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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IST·KAIST, 액체 전해질 얼려 고체 전해질 수준 성능 확보

UNIST와 KAIST 연구팀이 상용 전해질을 얼려 리튬금속배터리를 작동시키며 '전해질이 얼면 충방전 불가' 통념을 깨뜨렸다.

배터리의 상식을 뒤집는 발견이 나왔다. UNIST 에너지화학공학과 송현곤 교수와 KAIST 신소재공학과 서동화 교수팀은 상용 전해질의 유기용매인 에틸렌 카보네이트로 ‘얼음 전해질’을 만들고, 이 전해질에서 리튬 이온의 전달 원리를 규명해냈다고 24일 밝혔다.

전해질이 얼면 배터리 충방전이 안 된다는 통념을 깨는 발견이다. 실험 결과, ‘얼음 전해질’의 이온 전도도는 약 0.64 mS/cm, 리튬 이온 전달수는 0.8을 기록했으며, 이는 별도로 개발된 고체 전해질과 유사한 수치다. 또 이 전해질을 리튬금속배터리에 적용했을 때 상온에서 400회 이상 충·방전을 반복해도 내부 단락 없이 안정적으로 작동했다. 연구 결과는 재료 분야 국제학술지 《어드밴스드 머티리얼스》에 1월 21일자로 온라인 게재됐다.

얼음 속에서 리튬 이온이 건너뛰는 원리

배터리의 전해질은 유기 용매에 리튬염이 녹아 있는 형태로, 리튬이온이 이 전해질을 통과해 음극과 양극을 오가며 배터리 충방전이 일어난다. 전해질은 배터리 내부에서 리튬 이온이 양극과 음극 사이를 이동하는 통로 역할을 하는 물질이다. 리튬염이 물에 녹은 소금처럼 용매 속에서 이온 상태로 분리되어, 리튬 이온이 전극 사이를 이동할 수 있게 된다. 상용 용매인 에틸렌 카보네이트는 어는점이 37℃라서, 상온(약 25℃)에서는 굳어 있는 ‘얼음’ 상태다. 통상적으로는 어는점을 낮추는 다른 물질과 섞어서 쓰는데, 이번 실험에서는 리튬염만을 소량 첨가해 얼음 상태를 유지하게 설계했다.

연구팀은 얼음 전해질이 고체 전해질 수준의 리튬 이온 성능과 배터리 작동 성능을 보이는 이유도 밝혀냈다. 분석에 따르면, 얼음 전해질에서는 용매 분자가 고정된 채 리튬 양이온만 이웃한 용매 분자의 산소 원자를 따라 이동하게 된다. 산소 원자를 징검다리 삼아 빠르게 건너뛰는 호핑(hopping) 방식이다. 호핑은 마치 개구리가 연잎을 밟고 건너가듯이 리튬 이온이 고정된 산소 원자 사이를 뛰어다니며 이동하는 현상을 말한다.

라만 이미지 맵핑 및 열분석 결과, 유기 얼음 전해질은 거시적으로는 고체이며 미시적으로는 고체 매트릭스가 연속적으로 퍼콜레이션(percolation)된 구조를 갖고, 액상은 고립된 포켓 형태로만 존재함이 확인됐다. 퍼콜레이션은 무작위로 분포된 구조 안에서 통로가 서로 연결되어 전체를 관통하는 이동 경로가 형성되는 현상이다. 전도 기여도 분석을 통해 전체 리튬 이온 전도의 약 70% 이상이 고체 경로에서 기인함을 정량적으로 도출했다. 이는 잔존 액상에 의존한 전도가 아니라, 고정된 용매 분자로 이루어진 고체 매트릭스 내에서 리튬 이온이 호핑 메커니즘을 통해 이동함을 의미한다.

얼음 전해질의 이온 전달 경로와 수지상 억제 효과

리튬금속배터리 상용화 난제 해결 실마리

이번 연구의 가장 큰 의미는 리튬금속배터리의 고질적 문제를 해결할 실마리를 제공했다는 점이다. 리튬금속배터리는 음극에 흑연 대신 리튬 금속을 직접 사용하는 전지로, 리튬이온전지가 흑연 내부에 리튬 이온을 저장하는 구조라면 리튬금속전지는 충전 시 리튬 이온이 금속 형태로 음극 표면에 석출된다. 에너지 밀도를 30~50% 높일 수 있는 차세대 배터리로 주목받지만, 음극인 리튬금속과 액체 전해질 간의 반응성이 큰 탓에 상용화를 위해서는 별도 고체 전해질 개발이 필수로 여겨져 왔다.

얼음 속에서는 용매와 불필요한 음이온의 움직임이 억제되어 부반응이 감소하고, 얼음이 물리적으로 수지상을 눌러버리는 덕분에 리튬금속 배터리 용량의 급격한 감소와 단락을 막을 수 있다. 수지상은 리튬전극 표면에 돋아나는 뾰족한 금속 결정으로, 분리막을 관통해 배터리 단락을 일으키는 주요 원인이다. 얼음상 전해질은 리튬 금속 표면에 용매 유래 Li₂O 중심의 안정한 SEI(Solid Electrolyte Interphase, 고체 전해질 계면)를 형성함으로써 균일한 리튬 도금을 유도했다.

송현곤 교수는 “보통 고체 전해질은 딱딱한 무기물이나 특수한 고분자로만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이번 연구는 전해질 용매 분자들끼리 살짝 엉겨 붙은 ‘얼음’ 같은 구조에서도 이온이 충분히 잘 이동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줬다”며 “상용화가 가능한 현실적인 온도에서 작동할 수 있는 녹는점이 더 높은 유기 용매 조합을 개발 중”이라고 밝혔다. 이번 연구는 “고체화된 유기 전해질은 이온을 전달할 수 없다”는 기존의 고정관념을 깨고, 단일 유기 용매 분자로 이루어진 분자 고체가 전해질로 기능할 수 있음을 최초로 실증했다는 점에서 학문적 의의가 크다. 이는 무기·고분자 네트워크 고체에 국한되었던 전고체 전해질 개념을 분자 고체 영역으로 확장시키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