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약 3%를 차지하는 항공과 전기 항공기의 더딘 발전
미국의 전기 항공기 스타트업 베타 테크놀로지(Beta Technologies)가 항공기의 미래를 단계적으로 도모하고 있다.
최근 베타는 미래형 전기수직이착륙 항공기의 출시를 미루는 대신 기존 방식의 전기 비행기를 2025년까지 인증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베타는 소수 승객이나 작은 화물을 단거리 운송하는 소형 전기 항공기를 개발하는 회사다. 이와 비슷한 회사가 점점 늘고 있는 가운데, 이들이 개발하는 항공기 중 다수는 ‘eVTOL(전기수직이착륙기)’라고 불리는 기종이다. eVTOL은 설계상 헬리콥터처럼 활주로 없이 수직으로 이착륙할 수 있다.
베타의 설립자이자 대표인 카일 클라크(Kyle Clark)는 “지속 가능한 미래의 항공기를 만들겠다는 크고 원대한 목표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라고 말한다. 베타는 주로 화물 수송 분야에 집중하여 8억 달러(약 1조 552억 원)가 넘는 자금을 조달하였고, 배송운송업체 UPS, 도심항공교통(UAM) 회사 블레이드(Blade), 항공사인 에어뉴질랜드와 같은 기업들로부터 eVTOL 기체 주문을 확보했다.
오늘날 항공 산업은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약 3%를 차지한다. 또한 기후변화에 대한 항공 산업의 영향은 계속해서 커지고 있다. 전기 항공기는 탄소 배출량 저감에 도움이 될 수 있지만 여기에는 기술과 규제의 장벽이 존재한다. 베타가 에어택시와 같은 형태보다는 기존의 항공기와 유사한 방식으로 접근하려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베타가 eVTOL 개발 계획을 폐기한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하지만 eVTOL 개발에 앞서 기존 방식의 전기 비행기인 CX300을 먼저 인증받을 계획이다. 이미 베타는 버몬트 기지에서 이륙해 그 인근과 미국 전역을 가로지르는 단거리 비행을 시험했다. 총 2만 2,000마일(약 3만 5,400킬로미터)에 이르는 시험 비행 중 아칸소(1,400마일, 2,200킬로미터)와 켄터키(800마일, 1,200킬로미터)의 비행도 있다. 장거리 비행은 중간 기착지에서 배터리를 충전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베타에서 개발한 항공기는 한 번 충전으로 386마일(약 621킬로미터)을 날 수 있다.
BETA
클라크는 차세대 전기 항공기가 직면한 기술 과제와 항공 산업이 마주한 규제 장벽을 동시에 언급하면서 “넘어서야 할 장애물이 적은, 극히 실용적인 방법”으로 전기 비행을 추구하는 것이 베타의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eVTOL 분야의 몇몇 대형 스타트업은 2025년부터 eVTOL을 상용화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하지만 이는 모두 미국의 민간 항공 규제 기관인 미연방항공국(FAA)의 승인 여부에 달려 있다. 연방항공국은 이메일 성명을 통해 “인증 절차는 안전성에 따라 정해지겠지만, 2024년 혹은 2025년에는 이 항공기들이 나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라고 밝혔다.
새롭게 출시될 eVTOL 항공기는 연방항공국에서 기존 항공기와 다른 인증 체계의 적용을 받게 된다. 이 특수한 절차 때문에 업계 일각에서는 연방항공국이나 업체들이 발표한 일정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베타는 2026년에 운항을 개시할 eVTOL 항공기를 인증할 계획이다. 하지만 혹자는 2020년대 말이 되어서야 eVTOL이 연방항공국의 최종 승인을 받게 될 것이라고 예측한다. MIT 항공우주학 박사후 연구원인 매튜 클라크(Matthew Clarke)는 “인증은 대략 2027년이나 2028년으로 예상한다. 아마도 기존 형태의 전기 비행기가 먼저 실용화될 것이다”라고 말한다.
전기 비행기는 새롭게 개발된 추진 장치와 배터리를 탑재하여 화석 연료를 배터리로 대체한다는 점에서 항공업계에 큰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이동 수단의 동력원으로 배터리를 도입하는 것은 친환경 교통수단을 구축하는 데 있어 흔한 전략이다. 전기차는 2022년 신차 판매량의 약 13%에 달할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서는 버스, 기차, 선박도 배터리로 구동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항공기는 배터리 무게 때문에 다른 이동 수단과 똑같은 전략을 적용하기 어렵다. 수 킬로미터 상공에서 순항해야 하는 항공기에 무게는 매우 민감한 문제일 수밖에 없다. 장거리를 이동하는 대형 비행기는 더 크고 무거운 배터리가 필요한 탓에 지금까지 전기 항공 업계는 주로 소형 항공기에 집중해 왔다.
베타의 기존 전기 비행기 역시 소형이며 단거리 승객과 화물 운송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항공사인 하버에어(Harbour Air)와 전기 항공기 제작사 이비에이션(Eviation)을 포함한 다른 회사들도 소형 비행기를 대체할 기존의 전기 비행기에 주력하는 식으로 비슷하게 접근하고 있다.
하지만 오늘날 소형 비행기는 전체 교통량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작다. 여객 운항의 경우 정원 19명 이하의 근거리(통근용) 여객기는 전체 항공편의 4%, 비행거리 km당 유상 승객 수(RPK)의 약 0.03%를 차지한다. 따라서 eVTOL 업계가 염원하듯 앞으로 소형 항공기 역할이 커진다면 배터리는 항공 산업에서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클라크는 eVTOL이 화석 연료 기반 비행기에 비해 친환경적일 뿐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 활용될 수 있다고 말한다. 활주로가 필요 없는 eVTOL은 ‘라스트마일 딜리버리(last-mile delivery, 상품을 소비자에게 전달하는 마지막 단계)’, 밀집된 도시에서의 이동이나 군사적인 용도로도 사용할 수 있다. 이처럼 여러 응용 가능성 덕분에 조비(Joby), 아처(Archer), 릴리움(Lilium)과 같은 eVTOL 스타트업에 총 수십억 달러(수조 원)의 투자가 이루어졌다.
다만 eVTOL에 대해서는 아직 해결되지 않은 질문이 많다. 기체를 어디에 착륙시킬지, 기후변화 문제와 관련하여 어떠한 기준으로 지상 교통수단과 비교할지는 아직 정해진 바가 없다.
항공업계가 이같은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하는 동안 기존의 전기 비행기는 임시방편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어떤 방식이든 화석 연료가 아닌 동력원을 획득한 비행기는 기후 문제를 완화하기 위한 열쇠가 될 것이다. 클라크는 “지금 상태에서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으면 항공업계는 2035년까지 운송 부문에서 탄소배출량이 제일 많은 산업이 될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되도록 내버려 두지 않을 예정이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