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터뷰] “AI는 전력이고, 전력이 곧 AI다” – 단국대학교 조홍종 교수
전기가 20세기 산업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친 것과 마찬가지로, AI 또한 21세기의 산업 구조와 생활 방식을 재편할 잠재력을 갖고 있다고 평가받는다. 전기와 AI는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AI를 구현하고 운영하기 위한 중요한 요소가 바로 전기이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AI의 발전이 전력 인프라와 불가분의 관계라는 의미에서 ‘AI는 전기이고, 전기는 곧 AI다’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이는 AI의 발전이 결국 전력 인프라에 크게 의존한다는 점을 강조하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특히 AI가 진화하고, 널리 확산될수록 전력 수요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에너지 인프라는 AI 발전의 가장 큰 병목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이 말이 갖는 의미는 크다.
조홍종 단국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오랫동안 에너지 분야를 연구해온 거시경제학자로 산업통상자원부의 에너지위원회 위원이자, 전력거래소 비용평가위원, 전력수급계획 및 장기 천연가스 수급실무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하는 등 국가 에너지 정책에도 깊이 관여해 온 전문가다.
그는 최근 AI로 인한 급격한 에너지 수요 증가와 한국이 안고 있는 에너지 문제, 그리고 AI를 활용한 에너지 문제의 해결책까지, AI와 이로 인해 변화하고 있는 에너지 상황에 관심을 갖고 연구하고 있다.
MIT 테크놀로지 리뷰는 조홍종 교수가 생각하는 ‘AI와 에너지 문제’의 핵심 쟁점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AI와 전력은 불가분의 관계
조홍종 교수는 “AI는 전력이고, 전력이 곧 AI다”라는 강렬한 문장으로 AI 산업과 전력 인프라의 관계를 압축해 설명했다. 그의 의견에 따르면, AI는 단순한 소프트웨어 산업이 아니라 엄청난 전력 소비를 전제로 하는 ‘전력 집약형 산업’이다.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이 올해 4월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미국 내 데이터 센터의 전력 소비 비중은 2018년 1.9%였으나, AI 서버의 급증으로 2023년 기준 176테라와트시(TWh)를 기록하며 4.4%의 비중을 차지했다. 그리고 2030년에는 약 3배 증가한 500TWh에 이르며, 미국 전체 전력의 약 10%를 넘게 차지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조 교수는 “이 데이터가 말하는 것은 AI 학습과 추론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면서 2030년까지 글로벌 전력 소비의 5~10%를 AI가 차지하게 될 것이며, 우리는 이에 대비할 수 있는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이다”고 말했다.
조 교수는 “AI가 에너지 구조를 바꾸는 새로운 축으로 등장했다”며 이는 세계적인 흐름이라고 부연했다. 그는 “과거의 전력 수급은 국가 단위의 장기 계획에 따라 움직였지만, 이제는 빅테크 등 개별 기업이 재생에너지와 원자력에너지를 AI 데이터 센터를 위한 전력 공급원으로 활용하려는 시도가 이어지면서, 미래 전력 질서를 선도하는 주체로 나서고 있다”고 강조했다. 마이크로소프트가 북유럽에서 친환경 전력을 활용한 데이터센터를 확장하고, 폐열을 지역 난방에 재활용하는 사례는 AI와 에너지 산업이 어떻게 지역 경제와 생활 구조까지 바꾸는지 보여준다. 그는 이를 “AI가 단순한 소비자가 아니라, 에너지 생태계를 재편하는 촉매”라고 평가했다.
한국이 직면한 에너지 문제
조 교수는 “현재 한국의 전력망은 대규모 중앙집중형 발전과 장거리 송전에 의존하고 있어, 급격히 늘어나는 AI 전력 수요에 대응하기 어렵다”며, “안정적인 AI 산업 성장을 위해 중앙집중형 체계에서 벗어나, 지역 단위의 소규모 발전소와 재생에너지, 에너지저장장치(ESS)를 결합한 분산형 전력 시스템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이는 단순한 에너지 인프라 개선이 아니라, AI 성장과 국가 에너지 안보를 동시에 보장하기 위한 필수 전략이라는 것이 그의 시각이다.
조 교수는 “우리나라는 지리적 한계로 인해 재생에너지의 활성화가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예를 들면 한국은 산지가 많고 국토가 좁아 태양광 발전의 실효 이용률이 한국전력거래소의 전력통계정보시스템(EPSIS) 기준 15~20%에 불과하다. 이는 유럽 평균인 30%에 훨씬 못 미치는 수치다. 풍력 자원도 유럽이나 북미에 비해 크게 부족하다. 따라서 재생에너지 확대만으로는 AI 데이터센터가 요구하는 24시간 365일 안정적인 전력을 공급하기 어렵다. 외국처럼 국가 간 전력 교역을 통해 잉여·부족 전력을 상호 보완할 수도 없는 만큼, 그는 우리나라 전력 환경에는 다층적 포트폴리오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견해를 밝혔다.
조 교수는 “데이터센터와 AI 반도체 클러스터의 안정적인 전력 공급을 위해, 중앙집중형 발전 구조에서 벗어나 분산형 에너지 시스템으로의 전환이 불가피하다”고 강조했다.
기존의 중앙집중형 시스템은 대규모 발전소에서 생산한 전력을 장거리 송전망을 통해 전국에 배분하는 구조다. 그러나 이 방식은 한 지점의 장애가 광범위한 정전으로 이어질 위험이 크고, 재생에너지의 변동성을 흡수하기 어렵다. 분산형 시스템은 지역 단위의 소규모 발전소, 태양광·풍력 등 재생에너지, 에너지저장장치, 마이크로그리드 등을 조합해, 필요한 전력을 현장에서 생산·소비할 수 있다.
“예를 들면 데이터센터는 통신지연을 줄이기 위해 대도시 근교에 위치하지만, 그 지역에는 대형 발전소가 없다”며, “소형 모듈 원자로(SMR)와 천연가스 발전소, 배터리와 양수발전 등 유연한 전원을 데이터센터 인근에 분산 배치해야 한다” 조 교수는 설명했다. 이와 함께 송전망 확충과 규제 개혁이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발전 설비는 크게 늘었지만, 송전 설비는 1990년대 이후 1.5배 늘어나는 데 그쳤다”며 “재생에너지 비중을 30%로 높이려면 지방의 발전기를 수도권과 잇는 송전 고속도로를 빠르게 건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는 기술적 난제가 따른다. 조 교수는 “재생에너지는 기상 조건에 따라 출력이 변동하기 때문에 이를 안정화할 고도화된 AI 예측 모델과 실시간 제어 시스템이 필요하다. 또한 분산 발전원 간의 데이터·제어 시스템 표준화가 미비해, 상호운용성을 확보하는 것이 시급하다. 그리고 소규모 발전소와 소비자 간 전력 거래를 지원하는 블록체인·스마트 계약 기반의 안전한 시장 인프라도 구축되어야 한다”고 조언한다.
조 교수는 “이전까지는 국가 전력망이 안정성과 효율성을 모두 책임졌지만, 이제는 AI가 실시간으로 전력 수급을 관리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분산형 전력 시스템은 단순한 백업이 아니라, AI와 에너지의 지속 가능한 공존을 위한 필수 인프라가 돼야 한다고 그는 설명했다.
AI로 에너지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조 교수는 “현재 AI 산업에 요구하는 전력 수요 증가와 재생에너지 확대라는 두 가지 도전을 동시에 해결하려면, 실시간 에너지 관리에서 AI의 역할이 핵심”이라고 말했다.
태양광·풍력 등 재생에너지는 간헐성과 변동성이 크다. 조 교수는 “재생에너지는 자체 발전 단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리드 연결과 백업 비용, 밸런싱 비용을 고려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한국처럼 지리적 제약이 큰 나라에서 태양광을 무작정 늘리면, 발전량이 부족한 시간대를 배터리로 보완하기 위해 막대한 자본 지출이 필요하며 이틀 이상 흐리면 ESS가 무용지물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문제를 보완하지 않으면 전력망 안정성이 흔들린다. 그는 “AI는 발전소, 송배전망, 소비자 단말의 데이터를 분석해 초 단위로 수급을 조율한다”고 전했다. 조 교수는 스마트미터와 센서를 통해 수집된 데이터는 AI 모델에 의해 즉시 처리돼, 재생에너지 발전량이 급감할 때 가동할 예비 전력원을 자동으로 결정하거나, 전력 가격을 실시간으로 조정해 소비 패턴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AI는 날씨, 계절, 산업별 생산 패턴까지 고려한 예측 기반 수요관리(DR, Demand Response)를 가능하게 한다. 조 교수는 특히 “사람이 일일이 판단하기에는 방대하고 빠르게 변하는 데이터 흐름을 AI가 자동으로 처리해 재생에너지 비중을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러한 기술이 상용화되면, 국가 전력망은 고정된 공급 중심에서 벗어나 수요와 공급이 유기적으로 맞물리는 ‘지능형 전력망’으로 진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전력망 운영 효율성뿐 아니라, AI 산업 성장에 필요한 안정적 전력 인프라 확보에도 직결된다. 다시 말해 AI가 에너지 문제를 악화시키는 동시에 해결책의 일부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재생에너지의 간헐성과 변동성을 AI 기반 예측과 에너지저장시스템 융합으로 보완하면, 한국 같은 에너지 수입국도 탄소중립 목표를 추구하면서 AI 산업을 발전시킬 수 있다”고 주장했다.
에너지·AI 정책의 우선순위
AI와 에너지의 상관관계를 논하면서 조 교수는 “AI는 국가 경쟁력의 핵심이자 차세대 제조업의 뿌리”라고 언급했다. 중국, 미국 등 주요 경쟁국은 이미 막대한 투자를 통해 전력망을 확충하며 AI 인프라를 강화하고 있다. 한국이 뒤처지지 않으려면 정책적 대응이 필요하다.
우선 전력 인프라에 대한 투자를 확대해야 한다. 그는 에너지 전환과 AI 산업 육성 계획을 분리하지 않고 통합적으로 설계해야 한다고 피력했다. “미국 정부의 ‘AI Action Plan’ 투자 중 데이터 센터와 전력 인프라에만 900억 달러를 투자할 계획”이라며 “한국도 전력 설비 확대와 신재생–화력–원전을 조합한 균형 있는 발전 포트폴리오를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또한 새로운 가격 정책과 시장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 조 교수는 “전력 수요 변동에 따라 가격을 탄력적으로 조정해야 새로운 발전 자원이 투자되고 낡은 설비는 퇴출된다”며 “태양광 발전소가 과잉 건설되고 송전망은 부족한 현재의 제도는 시장의 신호를 왜곡한다”고 지적했다.
에너지 없는 AI는 없다
조 교수는 “전기가 지금까지 산업을 뛰게 만든 동력이었다면, 오늘날 AI는 그 전기의 자리에 서 있다”며 “문제는 AI의 심장을 뛰게 할 ‘전력’이 무한하지 않다는 점이다”라고 지적했다.
AI의 미래는 전력망과 분리해 생각할 수 없다. 전기가 산업을 혁신했던 것처럼, AI는 산업 전반을 재편할 준비를 마쳤지만, 이를 뒷받침할 에너지 질서가 갖춰지지 않는다면 그 잠재력은 빛을 보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에너지 정책과 AI 산업 전략을 분리해서는 안 된다고 경고한다. AI 모델이 아무리 똑똑해도 전기가 없으면 구동하지 못하며, 전력망이 불안정하면 신뢰할 수 없는 서비스를 제공하게 되기 때문이다.
한국이 AI 시대의 선도국이 되려면, 에너지 불균형을 해결하고 친환경·고효율 전력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선결 과제다. 동시에 AI는 에너지 수요를 늘리는 동시에 절감의 가능성도 안고 있다. 빌 게이츠가 말했듯, AI는 배터리 소재 개발이나 전력망 운영 최적화처럼 산업 전반의 에너지 효율성 개선에 기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조 교수는 “AI가 새로운 에너지 소비자로만 남는다면 지속가능성을 담보하기 어렵지만, AI를 에너지 최적화 도구로 활용한다면 오히려 ‘마이너스 전력 수요’를 실현할 수도 있다”고 지적한다. 실제로 유럽 일부 전력망에서는 AI 기반 디지털 트윈이 전력망 안정화와 재생에너지 변동성 보완에 쓰이고 있으며, 이는 한국에도 중요한 시사점을 던진다.
결국, 조 교수가 보는 미래는 ‘AI와 에너지의 동반 진화’다. 에너지 수급의 균형은 더 이상 국가만의 과제가 아니라, 글로벌 기업·기술 혁신·정책이 함께 엮이는 복합 구조로 변하고 있다. 그는 “AI 시대의 에너지는 단순한 공급 문제가 아니라 새로운 질서의 문제”라며, 한국이 이 변화를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홍종 단국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에너지자원, 거시경제, R&D 및 지식산업 분야를 연구하며, 현재 한국자원경제학회 회장으로 활동 중이다. 또한, 산업통상자원부의 에너지위원회 위원이며, 전력거래소의 비용평가위원과 전력수급계획 및 장기 천연가스 수급실무위원회 위원장 등 국가 에너지 정책 수립에 깊이 관여하고 있다. 그의 연구는 학술적 성과를 넘어, 정책 자문과 산업 협력을 통해 에너지 전환 전략에 기여해 왔으며, 이를 기반으로 AI와 에너지 융합이라는 새로운 전략적 패러다임을 제안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