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불을 견디는 주택을 짓기 위한 여정

기후 변화로 인해 전 세계적으로 급증한 화재 취약 지역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재료 공학 이상의 사회적 변화가 요구된다.

2008년 11월 13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터바버라의 몬테시토 언덕에서 점화된 최초 불씨는 최대 시속 85마일(시속 약 137킬로미터)의 돌풍을 일으키는 맹렬한 캘리포니아 온풍에 거센 불길로 커져 인구 밀도가 높은 언덕 아래 협곡 지역으로까지 번졌다. 당시 몬테시토에 위치한 웨스트몬트 대학교(Westmont College)에서 복원 책임자로 근무하고 있던 트로이 해리스(Troy Harris)는 마을 반대편에서부터 떡갈나무와 유칼립투스로 빽빽이 뒤덮인 산기슭에 있는 캠퍼스로 달려왔다. 티 화재(Tea Fire)의 불길은 협곡 지역에 다다른지 몇 분 만에 학교를 덮쳤다. 하지만 학생들은 대피하지 않았다. 수십 년 동안 이 협곡 지역에서 여러 차례 대규모 화재를 경험했고 구불구불한 도로 두 개 외에는 탈출로를 찾을 수 없는 웨스트몬드 대학교에서는 바로 이런 종류의 재난에 대비해 계획을 세워두었다. 그들은 끝까지 캠퍼스를 벗어나지 않았다.

해리스는 “몇몇 학부모가 보안관 사무소에 전화했고 해당 사무소에서는 아이들을 캠퍼스 밖으로 대피시키라는 잘못된 지시를 내리고 있었다”고 말한다. 사실, 캠퍼스를 향해 번지는 불길보다 빠른 속도로 1,000명이나 되는 사람들을 언덕 아래로 대피시킬 방법은 없었을 것이다. 대신 학생들과 교직원들은 캠퍼스 남서쪽 구석에 있는 내화 구조로 된 체육관에 집결했다.

캠퍼스 안에 있던 구조물 중 9곳이 불에 탔지만, 체육관으로 피신한 학생들은 무사했다. 해리스는 이러한 결과를 ‘굉장한 승리’라고 평가하면서도 매우 이례적인 사건이었다고 회고한다.

미국 서부에서 대규모 산불이 발생할 때마다 정부 관계자들은 향후에 화재가 다시 발생할 경우 주택이나 생명을 구할 수 있는 새로운 비상사태 관리 방안이나 규정을 검토한다. 사람이 거주하는 주택 단지 인근에 화재가 발생하기 쉬운 산비탈이 있고, 특정 시기마다 화재로 인한 비극이 반복되는 캘리포니아주의 일부 지역에서는 이처럼 새로운 생존 방안을 찾기 위한 노력이 절실하다. 이러한 방안 중 다수는 비용 부담이 적고 엄청난 기술력이 요구되는 것도 아니지만 매우 혁신적이다. 기후 변화로 인해 전 세계적으로 급증한 화재 취약 지역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재료 공학을 뛰어넘는 사회적 변화가 요구된다.

웨스트몬트 대학교에서 해리의 후임자로 일하고 있는 제이슨 타바레즈(Jason Tavarez)는 “사람들은 산불을 떠올리면 최대한 빨리 대피할 생각만 한다. 마치 모든 사람이 ‘대피하십시오. 어서 빨리 이곳을 벗어나야 합니다’라는 동일한 메시지를 듣고 있는 것처럼 100명 중 99명이 대피하는 데 급급한 모습을 보인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제는 이와 다른 시나리오를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 큰불이 너무 빠르고 거세게 번져 화재 장소에서 벗어나기 힘든 경우에는 그 자리에서 몸을 웅크리는 것이 최선이다. 산불에 대한 이러한 접근법을 ‘실내 피신(shelter in place)’ 또는 ‘제자리 방어(stay and defend)’ 접근법이라 한다. 미국 서부에서 화재 발생 시, 대피자 중 상당수가 화재 잔해로 덮인 좁은 도로에 발이 묶이거나 교통 체증으로 인해 목숨을 잃었다. 이러한 이유로 최근 화재가 무서운 속도로 자주 발생하는 가운데 대피소 전략이 새롭게 관심을 받고 있다. 그러나 이 접근법은 여러 차례의 놀라운 성공에도 불구하고 아직 큰 인기를 얻지 못하고 있다.

캘리포니아 머세드 대학교(University of California, Merced) 교수로 화재를 연구하는 크리스탈 콜덴(Crystal Kolden)은 “미국인들은 몸을 웅크리고 머리를 감싸는 것을 어려워한다”고 말한다. 그는 “대피하는 대신 그 자리를 지키는 것이 안전한 시점은 언제인가? 더욱 중요한 문제인 시설이 갖춰야 하는 최소 요건은 무엇이며, 절체절명의 순간에 어떻게 위험과 편익 사이에서 적절한 판단을 내릴 것인가?”라고 묻는다.

화재에 효과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탈출하기 쉬운 건물이나 화재를 견딜 수 있는 건물을 지을 수도 있다. 탈출 용이성과 화재 저항성을 둘 다 갖춘 건물을 지을 수도 있지만 지금까지 미국 서부에서는 이 중 어떤 대안도 실행되지 않았다. 한편 끊임없는 인구 증가로 거주 지역은 도시 및 교외와 맞닿은 시골 경계 지대, 산기슭, 협곡, 배수로까지 확장되었다. 이 지역들에서는 화재가 빈번하게 발생하며 산림인접지(Wildland-urban interface)라 불리기도 한다. 지난 20년 동안 화재의 규모와 파괴력은 더 커졌는데, 이러한 위험 지대에 거주하는 인구 규모도 1990년에서 2010년 사이에 약 2배로 증가했으며 산불에 가장 취약한 지역에서 인구 증가율이 가장 높게 나타났다. 실제로 산림인접지는 미국에서 토지 이용률의 증가세가 가장 가파른 지역에 해당한다.

보호소로의 피신은 수동적이기보다는 적극적인 방안이다. 야외의 안전한 장소와 폐쇄된 건물에 사전 대비책이 포함되어 있는지, 또는 인근으로 확산하는 화염을 막을 수 있는 소방 장치가 갖춰져 있는지와는 관계가 없다. 진입 및 퇴출로가 거의 없는 시골 지역에서 실내 피신 계획은 빠르게 번지는 화재 속에서 생사를 결정짓는 요소가 될 수 있다. 실내 피신은 최악의 시나리오에 대비하는 것을 의미하며, 불길이 사람의 대피 속도보다 빠르게 번지기 때문에 최악의 상황은 생각보다 빈번하게 발생한다. 캘리포니아에서는 이러한 사고가 여러 차례 반복됐다.

화재 위협 증가에 대응하여 일부 기관과 커뮤니티에서는 1990년대 이후 호주 정부가 ‘조기 대피 또는 제자리 방어’ 정책을 채택한 사례에서 해답을 찾았다. 그러나 호주도 2009년 검은 토요일(Black Saturday) 화재 당시 사망자 173명 중 절반 이상이 집 안에서 불을 피하다가 목숨을 잃게 되면서 이러한 방침을 재검토하게 되었다. 또한 미국은 일반적으로 산불에 대해 실내 피신 방침을 채택하는 데 더딘 모습을 보였다. 실내 피신 방침은 외관상 긍정적으로 인식되지 않는다. 체계적인 계획이 마련되어 있는 경우에도 실내 피신은 사람들을 목숨을 자연의 폭력적인 변덕에 그대로 내맡기는 방기 행위 또는 감금 행위처럼 보일 수 있다. 소방 연구원과 공무원도 화재 대응 방안을 뒷받침할 과학적 근거에 대해 합의점을 도출하지 못한다. 채택률이 낮은 만큼 실내 대비 접근 방식의 실제 효과에 대한 데이터도 거의 찾아볼 수 없다. 결국 전문가들은 웨스트몬트 대학교의 성공 사례와 같은 소수의 성공 사례만을 반복적으로 언급한다.

콜덴은 “실제로 해당 공간을 벗어나는 것이 항상 최선이라는 편견을 극복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그는 “과거에는 지역마다 방공호가 있었다. 이러한 공간은 커뮤니티의 화재 피신소의 역할을 할 수 있다. 지금까지 방공호는 적극적으로 논의되지 않았지만, 화재발생 시에도 생존할 수 있는 커뮤니티를 진정으로 구축하고자 한다면 이에 대한 논의를 본격적으로 진행해야 한다”고 덧붙인다.

우리의 피신소

건물이 타는 것을 방지한다는 기본 원리는 딱히 첨단 기술이나 비용이 많이 요구되는 것은 아니지만 산불에 대한 우리의 전통적인 사고방식과 상충된다. 1970년대에 잭 코언(Jack Cohen)이 구조물 주변의 인화성 초목이나 기타 연료를 제거한 구역을 의미하는 ‘방어 가능한 공간(defensible space)’라는 개념을 최초로 제시했을 때 미국 산림청은 대부분 이를 우습게 여겼다. 잭 코언의 접근 방식은 기존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혁신이었다. 이 방식은 적어도 공간이 있으면 어디에서나 쉽게 시행할 수 있는 개조 작업에 불과했지만 이를 위해서는 산림청이 약 100년 동안 고수해 온 산불에 대한 공격적 접근 방식을 방어적 접근 방식으로 전환해야 했다.

오늘날 규제 당국은 결국 잭 코언의 새로운 접근 방식을 채택했고 현재 캘리포니아에서는 화재 위험이 ‘매우 높음’ 또는 ‘높음’ 수준인 황무지 지역에 대해 구조물의 주변 100 피트(약 30.5미터)를 공터로 만들어야 한다는 건축 규정을 적용하고 있다. (적어도 100 피트 이상의 여유 공간이 있는 경우에 해당한다) 그 밖에 주택에 내연 조치(Home Hardening)를 하는 방안은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고 비용도 저렴하다. 이를 위해서는 가연성 지붕을 교체하고, 창 이음새 및 접합부를 메우며, 불꽃이 유입될 수 있는 환기구를 촘촘한 철망으로 덮어야 한다. 또한 지붕 물받이에 마른 불쏘시개처럼 탈 수 있는 물질이 쌓일 수 있는 주택은 최신 내화 자재를 사용하더라도 화재에 취약하다. 주택의 형태도 평평한 지붕, 철제 창문, 불씨의 점화 가능성을 차단하는 곧은 선 등 화재 방어 기능에 맞게 변하고 있다. 위협적인 화재가 발생할 때마다 새로운 취약점이 발견되고 이에 대해 또 다른 혁신적인 대안을 찾으려는 노력이 시작된다.

건물이 타는 것을 방지한다는 기본 원리는 딱히 첨단 기술이나 비용이 많이 요구되는 것은 아니지만 산불에 대한 우리의 전통적인 사고방식과 상충된다.

캘리포니아의 가장 엄격한 화재 기준은 명확하게 지정된 고위험 지역(캘리포니아 산림 및 화재 예방국에 따르면 주거용 건물 약 4분의 1이 포함됨)에 있는 주택과 신축 주택에만 적용된다. 2018년 발생한 화재로 최소 85명이 사망하고 18,000개가 넘는 구조물이 파괴된 파라다이스 마을의 경우, 1996년 이후 건축된 주택에서의 생존율은 약 40%였지만 그 이전에 지어진 주택은 11%에 불과했다.

유타 대학교(University of Utah)의 대피 연구원 겸 지리학 교수인 토머스 코바(Thomas Cova)는 불이 붙기 쉬운 막다른 협곡에 주택을 지어 이 지역의 주택 밀도가 높아지는 현상이 우려된다고 말한다. 주택 사이 공간의 유무는 건물이 화재 발생 여부를 예측하는 주요 요인이다. 저렴한 주택을 찾기 힘든 캘리포니아주에서 교외의 남는 땅에 주택을 짓는 것은 여러 면에서 유용한 주택 정책이지만, 대형 산불을 여러 차례 경험한 주 정부의 입장에서는 바람직하지 않은 토지 이용 정책이기도 하다. 그런데도 지역 공무원의 입장에서는 전체 거주 지역을 더 큰 위험에 노출시키더라도 신규 주택 건설을 막을 만한 뚜렷한 유인이 없다. 산비탈에 가연성 건축물이 한 채 더 건설되고 도로 위에 차가 한두 대 더 생기면 재산세를 통한 세입도 추가로 발생하기 때문이다.

약 100년 전에 설립된 마을과 도시의 건축 환경을 전면 개조하는 방안은 본질적으로 검토 대상에서 제외된다. 주 정부 차원에서 이러한 공사를 시행할 근거 규정이 존재하지 않고 뚜렷한 재원도 마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커뮤니티가 화재로 모두 불타버린 경우에도 기존 도로는 재건축 시 최소한의 화재 규정 적용 범위에서 제외된다. 반면 신규 주택 지역에는 훨씬 더 엄격한 기준이 적용된다.

코바는 “나는 항상 실내 피신 방안을 부차적인 대안 정도로만 여겼다. 선택할 수 있는 여러 대안을 고려하는 것은 현명한 일이다. 하지만 지금은 [신규] 개발과 관련한 논의에서도 실내 피신 방안을 고려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한다.

이는 캘리포니아의 극심한 주택 구입 부담 문제를 고려할 때 매우 신빙성 있는 추측이다. 캘리포니아  주 정부는 주택 문제로 인해 끊임없이 신규 주택을 건설해야 할 뿐만 아니라, 가격이 낮지만 도시와는 더 거리가 멀고 화재 위험이 더 높은 시골 부지에 주택을 지어야 한다는 심각한 부담을 안고 있다. 2022년 10월 캘리포니아주 법무부 장관이 발표한 새로운 지침은 지역 정부 기관에 “커뮤니티 대피 계획에 지나치게 의존하지 말고” 실내 피신 방안을 고려하도록 명시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코바는 “논의는 이러한 지역을 개발할지 여부가 아니라 피신소를 그 안에 포함하는 구체적인 방법을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말한다. 그는 캘리포니아에서 “지역 개발을 지속할 수 있는 계획을 수립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결국 공공 안전과 저렴한 주택 마련이라는 목표가 대립하게 된다”라고 덧붙였다.

제자리 방어

실내 피신 방안을 옹호하는 측에서도 안전하게 대피할 수 있는 시간과 능력이 있다면 (외부로) 대피하는 것이 더 낫다는 데 전반적으로 동의한다. 문제는 산불이 너무 빠르게 퍼져 빠져나갈 시간이 충분하지 않다는 점이다. 외부로 나가지 않는 대안적 피신 계획이 죽음의 상황과 생존의 기회 사이의 차이를 만들어 낼 수도 있다. 이러한 접근 방식은 화재 확산 방지를 위한 공터 조성만큼이나 우리의 통념에 반하는 문화적 혁신일 수 있으며, 이로 인해 산불이 훨씬 더 위협적인 존재로 인식될 수 있다.

코바는 “대중을 위한 안전 구역을 지정하는 데 공식적인 방법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실질적으로는 실내 피신의 개념이 적용되어 왔다”고 설명한다. 예를 들어 과거 화재 사건에서 소방관들은 사람들을 골프장으로 피신시킨 후 스프링클러를 작동시킨 적이 있다.

미국에서 발생한 최초의 실내 피신 성공 사례 중 하나는 사전 계획보다는 신속한 상황 판단의 결과였다. 2003년 시더 화재(Cedar Fire) 당시 불길이 샌디에이고를 가로질러 무서운 속도로 번져 나가자, 소방관들은 바로나 리조트와 카지노(Barona Resort and Casino) 안에 있던 수백 명의 사람들을 대피시키는 대신 해당 건물을 폐쇄하기로 했다. 코바는 소방서장이 트럭으로 유일한 출구를 막아 “건물 밖으로 대피하려는 사람들이 꼼짝도 할 수 없게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코바의 이야기에 따르면 “화재는 카지노 주차장 사방과 인근의 언덕까지 모두 태워버렸지만, 사람들은 건물 안에 머물며 도박을 했다.”

웨스트몬트 대학교는 지역 소방서의 지시로 같은 해에 실내 피신 계획을 수립하기 시작했다. 2009년 웨스트몬트 대학교는 티 화재에서 살아남은 지 불과 6개월 만에 또 다시 제주시타 화재(Jesusita Fire)를 경험하게 되었다. 이 화재는 멀리 떨어진 곳에서 발생했고 확산 속도가 느려 대피할 시간이 충분했다. 해리스는 이 사건을 계기로 “제자리에서 방어할 계획이 있었지만, 대피를 위한 계획은 아직 마련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제수시타 화재 대피 과정에서 그는 “대피에는 분명 많은 시간이 소요되며 1,000명이나 되는 인원을 언덕 밖으로 대피시키는 신속한 방법은 현실에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타바레즈는 웨스트몬드 학생들이 대피하지 못하도록 강제로 막는 것은 아니라고 서둘러 해명했다. 그러나 이 경우 학교에 있던 사람들 대부분은 제자리에서 피신하는 데 동의했다. 타바레즈는 이러한 결정에 따르지 않는 사람이 있으면 “우리는 여기에 남아있는 학생들의 수, 우리가 세운 계획, 캠퍼스 내에 마련된 비상 대응책을 고려할 때 언덕 아래의 불길을 뚫고 대피하는 것보다 캠퍼스 내에 머무르는 것이 훨씬 더 안전하다는 사실을 친절하지만 단호하게 설명한다”고 이야기한다.

그렇지만 교내 인구는 다른 커뮤니티에 비해 격리가 용이하며, 이는 웨스트몬트 대학교 외에 다른  사례를 통해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다. 2018년 거대한 규모로 산타모니카 산맥을 빠르게 집어삼킨 울시 화재(Woolsey Fire) 당시 공무원들은 25만 명의 인구를 집에서 미리 대피시켰지만, 말리부의 페퍼다인 대학교(Pepperdine University) 내에 있던 수백 명의 학생들은 캠퍼스를 벗어나지 않았다. 학생들은 넓은 방어 공간, 관개 수로가 마련된 널찍한 잔디밭, 스프링클러가 설치된 견고한 건물 덕분에 안전하게 피신할 수 있었다. 페퍼다인 대학교는 수십 년 동안 실내 피신 계획을 유지해 왔지만 그럼에도 일부 관계자는 여전히 이 계획에 대해 비판적이었다. 주 상원의원 헨리 스턴(Henry Stern)은 화재 직후 열린 커뮤니티 모임에서 주민들에게 “이 실내 피신 정책은 재평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불꽃이 치솟는 상황에서 그 자리를 벗어나지 않는 결정은 비록 이상적인 결과를 낳더라도 일반적으로 환영받지 못한다.

LA 카운티의 부소방서장 드루 스미스(Drew Smith)는 “생존할 확률이 높은, 가장 안전한 장소에 있는데도 대학교를 벗어나는 것은 현명하지 못한 계획”이라고 지적한다.

LA 카운티 소방 당국은 매년 실내 피신 계획을 재검토하지만 문제점을 찾지 못했다. 그러나 스미스는 실내 피신 개념을 더 작은 규모의 기관이나 커뮤니티 건물로 확대하는 것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그는 이러한 구조의 건물에는 산불의 뜨거운 열기와 연기를 견딜 수 있는 공간이 충분하지 않다고 말한다. 스미스는 15에이커(약 18,300평)에 50명 정도, 즉 축구장 1개 면적에 약 4명을 수용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판단한다. 그러나 일부 주의 화재 계획 담당자들은 일반 건물의 측정값을 기준으로 실내 피신 시 수용 가능 인원을 결정하기 때문에 수용 기준 면적이 1인당 몇 제곱피트(1평 = 약 36제곱피트)밖에 되지 않는다. 관련 자료가 부족해 합의된 기준도 존재하지 않는 상태다.

화재 대비책을 갖춘 커뮤니티

적절한 조건이 갖춰진다면 개별 주택도 피신소로 활용될 수 있다. 2004년 샌디에이고 카운티에서 부유층이 많이 거주하는 준 농촌 지역인 랜초 산타페(Rancho Santa Fe)에는 커뮤니티 5곳이 개별 주택으로의 피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설계되었다. 내화성 주택 수천 채, 커뮤니티 내외부의 도로를 따라 250피트(약 76미터) 간격으로 설치된 소화전, 화재 발생 가능성이 있는 수풀과 유칼립투스 언덕으로부터 인근 거주지를 보호하기 위해 방어용 공터와 골프장 및 공원과 같은 개방된 공간이 마련되었다. 또한 화재 예방 조치를 집행하고 유지하기 위해 주택 소유자 협회가 설립되었다.

각 주택은 당시 최첨단 방식이었던 내화성 구조와 자재를 사용하여 실내 피신 기준에 맞게 건축되었고, 관련 표준은 이후 주 정부 및 지방 정부 규정에 도입되었다. 각각의 주택은 기와지붕, 벽토, 장식용 테라스 및 덮개가 있는 처마로 구성된 작은 요새이다. 조기 대피는 여전히 최우선적인 비상 계획이기 때문에 도로도 이에 맞춰 설계되었다. 하지만 견고한 요새는 커뮤니티(구조물과 그 안에서 피신하는 사람들 모두)가 생존할 수 있는 또 다른 기회를 제공한다.

“실내 피신은 한 때 이론에 불과했고 지금도 여전히 진행 중인 계획이다.”

브랜든 클로스, 랜초 산타페 화재 예방 지구의 화재 예방 전문가

랜초 산타페 화재 예방 지구(Rancho Santa Fe Fire Protection District)의 화재 예방 전문가인 브랜던 클로스(Brandon Closs)는 “핵심 원칙 중 하나는 이러한 화재 계획이 커뮤니티 전반에 통합적으로 추진되어야 한다는 것”이라고 말한다. 샌디에이고 건축법은 오랫동안 화재 안전 분야에서 가장 엄격한 기준을 요구하여 주 정부 규정의 모범 사례로 활용되어 왔으며, 여전히 주 정부 기준보다 엄격한 기준을 적용한다.

클로스는 “실내 피신은 한 때 이론에 불과했고 지금도 여전히 미완성인 계획”이라고 평가한다. 클로스와 다른 사람들은 랜초 산타페의 설계를 신뢰하지만, 아직 이 커뮤니티에서 실내 피신의 효과를 검증할 만한 화재가 실제로 발생한 적은 없다.

랜초 산타페가 건설된 지 약 20년이 지났지만, 이 지역은 여전히 캘리포니아주에서 특별하다.

2008년 티 화재가 캘리포니아 몬테시토를 휩쓸면서 웨스트몬트 대학교 캠퍼스 건물 9채가 불에 탔다. 그러나 내화 구조물로 피신한 학생들은 어떤 피해도 보지 않았다.
DAVID MCNEW/GETTY IMAGES

비용 자체도 장애 요인이 될 수 있다. 비영리단체인 기업 및 가정 안전을 위한 보험 연구소(Insurance Institute for Business and Home Safety)에서는 현재 주 정부 기준을 크게 상회하는 최고 수준의 화재 방지용 주택을 짓기 위해서는 4%에서 13%의 추가 비용이 필요하다고 추정한다. 그러나 외부인 출입이 제한된 랜초 산타페의 부유한 동네에서 현재 시행되고 있는 커뮤니티 차원의 내연 기준을 충족하기 위해서는 훨씬 더 큰비용을 투자해야 한다.

이러한 지역의 주택 가격은 최소 수백만 달러이며 랜초 산타페에 있는 2,400제곱피트(약 67평) 규모의 침실 3개가 딸린 주택은 2022년에 320만 달러(한화 약 42억 7,520만 원)에 거래됐다. 샌디에이고 카운티 및 캘리포니아 전역의 화재 위험도가 동일한 지역에 있는 저가 주택과 커뮤니티에는 이러한 보호 장치가 없다. 이 지역의 주택 소유자 다수는 직접 고용하거나 계약업체에 소속된 소방관들이 제공하는 개인 화재 완화 또는 소방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는 보험에 가입되어 있거나 과거에 이러한 서비스를 이용한 경험이 있다. 캘리포니아에서 가장 체계적인 화재 대비책이 수립된 커뮤니티에서도 보험사들이 위험 부담을 줄이기 위해 보험 계약을 취소하고 있다. 클로스는 “경제적 부담이 규제보다 더 빠른 속도로 많은 것을 변화시킬 것”이라고 추측한다.

문화의 변화

물론 커뮤니티 전체에 내연 조치를 시행하는 것보다는 개인이 자신의 지붕 또는 환기구 철망을 보수하는 편이 훨씬 더 쉽다. 캘리포니아의 산불로 인해 발생하는 인명 피해와 재산상의 피해는 기후보다 사회경제적 요인에 더 큰 영향을 받는다.

콜덴은 “우리는 실내 피신을 구체적으로 상상하는 데 익숙하지 않다. 이 용어는 흔히 사람들의 개별 주택과 연관된 것으로 이해되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한다. 화재에 대비하려는 노력은 다양한 면에서 개인의 문제로 다뤄지며, 자체 피신 계획과 내연 조치 비용 또는 주변 환경 관리 비용은 주택 소유자가 전부 부담해야 한다. 이러한 현실은 화재 문제의 불평등성을 심화하는 또 다른 요인이다. 일부 고위험 지역에는 충분한 공터가 확보된 수백만 달러짜리 주택들이 즐비하고 주택 소유자들이 최신 건축 기법으로 주택을 보수할 여유가 있지만, 좁은 부지에 빼곡히 자리 잡은 주택들이 벌채 비용 부담으로 인해 방치된 우거진 나무에 둘러싸여 있는 지역도 있다. 안전 관련 비용의 부담 주체를 커뮤니티로 전환하려는 모든 노력은 이러한 불평등을 어느 정도 완화한다.

콜덴은 “문명은 언제나 커뮤니티의 협력을 기반으로 발전해 왔다. 앞으로 지난 몇 년 동안 경험한 많은 재난을 막을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화재에 대해서도 이러한 협력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MIT 테크놀로지 리뷰> 매거진 Vol. 10

새로운 기후 시대의 생존 방안

본 기사는 <MIT 테크놀로지 매거진> 2023년 9·10월호에서도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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