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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GIST, 수소 이온 전기 제어로 스스로 학습하는 AI 반도체 세계 최초 구현

산소 결함 방식의 한계를 넘어, 수소 원자의 이동을 전기로 제어해 연산과 기억을 동시에 수행하는 뉴로모픽 반도체의 새로운 길이 열렸다.

전기 신호로 수소 원자의 움직임을 정밀하게 제어해 스스로 학습하고 기억하는 인공지능(AI) 반도체가 세계 최초로 구현됐다. DGIST(대구경북과학기술원) 나노기술연구부 이현준·노희연 연구팀은 전기장을 이용해 수소 이온(H⁺)의 주입과 배출을 능동적으로 제어하는 방식으로, 연산과 저장을 동시에 수행하는 ‘2단자(두 개의 전극으로만 구성된) 기반 뉴로모픽(인간 뇌 신경망을 모방한) 반도체 소자’를 개발했다고 5일 밝혔다.

연구팀은 이 소자가 1만 회 이상의 반복 구동에서도 안정적으로 동작하고, 전원 없이도 100만 초(약 11일) 이상 정보를 유지한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이번 성과는 경북대학교 우지용 교수팀, DGIST 이신범 교수팀·이명재 책임연구원과의 공동 연구로, 재료·계면 분야 국제 학술지 ‘ACS Applied Materials & Interfaces’ 표지 논문으로 선정됐다.

뇌를 닮은 반도체, 왜 ‘수소’인가

인공지능이 방대한 데이터를 처리하려면 막대한 전력과 시간이 필요하다. 그 근본 원인 중 하나는 현재 컴퓨터의 구조적 한계에 있다. 기존 컴퓨터는 연산을 담당하는 프로세서(CPU)와 정보를 저장하는 메모리가 물리적으로 분리되어 있어, 둘 사이를 데이터가 쉴 새 없이 오가는 과정에서 속도 저하와 전력 낭비가 발생한다. 이를 ‘폰 노이만 병목(Von Neumann Bottleneck)’이라 부른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주목받는 것이 ‘뉴로모픽 반도체’다. 인간의 뇌는 신경세포(뉴런)와 그 연결 지점인 시냅스가 연산과 기억을 한 곳에서 동시에 처리한다. 뉴로모픽 반도체는 이 구조를 흉내 낸 것으로, 핵심은 전기 신호에 따라 전도도(전기가 흐르는 정도)가 단계적으로 변하고 그 상태를 유지하는 ‘인공 시냅스 소자’다.

기존 인공 시냅스 소자는 대부분 산화물 반도체 안의 ‘산소 빈자리(산소 원자가 빠져나간 결함)’가 이동하는 현상을 이용해 메모리 기능을 구현해 왔다. 그러나 이 방식은 결함의 위치와 수가 공정 조건에 따라 불규칙하게 달라져, 소자마다 성능 차이가 생기고 장기 안정성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구조적 한계가 있었다. 연구팀은 여기서 발상을 전환했다. 결함에 의존하는 대신, 원자 크기가 작아 전기장으로 이동을 정밀하게 제어할 수 있는 수소 이온(H⁺)에 주목한 것이다.

수소가 들어오면 저항이 낮아지고, 나가면 높아진다

연구팀이 개발한 소자는 금(Au) 전극 사이에 수소 공급층(SiNx·질화규소), 저장층(SiOx·산화규소), 산화물 반도체(α-IGZO·비정질 인듐갈륨아연산화물) 층이 수직으로 쌓인 구조다. 양(+) 전압을 가하면 수소 공급층에서 방출된 수소 이온이 저장층을 거쳐 산화물 반도체 안으로 이동해 전자 농도를 높이고, 그 결과 전기가 더 잘 흐르는 상태(저저항·LRS)가 된다. 반대로 음(–) 전압을 가하면 반도체 안의 수소가 다시 빠져나와 전기가 덜 흐르는 상태(고저항·HRS)로 되돌아간다.

특히 전압을 한꺼번에 크게 가하는 대신 짧은 전기 펄스(pulse)를 여러 번 나누어 가하면, 수소가 조금씩 이동하면서 전도도가 서서히 증가하거나 감소하는 ‘아날로그 다중 저항’ 특성이 구현된다. 이는 사람의 시냅스가 반복 자극에 따라 연결 강도를 조금씩 강화하거나 약화하는 방식과 흡사하다. 전도도가 높을수록 ‘중요한 정보’, 낮을수록 ‘덜 중요한 정보’로 표현되어, 인공지능이 학습에 활용하는 ‘가중치(weight)’ 값을 물리적으로 저장할 수 있다.

이번 연구가 특히 주목받는 이유는 이 모든 동작이 ‘2단자 수직 구조’에서 구현되었다는 점이다. 기존 트랜지스터 기반 소자는 소스·드레인·게이트 등 세 개의 단자(3단자)가 필요해 구조가 복잡하고 집적 밀도를 높이기 어렵다. 단자가 두 개뿐인 2단자 수직 구조는 제조 공정이 단순하고 소자를 더 촘촘하게 쌓을 수 있어 고집적 AI 칩 구현에 유리하다. 2단자 수직 구조에서 수소 이동을 전기적으로 제어해 AI 동작을 구현한 사례는 이번이 세계 최초다.

손글씨 인식 97%… 실용화까지는 5~10년

연구팀은 개발한 소자의 학습 기능을 검증하기 위해 손글씨 숫자 이미지 인식 시뮬레이션 실험을 진행했다. 그 결과 최대 97% 이상의 인식 정확도를 기록했다. 이현준 책임연구원은 “이번 연구는 단순히 또 하나의 AI 반도체를 개발한 것을 넘어, 기존 산소 빈자리 기반 메모리와는 전혀 다른 수소 이동 메커니즘을 제시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밝혔다.

노희연 전임연구원은 “적층된 반도체 층 사이를 이동하는 수소 원자를 전기적으로 정밀 제어한 최초의 사례”라며, “수소 제어라는 새로운 축이 메모리와 AI 반도체 연구의 방향을 넓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연구팀은 이 기술이 저전력 뉴로모픽 AI 칩, 자율주행·로봇·사물인터넷(IoT) 기기용 초저전력 연산 장치, 3D 고집적 메모리 구조 등에 활용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실용화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연구팀은 대면적 공정에서의 균일성 확보, 소자 간 편차 최소화, 수백만 회 이상의 장기 신뢰성 검증, 기존 반도체 공정(CMOS)과의 호환성 확인 등 과제를 거쳐 실용화까지 약 5~10년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