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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뇌연구원, 초미세먼지가 뇌혈관 세포 에너지 떨어뜨려 뇌 혈류 감소로 이어지는 경로 규명

초미세먼지가 폐를 넘어 뇌혈관을 공격한다는 과학적 근거가 나왔다. 뇌 건강을 지키는 혈관 시스템이 무너지는 연쇄 기전이 처음으로 밝혀졌다.

초미세먼지(PM2.5)가 뇌혈관 세포의 에너지 대사 기능을 저하시켜 뇌로 공급되는 혈류를 감소시키는 신경독성 기전이 처음으로 규명됐다.

한국뇌연구원(KBRI, 원장 서판길) 치매연구그룹 김도근 박사 연구팀은 울산과학기술원(UNIST), 국가독성과학연구소(KIT)와의 공동 연구를 통해 초미세먼지가 뇌혈관 내피세포의 특정 수용체를 활성화하고, 이로 인해 세포 내 에너지 생산 기관인 미토콘드리아 기능이 저하되면서 혈관 조절 능력이 무너지는 과정을 단계적으로 밝혔다고 6일 밝혔다.

특히 이번 연구는 기억과 학습의 핵심 부위인 해마에서 이 같은 변화가 두드러지게 나타남을 확인해, 대기오염이 알츠하이머병 등 퇴행성 뇌질환과 연결될 수 있다는 과학적 근거를 처음으로 제시했다. 이번 연구 결과는 환경과학 분야 국제 학술지 ‘Journal of Hazardous Materials'(영향력지수 11.3) 최신호에 게재됐다.

초미세먼지, 폐에서 뇌혈관까지 어떻게 도달하나

초미세먼지(PM2.5)는 지름이 2.5마이크로미터(μm) 이하인 극도로 작은 입자다. 머리카락 굵기의 약 30분의 1 수준으로, 코털이나 기관지 점막으로 걸러지지 않고 폐 깊숙이 침투할 수 있다. 폐에 들어온 초미세먼지 입자 또는 이에 의해 촉발된 염증 신호는 혈액을 타고 온몸으로 퍼지며, 뇌로 이어지는 혈관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최근 연구들의 공통된 방향이었다. 그러나 뇌 안에서 정확히 어떤 세포가, 어떤 경로로 손상되는지는 구체적으로 밝혀지지 않았다.

연구팀이 주목한 것은 ‘뇌혈관 내피세포(Brain Vascular Endothelial Cell)’다. 뇌혈관의 가장 안쪽 벽을 이루는 이 세포는 뇌로 들어오고 나가는 물질을 엄격하게 통제하며 뇌 환경을 유지하는 핵심 구성 요소다. 이 기능이 무너지면 뇌 환경 전체의 균형이 흔들릴 수 있다.

연구팀은 마우스 모델을 이용해 초미세먼지에 노출된 뇌혈관과 뇌 세포의 변화를 다양한 실험과 영상 분석으로 관찰했다. 특히 뇌 조직 안에서 어떤 세포가 어느 위치에서 변화하는지를 동시에 파악할 수 있는 공간 분석 기술을 활용해, 손상이 뇌 전체가 아닌 특정 영역에서 먼저 시작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초미세먼지에 의한 뇌 손상 기전

세포 에너지 공장이 꺼지면 뇌 혈류가 줄어든다

연구팀이 밝혀낸 손상 경로는 다음과 같다. 초미세먼지가 뇌혈관 내피세포에 도달하면, 세포 표면에 있는 ‘아릴 탄화수소 수용체(AHR, Aryl Hydrocarbon Receptor)’가 활성화된다. AHR은 원래 특정 화학물질을 감지하는 역할을 하는 단백질인데, 초미세먼지에 의해 과도하게 자극되면 세포 안에서 연쇄적인 이상 반응을 일으킨다.

AHR이 활성화되면 세포 내 에너지 공장인 ‘미토콘드리아(Mitochondria)’의 기능이 저하된다. 미토콘드리아는 세포가 활동하는 데 필요한 에너지(ATP)를 만드는 기관으로, 이 기능이 떨어지면 뇌혈관 내피세포는 혈관의 수축과 이완을 조절하는 능력을 잃게 된다. 그 결과 혈관이 수축된 상태로 굳어지면서 뇌로 공급되는 혈류량이 줄어든다.

혈류 감소는 뇌 기능 이상으로 직결된다. 뇌는 산소와 포도당을 매우 많이 소비하는 기관으로, 혈류가 줄어들면 뇌세포가 필요한 에너지를 제때 공급받지 못한다. 또한 연구팀은 이 과정에서 뇌혈관과 ‘성상교세포(Astrocyte, 뇌혈관 주변을 감싸며 뇌 환경 유지를 돕는 별 모양의 세포)’ 간의 상호작용에도 이상이 생긴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 협력 관계가 무너지면 뇌 속 노폐물 제거와 물질 교환을 담당하는 시스템에 차질이 빚어져 뇌의 항상성이 무너질 수 있다.

해마에서 가장 두드러진 변화… 알츠하이머 연결고리 주목

이번 연구에서 특히 주목할 대목은 손상이 가장 두드러진 부위가 ‘해마(Hippocampus)’라는 점이다. 해마는 측두엽 안쪽에 위치한 뇌 구조물로, 새로운 기억을 형성하고 장기 기억으로 전환하는 핵심 역할을 한다. 알츠하이머병 등 퇴행성 뇌질환이 발병할 때 가장 먼저 손상되는 부위이기도 하다.

이번 연구에 사용된 초미세먼지가 한국의 대기 환경을 정밀하게 반영했다는 점도 중요하다. 연구팀은 유기탄소(OC)와 다환방향족탄화수소(PAHs, 화석연료 연소 시 발생하는 발암 가능성 물질) 함량이 높은 한국형 미세먼지를 실제와 가깝게 재현해 실험에 활용했다. 이는 국내 대기 환경에서 실제로 노출되는 미세먼지의 독성 특성을 그대로 반영한 것으로, 연구 결과의 국내 적용 가능성을 높인다.

교신저자인 김도근 박사는 “이번 연구는 초미세먼지가 뇌 환경 유지 기능에도 영향을 줄 수 있음을 보여준 성과”라고 밝혔다. 공동교신저자인 박계명 UNIST 교수는 “환경오염과 뇌질환 간 연관성을 이해하는 기초 근거를 마련했다”고 강조했으며, 이규홍 KIT 박사는 “우리나라 대기 미세먼지의 독성학적 특성을 정밀하게 재현함으로써 국내 환경보건 정책과 연구개발에 적용 가능성을 높였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