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의 거대 배터리 기업 CATL이 8월 중순에 새로운 고속 충전 배터리를 공개했다. CATL에 따르면 이 배터리는 최대 400km 주행이 가능하도록 충전하는 데 10분밖에 걸리지 않는다.
이는 오늘날 거의 모든 전기차 충전 속도보다 빠르며, CATL은 올해 생산을 개시할 이 새로운 배터리가 “전기차 초고속 충전 시대를 열 것”이라고 주장한다. 물론 이러한 주장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CATL이 약속하는 배터리 용량, 수명, 비용 등이 실제 충족할 수 있어야 한다.
전기차는 2022년 전 세계 신차 판매량의 14%를 차지했으며 시장 점유율을 계속해서 늘려가고 있다. 그러나 많은 운전자들은 여전히 배터리 기술의 한계로 인한 주행 거리 제한을 우려하고 있으며, 급속 충전소에서도 충전하려면 30분 이상을 정차해야 한다는 점 때문에 전기차 구매를 미루고 있다. 충전 인프라의 발전과 함께 배터리 소재에 혁신이 일어난다면, 전기차도 휘발유 자동차와 같은 편리성을 보장할 수 있게 되면서 전기차 보급을 장려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CATL(Contemporary Amperex Technology Co. Limited, 중국명: 寧德時代: 닝더스다이)은 세계 최대의 배터리 제조업체이며, 테슬라(Tesla), 메르세데스-벤츠(Mercedes-Benz), 폭스바겐(Volkswagen) 등 주요 자동차 제조업체에 배터리를 공급한다.
8월 중순에 있었던 CATL의 새로운 배터리에 대한 발표는 최근 가장 주목할만한 기술 관련 소식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CATL은 항공기용 고에너지밀도응축물질 배터리(high-energy-density condensed-matter battery)를 제작하고, 리튬 대신 나트륨을 이용하는 새로운 전기차 배터리를 대량 생산할 계획이다.
에너지 연구 기업 블룸버그 뉴 에너지 파이낸스(BNEF)의 분석가 지아옌 스(Jiayan Shi)는 “CATL의 새 고속 충전 배터리는 경쟁사 배터리보다 충전 속도가 두 배 더 빠를 것”이라고 말한다. 테슬라의 고속 충전의 경우 15분 충전하면 주행 거리를 320km 정도 늘릴 수 있다.
배터리와 에너지 저장 기술에 집중하는 벤처캐피털 기업 볼타에너지테크놀로지(Volta Energy Technologies)의 최고기술책임자 데이비드 슈뢰더(David Schroeder)는 “일부 상용화된 배터리는 이미 CATL이 이번에 발표한 충전 속도에 도달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런 배터리는 고정식 에너지 저장 장치(ESS) 같은 제품에 사용된다. CATL은 이러한 고속 충전 배터리를 전기차에 장착하는 최초의 기업이 될 것이다.
리튬이온 배터리는 저장할 수 있는 에너지양을 늘리면 충전 속도가 느려지는 경향이 있다. 리튬이온 배터리는 일반적으로 ‘에너지 셀’과 ‘파워 셀’이라는 두 가지 유형으로 분류된다. 에너지 셀은 가능한 한 많은 에너지를 저장하고자 하기 때문에 부피를 크게 늘리지 않고도 전기차의 주행 거리를 늘리는 데 도움이 된다. 반면에 파워 셀은 빠른 충전을 우선시하며, 전력망을 안정화시키는 고정식 에너지 저장 장치 등에 유용하다.
오늘날의 파워 셀은 충전 속도가 빠르지만, 부피가 너무 크기 때문에 자동차에 사용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으며 수만 km를 주행할 때까지 수명을 유지할 수도 없을 것이다. 작고 가볍고 지속력이 좋으면서도 빠르게 충전할 수 있는 배터리가 개발된다면, 배터리 기술의 한 단계 진보를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
배터리 용량과 충전 속도 사이의 이러한 상충관계는 배터리에서 이온(ion)이라고 하는 하전 분자가 이동하는 방식을 통해 설명할 수 있다. 배터리가 충전되면 전류는 리튬이온을 셀의 한쪽에서 다른 쪽으로 밀어낸다. 그러면 이온은 음극(anode)이라고 하는 배터리 공간에 자리를 잡고 대기한다. 그러다가 누군가가 기기에 전원을 공급하려고 배터리를 사용하게 되면, 리튬이온은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서 저장된 전기를 방출한다.
배터리의 총용량을 늘리려면 음극재 층을 더 두껍게 만들어서 이온이 들어갈 공간을 늘리는 방법을 쓸 수 있다. 그러나 음극재가 더 두꺼운 배터리에서는 저장 공간 일부가 음극재 층 내부 깊이 존재하기 때문에 이온의 이동 거리가 늘어나서 충전 속도가 느려진다. 충전 속도를 높이려면 배터리 제조업체는 음극재 층을 더 얇게 만들어서 이온의 이동 거리를 줄여야 한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소재 혁신이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CATL은 고속 충전 배터리에 대해 발표하면서 이온의 이동 거리를 줄이고 충전 속도를 높이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한 흑연 표면 개선과 다층 설계 등 음극에 대한 몇 가지 변화를 언급했다.
그러나 에너지 컨설팅 기업 우드맥킨지(Wood Mackenzie)의 수석 연구 분석가 케빈 상(Kevin Shang)은 충전 속도를 높이려면 음극뿐만 아니라 배터리의 모든 부분에 변화가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한다. CATL의 발표에도 예를 들어 전도성을 개선하는 새로운 전해질(배터리에서 이온이 이동하는 액체)에 대한 언급이 있다. 케빈은 CATL 같은 거대 배터리 업체는 신제품을 개발할 때 한 가지 혁신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연구개발 노력을 추가해서 하나의 제품에 결합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케빈은 CATL이 발표한 배터리에 대한 의문이 여전히 남아 있으며 이 배터리가 전기차에 어떤 의미를 가지게 될지는 두고 봐야 한다고 말한다. CATL은 주행 거리가 700km인 차량에 이 배터리를 사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발표했는데, 이는 고에너지 밀도를 갖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그 정도 주행 거리를 가능하게 하려면 차량과 배터리의 크기가 얼마나 커져야 할지는 명확하지 않다.
게다가 슈뢰더에 따르면 충전 속도가 빨라지면 일반적으로 배터리의 수명이 짧아지며 가격이 비싸질 수 있다. 새로운 고속 충전 배터리의 수명에 대한 MIT 테크놀로지 리뷰의 서면 질의에 CATL은 “고속 충전이든 아니든 우리 제품에 대한 보증 기간은 동일하다”고 답했다(회사의 웹사이트에 따르면 현재 CATL의 제품 보증 기간은 8년 또는 80만km이다). CATL은 또한 “비용 효율성을 개선했다”고 답했지만 배터리 가격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제공하지 않았다.
궁극적으로는 배터리 설계뿐만 아니라 사용 가능한 충전 인프라도 배터리 충전 속도 제한에 영향을 줄 것이다. 중국이 충전소 인프라에서 세계를 선도하고 있기는 하지만, 증가하고 있는 수요를 맞추려면 더 많은 전기차 충전기가 필요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CATL의 새 배터리가 처리할 수 있는 충전 속도에 도달하려면 새로운 충전기가 필요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인프라 개발에 더 많은 과제가 주어질 수도 있다.
케빈은 기술 발전에 대한 배터리 회사들의 발표는 “언제나 좋은 소식”이며, “그런 소식을 항상 환영한다”고 말한다. 문제는 “기업들이 약속한 내용을 실제로 이행할 수 있는가”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