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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입자 가속기와 AI의 융합, 과학 실험의 패러다임을 바꾸다 – UST 김유종 교수

말 한마디로 입자 가속기를 제어하고, AI가 실험을 설계하는 시대가 오고 있다. 김유종 교수는 입자 가속기와 인공지능의 융합을 통해 인간의 손이 닿지 않던 과학 실험의 영역을 다시 쓰고 있다. 미래의 입자 가속기는 그 자체가 하나의 AI 실험실이 될지도 모른다.

입자 가속기는 전자나 양성자 같은 아주 작은 입자를 빛에 가까운 속도로 가속시켜 충돌시키는 장치다. 의료, 반도체, 예술품 보존, 식품 멸균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되고 있다.

예를 들어, 암 치료에서 건강한 세포는 최대한 덜 손상되도록 암세포만 정확히 빔으로 제거하거나, 반도체 칩 생산에서 실리콘 웨이퍼에 아주 미세하게 이온을 주입할 때 사용하거나, 완성된 반도체가 우주 방사선에 견딜 수 있는지 테스트하기 위한 용도로도 활용된다. 또 방사선을 이용해 식품에 있는 세균이나 해충을 죽이는 데도 활용되는 등 우리 일상에서 잘 드러나지는 않지만 다양한 분야에서 유용하게 사용되고 있다.

입자 가속기 중 크기가 큰 것은 우주의 기원 이해, 기초 물리학 확장, 생명과학 응용, 첨단 소재 개발, 국제 협업 플랫폼 등에 주로 활용된다. 이런 대형 입자 가속기는 수 킬로미터에서 수십 킬로미터에 이를 만큼 거대한 규모를 자랑하며, 높은 정밀도를 유지해야 하므로 수많은 전문가가 지속적으로 유지보수에 투입된다.

또한 크기만큼이나 한 번의 실험으로도 엄청난 양의 데이터가 생성되기 때문에 이를 처리하고 분석하는 데도 막대한 노력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일부 대형 입자 가속기는 실험 중 매초 100만 기가바이트(1페타바이트)의 원시 데이터를 생산하기도 한다.

이처럼 규모와 정밀도, 데이터 처리 측면에서 모두 고도의 기술과 자원이 요구되는 최첨단 과학 장비에도 인공지능(AI) 기술을 접목시키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대형 입자 가속기를 운영하기 위해서는 거대한 과학 실험 장치나 산업 플랜트의 제어 시스템 구축에 사용되는 소프트웨어 도구 모음인 제어 시스템(Experimental Physics and Industrial Control System, 이하 EPICS)이 필수인데, 이 EPICS에 AI, 즉 대형언어모델(LLM)을 연결해 사람의 음성 명령만으로 실험 장비를 실시간으로 조정하는 ‘AI 에이전트형 실험실’을 구현하려는 노력이 추진되는 것이다.

국내에서 이런 노력을 이끌고 있는 주인공은 과학기술연합대학원대학교(UST) 가속기 및 핵융합 물리공학과 교수이자 한국원자력연구원의 인공지능응용연구실에서 책임연구원으로 근무하고 있는 김유종 교수다.

김 교수는 자신의 연구를 단순한 자동화 기술이 아니라 “AI가 실험을 설계하고, 수행하고, 결과를 분석해 논문까지 작성하는 일명 ‘AI 과학자 시대의 서막’을 열기 위한 시도”로 평가한다. 예를 들면, AI가 실험을 설계한 뒤 거대한 가속기의 수많은 기기를 자동으로 제어하고, 실시간으로 빔의 위치, 에너지, 세기 등을 조정하며, 여러 장비의 상태 데이터를 분석해 고장 징후를 탐지하고 부품 수명까지 예측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또한 실험이 종료된 후에는 AI가 대량의 측정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분류하고 해석한 뒤, 그 결과를 바탕으로 다음 실험 조건을 스스로 설정해 후속 실험을 이어갈 수 있다. 과거에는 수많은 연구자와 기술자의 협력이 필요했고, 오랜 시간이 소요되던 이 모든 과정이 이제는 단 몇 마디의 명령어만으로 가능해지는 환경이 조성되고 있는 것이다.

김유종 | UST 교수 / 한국원자력연구원 책임연구원

교수님께서는 일본, 독일, 미국, 스위스 등 주요 가속기 선진국에서 연구를 진행하셨습니다. 이러한 국제 경험이 현재의 연구에 어떤 영향을 미쳤나요?

제가 포항가속기연구소에서 근무하던 중 처음 해외로 유학을 간 곳은 일본의 SPring-8(Super Photon ring-8 GeV) 방사광 가속기였습니다. SPring-8은 세계 최대 규모의 3세대 방사광 가속기로, 여기서 박사후연구원 시절을 지냈습니다. 이후 독일의 DESY(Deutsches Elektronen-Synchrotron), 스위스의 PSI(Paul Scherrer Institute), 미국의 제퍼슨 국립가속기 연구소 등에서 근무하며 각국의 첨단 가속기 설계 및 운영 시스템을 체계적으로 익힐 수 있었습니다.

이미 오래 전부터 해외의 주요 가속기 연구소들은 적극적으로 디지털화된 실험 운영 체계와 자동화 기술을 도입하면서 큰 효과를 보고 있었습니다. 이런 선진 가속기 연구소에서의 경험들이 제가 한국에 돌아와 가속기와 AI의 융합을 제안하고 실험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다양한 시스템과 사고방식을 실제로 겪어봤기에, 현재 한국의 시스템이 갖고 있는 한계를 극복하고 개선해 나가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국내에서 방사광 가속기 분야에서 활동을 이어오셨는데, 이러한 가속기 인프라가 왜 지금 시점에서 중요한가요?

가속기는 국가 기술주권과 산업 경쟁력 확보의 핵심 열쇠이기 때문입니다.

국내에서는 오랫동안 포항 3세대 방사광 가속기가 유일했습니다. 전자를 빛의 속도에 가깝게 가속한 후 방향을 바꿀 때 방출되는 방사광을 이용하는 방사광 가속기는 신약이나 신소재 개발, 반도체, 디스플레이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되기 때문에 이용자 수가 매년 600명씩 증가하며 포화 상태였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 독일 등은 더 진보된 가속기를 구축해 소재·반도체·우주산업을 선도하고 있었죠. 저는 이런 격차를 좁히기 위해 제4세대 방사광 가속기 구축 필요성을 역설해 왔었습니다.

특히 일본과의 소재전쟁 이후 원자나 분자 수준의 구조 분석이 가능한 초정밀 분석 장비에 대한 요구가 이어졌습니다. 이에 국산 소재를 직접 분석, 검증할 수 있는 장비인 방사광 가속기의 중요성이 대두되며 문재인 전 대통령이 두 개의 가속기를 건설하라고 지시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현재는 예산 문제로 오창에 한 곳만 건설된 상태입니다.

방사광 가속기 외에 파쇄 중성자원(Spallation Neutron Source) 가속기 또한 점점 중요도가 높아지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파쇄 중성자원 가속기는 왜 필요하고 어떤 분야에 활용될 수 있나요?

파쇄 중성자원(Spallation Neutron Source) 가속기는 전하가 없고 투과력이 높은 중성자를 발생시켜 엑스레이나 전자현미경으로는 보기 어려운 내부 구조를 정밀하게 관찰할 수 있게 합니다. 따라서 대표적으로 배터리 내부의 수소 이동, 누액 검출, 고체-액체 경계 분석 등은 물론이고 원자의 구조 분석, 단백질 입체 구조 연구, 복합재료의 내부 분석 등 수많은 분야에 활용할 수 있습니다.

특히 우주산업 측면에서 중요성이 커지고 있습니다. 위성이나 발사체에 탑재된 반도체는 우주 방사선(양성자·중성자)에 매우 취약한데, 이런 극한 환경에서의 내방사선 테스트에도 바로 파쇄 중성자원이 필요합니다.

미국, 중국, 일본은 이미 이 시설을 국가전략 차원에서 갖추었지만, 우리는 아직도 부재 상태입니다. 6G, 우주산업, 국방 등 미래 산업의 기반을 위해서는 파쇄 중성자원 가속기가 반드시 필요한 인프라입니다.

하드웨어 기반 가속기 전문가였던 교수님께서 인공지능응용연구실로 자리를 옮기셨다고 들었습니다. 이 전환에는 어떤 배경이 있었나요?

저는 오랜 기간 가속기와 제어 시스템, 하드웨어 중심의 연구를 해왔습니다. 그런데 AI 기술이 급격히 발전하면서 실험실 수준에서도 AI와의 융합이 필수적인 시기가 도래했음을 느꼈습니다. 특히 EPICS 기반 제어 시스템과 AI의 결합 가능성을 누구보다 먼저 확인했기에, 단순한 기술 적용이 아니라 AI 중심 조직에서 융합의 구심점 역할을 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2023년 11월, 한국원자력연구원의 ‘인공지능응용연구실’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인공지능응용연구실’에 합류한 이후로는 그간 약했던 하드웨어 이해와 제어기술 부분을 보완하며, AI와 물리 기반 실험 장비를 연결하는 가교 역할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AI 개발자들이 가진 가장 큰 약점은 물리적 시스템, 특히 실험 장비나 센서·액추에이터 등과의 통합 경험이 부족하다는 점인데, 저는 그 부분에서 실질적인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이동은 단지 연구실을 옮긴 것 이상의 의미가 있습니다. 하드웨어 기반 과학자가 AI로 전환하고, 융합 생태계를 구축하는 상징적인 사례가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결정한 일입니다.

가속기 분야에서 AI 도입은 어떤 의미를 갖고 있으며, 어떤 실질적인 진전이 있었나요?

해외에서는 이미 2010년대부터 가속기 운영에 AI를 적용해왔습니다. 독일 DESY, 스위스 PSI, 미국 스탠퍼드 SLAC(Stanford Linear Accelerator Center) 등은 실험 운영의 자동화, 오차 탐지, 최적화에 AI를 도입했죠.

하지만 한국은 제가 귀국한 2014년 당시까지도 대부분 수작업 기반 운영이었고, AI는 전혀 활용되지 않았습니다. 이를 바꾸기 위해 2021년부터 본격적으로 ‘AI 기반 가속기 운영’을 연구했고, 최근에는 EPICS와 LLM을 직접 연동해 실제로 음성 명령만으로 가속기 온도 조절 등을 수행하는 데모를 시연했습니다. 이는 향후 자율운전, AI 운영 시스템 구축의 실질적인 출발점이 될 수 있습니다.

김 교수님이 국내에서 처음 AI가 가속기를 말로 제어하는 데모를 시연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방식으로 구현되었습니까?

전 세계 대형 실험시설에서 가장 널리 쓰이는 제어 시스템인 EPICS는 사실상 가속기나 핵융합로와 같은 초정밀 시스템의 ‘신경망’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저는 1997년에 EPICS를 국내에 처음 도입해 포항가속기에 적용했고, 이후 케이스타, 중이온가속기, 오창 방사광가속기 등 대부분의 국내 대형 시설이 이를 채택하게 되었습니다.

최근에는 이 EPICS 시스템에 LLM을 직접 연결해, 자연어 명령만으로 온도·자기장 같은 장치 제어가 가능한 AI 에이전트형 실험실 데모를 구현했습니다. 예컨대, “온도가 1도 이상 올라가면 0.5도 낮춰줘”라고 말하면, LLM이 이를 해석해 EPICS를 통해 실시간 제어를 수행합니다.

이는 기존의 수천 줄짜리 코드 작업을 생략하고, 단 몇 마디 말로 실험 환경을 제어할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가속기 제어의 패러다임 전환이라 볼 수 있습니다. 이 구조를 활용하면 향후 모든 실험 시설이 ‘에이전트화’된 AI로 진화할 수 있고, 선제적인 유지보수, 자율 운영, 자동화 진단 등 고도화된 스마트 연구 인프라로 전환할 수 있습니다.

지능형 에이전트 기반 가속기 운영 최적화 및 자동화에 대한 개념도

슈퍼퍼실리티 개념을 강조하셨는데, 이 개념이 구체적으로 무엇이며 왜 지금 한국에 필요한가요?

슈퍼퍼실리티(superfacility)는 실험 장비(예: 가속기)와 초고속 네트워크, HPC(슈퍼컴퓨터), 빅데이터 센터, AI 분석 시스템이 실시간으로 연동된 통합 실험-분석 플랫폼입니다. 지난 코로나19 팬데믹 때, 미국 UC버클리나 스탠퍼드 대학 연구진은 이런 슈퍼퍼실리티 구조를 활용해 코로나19 바이러스 구조를 실시간 분석함으로써 백신 개발을 앞당겼습니다.

슈퍼퍼실리티는 실험 중 발생하는 대용량 데이터를 슈퍼컴으로 바로 전송하고, AI가 실시간 분석하여 그 자리에서 실험 조건을 수정하는 구조입니다. 기존처럼 외장하드에 데이터를 담아 돌아가서 분석하는 방식에 비해 엄청난 시간 절약이 가능합니다.

이미 2022년부터 이 개념을 한국 과학기술계에 도입하려 노력해 왔고, 최근 정부도 일부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5~10년 내 이 개념을 도입하지 않으면, 한국은 연구 생산성 측면에서 글로벌 수준과 격차가 점점 벌어질 것입니다.

슈퍼퍼실리티 개념이 정착되면 AI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 질 것으로 보입니다. 어떤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슈퍼퍼실리티는 실험 자동화에 그치는 것이 아닌, AI가 실험을 ‘계획하고, 수행하고, 결과를 분석해 논문을 작성하는’ 연구의 전 과정을 수행하는 구조를 가능하게 합니다. 즉, AI가 진정한 과학적 실험 파트너가 되는 것이죠.

특히 가속기 빔라인에서의 실험은 반복적이고 정밀한 조정이 필요한데, AI는 이러한 환경에서 실시간 최적화를 통해 인간보다 더 정밀하게 실험을 설계하고 수행할 수 있습니다. 이는 단순한 보조를 넘어 AI가 연구자의 가장 믿음직한 파트너가 되는 ‘AI 사이언티스트’의 시대로 진입하는 길을 열어주는 셈입니다.

가속기 설계에 AI를 활용해 디지털 트윈 기반의 자동화 설계 시스템을 구현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어떤 방식인가요?

얼마 전 시행한 데모에서는 ‘엘레건트(elegant)’라는 오픈소스 가속기 시뮬레이션 코드를 활용해 디지털 트윈을 구성했습니다. 여기에 EPICS, LLM, MCP 서버를 연결해, 자연어 명령으로 가속기의 허용 오차 범위를 계산하도록 했습니다. 기존에는 전자석 정렬 오차, 필드 세기 오차, 전원 공급 불안정 등 수천 개의 변수에 대한 허용치를 계산하기 위해 석사·박사급 연구자들이 수개월에서 1년 이상 걸리는 작업을 직접 수행해야 했습니다.

가속기를 운용할 수 있는 오차 허용 범위를 구하는 작업을 디지털 트윈과 MCP 기반의 AI 에이전트 기술을 적용한 결과, 1시간 이내에 끝마칠 수 있었습니다. ‘한국가속기 및 플라즈마 연구협회’에서 진행한 학회에서 이 내용을 발표하자, 기대했던 것 이상의 호응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MCP 서버와 AI 에이전트로 가속기 설계용 코드를 실시간으로 제어하고 데이터를 바로 뽑아내는 과정을 데모로 시연했습니다. 이런 내용은 새로운 가속기를 설계하거나, 유지보수하고, 새로운 실험을 준비하는 거의 모든 과정에서 활용할 수 있는 기술입니다.

많은 가속기 연구자들이 가속기가 AI를 적용하기에 가장 이상적인 연구 인프라라고 말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가속기는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DX)이 가장 잘 이뤄진 시설 중 하나입니다. 거의 모든 시스템이 EPICS 기반으로 통합 제어되고 있으며, 데이터가 실시간으로 수집되고 고정밀 피드백이 필수적인 구조입니다. 이는 곧 AI가 학습·제어·예측하기에 최적의 환경을 제공한다는 뜻입니다.

여기에 디지털 트윈, LLM, 에이전트 AI가 결합되면, 가속기는 ‘자율운영 실험실’로 진화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AI 융합을 통한 과학기술 혁신을 실증하기에 가장 적합한 플랫폼이 바로 가속기입니다. 그리고 이런 가속기와의 결합을 통해 얻은 결과물은 EPICS를 사용하고 있는 다른 연구 시설은 물론이고, 대형 플랜트나 산업 시설은 물론이고 PLC(Programmable Logic Controller)를 사용하고 있는 제조 시설의 관리에도 빠르게 적용할 수 있기 때문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김유종 교수는 한국원자력연구원과 UST(과학기술연합대학원대학교) 소속의 가속기 및 인공지능 융합 연구 전문가로, 국내외 가속기 기술 발전을 주도해 왔다. 포항공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이후 일본의 SPring-8, 독일의 DESY, 스위스의 PSI, 미국의 제퍼슨랩 등 세계적인 가속기 연구소에서 핵심 연구를 수행하며 글로벌 역량을 쌓았다. 최근 그는 가속기 제어시스템(EPICS)에 대형 언어모델(LLM)을 최초로 연동한 AI 기반 실시간 제어 시스템을 국내에서 구현하는 등, 실험 시설과 AI를 연결하는 혁신적 시도를 하고 있다. 현재는 데이터, 슈퍼컴퓨팅, AI를 실시간 통합하는 ‘슈퍼퍼실리티’ 개념을 국내에 전파하는 데 앞장서며, 미래형 연구 인프라 구축을 이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