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re computing might go next

컴퓨팅의 미래는 어디로?

제2차 세계대전의 무기 개발과 냉전 시대의 우주 과학 경쟁에서 현재의 인공지능과 클라우드 컴퓨팅에 이르기까지, 컴퓨팅의 과거와 현재를 전체적으로 살펴보고, 앞으로 컴퓨팅이 나아갈 방향을 생각해본다.

컴퓨팅의 미래가 과거와 같다면 그것의 미래는 앞으로 그것 자체와는 그다지 관련 없는 요인들에 따라 좌우될 것이다.

기술은 어디선가에서 불쑥 나타나지 않는다. 그것은 시간, 공간, 기회의 산물이다. 어떤 연구실도 외딴 섬 같지 않으며, 기계의 능력과 한계는 물리학과 화학 법칙뿐만 아니라 기술을 지원하고 구축하는 사람들과 기술이 성장하는 장소에 의해 결정된다.

사람들은 컴퓨팅을 떠올릴 때 기발함과 탁월함을 갖춘 사람들이 스스로 규칙을 깨면서 기술을 발전시키는 모습을 상상한다. 실리콘밸리에서 성공한 사업가들은 차고에서 신생기업이 탄생하고, 투자자들이 그런 신생기업을 발굴하는 혁신적인 곳이라는 신화를 영속시켰다. 그러나 현실은 이와는 다르다. 컴퓨팅의 역사는 현대 역사, 그것도 현대 미국 역사의 축소판이나 다름없다.

제2차 세계대전 동안 미국이 핵무기를 포함한 무기 개발에 공을 들이면서 과학 기술 분야에 엄청난 공적자금이 투입됐다. 이러한 노력을 통해 한 세대의 기술자들이 훈련을 받았고, 1946년에 완성된 첫 번째 디지털 컴퓨터 에니악(ENIAC)을 포함해 다양한 컴퓨팅 프로젝트가 조성되었다. 이러한 연구비 투입은 전쟁 후에도 계속되어 전쟁 전에는 상상할 수도 없었던 규모로 기초 및 응용 연구에 자금이 지원되었다.

냉전 시대에는 전략 우선순위 덕분에 철의 장막 양쪽에서 트랜지스터를 이용한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게 되었다. 과학적 열망이 큰 낙관적인 시대에 핵 패권을 차지하기 위한 치열한 경쟁 속에서 정부는 컴퓨터 연구의 가장 큰 후원자이자 단일 고객이 되었다. 대학교들은 공학자들과 과학자들을 배출했다. 전자 데이터 처리는 ‘천공카드(punch card)’로 데이터를 입력하고 분류하는 당시 미국의 모습을 상징했다.

1957년 후반에 소련이 스푸트니크(Sputnik) 1호를 발사하면서 미국에 승리를 거둔 이후에, 우주 개발 경쟁은 북부 캘리포니아에 잠들어 있던 농경 지역에서 시작된 실리콘 반도체 산업으로 이어졌고, 이로 인해 결국 기술 산업계의 무게중심이 미국 동부에서 서부로 이동하게 되었다. 하얀 셔츠에 폭이 좁은 넥타이를 맨 호리호리한 공학자들은 거대한 기계를 작은 전자 기계로 바꿨고, 미국인들을 달로 보냈다. (물론 여기서 여성도 중요한 역할을 했지만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일이 많았다.)

동료들과 함께 쇼클리 반도체(Shockley Semiconductor)의 사장 윌리엄 쇼클리(William Shockley)와 관계를 끊고 나와서 새 회사를 차렸던 반도체 개척자 고든 무어(Gordon Moore)는 1965년에 “집적회로의 트랜지스터 수는 매년 두 배로 늘어나겠지만 가격은 똑같이 유지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이것이 ‘무어의 법칙(Moore’s Law)’으로, 이 법칙은 계속해서 옳은 것으로 드러났다. 컴퓨팅 성능이 좋아지고 가격이 저렴해지자 자동차에서 커피메이커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제품에서 기계 부품이 디지털 부품으로 대체되었다.

그리고 새로운 세대의 컴퓨팅 혁신가들이 실리콘밸리에 등장했다. 이들은 전후 미국이 누린 엄청난 번영의 수혜자들이었지만, 미국의 전쟁에 반대했고 미국 문화에도 반감이 있었다. 이들은 머리를 길게 기르고, 셔츠도 바지에서 꺼내 입었다. 거대한 메인프레임(mainframe) 컴퓨터는 기득권층의 도구로 여겨졌고, 이들에게는 우주 연구보다는 지상에서의 연구가 더 중요했다. 작은 것이 아름다웠다. 젊은 남성들이 직접 만든 데스크톱 단말기 앞에 미소를 지은 채 웅크리고 앉았고, 차고에서 메인보드(motherboard)를 만들었다. 생기 넘치는 표정의 신흥 부자 스티브 잡스(Steve Jobs)는 어째서 개인용 컴퓨터가 지성인들에게 자전거와 마찬가지인지 설명했다. 이러한 반문화적 태도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무자비하게 경쟁적인 사업가들이기도 했다. 정부 투자는 점점 줄어들었지만, 개인의 부는 점점 늘어났다.

‘아파넷(ARPANET)’은 상업적인 인터넷이 되었다. 정부 지원을 받는 연구자만 접속할 수 있는 울타리로 둘러싸인 정원과 같았던 ‘아파넷’은 전화 접속식 모뎀이 삑 소리를 내며 수백만 가정의 컴퓨터를 ‘월드와이드웹(World Wide Web)’에 접속시키면서 통신과 사업을 위한 아주 특별하고 새로운 플랫폼이 되었다. 이 이상하면서도 신나는 세상에 접속할 수 있게 도와준 것은 이상한 이름을 가진 신생기업들이었다. 넷스케이프(Netscape), 이베이(eBay), 아마존닷컴(Amazon.com), 야후(Yahoo)가 그들이었다.

새 천 년이 시작될 때 어떤 대통령은 큰 정부의 시대는 끝났으며, 미래는 거대한 인터넷 공간에 놓여 있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미국의 금융 중심지 월가는 기술주로 반짝 떠들썩했다가 사그라들었다. 엄청난 돈이 생겨났다가 몇 달 만에 사라졌다. 그런 난리 이후에 새로운 거인들이 등장했다. 컴퓨터는 더 작아졌다. 스마트폰이 주머니 속에 들어왔고, 주방에는 음성 안내 시스템이 설치됐다. 이런 기술들은 점점 발전했고, 마침내 방대한 데이터뱅크(data bank)와 마구 뻗어나가고 있는 클라우드 서버들이 탄생했다.

엄청난 양의 데이터, 그것도 대체로 규제조차 받지 않는 데이터들을 확보한 컴퓨팅은 더 ‘똑똑’해졌다. 자율주행 자동차가 거리를 돌아다녔고, 인간과 비슷해 보이는 로봇들이 연구소마다 등장했으며, 알고리즘은 소셜 미디어 피드를 조정하고 긱(gig) 근로자들을 고객들과 연결했다. 데이터와 컴퓨터 성능의 폭발적인 증가 덕분에 인공지능(AI)이 새롭게 떠올랐다. 실리콘밸리는 이제 캘리포니아에 있는 하나의 지역이 아니라, 전 세계 산업계를 떠받치는 곳이 되었다. 그러나 기술을 통한 부와 권력은 미국에 있는 다섯 개 회사에 집중됐으며, 이들 다섯 개 회사의 시가총액이 일본의 GDP보다 높아졌다.

이것이 어떤 이들은 필연적이며 부럽다고 생각했던 발전 과정이자 부가 창출되는 과정이었다. 그러나 2년 전부터 되살아난 민족주의(nationalism)와 경제를 뒤집어 놓은 팬데믹으로 인해 엉망이 된 공급망 때문에 사람과 자본의 움직임은 축소되었고, 전 세계의 질서도 개편되었다. 스마트폰은 거리에서 벌어지는 죽음과 미국 백악관에서 벌어진 반란 사태를 기록했다. AI를 이용한 드론은 공중에서 적들을 정찰했고 그 아래에서는 전쟁이 일어났다. 기술계 거물들은 의회 위원회 앞에 단호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으나 그들의 연설은 회의적인 국회의원들에게 공허하게 울릴 뿐이었다.

컴퓨팅과 우리의 관계는 갑자기 변화했다.

지난 70년 동안 과학과 공학 분야에는 놀랄 만한 발전이 있었다. 20세기 중반에 살고 있던 우리의 선조들이었다면, 그 변화의 속도와 규모에 매우 놀랐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의 책상마다 놓인 컴퓨터가 긍정적인 사회적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확신하던 기술 낙관론자들의 믿음은 안타깝게도 너무 순진한 생각이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최근 정보화 시대는 사람들의 계몽을 촉진하기보다는 불화를 조장하는 데 더 효과적이며, 사회적, 경제적 불평등을 해결하기는커녕 악화시키고 있다.

컴퓨팅의 놀라운 발전으로 부를 창출했던 기술 업계는 인류가 직면한 중대한 건강 문제나 기후 문제를 해결할 만큼 대단하거나 실용적인 미래를 상상해내지 못했다. 실리콘밸리의 리더들은 우주 식민지를 약속하면서 거대한 회사 본사를 해수면 아래 건설했다. 그들은 미래가 메타버스(metaverse)에, 블록체인(blockchain)에, 그리고 전체 국가의 에너지 수요보다 더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 암호화폐(cryptocurrency)에 놓여있다고 주장한다.

수없이 많은 정보와 혼란 속에서 컴퓨팅의 미래를 예측하는 것은 무언가 보잘것없고 어려운 일처럼 느껴진다. 예측이 부질없거나, 기술을 구축하고 사용하는 이들에게 컴퓨팅이 향하는 방향을 통제할 능력이 없다는 말은 아니다. 오히려 역사에서는 사회적, 정치적 결과를 바꾼 개인이나 단체의 행동에 관한 예를 많이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정치, 시장, 문화가 직면한 현실을 극복하기에는 기술의 능력에 한계가 있다.

컴퓨팅의 미래를 이해하려면 기계 너머를 봐야 한다.

1. ‘후드티’ 문제

우선, 컴퓨팅의 미래를 구축하게 될 주체가 누구인지 생각해보자.

기술 업계는 누구든 기술적인 노하우와 혁신적인 번뜩임만 있으면 성공할 수 있다고 하는 ‘능력주의(meritocracy)’가 업계의 기반이라고 자랑해왔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최근 몇 년 동안, 특히 기술 업계의 가장 높은 직위에 심각한 성비 불균형이 계속해서 존재했다는 것이 드러나면서 거짓임이 밝혀졌다. 남성은 여전히 기술 기업의 최고 경영진과 핵심 공학자 역할에서 여성의 수를 크게 앞지르고 있다. 벤처캐피털 투자자들과 벤처 지원을 받는 사업가들도 대부분 백인 남성이다. 성별에 상관없이 흑인과 라틴계 기술전문가 수는 부끄러울 정도로 적은 상태다.

오늘날 컴퓨팅 혁신의 대부분은 실리콘밸리에서 탄생했다. 과거를 돌이켜보면, 기술 업계의 능력주의가 어디서 왔는지, 기술 업계의 다양성 문제를 어째서 해결하기 어려운지 이해하기 쉽다.

실리콘밸리는 한때 실제로 가족의 지원이나 연줄이 없는 사람들이 경력을 쌓고 돈을 벌 수 있던 곳이었다. 1950년대와 1960년대 실리콘밸리 ‘우주 개발 시대’의 그 호리호리한 공학자들은 주로 중산층 출신 남성들이었고, 이들은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 미국이 호황을 누렸던 25년 동안 국가가 그들 같은 백인 남성들에게 제공한 엄청난 속도의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상위 계층으로 이동할 수 있었다.

많은 이들이 ‘제대군인 지원(GI Bill)’을 받고 대학에 갔고, 스탠퍼드대학교나 매사추세츠대학교(MIT) 같은 곳에서 장학금을 받거나, 캘리포니아대학교 버클리 같은 주립 대학교에서 최저 등록금만 내고 학교생활을 했다. 그들은 방위산업 계약을 통해 전자 산업계의 성장이 가속화될 때 공학자 일자리를 선택했다. 이들 대부분은 전업주부인 아내가 있었고, 아내가 무급으로 집안일을 해준 덕분에 새로운 상품과 기업과 시장을 구축하는 데 자신들의 에너지를 온전히 쏟을 수 있었다. 교외 인프라에 대한 공공 투자 덕분에 이들의 생활비는 합리적으로 유지될 수 있었고, 통근도 쉬웠으며, 지역 학교 수준도 훌륭했다. 법과 시장의 차별로 이러한 교외 지역은 거의 완전히 백인들의 영역이었다.

지난 반세기 동안 정치적 변화와 시장 구조조정으로 백인들이 누렸던 이러한 ‘계층 이동 에스컬레이터’ 속도가 느려졌다. 여성과 소수자들이 마침내 그 에스컬레이터를 탈 기회를 얻었던 바로 그 순간부터였다. 2000년대 초반에는 기술 제품을 만들고 자금을 조달한 사람들이 주로 백인 남성이었다는 사실로 인해 도리어 특정 고정관념이 단단히 자리 잡게 되었다. 그 고정관념은 여성이 과학에 적합하지 않다는 생각과, 기술적인 재능을 타고난 사람들은 항상 ‘후드티’를 입고 (졸업을 하든 하지 않았든) 엘리트 학교에 다녔다는 생각이었다. 이러한 고정관념은 해결해야 할 문제가 무엇인지, 어떤 기술을 개발해야 하는지, 어떤 제품을 만들어내야 하는지에 관한 생각을 제한하게 되었다.

수많은 기술이 주로 서부 해안 지역 출신의 고등 교육을 받은 젊은 백인 남성이라는 한정적인 인구집단의 손에서 탄생한 것은 특히 기술과 그 기술을 이용한 제품들이 발전되고 세계화되면서 문제가 되기 시작했다. 이들은 자동차가 돌아다녀야 하는 길과 도시에 충분히 주목하지 않은 채 자율주행 자동차에 엄청난 투자를 했다. 또한 데이터에 포함된 인간의 편견에 주목하지 않고 빅데이터를 활용했다. 그리고 미국과 해외에서 정치적 혼란과 폭력을 부추긴 소셜 미디어 플랫폼을 만들어냈다. 이들은 연구 가치가 있고 잠재적으로 엄청난 시장 가치가 있는 수많은 분야를 방치했다.

컴퓨팅의 다양성 부족은 항상 문제가 되어왔지만, 지난 몇 년 동안에야 드디어 이 문제가 공개적인 논의 주제가 되었으며 기업 개혁의 대상이 되었다. 이는 긍정적인 신호이다. 그리고 실리콘밸리 내에서 창출된 엄청난 부 덕분에 새로운 투자자 세대가 탄생했다. 이들 중 여성이나 소수자 투자자들은 의도적으로 자신들과 비슷한 이들이 운영하는 회사에 투자한다.

그러나 변화는 고통스러울 정도로 느리다. 그리고 시장은 스스로 이러한 불균형을 해결하고자 하지 않을 것이다. 조금 더 다양한 사람과 생각을 포용하는 컴퓨팅의 미래를 위해, 계층 이동을 가능하게 하는 새로운 ‘에스컬레이터’가 필요하다. 연구, 인적 자본, 커뮤니티에 대한 포용적인 투자가 새로운 세대에게 우주 개발 시대의 1세대 공학자들이 누렸던 것과 같은 도움을 줄 것이다. 연구자들 혼자서 이런 일을 해낼 수는 없다.

2. 지적 능력 독점

그러면, 기술 업계의 고객은 누구인지, 기술 업계를 어떻게 규제할 수 있을지 살펴보자.

컴퓨팅의 첫 번째 디지털 시대를 뒷받침했던 군사적 투자는 여전히 기술 업계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샌프란시스코 베이 지역(Bay Area), 보스턴, 시애틀, 로스앤젤레스 같은 오늘날 주요 기술 허브들은 모두 냉전 시대 연구와 군비 중심지로 시작된 곳들이다. 1970년대와 1980년대에 기술 산업이 상업화되면서 그러한 무기 관련 연구가 대중들의 시야에 보이지 않게 되었지만,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학문적인 컴퓨터 과학 분야에서 미 국방부는 ‘별들의 전쟁(Star Wars)’이라는 별칭을 가진 컴퓨터 기반의 미사일 시스템 ‘전략 방어 구상(Strategic Defense Initiative)’ 같은 레이건 시대의 프로젝트들을 시작으로 더 강력한 후원자가 되었다.

2000년대 초반에 잠깐 잠잠한 시기가 지나고 나서 지난 10년 동안 기술 산업계와 미 국방부의 관계는 다시 한번 돈독해졌다. 실리콘밸리에는 전쟁이라는 사업에 개입하는 것에 저항하는 이들도 있지만, 그들의 반대는 수십억 달러가 투입된 클라우드 컴퓨팅과 사이버 무기 계약이 발전하는 속도를 늦추는 데 거의 영향을 주지 않았다. 이러한 상황은 마치 실리콘밸리가 처음 탄생했던 근원으로 돌아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방위사업은 기술 산업과 미국 정부의 관계를 보여주는 한 가지 측면에 불과하다. 이들의 관계는 점점 더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으며 새로운 논쟁을 초래하고 있기도 하다. 다른 한 가지는 새로운 기술 규제와 독점금지법을 집행하라는 요구가 점점 커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규제나 반독점 규제가 시행된다면, 기술 연구에 대한 투자나 그러한 기술로 이익을 보는 집단에 상당한 영향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기술 부문의 부와 권력이 매우 공고화되고, 기술 업계가 허위 정보 유포나 정치적 분열을 초래하는 부분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게되면서 국회의원들이 기술 산업을 바라보는 방식이 크게 변하기 시작했다. 미국은 미 법무부가 20년 전에 마이크로소프트를 대상으로 반독점 소송을 벌였던 이후로 기술 사업을 통제하려는 욕구가 거의 없었다. 그러나 수십 년 간 양당이 기술 업계에 우호적인 태도를 보이고 자유방임주의적 관용을 베풀었다고 해도, 이제는 독점금지법과 사생활 보호법이 의회를 통과하고 있다. 바이든 정부는 기술 업계를 비판하는 이들 중에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들을 규제 관련 핵심 역할에 임명했고, 규제 집행도 대폭 늘리는 방향으로 나가고 있다.

아마존(Amazon), 애플(Apple), 페이스북(Facebook), 구글(Google), 마이크로소프트(Microsoft)의 다섯 개 대기업은 예상되는 규제 내용에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목적으로 은행, 제약회사, 석유 대기업과 비슷하거나 그들보다 더 많은 로비 자금을 워싱턴DC에 쏟아붓고 있다. 기술 업계 경영자들은 대기업을 분할하면 중국 기업들이 전 세계 시장을 지배할 길을 열어줄 것이며, 규제를 통해 정부가 업계에 개입하게 되면 처음 실리콘밸리를 위대하게 만들었던 혁신을 억압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장기적인 관점으로 볼 때 거대 기술 기업이 가진 권력에 대한 정치계의 반발은 놀랍지 않다. 현재 정치권의 분위기는 2016년 미국 대통령 선거, 영국의 브렉시트 국민투표, 그리고 소셜 미디어의 허위정보가 그 두 가지 사건에 미친 영향 때문에 촉발된 것이지만, 한편으로는 100년 전 정치권 분위기를 그대로 재현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어쩌면 우리가 기업들이 규모는 유지하고 있지만 규제받고 있는 기술 업계의 미래를 목격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는 20세기 중반 기술 및 통신 대기업들이 겪었던 일과 비슷하다. 물론 당시 그러한 규제는 기술적 혁신을 억누르지 않았다. 따라서 규제는 오늘날에도 기술 발전에 도움을 주고, 새로운 기술 공유를 촉진할 수 있을 것이다.

AT&T의 사례를 생각해보라. 1980년대 초에 독점 규제로 인해 분할되기 전까지 AT&T는 70년 동안 시장을 독점했다. 미국 정부는 AT&T에 일반 전화 서비스만 제공하고, 다른 통신 사업 부분을 분리하라고 명령했다. 처음에는 전보 관련 자회사를 매각하게 했고, 이후에는 컴퓨팅 분야에 대한 접근을 금지했다.

이윤을 추구하는 다른 기업과 마찬가지로 AT&T도 특히 1940년대에 컴퓨팅 분야가 성공을 거둔 이후에 규칙을 제대로 준수하지 못했다. 그러한 규칙 위반으로 인해 1956년에는 AT&T에 회사 연구 기관인 벨 연구소(Bell Laboratories)에서 생산한 발명품들을 다른 기업이 사용할 수 있게 허가하라는 법원 명령이 떨어지게 되었다. 그 발명품 중 하나가 트랜지스터였다. AT&T가 이 명령 때문에 트랜지스터와 관련 기술을 다른 연구소나 기업과 강제로 공유하지 않았다면 컴퓨팅의 역사는 완전히 달라졌을 것이다.

현재 산업계의 연구개발 활동은 다시 한번 매우 집중되어 있다. 규제 당국은 기술 기업들이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성장을 추구하고, 거대 기술 기업들이 규모가 더 작은 경쟁업체들을 인수했던 지난 20년 동안 이런 상황을 대체로 못 본 척했다. 세계 최정상급 연구자들이 거대 기술 기업에서 많은 돈을 받으며 학계를 떠났고, 이렇게 연구자들을 확보한 덕분에 엄청난 ‘지적 능력’이 소수의 기업에 집중되었다.

수많은 기업가들이 경쟁을 벌여온 실리콘밸리의 역사에서 지금이 그 어느 때보다도 업계 신규 진입자들이 살아남기 어려운 시기일 것이다. 기술 업계에 새로 진입하는 이들과 그들의 기술이 자본이 더 많고 시장 지배적이며 규모가 더 큰 회사에 흡수되지 않고 의미 있는 시장 점유율을 유지하는 것이 매우 어렵다. 컴퓨팅의 위대한 아이디어 대부분은 거대 기술 기업이 보유한 소수의 산업 연구 실험실에서 탄생하고 있다. 따라서 당연하게도, 그러한 아이디어들은 거대 기술 기업 몇 곳의 사업상 우선순위를 반영하고 있다.

기술 기업들은 정부의 개입이 자신들의 ‘혁신력’과 상반된다고 매도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윤을 추구하고 규정을 준수하는 공공 부문이 처음부터 새로운 컴퓨팅 발견을 가속화하고 그 발견을 중심으로 새로운 시장을 구축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해왔던 것은 분명하다.

3. 장소, 장소, 장소

마지막으로, 컴퓨팅 산업이 일어나는 장소를 생각해보자.

‘다음 실리콘밸리가 탄생할 곳’에 대한 질문은 생각보다 훨씬 오래 전부터 전 세계 정치인들과 비즈니스 전략가들을 사로잡아왔다. 프랑스 대통령 샤를 드골(Charles de Gaulle)은 실리콘밸리의 비밀을 풀기 위해 1960년에 이곳을 돌아봤고, 그 후 수십 년 동안 많은 세계 지도자들이 실리콘밸리를 방문했다.

실리콘밸리를 표방한 곳들이 여러 대륙에 생겨났다. 빛나는 연구단지를 갖추고 캘리포니아식으로 구성한 그런 지역들은 전 세계를 돌아다니는 인력을 끌어들이고 새로운 기술 기업가를 육성하기 위해 고안된 것이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지역은 원래 계획했던 목표를 이루지 못했고, 호황과 불황을 거치면서 크게 성공한 기업을 연이어 만들어냈던 원래 실리콘밸리만큼 성과를 낸 곳은 단 한 곳도 없었다.

기술 스타트업들이 다양한 곳에서 나타나고 있기는 하지만, 벤처캐피털 10곳 중에 거의 3곳, 그리고 이용 가능한 투자금의 거의 60%가 여전히 샌프란시스코 베이 지역에 집중되어 있다. 거의 50년이 지났는데도 이곳이 컴퓨팅 혁신의 중심지로 남아있는 것이다.

그러나 베이지역은 엄청난 경쟁자를 가지고 있다. 바로 중국이다. 중국은 미국 정부가 냉전 시대 초기에 했던 것처럼 고등교육과 연구에 엄청난 투자를 하고 있고, 그 결과 중국의 기술과 인터넷 부문에서는 전 세계적인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거대 기업들이 탄생하고 있다.

중국 경쟁의 망령은 미국 반도체 산업에 대한 대규모 공공 보조금 투입을 포함해 미국의 기술 투자 재개에 대한 초당적 지지를 이끌어냈다. 미국 기업들은 수년간 반도체 시장에서 아시아 경쟁업체에 밀리고 있다. 이로 인한 경제적 영향은 코로나 관련 셧다운으로 반도체 수입이 감소하고, 반도체에 의존하는 많은 소비자 상품 생산이 줄어들면서 고통스러울 정도로 분명해졌다.

40년 전 일본이 경쟁적인 위협을 가했을 때처럼 중국에 대한 미국의 불안감은 부정적인 고정관념과 은근한 외국인 혐오로 넘어갈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20세기 후반의 미국 군사 산업 복합체이든 1970년대 히피의 영향을 받은 서부 해안 문화이든 오늘날 공산주의와 자본주의가 결합된 중국이든, 컴퓨팅 기술이 그것을 만드는 국가와 사회를 반영하는 것 또한 사실이다.

컴퓨팅의 미래는?

나와 같은 역사가들은 예측을 싫어한다. 우리는 특히 기술의 경우 미래를 상상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과거의 예측이 맞지 않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잘 알고 있다.

매우 진보적이며 점진주의를 견디지 못하는 현대의 많은 기술전문가들, 특히 거대 영리 기업을 책임지는 이들은 그 반대이다. 그들은 정치를 무시하고, 지평선 너머에 있는 무언가를 상상하면서 과거와 현재라는 현실에 얽매이는 것을 거부한다. 그들은 양자컴퓨터(quantum computer)와 인공일반지능(artificial general intelligence)으로 기계가 대부분의 일을 처리하고 사고까지 할 수 있는 새로운 시대가 오는 것을 꿈꾸고 있다.

그래도 그들도 역사적인 사고를 조금 해볼 수 있을 것이다.

어떤 컴퓨팅 혁신이 미래에 나타난다고 해도, 우리의 문화, 기업, 사회가 그러한 혁신을 어떻게 사용할지 선택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과거를 분석하는 사람들은 아직 가능하지 않은 것들을 상상한 기술전문가들로부터 영감을 얻고 방향을 잡아야 한다. 그러면 미래와 과거를 모두 살펴보며, 우리가 가야 할 곳에 도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마거릿 오마라(Margaret O’Mara)는 워싱턴대학교 역사학 교수이자 <더 코드: 실리콘밸리와 미국의 재건(The Code: Silicon Valley and the Remaking of America)>의 저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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