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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IST·UCSD, 마약 중독 재발을 결정하는 뇌 속 특정 신경세포 회로 규명

마약 중독 재발은 의지력 문제가 아니라 뇌 속 특정 신경세포 회로의 불균형 문제임이 밝혀졌다. 전전두엽 내 파발부민 세포가 중독 행동의 '조절 스위치' 역할을 한다.

마약 중독 재발이 뇌 기능의 전반적 저하가 아니라 전전두엽 피질 내 특정 억제성 신경세포 회로의 불균형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이 규명됐다.

KAIST(총장 이광형) 뇌인지과학과 백세범 석좌교수와 미국 캘리포니아 주립 샌디에이고 대학(UCSD) 임병국 교수 연구팀은 전전두엽 내 파발부민(Parvalbumin, PV) 억제성 신경세포가 코카인 중독 행동을 조절하는 핵심 원리를 규명했다고 9일 밝혔다. 이번 연구는 신경과학 분야 최고 권위 학술지 <뉴런(Neuron)>에 2월 26일 온라인 게재됐으며, UCSD 정민주 박사가 제1저자로 참여했다.

코카인 탐색해동과정 실험설계도.

마약 중독 재발, ‘뇌 기능 저하’가 아닌 ‘회로 불균형’이었다

마약 중독은 약물을 끊은 뒤 오랜 시간이 지나도 사소한 자극에 다시 갈망이 되살아나 재발 위험이 매우 높다. 그동안 이 현상은 충동 조절과 의사결정을 담당하는 뇌 영역인 전전두엽 피질(Prefrontal Cortex, PFC) 기능이 전반적으로 저하되기 때문이라고 여겨져 왔다. 전전두엽 피질은 대뇌 전두엽의 앞부분에 위치하며, 충동 억제·의사결정·감정 조절 등 고등 인지 기능을 담당하는 영역으로, 흥분 신호와 억제 신호가 균형을 이뤄야 ‘브레이크’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다.

그러나 연구팀은 전전두엽 전체의 기능이 저하되는 것이 아니라, 그 내부의 특정 신경세포 집단이 선택적으로 작동 방식을 바꾼다는 사실을 새롭게 확인했다. 연구팀은 쥐를 대상으로 코카인 자가 투여, 금단, 소거 단계로 이루어진 실험 모델을 설계해 전전두엽 내 억제성 신경세포들의 활동 변화를 장기간에 걸쳐 추적 관찰했다. 억제성 신경세포(Inhibitory interneuron)란 뇌 신경회로에서 다른 신경세포의 과도한 흥분을 억제해 신경 활동의 균형과 안정성을 유지하는 역할을 하는 세포다.

실험 결과, 전전두엽 피질 내 모든 억제성 신경세포가 동일하게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 신경세포 집단만이 약물 섭취, 금단 이후 재탐색, 소거 과정에 따라 선택적인 활동 변화를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중독 재발이 전전두엽 기능의 단순한 저하로 설명될 수 없으며, 특정 신경세포 집단과 하위 신경 회로 간의 선택적 조절 변화에서 비롯된다는 점을 시사한다.

행동.조절효과 비교도

파발부민 세포가 중독 행동의 ‘게이트’를 여닫는다

연구팀이 특히 주목한 세포는 ‘파발부민(Parvalbumin, PV) 양성 억제성 신경세포’다. PV 세포는 전전두엽 피질 내 억제성 신경세포의 약 60~70%를 차지하는 주요 세포 집단으로, 뇌의 흥분 신호를 조절하는 일종의 ‘브레이크 게이트(brake gate)’ 역할을 한다. 실험에서 쥐가 코카인을 찾으려 할 때 이 세포는 활발하게 작동했다. 반면 더 이상 약물을 찾지 않도록 반복 훈련하는 ‘소거 훈련(extinction training)’을 진행하자 PV 세포의 활동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이는 PV 세포의 활동 양상이 중독에 의해 고정되는 것이 아니라 소거 과정을 통해 다시 조절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연구팀은 신경 활동을 인위적으로 조작하는 실험도 진행했다. PV 세포의 활동을 억제하자 쥐의 코카인 탐색 행동이 크게 감소했다. 반대로 이 세포를 인위적으로 활성화하면 소거 훈련 이후에도 약물을 다시 찾는 행동이 지속됐다. 주목할 점은 이러한 효과가 설탕물과 같은 일반적인 보상에는 나타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마약 중독 행동에서만 특이적으로 관찰된 것으로, 같은 억제성 신경세포인 소마토스타틴(Somatostatin, SOM) 세포에서는 이러한 현상이 나타나지 않아 PV 세포의 역할이 선택적임을 확인했다.

이번 발견은 중독 재발이 의지력의 문제가 아니라 뇌 회로 수준의 생물학적 현상임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백세범 석좌교수는 “이번 연구는 약물 중독이 특정 신경세포와 하위 신경 회로의 조절 균형이 붕괴되면서 나타나는 회로 수준의 문제임을 보여준다”며 “파발부민(PV) 세포가 중독 행동의 ‘게이트’ 역할을 한다는 발견은 향후 정밀 표적 치료 전략 개발에 중요한 단서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전전두엽-보상회로 연결 기전 모식도

전전두엽에서 보상회로까지…중독 행동을 결정하는 신경 경로 확인

연구팀은 PV 세포의 조절 작용이 어떤 뇌 회로를 통해 이루어지는지도 추적했다. 전전두엽에서 시작된 신호는 보상과 동기 부여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뇌 영역인 복측피개영역(Ventral Tegmental Area, VTA)의 보상 회로로 전달된다. 복측피개영역은 중뇌에 위치한 신경핵 집단으로, 주로 도파민(Dopamine) 신호를 통해 다른 뇌 영역과 상호작용하며 보상 예측, 강화 학습, 행동 선택 과정에 관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도파민은 쾌감·동기·보상 관련 행동을 조절하는 신경 전달 물질로, 마약은 이 도파민 신호를 비정상적으로 과활성화해 강한 중독을 유발한다.

연구팀은 전전두엽에서 복측피개영역으로 이어지는 이 경로가 마약을 다시 찾을지 말지를 결정하는 중독 행동 조절의 핵심 통로임을 확인했다. PV 신경세포는 이 신호의 흐름을 조절해 도파민 신호에 영향을 주며, 중독 행동을 유지할지 억제할지를 결정하는 ‘조절 스위치’ 역할을 한다. 즉, 중독 재발은 전전두엽 전체의 기능 저하가 아니라 PV 신경세포가 전전두엽과 보상 회로를 잇는 신경 경로를 얼마나 조절하느냐에 따라 결정되는 현상이라는 것이다.

연구팀은 이번 연구가 중독 행동을 회로 수준에서 이해할 수 있는 새로운 틀을 제시하며, 향후 중독 치료를 위한 세포·회로 기반의 정밀한 조절 전략 개발에 중요한 기초를 제공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번 연구는 한국연구재단 이공분야기초연구사업의 지원을 받아 수행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