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AIST, ‘잡초의 반란’…까마중을 의약품 원료 공장으로 바꾸다
길가의 흔한 잡초가 현대 의학의 필수 원료를 생산하는 ‘보물 창고’로 변신했다.
KAIST 생명과학과 김상규 교수 연구팀은 경상국립대학교 박순주 교수 연구팀과의 공동 연구를 통해, 까마중의 유전자를 조절해 코르티코스테로이드(소염·면역 조절 치료제)와 성호르몬(피임약·호르몬 치료제) 등의 필수 원료인 ‘디오스게닌(Diosgenin)’을 고효율로 생산하는 데 성공했다고 20일 밝혔다.
디오스게닌은 현재 주로 ‘마(Dioscorea)’의 뿌리에서 추출하지만, 마는 수확까지 수년이 소요되고 유전자 조작이 어려워 생산량 확대에 한계가 있었다. 연구팀은 한 세대가 약 3개월로 짧고 유전자 조절이 용이한 까마중에 주목해 열매 건조 중량의 1%에 달하는 높은 수율로 디오스게닌을 확보했다. 연구 성과는 국제학술지 《플랜트 바이오테크놀로지 저널》 1월 16일자 온라인판에 게재됐다.

독성 물질을 약으로: 대사 경로 재설계의 비밀
까마중(Solanum nigrum)은 검은 열매가 까마귀 눈을 닮았다 해서 붙은 이름으로, 길가나 빈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잡초다. 이 식물은 원래 독성 스테로이드 성분인 ‘솔라소딘(Solasodine)’을 생성하는데, 연구진은 이 물질이 의약품 원료인 디오스게닌과 구조적으로 매우 유사하다는 점에 착안했다. 두 물질 모두 스테로이드 계열로, 식물이 초식 곤충이나 미생물에 대항하기 위해 만드는 천연 방어 물질인 ‘사포닌’의 일종이다. 까마중은 열매에서는 솔라소딘 계열을, 잎에서는 티고게닌 계열의 화합물을 합성하는데, 이 두 경로는 초기 단계를 공유하며 ‘프로토-디오스게니’이라는 공통 중간 생성물을 거친다.
연구팀은 CRISPR-Cas9 유전자 가위 기술을 활용해 까마중의 특정 유전자를 정교하게 조절했다. 열매에서는 ‘GAME4’ 유전자를 제거(Knock-out)하고, 잎에서는 ‘GAME25’ 유전자를 억제(Silencing)함으로써 독성 성분으로 이어지는 대사 경로를 차단했다. 대신 디오스게닌이 생성되도록 대사 흐름을 전환한 것이다. 그 결과 까마중의 열매와 잎 모두에서 기존 독성 성분 대신 디오스게닌 계열 물질이 새롭게 생성됐다. 이는 단순히 외부 유전자를 삽입하는 것이 아니라, 식물이 본래 가진 생합성 능력을 재배치해 원하는 물질을 만들어낸 ‘대사 경로 재설계(Metabolic Rewiring)’의 성공 사례다.

자연 발효에서 대량 생산까지: 산업화 가능성 입증
기술적 돌파구는 추출 공정에서도 이뤄졌다. 유전자 조작 후 까마중에서 생성된 물질들은 포도당이 결합한 ‘개환형(Open-ring)’ 프로토-디오스게닌 구조였는데, 이는 기존 산 가수분해 공정에서 다량의 부산물을 형성해 수율을 떨어뜨리는 문제가 있었다. 연구진은 까마중이 자체적으로 보유한 효소인 베타-글루코시다아제(SaF26G)를 활용해 이 문제를 해결했다. 이 효소는 개환형 구조에 붙은 당을 제거하고 고리 구조를 닫아 안정적인 디오스게닌으로 전환한다. 별도의 화학 공정 없이 ‘자연 발효’만으로 프로토-디오스게닌을 디오스게닌으로 바꿀 수 있게 된 것이다.
흥미롭게도 연구팀이 같은 방법을 토마토에 적용했을 때는 이 자연 발효 공법이 작동하지 않았다. 토마토에서도 개환형 디오스게닌 유도체가 만들어졌지만, 까마중과 달리 F26G 효소 활성이 없어 구조 전환이 일어나지 않았다. 이는 까마중이 토마토보다 디오스게닌 생산에 더 적합한 플랫폼 식물임을 입증한다.
연구팀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산업화 가능성까지 검증했다. 경상국립대 연구팀이 개발한 ‘열매 수확량 증대 기술(S 유전자 변이)’을 디오스게닌 생산 라인에 적용한 것이다. S 유전자는 식물의 꽃대 형성을 조절하는 유전자로, 발현량 조절을 통해 한 개체당 열매 생산량을 크게 늘릴 수 있다. GAME4 돌연변이체와 S 돌연변이체를 결합한 복합 돌연변이체는 디오스게닌을 고농도로 합성하면서도 열매 개수가 비약적으로 증가하는 표현형을 나타냈다. 동일 면적에서 보다 많은 의약품 원료를 생산할 수 있는 산업적 기반이 마련된 셈이다.
김상규 교수는 “이번 연구는 잡초가 지닌 고유한 대사 경로를 정교하게 재설계해 고부가가치 약용 성분을 생산할 수 있음을 보여준 사례”라며 “향후 스테로이드 의약품 원료를 보다 안정적이고 환경친화적인 방식으로 확보하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밝혔다. 수년이 걸리던 마의 재배 기간을 3개월로 단축하고, 유전자 조작이 용이한 까마중을 ‘식물 공장’ 플랫폼으로 활용할 수 있게 되면서, 수입 의존도가 높은 원료 의약품의 국산화 가능성도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