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후변화 극복을 위한 대응책, 히트펌프의 세계
히트펌프(heat pump, 열펌프) 시대가 시작되었다.
히트펌프 개념은 간단하다. 히트펌프란 전기에너지로 열을 이동시켜 실내 공기를 덥히거나 식히는 기계다. 이 원리는 1850년대 처음 발명되어 1960년대부터 가정에서 사용되었다. 그런데 이러한 히트펌프가 최근 들어 가장 인기 있는 가전제품으로 갑작스러운 주목을 받고 있다. 히트펌프를 사용하면 에너지 비용을 절약하고 기후변화를 늦출 수 있다는 가능성이 대두한 데다 전 세계적으로 히트펌프 설치를 장려하는 정책이 늘어난 덕분이다.
기본 원리는 단순할지 몰라도 히트펌프 작동 방식은 자세히 알고 보면 매우 흥미롭다. 실내 온도 조절 과정에서 이 장치는 마치 물리법칙을 벗어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또한 히트펌프 기술은 나날이 발전하고 있다. 요즘 출시된 제품들은 기존 제품보다 효율적일 뿐만 아니라 추운 날씨에도 우수한 성능을 보인다.
그럼, 이제 히트펌프의 작동 원리를 자세히 알아보자.
히트펌프는 어떻게 작동할까?
간단히 말하면 히트펌프는 한 곳에서 열을 모아 다른 곳으로 보내는 장치다. 이 기사에서는 주로 난방 기능을 다루지만, 히트펌프는 에어컨처럼 실내의 열을 모아 바깥으로 내보내는 냉방 기능도 있다. 실제로 많은 히트펌프가 필요에 따라 난방 또는 냉방으로 방향을 바꿔 작동한다.
히트펌프의 핵심은 냉매이다. 냉매는 히트펌프의 배관을 따라 이동하면서 열을 흡수했다가 방출하는 유체를 말한다. 이때 냉매를 순환시키기 위해 전기를 사용한다.
냉매는 히트펌프를 돌면서 압축과 팽창을 반복하고 그 과정에서 액체와 기체 상태를 오가며 서로 다른 지점에서 열을 모았다가 방출한다. (이제 히트펌프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더 자세히 설명할 것이다. 만약 지금 설명만으로 충분하다면 아래 내용은 건너뛰자.)

바깥 기온이 영하 5°C인 어느 쌀쌀한 겨울날을 상상해 보자. 거실 소파에 앉아 좋은 책 한 권을 읽는 중이다. 곁에는 고양이가 똬리를 틀고 있다. 온도조절기를 보니 20°C로 설정되어 있다. 적당하긴 하지만 조금 썰렁하다. 자리에서 일어나 설정 온도를 21°C로 올린다.
잔잔한 소음을 내며 돌아가던 히트펌프가 이제 실내 온도를 높이기 위해 가동 속도를 올린다. 내부 팬(fan)과 압축기의 속도가 빨라지고 냉매가 더욱 빠르게 순환하면서 외부에서 내부로 더 많은 열이 전달된다.
몹시 추운 날, 외부에서 열을 끌어온다는 것이 직관에 어긋나는 것처럼 들릴 수 있다. 그러므로 냉매가 순환하면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한번 자세히 살펴보자. 일반적으로 히트펌프에서 냉매가 한 바퀴 순환하는 데 몇 분 정도 걸린다.
히트펌프 냉매의 끓는점은 보통 영하 25°C 이하로 매우 낮다. 그래서 순환 초반 냉매는 영하 25°C 부근의 액체 상태로 존재한다. 가장 추운 지역에서도 액체상 냉매는 일반적으로 바깥 공기보다 훨씬 차갑다(좀 전에 가정한 상황에서는 대기 온도보다 냉매의 온도가 20°C가량 낮다).
순환 첫 단계에서 냉매는 외부 공기를 지나 열교환기를 통과해 흐른다. 이때 냉매가 끓는점에 도달할 만큼 데워져 액체에서 기체로 바뀐다.
두 번째로 냉매는 압축기를 통과한다. 압축기는 냉매의 부피를 압축하여 압력과 끓는점을 높인다(바로 이 점이 중요해질 것이다). 여기서 냉매는 더 데워져 압축기를 통과할 때쯤 실내 기온보다 따뜻해진다.
세 번째 단계에서 냉매는 또 다른 열교환기를 지난다. 하지만 이때까지 냉매는 약 37°C가 넘는 따뜻한 기체로, 상대적으로 시원한 방 안을 통과해 흐른다. 팬이 돌아가면서 냉매가 지닌 열의 일부가 실내로 전달되고, 냉매는 다시 액체로 변하기 시작한다.
마지막으로 네 번째 단계에서 액체인 냉매는 팽창 밸브를 통과하며 감압한다. 물질이 수축하면 발열하고 팽창하면 냉각되는 원리에 따라, 액체 상태의 냉매는 낮은 온도로 돌아와 다시 열을 흡수해 운반할 준비를 한다.
추운 날에도 히트펌프가 작동할까?
히트펌프와 경쟁 관계에 있는 화석연료 회사에서는 히트펌프가 몹시 추운 날에는 잘 작동하지 않는다고 반복해서 강조한다.
히트펌프가 극한의 추위에서 효율이 떨어지는 것은 사실이다. 실내외 온도 차가 벌어지면 히트펌프가 외부 공기로부터 열을 모아 내부로 분산시키기 위해 더 많이 일해야 하므로 효율이 낮아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전기공급에 중점을 두고 활동하는 비영리 단체인 리와이어링 아메리카(Rewiring America)의 특별프로젝트 실장인 샘 칼리쉬(Sam Calisch)에 의하면 히트펌프는 추운 날씨에 효율이 최고는 아닐지만 “지구 어디서나 작동한다”고 한다.
미국에서 가장 추운 지역으로 유명한 알래스카부터 메인에 이르기까지 히트펌프는 모든 곳에서 가동되고 있다. 노르웨이에서는 약 60%의 건물이 히트펌프를 사용하고 있으며 스웨덴과 핀란드에서는 40%가 히트펌프로 난방하고 있다.
메인주에서 에너지 효율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단체인 이피션시 메인(Efficiency Maine)의 선임 프로그램 매니저 앤디 마이어(Andy Meyer)에 따르면 매우 추운 곳에서도 적절한 히트펌프를 선택하면 높은 효율로 난방을 가동할 수 있다.
메이어는 영하 17°C 이하에서 난방이 되지 않는 히트펌프도 있지만, 어떤 제품은 이보다 더 낮은 온도에서도 효율적으로 작동한다고 말한다. 그는 일시적으로 한파가 닥쳐도 적절한 히트펌프 시스템을 갖춰 놓으면 굳이 소형 난로를 따로 둘 필요가 없다고 덧붙였다.
그렇다면 최근 히트펌프 기술은 어떤 점이 달라졌을까?
마이어는 몇 가지 주요 부품이 개선되어 추운 곳에서 히트펌프의 효율과 성능이 크게 향상했다고 말한다.
그 가운데 하나가 바로 냉매다. 일명 ‘R-22’라고 불리는 프레온은 한때 가장 흔히 사용되는 냉매였지만, 오존층 파괴의 원인이라는 이유로 미국을 비롯한 주요 시장에서 퇴출당했다.
오늘날에는 ‘R-410A’라고 불리는 혼합물이 히트펌프의 냉매로 가장 널리 사용되고 있다. R-410A는 오존층에 덜 해로우면서 R-22보다 끓는점이 낮다. 즉 낮은 온도에서 R-22보다 더 많은 열을 흡수할 수 있어 추운 날씨에 효율적이다.
다른 부품들 또한 개선되었다. 최신 히트펌프에 들어가는 압축기들은 적은 양의 에너지로도 높은 압력을 만들 수 있다. 또 소위 가변압축기라고 불리는 장치는 히트펌프 출력을 높이거나 낮출 수 있다. 마지막으로 공기와 냉매 사이에 열을 전달하는 열교환기의 크기가 커지고 성능이 개선되면서 열이 더 효과적으로 이동할 수 있게 되었다.
이미 시중에는 여러 종류의 히트펌프가 있다. 현재 사용되고 있는 히트펌프 중 약 85%가 앞서 설명한 대기열(공기열원) 히트펌프인데, 이 또한 모양과 크기에 따른 다양한 제품이 있다. 지열 히트펌프의 경우에는 공기가 아닌 지하로부터 열을 공급받는다.
히트펌프가 기후변화 문제를 어떻게 완화할까?
건물 난방은 천연가스나 난방유를 사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이는 오늘날 전 세계 탄소 배출의 약 10%를 차지한다. 국제에너지기구(IEA)의 에너지 분석가 야니크 몬샤우어(Yannick Monschauer)는 히트펌프가 난방으로 인한 기후변화 문제를 완화하는 핵심 기술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히트펌프는 전력망에서 끌어온 전기로 작동한다. 전 세계적으로 보았을 때 일부 전력망은 여전히 화석연료 발전으로부터 전기를 얻지만, 재생에너지나 기타 저탄소 에너지원으로부터 전기를 생산하는 곳도 많다. 몬샤우어는 다양한 에너지원이 혼합된다는 점에서 화석연료를 직접 태우는 방식의 난방보다는 히트펌프가 기후변화 문제 해결에 더 긍정적이라고 말한다.
히트펌프가 기후변화 문제의 해결책이 될 수 있는 강점은 효율성에 있다. 오늘날 히트펌프는 효율이 300~400%, 혹은 그 이상에 다다른다. 사용하는 전기량의 서너 배에 달하는 에너지를 열 형태로 방출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기존의 실내용 난로는 이론상 최대 100%의 효율을 낼 수 있었고, 오늘날 효율이 가장 높은 제품은 효율이 95%에 이른다.
히트펌프와 난로 사이의 이러한 차이는 작동 방식으로부터 비롯된다. 실내용 난로는 전기에너지를 열에너지로 전환하여 작동한다.
반면 히트펌프는 전기를 열로 바꾸는 게 아니라, 열을 모아 이동시키는 데 전기를 사용한다. 미묘한 차이지만 기본적으로 같은 양의 전기로 히트펌프가 현저히 많은 열을 낼 수 있다.
이러한 히트펌프의 효율은 냉매와 시스템의 종류, 실내와 실외의 온도 차에 따라 달라진다.
히트펌프 설치를 고려할 때 어떤 점을 알아야 할까?
히트펌프는 설치할 때 초기 비용이 많이 든다는 점에서 진입 장벽이 높다. 현재 한 유닛을 구입하여 설치하기 위해서는 3,000~6,000달러(약 396만~792만 원)의 비용이 든다. 물론 건물이 크면 여러 유닛을 설치해야 한다.
하지만 몬샤우어는 히트펌프의 경우 한번 설치하면 수명이 15년 이상이므로 일부 소비자에게는 히트펌프가 다른 시스템보다 더 경제적이라고 말한다. 특히 연교차가 커 난방과 냉방을 모두 사용하는 가정에 유리하다.
전 세계 30개 이상의 국가에서 히트펌프 사용을 장려하는 정책을 펼치고 있다. 주로 저소득층이나 고효율 장비 구입 시에 이러한 혜택을 받을 수 있다. 특히 이탈리아는 에너지 효율 개선을 위한 건물 개조 공사에 보조금을 지원하고 있으며, 구매 비용의 최대 110%를 세액 공제 혜택으로 돌려준다.
미국에서는 인플레이션 감축 법안(Inflation Reduction Act, 이하 IRA)에 따라 히트펌프 구매 비용의 30%만큼 세액 공제를 해준다. 저소득 및 중위소득 층에는 추가 할인을 지원한다. 일부 가구에서는 이 지원금으로 비용의 100%를 충당할 수도 있다. 리와이어링 아메리카는 IRA 보조금 지원 요건 충족 여부를 계산할 수 있는 웹페이지를 운영하고 있다.
히트펌프의 다음 단계는 무엇일까?
지난 10년 동안 히트펌프는 전보다 훨씬 개선되었지만, 앞으로도 성장할 가능성이 크다.
미국의 스타트업인 그래디언트(Gradient)에서는 창문형 유닛을 새롭게 개발하여 설치 비용을 낮추었다. 미데아(Midea)와 엘지(LG) 같은 다른 기업에서도 마찬가지로 소형, 이동식 유닛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이처럼 선택지들이 많아지면 히트펌프를 설치하기 까다롭고 비싼 오래된 건물 같은 곳에 도입할 수 있을 것이다.
냉매 관련 기술은 개선하기 쉽지 않다. 오늘날 사용하는 냉매는 이전보다 발전된 형태지만 이조차도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주범이다. 냉매 누출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취급에 더욱 신중하고 제조의 정확성을 기해야 할 것이다. 기후변화 관점에서 히트펌프를 사용함으로써 얻는 이득이 냉매 누출로 인한 손실보다 크지만, 대안이 있다면 이 같은 위험을 줄일 수 있다.
일례로 그래디언트는 ‘R-32’라고 불리는 냉매를 사용한다. 이 냉매는 R-410A보다 지구온난화에 끼치는 영향이 더 적다. 탄화수소인 프로페인(propane), 뷰테인(butane) 같은 종류의 냉매는 더욱 친환경적이다. 그러나 이 중 일부는 가연성이 매우 높으므로 안전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기술이 진보할수록 히트펌프의 제품군은 더 다양해질 것이다. 그리고 기술이 보편화됨에 따라 비용 또한 낮아질 것이다.
2021년 한 해 동안 전 세계 히트펌프 판매량은 15% 성장했다. 유럽은 2021년 기준 35% 증가로 가장 가파른 성장세를 보였으며, 이 추세는 에너지 위기로 인해 계속될 전망된다. 북미는 여전히 히트펌프 설치 가구 수가 가장 많은 나라다. 하지만 신규 판매량이 가장 많은 나라는 중국이다.
이처럼 히트펌프의 시대가 열렸다는 사실이 전 세계에 걸쳐 공식화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