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GIST·연세대, 성인 뇌도 스스로 리모델링한다는 사실 세계 최초 규명
‘어린 시절 이후 뇌 회로는 고정된다’는 신경과학계의 정설이 뒤집혔다. DGIST 뇌과학과 시냅스 다양성 및 특이성 조절 연구센터 고재원 교수팀과 연세대학교 생명공학과 정은지 교수팀은 공동연구를 통해 성인기에도 뇌의 ‘감각 검문소’가 정교하게 재구성되며, 이 과정이 고해상도 감각 인지에 필수적이라는 사실을 세계 최초로 규명했다고 24일 밝혔다.
연구팀은 생쥐 모델의 발달 단계를 정밀 분석하여, 청소년기에서 성인기로 이행되는 과정에서 시상망상핵(TRN) 회로가 재구성을 거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특히 시냅스 접착단백질 ‘LRRTM3’가 뇌가 성인용 고해상도 감각 인지 모드로 전환하도록 돕는 핵심 분자임을 밝혀냈다. 이번 연구는 뇌 회로의 성숙이 청소년기를 넘어 성인기까지 이어진다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했으며, 2월 18일 뇌과학 전문학술지 《뉴런》에 온라인 게재됐다.
청소년기 이후에도 계속되는 뇌의 ‘업그레이드’
인간이 복잡한 환경 속에서 적응하며 살아갈 수 있는 이유는 쏟아지는 자극 중 중요한 정보만을 선별해 받아들이는 능력 덕분이다. 이때 뇌 시상부에 위치한 시상망상핵(thalamic reticular nucleus, TRN)은 외부 자극이 대뇌 피질로 전달되기 전 이를 조절하는 ‘감각 검문소’ 역할을 한다. 시상망상핵은 시상과 대뇌피질 사이에 위치한 억제성 신경핵으로, 감각 정보가 피질로 전달되기 전 이를 선택적으로 조절하는 ‘감각 필터’ 역할을 한다. 그동안 학계에서는 이 검문소의 설계가 아동기 시절의 ‘결정적 시기(critical period)’를 지나면 고정된다고 보았다. 결정적 시기란 특정 뇌 회로나 기능이 정상적으로 발달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제한된 발달 시기를 의미한다.
그러나 연구팀은 이러한 통념을 뒤집는 발견을 했다. 성인기에 접어들면서 TRN으로 들어오는 특정 흥분성 입력이 감소하고, 그 결과 미세한 촉감 차이를 구별하는 능력이 강화됐다. 연구팀은 이 변화가 단순한 경험의 축적이 아니라, 성인 뇌가 감각 정보 처리 방식을 최적화하기 위해 회로를 다시 조정하는 능동적 성숙 과정이라고 제시했다. 즉, 성인기에도 뇌는 불필요한 감각 신호를 더 정밀하게 걸러내고 중요한 정보만 선명하게 남기도록 회로 수준에서 ‘업그레이드’하는 것이다.
실험 결과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청소년기에서 성인기로 넘어가는 시기에 TRN 회로에서 대뇌피질에서 시상으로 향하는 피질시상(corticothalamic, CT) 입력이 점진적으로 감소했다. 이러한 시냅스 정제(synaptic refinement) 과정을 통해 TRN은 감각 정보를 더 선택적으로 처리할 수 있게 되었으며, 결과적으로 감각 반응의 선형성과 자극 구별 능력이 향상되었다. 이는 마치 거친 필터를 촘촘한 고해상도 필터로 교체하는 것과 같다.
LRRTM3, 고해상도 감각 전환의 핵심 스위치
연구팀은 이 과정의 핵심 분자로 시냅스 접착단백질 ‘LRRTM3(Leucine-rich repeat transmembrane protein 3)’를 지목했다. 시냅스 접착단백질은 신경세포 표면에 발현하는 단백질로 시냅스 초기 형성과 유지, 성장 및 소멸 등의 전 과정에 핵심 역할을 수행하는 인자다. LRRTM3는 특히 TRN에 특이적으로 많이 분포하며, 신경세포 간 흥분성 시냅스 형성과 안정성을 조절하는 역할을 한다.
연구팀은 LRRTM3가 신경세포 간 연결을 정교하게 조절해 뇌가 성인용 고해상도 감각 인지 모드로 전환하도록 돕는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실제로 TRN에서 LRRTM3 유전자를 제거한 생쥐에서는 성인기에 나타나야 할 회로의 정교화가 충분히 일어나지 않았고, 이로 인해 미세한 촉감을 구별하는 능력이 현저히 저하되었다. 구체적으로, LRRTM3가 결핍된 생쥐는 서로 다른 질감의 표면을 구별하는 촉각 변별 과제에서 정상 생쥐에 비해 유의미하게 낮은 수행 능력을 보였다.
이는 성인기의 감각 능력 향상이 단순한 학습 효과가 아니라, 분자 수준의 조절을 기반으로 한 회로 재설계와 직접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LRRTM3는 마치 회로 재구성의 ‘분자 게이트키퍼(molecular gatekeeper)’ 역할을 하며, 이 단백질이 없으면 청소년기에서 성인기로의 정상적인 감각 회로 성숙이 방해받는다. 연구팀은 LRRTM3가 피질시상 입력의 정제를 조절하고, TRN이 매개하는 억제 수준을 조절함으로써 최종적으로 고해상도 감각 부호화(high-resolution sensory encoding)를 가능하게 한다고 설명했다.

자폐·ADHD 치료의 새 지평을 열다
이번 연구 성과는 사회적·산업적으로도 큰 의의를 지닌다. 감각 정보 처리의 불균형은 자폐 스펙트럼 장애,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 조현병 등 다양한 신경정신질환에서 중요한 특징으로 보고된다. 실제로 자폐 환자의 상당수는 소리, 빛, 촉감 등에 대한 과민성 또는 둔감성을 보이며, 이는 일상생활에 큰 어려움을 초래한다. 본 연구는 감각 인지 장애를 개인의 성향이나 행동 문제로만 보지 않고, 감각 검문소(TRN) 회로의 성인기 성숙·조절 메커니즘이라는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는 과학적 기반을 제공했다.
또한 성인기 뇌 가소성의 존재를 구체적으로 제시함으로써 향후 감각 인지 기능 회복을 겨냥한 치료 표적 발굴, 회로 기반 신경조절 전략, 디지털 치료 및 재활 기술 개발에도 중요한 단서를 제공할 것으로 기대된다. 고령화 사회에서 감각·인지 기능 저하가 삶의 질과 직결되는 만큼, 성인기 이후에도 기능 회복의 가능성을 넓혔다는 점에서 그 파급력이 크다. LRRTM3를 표적으로 하는 약물 개발이나 TRN 회로를 조절하는 비침습적 뇌자극 기술 등이 향후 치료 전략으로 고려될 수 있다.
고재원 교수는 “단순한 경험 축적이 아닌, ‘능동적인 회로 재구성’을 통해 뇌가 감각 기능을 최적화한다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했다”며 “자폐와 조현병 등 난치성 신경질환의 원인을 분자(LRRTM3) 수준에서 규명함에 따라, 치료제 개발과 성인기 뇌 가소성 회복을 위한 핵심 근거를 확보했다”고 밝혔다. 이번 연구는 DGIST 고재원 교수팀과 연세대 정은지 교수팀이 각자의 전문성을 결합해 이뤄낸 학제 간 공동연구 성과로, 이동수 박사(연세대)와 한경아 충남대학교 교수(前 DGIST 뇌과학과 연구교수)가 공동 제1저자로 참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