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AIST, AI로 수소차 연료전지 ‘슈퍼 촉매’ 설계…아연이 핵심
수소 연료전지 상용화의 최대 걸림돌인 백금 촉매의 한계를 인공지능 기술로 극복할 길이 열렸다. KAIST(총장 이광형) 신소재공학과 조은애 교수 연구팀은 서울대학교(총장 유홍림) 화학생물공학부 이원보 교수팀과 함께 인공지능(AI)으로 촉매의 ‘원자 배열’ 경향을 예측하는 기술을 개발했다고 26일 밝혔다.
이번 연구의 핵심은 ‘AI가 아연이 백금-코발트 원자 배열에 결정적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는 점이다. 기존의 백금-코발트(Pt-Co) 합금 촉매는 높은 성능에도 불구하고, 원자들이 규칙적으로 배열된 ‘금속간화합물(L1₀)’ 구조를 만들기 위해서는 매우 높은 온도의 열처리가 필요했으며, 이 과정에서 입자가 뭉치거나 구조가 불안정해져 실제 연료전지 적용에는 한계가 있었다.
연구팀은 머신러닝 기반 양자화학 시뮬레이션을 통해 아연(Zn)이 원자 배열을 촉진하는 매개 원소로 작용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연구 결과는 에너지 소재 분야 학술지 《어드밴스드 에너지 머티리얼즈》에 2026년 1월 15일 자로 게재됐다.

AI가 먼저 계산하고, 실험으로 증명
연구팀은 수소 연료전지의 핵심 난제를 해결하기 위해 머신러닝 기반 양자화학 시뮬레이션을 도입했다. 수소 연료전지는 수소와 산소의 전기화학 반응을 통해 전기를 생산하는 차세대 친환경 에너지 기술로 주목받고 있으나, 연료전지 성능을 좌우하는 산소환원반응(oxygen reduction reaction, ORR)은 반응 속도가 느려 많은 양의 백금 촉매가 필요하다. 산소환원반응은 수소 연료전지 환원극에서 산소가 전자와 수소 이온을 만나 물로 변환되는 반응으로, 연료전지의 출력과 효율을 좌우하는 핵심 반응이다.
백금 사용량을 줄이기 위해 백금–코발트와 같은 합금 촉매가 개발되었지만, 장시간 구동 시 입자 뭉침과 전이금속 용출로 인해 내구성이 저하되는 문제가 발생해 왔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으로, 원자들이 규칙적으로 배열된 금속간화합물 촉매가 주목받고 있다. 금속간화합물은 두 가지 이상의 금속 원소가 일정한 정수비로 결합하여 형성된 물질로, 원자가 규칙적으로 배열되어 있으며 일반 금속 합금에 비해 구조적 안정성이 높다. 그러나 높은 원자 정렬도를 확보하기 위해 필요한 고온 열처리 과정에서 촉매 입자의 성장 및 응집이 발생하는 한계가 있었다.
연구팀은 AI를 통해 촉매 내부에서 원자들이 어떻게 움직이고 배열되는지를 정밀하게 예측했다. 이 기술은 마치 퍼즐을 맞추기 전 어떤 조합이 퍼즐 완성에 유리한지 미리 계산해 보는 것과 같다. AI가 금속 원자들의 배열 속도를 먼저 계산해 줌으로써, 더 성능이 좋은 촉매를 효율적으로 설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계산 결과 소량의 아연이 백금–코발트 원자 인근에 존재할 경우 원자 배열에 필요한 에너지 장벽이 조절되어, 보다 규칙적인 원자 배열을 갖는 구조가 형성될 수 있음을 확인했다. 이는 아연이 단순한 첨가 원소를 넘어 원자 정렬도가 높은 촉매 구조 형성을 유도하는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아연 도입으로 성능·내구성 동시 개선
AI 예측을 바탕으로 실제 합성한 아연-백금-코발트 촉매는 기존 백금 촉매 대비 더 높은 활성과 뛰어난 장기 내구성을 동시에 확보했다. 아연을 도입하면 원자들이 제자리를 더욱 쉽게 찾아, 보다 정교하고 안정적인 구조가 형성되는 원리다. 즉, AI가 ‘원자 배열이 만들어지는 최적의 경로’를 먼저 찾아낸 셈이다. 이는 인공지능이 계산한 ‘가상의 설계도’가 실제 실험실에서 고성능 촉매로 구현될 수 있음을 입증한 사례다.
이러한 예측 결과는 실제 촉매 합성과 구조 분석을 통해 실험적으로 검증되었다. 아연이 도입된 백금–코발트 촉매는 기존의 백금 촉매 및 아연이 없는 백금–코발트 촉매에 비해 산소환원반응 활성과 내구성이 동시에 향상된 성능을 보였다. 본 연구는 인공지능 계산 결과를 촉매 합성과 성능 개선으로 직접 연결함으로써, 인공지능 기반 소재 설계가 연료전지 촉매 개발의 실질적인 도구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이번 기술은 수소 승용차, 장거리 운행이 필요한 수소 트럭, 수소 선박, 에너지 저장 시스템(ESS) 등 탄소중립 핵심 산업 전반에서 촉매 수명 연장과 제조 비용 절감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수소차는 친환경 모빌리티의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으나, ‘수소차의 심장’인 연료전지는 여전히 높은 가격과 짧은 수명이라는 한계를 안고 있다. 핵심 원인은 백금 촉매로, 전기를 만드는 결정적 물질이지만 반응은 느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성능이 떨어지며, 제조 비용도 높다. 이번 연구는 이러한 난제를 풀 실마리를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조은애 교수는 “이번 연구는 머신러닝을 활용해 촉매의 원자 배열 경향을 사전에 예측하고 이를 실제 합성으로 구현한 사례”라며, “AI 기반 소재 설계가 차세대 연료전지 촉매 개발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