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se simple design rules could turn the chip industry on its head

반도체 산업의 판을 바꿀 리스크 파이브(RISC-V)

단순한 설계 규칙을 갖춘 개방형 표준인 리스크 파이브(RISC-V)가 반도체 칩 설계 시장에 새로운 물결을 일으키며 기술업계의 판도를 뒤흔들고 있다.
2023년 10대 미래 기술

본 기사는 MIT 테크놀로지 리뷰의 2023년 10대 미래 기술로 선정된 ‘개방형 표준의 반도체 칩 설계’ 시리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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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썬, 자바, C++, R 등 컴퓨터의 발명 이후 지난 70년 동안 인류는 여러 가지 프로그래밍 언어를 고안했다. 사람들은 영어 단어와 수학 기호가 난무하는 프로그래밍 언어를 통해 트랜지스터에 지시를 내린다.

그러나 컴퓨터 중앙처리장치 속에 있는 실리콘 부품이 ‘for’ 혹은 ‘=’와 같은 단어나 기호들을 그 자체로 이해하는 것은 아니다. 사람이 입력한 파이썬 코드를 실행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단어와 기호들을 반도체가 사용할 수 있는 형태로 번역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가 필요하다.

엔지니어는 하드웨어가 무언가를 실행하도록 명령할 때 특정한 이진 시퀀스(binary sequence)를 지정한다. 예를 들어 반도체에서 ‘100000’이라는 코드는 두 숫자를 더하라는 명령이고, ‘100100’은 데이터 일부를 복사하라는 지시다. ‘컴퓨터의 명령어 집합(instruction set)’이라고 불리는 반도체의 기본적인 어휘들은 이러한 이진 시퀀스로 구성된다.

수년 동안 반도체 산업은 몇 가지 독점적인 명령어 집합에 의존해 왔다. 오늘날에는 대표적으로 두 가지 종류의 명령어 집합이 시장을 지배하고 있는데, 이는 미국의 인텔과 AMD에서 사용하는 ‘x86’과 영국의 암(Arm)에서 만든 ‘Arm’이다. 이 명령어 집합을 사용하는 회사들은 단일 설계에만 수백만 달러(수십억 원)에 이르는 라이선스 비용을 이들 회사에 지불해야 한다. 또한 x86이나 Arm 칩이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므로 소프트웨어 개발자들은 같은 앱이라도 각 명령어 집합에 맞는 두 가지 버전을 만들어야 한다.

최근 전 세계 여러 하드웨어 및 소프트웨어 회사들이 ‘리스크 파이브(RISC-V)’라는 명령어 집합을 중심으로 모이기 시작했다. 리스크 파이브는 라이선스 허가 없이도 누구나 무료로 사용할 수 있도록 공개되어 있다. 이는 반도체 칩 산업을 근본적으로 개혁할 수 있을 만한 변화로, 리스크 파이브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이 덕분에 중소기업이나 신생 기업들이 라이선스 비용으로 인한 큰 지출을 걱정하지 않고 컴퓨터 칩 설계에 더욱 쉽게 접근할 수 있게 되었다고 말한다.

리스크 파이브 기술을 지원하는 비영리 단체인 리스크 파이브 인터내셔널(RISC-V International)의 마크 히멜스타인(Mark Himelstein) CTO는 “무선이어폰에서 클라우드 서버에 이르기까지 이미 수십억 개의 리스크 파이브 기반의 코어들이 있다”라고 말한다.

2022년 2월 인텔은 리스크 파이브 생태계 개발을 위해 10억 달러(약 1조 2,270억 원)를 지원하기로 약속했다. 히멜스타인은 리스크 파이브 칩이 PC에 보편화되기까지 수년이 걸릴 것으로 예측한다. 하지만 엑스칼리바이트(Xcalibyte)와 딥컴퓨팅(DeepComputing)이 개발한 세계 최초 리스크 파이브 칩 탑재 노트북인 ‘로마(Roma)’는 올 6월부터 사전 주문이 가능할 것으로 알려졌다.

리스크 파이브란 무엇인가?

리스크 파이브란 이를테면 반도체 칩 설계 표준의 집합이라고 할 수 있다. 블루투스가 근거리 무선 통신 기술의 규격인 것과 비슷한 개념이다. 리스크 파이브와 블루투스 같은 기술은 ‘개방형 표준(open standard)’으로 잘 알려져 있는데, 이는 개인이나 기업을 포함해 누구든 이러한 표준들을 개발하는 데 참여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뿐 아니라 누구나 리스크 파이브 명령어 집합에 기반한 컴퓨터 칩을 설계하는 것도 가능하다. 이렇게 개발된 반도체는 리스크 파이브용으로 설계된 어떠한 소프트웨어에서도 실행할 수 있다. (단, 개방형 표준에 기반한 기술과 ‘오픈 소스(open-source)’ 기술은 다르다는 점을 주의해야 한다. 통상적으로 개방형 표준은 특정 ‘기술 규격’을 지칭하지만, 오픈 소스는 소스코드를 무료로 참고하거나 활용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를 뜻한다.)

리스크 파이브는 2010년 캘리포니아 대학교 버클리 캠퍼스(이하 UC 버클리)에서 근무하는 컴퓨터 과학자들에 의해 반도체 설계 교육용으로 처음 개발되었다. 상업적으로 사용되고 있던 중앙처리장치(CPU)들은 학생들이 배우기에 너무 복잡하고 어려웠다. 리스크 파이브 개발자들은 명령어 집합을 대중에게 공개했고 곧 많은 관심을 받았다. 2015년에 이 모임은 구글 및 IBM을 비롯하여 다양한 학술 기관과 기업이 참여하는 ‘리스크 파이브 인터내셔널(RISC-V International)’로 발전했다.

리스크 파이브의 가장 기본적인 버전은 기억 장치로부터 숫자를 불러오거나 숫자들을 더하는 등 간단한 47개의 명령어로 구성되어 있다. 하지만 리스크 파이브는 확장(extension)이라는 기능을 통해 AI 알고리즘에서 벡터(vector) 연산을 사용하는 것과 유사한 방식으로 더 많은 지시를 수행할 수 있다.

리스크 파이브를 이용하면 각자의 필요에 따라 칩 명령어 집합을 설계할 수 있다. 나노전자기술을 중점적으로 연구하는 벨기에 반도체 연구소 아이멕(Imec)의 에릭 메이드리크(Eric Mejdrich)는 “리스크 파이브를 통해 애플리케이션 중심의 맞춤형 하드웨어를 만들 수 있게 되었다”라고 말한다.

일반적으로 CPU가 들어가는 제품을 제작하는 회사들은 기성 칩을 구입해왔다. 왜냐하면 반도체 칩을 처음부터 설계하려면 너무 비싸고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이다. 이러한 칩들은 제품에 필요하지 않은 기능까지 갖고 있다. 특히 알람 시계, 주방 가전제품과 같이 단순한 기기의 경우 오히려 이러한 특징이 제품의 성능을 저하하거나 전력이 낭비되도록 만들 수 있다.

히멜스타인은 중국의 무선이어폰 회사 블루트럼(Bluetrum)을 리스크 파이브를 활용한 성공 사례로 든다. 무선이어폰에는 대단한 계산 능력이 필요하지 않은데, 블루트럼은 리스크 파이브 명령어를 이용해 간단한 반도체 칩을 자체적으로 설계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히멜스타인은 “만약 블루트럼이 리스크 파이브를 사용하지 않았다면 기능이 과도하게 많은 상용 칩을 구입하거나, 그들 전용의 맞춤형 칩이나 명령어 집합을 설계해야 했을 것이다”라고 말한다. 그는 “그들이 그런 낭비를 하고 싶어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메이드리크는 리스크 파이브가 반도체 칩 설계에 대한 “진입 장벽을 낮추는 데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 리스크 파이브 지지자들은 리스크 파이브를 기반으로 CPU를 구축하는 방법에 대한 공개 워크숍을 열고 있다. 그리고 자체 리스크 파이브 칩을 설계한 사람들은 구글, 반도체 제조업체 스카이워터(SkyWater), 반도체 칩 설계 플랫폼 이팹리스(Efabless)의 협력 덕분에 무료로 자신들의 반도체 칩을 생산할 수 있다. 

리스크 파이브의 다음 계획

샌프란시스코 베이 지역에 기반을 둔 스타트업 벤타나 마이크로 시스템스(Ventana Micro Systems)의 발라지 바크타(Balaji Baktha) CEO는 데이터 센터 용도의 리스크 파이브 기반 칩을 설계한다. 그는 리스크 파이브가 개방형 표준이어서 유연성이 큰 덕분에 칩의 에너지 효율과 연산 속도를 높이도록 설계를 개선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국제에너지기구(International Energy Agency)에 따르면 2021년 데이터센터는 전 세계 총 전력 소비량의 약 1%를 소모했으며, 이 수치는 지난 몇 년간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바크타는 리스크 파이브 칩이 탄소발자국을 현저히 줄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인텔과 Arm의 반도체 칩은 여전히 인기 있고, 리스크 파이브 설계가 이들을 대체할지는 아직 확실하지 않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기업들이 기존 소프트웨어를 리스크 파이브와 호환되도록 변환해야 한다. (리스크 파이브 기반의 노트북인 로마는 1990년대에 출시된 개방형 운영 체제 리눅스와 호환된다.) 또한 메이드리크는 리스크 파이브 사용자들이 “생태계를 분열시키는 개발을 주의해야 할 것”이라고 말한다. 예를 들어 누군가가 개발한 리스크 파이브의 특정 버전이 널리 사용될 경우, 이 버전에서는 초기 리스크 파이브용 소프트웨어가 호환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그리고 리스크 파이브 인터내셔널은 비영리 단체로서의 개방적인 철학과 상충하는 지정학적 긴장과도 싸워야 한다. 본래 미국에 기반을 둔 이들은 리스크 파이브 때문에 미국이 반도체 산업에서 우위를 잃고 중국 기업의 경쟁력이 높아질 수 있다는 미 의원들의 비판에 직면했다. 이러한 긴장을 피하기 위해 이 단체는 2020년 스위스로 이전했다.

히멜스타인은 앞으로 이 운동이 리눅스와 비슷한 행보를 보일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리스크 파이브를 통해 많은 사람이 새로운 기술을 더 쉽게 제품화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히멜스타인은 “결국 혁신적인 제품들이 더 많이 세상에 등장하게 될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이 글을 쓴 소피아 첸은 오하이오 콜럼버스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과학 저널리스트로 물리학과 컴퓨터를 다루고 있다. 2022년 첸은 UC 버클리의 사이먼스 컴퓨팅 이론 연구소(Simons Institute for the Theory of Computing) 소속 과학 커뮤니케이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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