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 정부 지원으로 탄력받는 리튬 대체 아연 배터리
미국 에너지부가 8월 말 전력망에서 리튬 배터리를 대신할 기술을 개발하는 선도기업 이오스 에너지(Eos Energy)에 약 4억 달러(약 5,360억 원)의 대출을 승인했다.
할로젠화한 아연(zinc-halide) 기반의 배터리를 개발하는 이오스 에너지는 언젠가 이를 이용해 기존의 리튬이온 배터리보다 저렴하게 재생에너지를 저장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이번 대출은 리튬이온 배터리를 대체할 기술에 집중하고 있는 배터리 제조업체에 대해 에너지부 대출프로그램국이 최초로 ‘조건부 승인’한 것이다. 대출프로그램국은 과거 리튬이온 제조, 배터리 재활용 프로젝트, 그리고 지열 발전과 같은 기후기술에 자금을 지원한 바 있다.
오늘날 리튬이온 배터리는 노트북에서 전기차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기기에 에너지를 저장하는 기본 수단으로 사용된다. 이러한 리튬이온 배터리의 가격은 지난 10년 동안 급락했지만, 더욱 저렴한 배터리에 대한 수요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 또한 태양광 패널과 풍력 터빈이 에너지를 간헐적으로 생산하기 때문에 재생에너지원을 이용해 전력망을 상시 가동하기 위해서는 에너지를 필요한 시점까지 저장할 방법이 필요하다. 이와 관련하여 2050년까지 미국 전력망에만 225~460기가와트의 장기에너지 저장(long-duration energy storage) 용량이 필요하다는 전망이다.
이오스 에너지가 상용화하고자 하는 아연 기반 배터리와 같은 새로운 배터리는 전기를 저렴한 비용으로 몇 시간 또는 며칠까지 저장할 수 있다. 이러한 대안 저장시스템들은 전력망에 전기를 지속적으로 공급하고, 전 세계 전력 생산이 기후에 미치는 영향을 줄이는 데 핵심 요소가 될 수 있다.
이오스 에너지가 개발한 배터리의 음극은 일반적인 배터리처럼 리튬과 다른 금속을 혼합해서 만들지 않는다. 대신 세계에서 네 번째로 많이 생산되는 금속인 아연을 주원료로 사용한다.
이미 1970년대에 미국 최대 석유 회사인 엑슨모빌(Exxon Mobil)의 연구진이 아연-브롬 플로우 배터리(흐름전지)에 대한 특허를 취득한 바 있어, 이오스 에너지가 아연 기반 배터리를 처음 발명한 것은 아니지만 이들은 지난 10년 동안 이 기술을 개량해 왔다.
아연-할로젠 배터리는 리튬이온 배터리에 비해 몇 가지 잠재적인 이점이 있다고 이오스 에너지의 프랜시스 리치(Francis Richey) 연구 개발 담당 부사장은 말한다. 그는 “아연-할로젠 전지는 리튬이온 배터리와는 설계 시작부터 근본적으로 다르다”라고 말한다.
리치는 이오스 에너지의 배터리가 유기용매 대신 수기(water-based) 전해질(배터리에서 전하를 운반하는 액체)을 사용하기 때문에 더 안정적이며 불이 잘 붙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뿐 아니라 이 배터리는 수명이 10~15년인 리튬이온 배터리에 비해 수명이 약 20년으로 길게 설계되었고, 온도 능동제어 시스템(active temperature control)과 같은 안전 장치가 많이 필요하지 않다.
에너지저장 기술에 중점을 두고 있는 벤처 캐피털 회사인 볼타 에너지 테크놀로지스(Volta Energy Technologies)의 기술책임자 카라 로드비(Kara Rodby)는 아연 기반 배터리와 기타 대체 배터리를 전력망에 사용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기술적 과제를 극복해야 한다고 말한다. 먼저 아연 배터리는 상대적으로 효율이 낮다. 즉 충전 및 방전 중에 리튬이온 배터리보다 에너지 손실이 크다. 또한 아연-할로젠 전지는 따로 관리하지 않으면 의도치 않은 화학 반응으로 인해 배터리 수명이 단축될 수 있다.
로드비는 이러한 기술적 과제가 대부분 해결될 것이라고 말한다. 한편 이오스 에너지를 비롯한 배터리 제조업체들의 더 큰 과제는 배터리를 대규모로 제조하고 그 비용을 절감하는 것이다. 그녀는 “바로 이 점이 어려운 점이다”라며 “당연히 저렴한 제품과 저가시장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라고 말한다.
전력망 저장용 배터리의 가격은 더 빨리 하락해야 하며, 이를 이루기 위한 한 가지 주요한 방법은 이를 대량 생산하는 것이다.
이오스 에너지는 현재 펜실베이니아에 연간 최대 약 549메가와트시(리튬이온배터리 기준 평균적으로 미국 전기자동차 약 7,000대에 전력을 공급할 수 있는 양)의 에너지를 생산할 수 있는 반자동 공장을 운영하고 있지만, 지금 이 공장은 최대로 가동되지 못하고 있다.
이오스 에너지의 네이선 크로커(Nathan Kroeker) 최고재무책임자(CFO)는 이번 에너지부의 대출이 ‘중대한 소식’이라고 말한다. 이오스 에너지는 2년 동안 자금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해 왔으며, 이제 이 자금은 제조 역량을 구축하는 데 ‘절실히 필요한 자본’이 될 것이다.
에너지부의 자금 지원 덕분에 이오스 에너지는 기존 공장에 최대 4개의 완전 자동화 라인을 추가할 수 있을 것이다. 이 4개 라인으로 2026년까지 연간 8기가와트시의 배터리를 생산할 수 있으며, 이는 최대 13만 가구의 일일 수요를 맞추기에 충분한 양이다.
이번 에너지부 대출은 조건부 승인이며, 이오스 에너지는 자금을 받기 위해 몇 가지 사항을 충족해야 한다. 크로커는 여기에 기술적, 상업적, 재정적 이정표를 달성하는 것도 포함된다고 말한다.
지금껏 새로운 배터리를 개발하기 위해 이루어진 수많은 연구가 실험실 문턱을 넘어 대규모 상업 생산으로 이어지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그뿐 아니라 지난 10년 동안 자금과 구매자를 확보하는 문제 역시 다양한 대안 기술을 보유한 스타트업들의 발목을 잡았다.
크로커는 에너지저장 분야 시장에 새 기술을 내놓기란 쉽지 않겠지만, 새로운 배터리 화학이 등장하기에 지금이야말로 적기라고 본다. 재생에너지가 전력망에 속속히 도입됨에 따라 대규모 에너지 저장장치에 대한 수요는 10년 전보다 훨씬 더 높아졌다. 또한 인플레이션 감축법에 따른 세금 공제 등 새로운 지원책이 시행되고 있어, 신규 배터리 사업에 유리한 환경이 조성되고 있다.
그는 “지금 우리는 한 세대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할 정도로 에너지 전환에 획기적인 영향을 미칠지 모를 기회를 잡았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