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I를 통해 파격적인 사용자 경험을 창조하라
AI 혁신은 단순하게 생각하면 인공지능이라는 기술을 이용해 고도화된 기능을 구현하는 것으로 볼 수도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사용자 경험(UX)을 혁신하는 것이다. AI를 통해 파괴적 혁신을 이뤄낸다는 것은 전혀 다른 종류의 가치를 만들어낸다는 의미다. 이 가치는 사용자가 느끼는 가치다. 즉, AI의 임팩트는 엔지니어가 얼마나 고급스런 기술을 사용했느냐로 설명할 수 없다. AI 기반 제품이나 서비스를 이용하는 최종 사용자가 얼마나 파격적인 경험과 커다란 만족을 얻었느냐로 설명되어야 한다. 수준 높은 AI 기술로 무장한 하이테크 제품이 소비자들에게 별반 감흥을 주지 못해 시장에서 외면받는 사례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이런 이유 때문에 AI 혁신은 기술 혁신이 아니라 사용자의 경험 혁신이라고 강조하는 것이다.
소비자가 얻는 특별한 경험
사용자에게 특별한 경험을 선사한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요즘 많은 여성들이 네일아트에 관심이 많다. 네일샵에 방문해서 세련되고 멋진 디자인으로 케어를 받는다. 그런데 네일케어를 받는 데 한 시간은 잡아야 한다. 비용도 최소 3만원은 예상해야 한다. 고급 케어는 10만원 이상 된다. 코로나 시국에 네일 아티스트와 밀폐된 곳에서 마주보고 한 시간 함께 있는 것도 부담된다.

출처: Nimble
이러한 문제를 정확히 짚어낸 기업이 님블(Nimble)이라 불리는 이스라엘 스타트업이다. 님블은 3D 이미지 처리 기술을 기반으로 자동 네일케어 로봇을 개발했다. 20분 만에 정확하게 매니큐어를 발라주는 로봇이다. 이 로봇은 고해상도 마이크로 카메라를 통해 사용자의 손을 스캔하고 손톱의 모양과 위치를 인식한다. 이후 알고리즘에 연동된 자동 로봇팔이 손톱의 고유한 위치와 구조에 맞추어 매니큐어를 칠하고 4회 코팅한다. 이후 고온의 바람으로 자연스럽게 건조시킨다. 사용자가 하는 일이라곤 색상과 디자인을 선택하고 매니큐어 캡슐을 기계에 넣은 다음 손바닥을 전용구에 넣고 스타트 버튼을 누르는 것뿐이다. 그러면 20분 정도 후에 멋진 네일아트가 완성된다.
님블은 단순히 문양을 만들어주는 로봇 기술을 만든 게 아니다. 사용자의 경험을 디자인했다. 네일케어 시간을 아낄 수 있고 집이나 무인샵에서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서비스를 받을 수 있으며, 다양한 디자인을 수시로 바꿀 수도 있게 하여 소비자들을 끌어들일 수 있는 매력 포인트를 섬세하게 디자인했다. 이러한 사용자 경험을 내세운 님블은 지난 4월 크라우드펀딩 플랫폼인 킥스타터에서 3주 만에 100만 달러를 모금했고, 4만 2,000명 넘는 후원자를 확보했다. 물론 기술적 정교함이 사용자 만족도와 직결되기 때문에 기술의 역할이 중요한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기술을 뛰어난 사용자 경험으로 승화하는 것이 AI 기업의 실력임을 주지할 필요가 있다.
회사도 경험이 존재한다
AI가 제품 혁신(Product innovation)에 적용되면 기능이 향상된 증강제품이 되어 제품을 사용하는 소비자에게 만족을 주지만, 프로세스 혁신(Process innovation)에 적용되면 최적화, 효율화 등으로 운영혁신을 이뤄내어 회사 임직원에게 만족을 준다. 제품 혁신은 사용자 경험을 향상시키지만 프로세스 혁신은 회사의 경험을 바꾼다. 특별히 제조업에서는 AI를 통해 프로세스를 혁신하여 노동 효율성을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여지가 많다.
AI 반도체 분야는 혁신이 활발하다. 반도체 트랜지스터 수가 1.5년마다 두 배로 늘어난다는 무어의 법칙이 말해주듯이 마이크로칩당 트랜지스터 수는 1970년대 수천 개였지만, 2010년대에 이르러 수백억 개까지 늘어났다. 그만큼 반도체 칩이 복잡해졌다는 말이다. 칩 제조는 대부분 자동화되어 있지만 설계는 여전히 수동 프로세스에 의존한다. 칩 평면 설계(Floor Planning), 즉 엔지니어가 칩의 모든 구성 요소를 사용 가능한 공간에 맞추는 방법을 찾는 데 몇 달이 걸린다. 일반적으로 마이크로칩의 면적은 수십에서 수백 제곱 밀리미터인데, 이 작은 공간에 메모리, 로직, 처리 장치와 같은 수천 개의 구성 요소와 수 킬로미터의 초박형 와이어를 집어넣어야 한다. 상당히 고난이도 작업에 해당된다.
구글은 AI를 이용하여 이 과정을 파격적으로 단축시켰다. 구글 연구원들은 1만 개의 칩 평면도를 기반으로 하는 데이터를 통해 AI 시스템을 학습시킨 후 공간 최적화된 새로운 평면도를 생성하는 방법을 터득하도록 훈련시켰다. 이렇게 개발된 AI 생성 모델은 스스로 칩 설계안을 만들어낸다. 여기에 걸리는 시간은 단 6시간 정도다. 사람이 수개월 걸리던 반도체 칩 설계 작업을 몇 시간 단위로 줄인 것은 획기적인 발전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회사는 어떠한 경험을 얻어낼 수 있을까? 일단 칩 설계를 담당하는 인력은 시간을 벌게 된다. 더 중요한 일에 시간을 쏟을 수 있게 된다. 또한 칩 설계와 제조 기간이 획기적으로 단축되기 때문에 시장의 상황에 즉각적으로 대응할 수 있게 된다. 최근 전 세계적으로 마이크로칩 수요에 공급이 따라가지 못해 반도체 대란이 이어졌지만 이러한 시스템은 반도체 공급망 속도를 높이는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사회적 경험으로의 확장
한 사람의 경험은 개인의 영역이지만, 비슷한 경험을 수많은 사람이 동시에 하고 있다면 이는 사회적인 경험이 된다. AI를 통해 창출하게 되는 가치가 사회로 확장될 경우 이는 사회적 경험의 혁신이 된다. 전 세계적으로 2,000만 명의 신생아가 저체중으로 분류되고 있다. 저체중 신생아는 2.5kg 미만의 아기를 의미한다. 저체중 아기는 또래보다 사망할 확률이 20배 높고 특히 생후 첫 달 사망률이 높다. 아기의 체중을 출산 후 바로 확인할 수 있다면 즉각적으로 케어를 할 수 있다. 그러나 저개발 국가에서는 누워서 우는 아이의 체중을 정확하게 잴 수 있는 기구가 마련되어 있지 않은 곳이 많다. 그래서 체중 확인을 못하거나 잘못된 정보로 인해 신생아 사망을 예방할 수 있는 중요한 기회를 놓치고 만다. 저체중 출생률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인도는 불량한 측정의 비율이 무려 30%나 된다. 보정이 제대로 되지 않는 구식 스프링 저울을 사용할 뿐만 아니라 대부분 기록은 수작업으로 이뤄지고 그마저도 몇 주 후에 중앙 데이터베이스에 입력되다 보니 실수와 오류가 빈번하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인도의 사회적 기업 와드와니AI(Wadhwani AI)는 동영상 촬영만으로 아기의 체중을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는 솔루션을 내놓았다. 아기의 모습을 동영상으로 촬영하면 체형과 부피 등 데이터로 학습된 머신러닝 모델이 수초 내 아기의 체중을 예측해낸다. 정확도는 90% 정도로 기존 방식보다 높은 수준이다. 이 애플리케이션은 스마트폰 카메라에 의존하며, 의료 종사자가 대다수 사용하는 m-Health라는 애플리케이션으로 작동되며, 추가 장비나 소프트웨어가 필요하지 않다. 측정된 정보는 아기의 위치 정보와 함께 의료기록 대시보드에 자동 업로드된다. 스마트폰이 있다면 병원의 장비 상태가 아무리 열악해도 이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체중을 꽤 정확하게 측정하는 게 가능해진다. AI 기술의 이미지 인식 기술을 이용해 매우 간단한 방식으로 사회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솔루션을 제공한 것이다.
우리는 섬세함에 대하여 생각해봐야 한다. AI 혁신을 위해 필요한 섬세함이란 뭘까? AI 알고리즘을 이용하여 정교하게 기능을 구현해내는 기술적인 섬세함도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최종 사용자의 아픔을 이해하고, 가려움을 시원하게 긁어주고, 이전에 겪지 못한 새로운 경험을 선사해줄 수 있는 감성적인 섬세함이 필요하다. AI 혁신을 기획할 때는 기술적 아키텍처를 설계하는 것이 아닌 구체적인 사용자 가치 제안(Value proposition)과 사용자경험에 대한 디자인을 해야 한다. 인간에 대한 섬세한 이해가 얼마나 크냐에 따라 AI의 임팩트는 달라지게 된다.
※ 정두희 MIT 테크놀로지 리뷰 코리아 편집장이며, 한동대학교 ICT창업학부 교수다. AI 컨설팅 기업인 임팩티브AI의 대표 파트너를 맡아 국내 기업들의 성공적인 AI 도입을 돕고 있다. <한권으로 끝내는 AI 비즈니스 모델>, <3년후 AI 초격차 시대가 온다>, <TQ 기술지능> 등을 저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