택이었을 것 같습니다.
당시 한국의 AI 인지도나 역량이 그렇게 높지 않았습니다. 우수한 인재들은 의대로 몰리고, AI 인재들은 해외로 빠져나가는 상황이었죠.
하지만 한국의 인재 풀은 굉장히 뛰어납니다. 학생들의 연구 수준이나 기초 역량은 충분히 세계적이에요.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연구 중심 조직을 만들어보고 싶었습니다. 단기 성과에 집중하기보다는 장기적인 안목으로 AI를 핵심 동력으로 키워가고,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연구개발(R&D)과 함께 다양한 산업 영역으로 실제 확장·응용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될 수 있다고 봤습니다.
Q. 이젠 약 300명 규모의 LG AI연구원을 이끌고 계십니다. 연구원은 어떤 일을 하나요.
우리는 단순히 ‘AI 팀’이 아닙니다. 엑사원(EXAONE)이라는 파운데이션 모델을 직접 개발하고, 그 모델을 실제 산업 문제에 적용하는 전체 파이프라인까지 수행합니다. 연구와 사업화, 이 두 가지를 동시에 해야 합니다. 글로벌한 연구를 하면서 동시에 LG 계열사들의 실질적 성과로 이어지도록 하는 것. 이 균형이 우리의 미션입니다.
엑사원은 오픈소스로 공개돼 있습니다. 중요한 건, 범용 모델과 특화 모델 사이의 균형입니다. 현재 엑사원은 사내 여러 계열사에서 사용되고 있습니다. 고객센터에서는 상담원이 고객과 통화할 때 AI가 실시간으로 응대하고, 제조 현장에서는 비전 검사에 사용됩니다. 카메라 모듈이 양품인지 불량인지 판별하고, 한 번 검사한 결과의 확실성을 평가해서 사람 개입이 필요한지 AI가 다시 결정합니다.
화학 플랜트에서는 멀티 에이전트 시스템으로 작동합니다. 여러 AI 에이전트들이 자동으로 재료 수급량을 결정하고, 공정 진행 정도를 조절하고, 결과물을 다음 단계로 옮기는 모든 과정을 수행합니다. 신약개발을 위해 ‘엑사원 디스커버리 플랫폼’을 만들었고 배터리 소재 개발에서 장기 예측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AI 알고리즘을 활용해 투자 전략을 수립하는 상장지수펀드(ETF) 상품도 개발·운영 중입니다. 최근에는 런던증권거래소그룹(LSEG)과 협업해서 미국 S&P500 전 종목에 대해 매일 AI 기반 애널리스트 리포트를 생성하는 솔루션을 만들었습니다.

AI 시장의 현재
Q. 구글과 오픈AI의 경쟁, 장기전에서는 어느 쪽이 유리하다고 보십니까.
장기적으로는 구글이 유리하다고 봅니다. 오픈AI는 지금 모멘텀이 있고 챗GPT로 대중적 인지도를 선점했습니다. 하지만 구글은 캐시카우가 있습니다. 검색이라는 안정적인 수익원이 있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AI에 투자할 수 있는 구조죠. 오픈AI는 계속 투자를 유치해야 하고, 수익 모델을 증명해야 하는 압박이 있습니다. 마라톤에서는 체력이 중요하니까요.
Q. AI 거품론은 실체인가요, 착시인가요.
거품이 있다고 봅니다. 하지만 전체 흐름은 점점 더 빠르고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지수함수적 성장 패턴을 보이고 있어요. 인터넷 버블 때를 생각해보세요. 분명 거품이 있었지만, 인터넷 자체는 세상을 바꿨습니다. 많은 닷컴 기업들이 무너졌지만, 살아남은 기업들이 지금의 빅테크가 되었죠.
AI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과열된 부분이 있고, 실제 가치를 만들어내지 못하는 기업들은 도태될 겁니다. 하지만 기술 자체의 발전은 멈추지 않습니다. 오히려 가속화되고 있죠. 컴퓨팅 총량으로 보면 2015년 이전에는 1년에 2배씩 늘었는데 지금은 3~4개월마다 2배씩 증가하고 있습니다. 이게 AI 발전의 실체를 보여주는 지표입니다.
AI 에이전트에서 ‘AI 사이언티스트’로
Q. 에이전트 AI는 생성형 AI를 어떻게 넘어설까요.
에이전트 AI는 차원이 다릅니다. 생성형 AI는 “이걸 만들어줘”라는 요청에 답을 만들어냅니다. 하지만 에이전트 AI는 워크플로 전체를 수행합니다. “어떤 데이터가 필요한가” “어디서 가져올 것인가” “어떤 분석이 필요한가” 이런 과정을 스스로 계획하고 실행하죠.
더 중요한 건 자기 평가와 반복 개선 능력입니다. AI가 결과물을 내놓으면, 그것에 대해 스스로 평가하고 어떻게 개선할지 판단합니다. 코딩을 예로 들면, 처음 짠 코드를 실제로 돌려보고 에러가 나면 계속 고쳐가면서 원하는 결과가 나올 때까지 반복합니다. 사람이 일하는 방식과 비슷하죠.
실제로 1년 전만 해도 에이전트의 성공률이 10번 중 3번 정도였는데, 지금은 10번 중 8번은 성공합니다. 이 속도로 개선되고 있습니다.
Q. AI 에이전트 다음, 또 다음은 무엇이 될 거라고 보십니까.
아마도 사이언티스트 AI가 될 겁니다. 과학에서 복잡한 R&D 문제를 푸는 AI죠. AI가 스스로 가설을 세우고, 그 가설을 검증하기 위한 실험을 디자인하고, 실제로 실험을 수행합니다. 결과를 가지고 가설을 검증하거나, 필요하면 가설을 바꾸고 피보팅하면서 계속 반복하는 겁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새로운 신물질을 발견할 수도 있고, 신약의 새로운 성분을 만들 수도 있습니다. 앞으로는 자율주행 실험실을 통해 가설 설정부터 실험 디자인, 실제 실험 수행, 결과 분석, 가설 검증, 다시 가설 수정까지의 전체 풀 사이클을 자동화하는 게 목표입니다. 그다음은 피지컬 AI고요.
Q. AGI(범용인공지능)는 언제쯤 가능할 거라고 예상하시나요.
AGI라는 개념이 매우 모호합니다. 사람이 하는 모든 걸 다 잘하는 게 AGI다, 이렇게 정의하면 아직 모자란 부분이 많습니다. 특히 피지컬한 쪽으로 가면 갈수록 부족합니다. 롱텀 메모리도 마찬가지고요.
하지만 특정 영역만 보면 완전히 다른 이야기입니다. 코딩을 잘한다는 관점에서 보면, 이건 웬만한 사람보다 AI가 잘합니다. 과학의 어떤 영역에서도 마찬가지죠. 대학 수준의 수업에서 AI가 A를 받을 수 있느냐? 충분히 가능합니다.
이게 AGI의 모호함입니다. 어떤 기준으로 보느냐에 따라 “이미 도달했다” 또는 “아직 멀었다” 둘 다 말할 수 있는 상황이죠. 그래서 AGI 논쟁은 사실 기준이 없어서 답이 없는 겁니다.

한국의 선택과 포지셔닝
Q. 제조업 AI가 빅테크의 범용 모델과 근본적으로 다른 지점은 어디입니까.
한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제조업을 가지고 있습니다. 반도체, 배터리, 디스플레이, 화학 같은 분야에서 한국은 이미 글로벌 리더예요.
빅테크는 컨슈머 AI로 수십억 사용자를 확보했지만, 정작 세상의 물리적 인프라는 여전히 사람이 운영합니다. 공장, 발전소, 화학 플랜트, 물류 시스템, 이런 것들이 AI로 최적화되면 경제 전체의 효율이 달라집니다.
빅테크는 범용 모델에 엄청난 자원을 쏟아붓습니다. 하지만 공장 바닥의 구체적인 문제, 제조 공정의 미세한 최적화, 이런 건 범용 모델만으로는 안 됩니다. 도메인 지식과 AI의 결합이 필요하죠.
화학 플랜트를 운영한다고 하면, 재료 수급, 공정 조절, 결과물 관리를 모두 실시간으로 최적화해야 합니다. 이는 챗봇을 만드는 문제와는 본질적으로 다릅니다. 30년 경력 엔지니어의 노하우를 AI와 결합해야 하는 일입니다. 이런 문제들이 한국 제조업에는 수없이 많습니다. 빅테크는 이런 문제에 관심이 없어요. 시장이 작으니까. 하지만 한국 입장에서는 이게 핵심 경쟁력입니다.
Q. 한국의 파운데이션 모델 역량이 글로벌에서 어느 정도 위치에 있다고 보시나요.
한국은 파운데이션 모델을 잘 만드는 국가 중 세계 3위 정도 됩니다. 미국과 중국을 제외하면 한국, 캐나다, 프랑스 정도밖에 안 됩니다. 우리가 자체 파운데이션 모델을 잘 만드는 역량이 있는 건 사실입니다.
특히 오픈 모델이 앞으로 점점 중요해질 것으로 봅니다. 여러 지정학적 이유로 중국 모델 쓰기를 꺼려하는 한국 회사들이 많습니다. 미국에 수출할 때 중국산 AI로 뭘 만들었다고 하면 여러 제약이 있을 수도 있거든요. 그래서 한국의 좋은 오픈 모델을 가지고 내부 AI 시스템을 만들려는 니즈가 굉장히 많습니다.
Q. 한국 기업들의 AI 전환에서 데이터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말씀하셨는데 설명 부탁드립니다.
데이터 생태계를 어떻게 만드느냐가 전부입니다. 많은 기업들이 AI 도입을 고민하지만, 정작 데이터 관리 체계가 없습니다. 데이터가 여기저기 흩어져 있고, 표준화되지 않았고, 품질도 들쭉날쭉합니다. 이런 상태에서 아무리 좋은 모델을 가져와도 소용없습니다.
먼저 데이터를 모으고, 정제하고, 표준화하고, 레이블링해야 합니다. 이게 전체 프로젝트의 70~80%를 차지합니다. 실제 모델 개발은 나머지 20~30%에 불과하죠. 많은 기업들이 이 순서를 거꾸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다음 세대를 위하여
Q. 한국 AI의 강점과 약점, 하나씩만 말씀해주십시오.
강점은 인프라입니다. 인터넷, 전력이 잘 갖춰져 있고, GPU도 최근 정부와 민간 투자로 빠르게 채워지고 있습니다. 또 국민들의 AI 수용성이 높다는 것도 큰 강점입니다.
약점은 인재 유출입니다.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AI 인재를 우리가 잘 유지하는 부분이 부족합니다. 길게 보면 AI 인재 파이프라인을 중장기적으로 잘 공급하고, AI 인력들이 외국으로 빠져나가는 현상을 어떻게 막을 것인가, 이런 부분은 정부, 민간, 학계가 함께 고민해야 할 과제입니다.
Q. 젊은이들이 AI 시대를 살아가기 위해, 지금 무엇을 해야 합니까.
AI를 최대한 잘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AI의 트렌드를 가장 빠르게 배우고, 새로운 기술이나 툴들을 최대한 빠르게 흡수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항상 1년 전에 가장 좋았던 기술이나 툴들이 1년 지나면 또 바뀌어 있거든요.
“AI가 똑똑한가, 내가 똑똑한가 보자” 이런 식으로 AI와 대결하는 자세보다는, AI를 파트너로 잘 활용해서 생산성을 1.5배, 2배, 3배로 늘릴 수 있어야 합니다. AI가 준 답을 그대로 받아쓰기 하는 건 사람의 기여도가 없는 거잖아요. AI의 부족한 영역이나 미처 생각하지 못하는 부분을 짚어낼 수 있는 비판적 사고 능력과 최대한 문제를 깊게 파고들어가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앞으로는 문제 해결 능력이 점점 중요해집니다. 내가 학교에서 공부한 전공 영역과 실제로 필요한 영역이 꼭 일치하지는 않을 수도 있거든요. 그런 부분에 대해 열려 있는 자세로, AI 전문가이면서도 100% 전문 영역이 아니더라도 최대한 효율적으로 일을 해나가서 결국 문제를 풀겠다는 자세가 도움이 될 겁니다.
이홍락 원장은 인공지능과 머신러닝 분야의 연구자로, 스탠퍼드대에서 딥러닝 분야의 선구자인 앤드류 응 교수 아래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구글에서 머신러닝 연구를 수행했으며, 미시간대 전기전자공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머신러닝과 컴퓨터 비전 분야의 연구와 교육을 병행했다. 2020년 한국으로 돌아와 LG AI연구원 설립을 이끌었으며, 현재 LG그룹의 AI 연구를 총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