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IST, 비만 동반 간암의 공격성·항암제 내성 일으키는 핵심 고리 발견
비만이나 대사 이상을 동반한 간암이 유독 빠르게 진행되고 항암제조차 잘 듣지 않는 이유가 밝혀졌다.
UNIST 생명과학과 박지영 교수팀은 간 섬유화 과정에서 분비되는 ‘엔도트로핀(Endotrophin)’이라는 물질이 암세포 표면의 ‘CD44’ 수용체와 결합해 암을 악화시키고 항암제 내성을 유발한다는 사실을 세계 최초로 규명했다고 5일 밝혔다. 일반적으로 비만과 대사질환은 간 조직에 만성적인 손상을 입혀 간암 발병 위험을 높인다. ‘대사 연관 간암(비만이나 당뇨병 등 대사 이상으로 인해 발생하는 간암)’은 암세포의 증식이 빠르고 기존 표적 항암제에 반응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 치료에 어려움이 컸다.
엔도트로핀은 이러한 간암 환자에서 높은 수준으로 검출돼 간암 악성화를 촉진하는 요인으로 지목되어 왔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통로를 거쳐 암세포에 명령을 내리는지는 그동안 베일에 싸여 있었다. 연구 결과는 미국암학회(AACR)가 발행하는 공식 학술지 《캔서 리서치(Cancer Research)》에 2월 11일 온라인 게재됐다.
엔도트로핀의 파트너 ‘CD44’ 찾아내다—암세포 악성화의 핵심 고리
연구팀은 이번 연구를 통해 엔도트로핀의 파트너인 수용체 ‘CD44’ 단백질을 찾아냈다. CD44는 세포 표면에 존재하는 수용체 단백질로, 세포 이동, 성장, 암 줄기세포 특성 유지 등에 관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비만 상태의 간 조직에서 엔도트로핀이 과도하게 발생하면, 이 엔도트로핀이 암세포 표면의 CD44 단백질과 결합한다. 이때 암세포 내부에선 ‘STAT3(세포 성장과 생존을 촉진하는 신호 전달 단백질로, 다양한 암에서 활성화될 경우 종양 악성화를 유도한다)’라는 신호 경로가 활성화되는데, 이 경로가 켜지면 암세포는 폭발적으로 증식하며 주변 조직으로 침투하는 공격적인 성질을 띠게 된다.
연구팀은 컴퓨터 구조 예측(AlphaFold)과 근접결합 분석(Proximity ligation assay, PLA)을 통해 엔도트로핀이 CD44의 세포외 도메인에 직접 결합함을 확인했다. 엔도트로핀-CD44-STAT3 신호는 간암세포의 증식과 이동 능력을 증가시키고, 상피-간엽 전이 현상(EMT·암세포가 이동성과 침습성을 획득하는 과정으로, 암 전이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을 촉진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추가 분석을 통해, 간 조직 내에서 섬유화를 유도하는 간성상세포(간에서 콜라겐을 생성하며 간 섬유화 과정에 핵심 역할을 하는 세포)가 엔도트로핀을 생성하고, 이 단백질이 암세포에 작용해 다시 COL6A3(엔도트로핀의 원료가 되는 콜라겐 6형 구성 단백질) 발현을 증가시키는 ‘양성 피드백 신호 고리’가 형성된다는 사실도 확인됐다. 이는 대사이상 환경에서 시작된 신호가 암 미세환경 내에서 지속적으로 증폭되며 간암 악성화를 강화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동물실험으로 검증—종양 발생 빈도·크기 현저히 감소, 항암제 반응성 회복
연구팀은 동물실험을 통해 이 기전을 검증했다. 고지방식이로 유도한 비만성 간암 마우스 모델에서 암세포 표면의 CD44 단백질과 엔도트로핀의 생성을 동시에 억제한 실험 쥐의 경우, 종양 발생 빈도가 낮아지고 크기도 현저히 줄어들었다. 동시에 간 조직의 섬유화와 지방 축적, 암세포 증식 지표가 줄어드는 것이 관찰됐다.
주목할 만한 점은 항암제 반응성이 개선됐다는 점이다. 엔도트로핀 결합을 차단하자 잘 듣지 않던 표적 항암제인 소라페닙(간암 치료에 사용되는 1차 표적 항암제)에 대한 반응성(감수성)이 회복됐으며, 간 섬유화와 염증 증상도 함께 완화되는 효과를 보였다. 이는 엔도트로핀-CD44 결합을 차단하는 것만으로도 암의 공격성을 약화시키고 동시에 항암제가 다시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 수 있음을 의미한다.
종양 미세환경까지 고려해야—새로운 치료 표적 발굴의 의미
박지영 교수는 “이번 연구는 엔도트로핀과 CD44 수용체의 결합이 비만 동반 간암의 악성화를 결정짓는 핵심 고리임을 밝혀낸 것”이라며, “이 결합을 방해하는 약물을 개발한다면 공격적인 간암의 세력을 약화시키고 항암제 내성을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치료법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본 연구는 비만 및 대사질환 환경에서 세포외기질(Extracellular Matrix, ECM·세포 주변에 존재하며 세포를 지지하고 보호하는 구조물로, 동시에 세포 성장과 이동을 조절하는 신호 환경 역할도 수행한다) 변화가 간암 악성 진행을 유도하는 구체적인 분자적 기전을 규명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특히 간암이 단순히 암세포 자체의 돌연변이 문제에 국한되지 않고, 주변 조직 환경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악화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이는 향후 간암 치료 전략에서 종양 미세환경을 함께 고려해야 함을 시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