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엔 기후보고서 “탄소 감축은 이제 ‘필수적’”
유엔(UN) 산하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 Intergovernmental Panel on Climate Change)’가 새로운 기후보고서를 발표했다. 이번 보고서는 수십 년 동안 경고가 이어졌는데도 지구온난화 문제 해결을 계속해서 미뤄온 결과로 인한 암울한 전망에 주목했다.
지난해 세계 경제가 코로나19 팬데믹에서 비롯된 수렁에서 벗어나기 시작하자 전 세계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360억 톤을 넘기며 신기록을 세웠다.
4일 IPCC가 발표한 보고서는 탄소 배출량이 계속해서 증가하면서 위험 수준 이상으로 지구 온도가 오르기 전까지 배출할 수 있는 온실가스 배출량이 거의 한계에 다다랐다고 경고했다. 그러면서 이제는 탄소 배출량을 줄이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보고서의 전망대로라면 기후 목표 달성을 위해 전 세계는 필요한 인프라를 건설하고 시스템과 정책을 마련해서 대기 중에 존재하는 이산화탄소를 매년 수십억 톤씩 제거해야 한다.
거의 3,000페이지에 달하는 이번 보고서를 작성한 실무그룹 부의장 디아너 위르게 보르사츠(Diána Ürge-Vorsatz)는 4일 화상 회의에서 “탄소중립을 실현하려면 이산화탄소 제거가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IPCC는 지구온난화의 위험성을 과학적으로 평가한 결과를 바탕으로 정책입안자들을 위한 전면적인 기후변화 보고서 시리즈를 발간해왔다. 이번에 발표된 보고서는 IPCC의 제6차 평가보고서 중 세 번째 부분이며 탄소 배출 속도를 늦추고 기후변화가 미치는 영향을 제한하기 위해 현재 사용할 수 있는 선택지들을 평가했다.
보고서는 모든 국가가 교통, 에너지, 중공업을 비롯해 모든 산업 분야에서 탄소 배출량을 급격하게 감축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러한 급격한 배출량 감소를 위해서는 화석연료에서 청정에너지원으로 빠른 전환이 일어나야 할 것이며 우리가 식량이나 기타 상품을 생산하는 방식에도 변화를 가져와야 할 것이다.
안토니우 구테흐스(António Guterres) 유엔 사무총장은 회의에서 “현 상황에 대한 매우 부정적인 진단이 나왔다. 우리는 기후 재앙을 향해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고 말했다.
보고서는 한 챕터를 할애해서 탄소 제거가 얼마나 중요한지 그리고 향후 수십 년 동안 기후 재앙을 늦추는 데 필요한 탄소 배출량 기준을 달성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강조했다.
이번 보고서에서 탄소 제거와 관련한 중요한 결과 네 가지를 이곳에 소개한다.
1. 탄소 제거는 선택사항이 아니다.
이번 유엔 보고서는 탄소 제거를 위해 상당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으면 지구온도 상승 폭을 1.5℃로 제한하는 것이 불가능하며 2℃ 이상의 상승을 피하는 것조차 매우 어려울 것으로 전망했다.
보고서는 대기 중 이산화탄소를 최소 수준으로 제거하면서 지구온도 1.5℃ 상승을 막으려면 중간값으로 추정했을 때 2030년까지 매년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을 약 310억 톤까지 줄여야 한다고 밝혔다. 이는 앞으로 8년 동안 온실가스 배출량을 거의 절반으로 줄여야 한다는 의미이다.
그렇게 짧은 시간 내에 배출량을 절반 가까이 줄이려면 에너지 수요를 급격하게 줄여야 할 뿐만 아니라 매우 빠르게 신기술로 전환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전 세계 사람들이 행동과 삶의 방식을 바꾸고 효율성을 향상시켜야 하는데 “이 모든 것은 현실 세계에서 달성하기 매우 어려운 조건들”이라고 이번 유엔 기후보고서의 초기 실무그룹 기고자이자 스트라이프(Stripe)의 기후 연구자 지크 하우스파더(Zeke Hausfather)가 설명했다.
지구온도 상승 제한 목표를 2℃로 조정하면 10년을 더 확보할 수 있다. 이 경우에는 2040년까지 배출량을 290억 톤으로 감축해야 한다.
탄소 제거에 주목하는 연구 투자 기업 ‘카본 다이렉트(Carbon Direct)’의 수석 과학자 훌리오 프리드만(Julio Friedmann)은 “두 경우 모두 요구되는 배출량 감축 속도와 규모가 현실적이지 않다”고 설명하면서, “각국은 ‘엄청난’ 규모로 탄소를 제거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근본적인 문제는 우리가 이미 너무 많은 이산화탄소를 대기 중에 배출했다는 것이다. 우리는 경제를 더 ‘깨끗한 방식’으로 운영할 수 있도록 전환하는 데 충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다. 게다가 우리는 여전히 항공이나 해상 운송, 비료, 시멘트, 철강 같은 일부 산업에서 탄소 배출량을 줄일 수 있는 현실성 있는 대안을 찾아내지 못했다.
대기 중 이산화탄소를 줄일 수 있다면 각국은 가능한 분야에서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시스템을 전환해서 청정에너지 사용이 아직 불가능한 산업계에서 발생하는 배출량을 상쇄할 시간을 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대기 중 탄소 제거는 쉽지 않다.
2. 우리는 많은 일을 해야 한다.
지구온도가 2℃보다 더 상승하지 않도록 막거나 기후변화를 되돌리려면 매년 이산화탄소 수십억 톤을 줄여야 한다.
지구온도 상승폭을 2℃로 제한하는 것을 시뮬레이션한 모델들은 탄소를 제거하는 세 가지 방법을 활용했다. 첫 번째는 나무를 심고 삼림을 복원하는 등 토지 관리 방식을 도입하는 것, 두 번째는 탄소 포집 시설을 개발하고 현장에 배치하는 것, 세 번째는 에너지를 생산하면서 배출량을 포집하는 식물을 사용하는 ‘바이오에너지 탄소포집저장기술(BECCS)’을 활용하는 것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시뮬레이션 결과 이러한 방법을 이용해서 2050년까지 매년 이산화탄소 170억 톤, 2100년까지는 350억 톤을 제거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3. 탄소 제거에 사용할 수 있는 다양한 기술에 관한 연구와 분석이 필요하다.
보고서는 탄소 제거에 사용할 수 있는 다양한 방식들에 각기 다른 이점과 문제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나무를 심고 삼림을 복원하는 자연 기반 방식은 오늘날 가장 널리 사용되고 있지만, 이 방식의 경우 식물이 죽거나 화재가 발생하면 식물이 붙잡아두고 있던 탄소가 즉시 대기 중으로 되돌아갈 수 있다는 것이 단점이다. 따라서 이 방식은 탄소를 토양에 가두는 지중 저장 같은 방식보다 지속성이 길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대기 중 탄소를 직접 포집하는 ‘직접공기포집(Direct Air Capture)’ 방식은 대기 중 탄소를 포집해서 영원히 가둬둘 수 있는 것이 장점이지만, 이 방식에 필요한 기계가 현재로서는 규모에 제한이 있고 가격도 비싸다는 것이 문제다. 또한 보고서는 해당 기술을 사용하려면 엄청난 에너지와 물이 필요하다는 점도 언급했다.
IPCC 보고서에서 모델들은 주로 자연 기반 방식과 기술 기반 방식을 혼합해서 두 가지 방식의 장점을 취하는 ‘BECCS’를 활용했다. 그러나 다른 문제점은 차치하더라도 BECCS 방식을 활용하려면 식량 생산에 위협이 될 정도로 방대한 토지가 필요하다는 것이 큰 문제다.
보고서는 바다의 알칼리성을 상승시키는 광물을 이용해 바다에 탄소를 저장하는 방법처럼 이산화탄소 포집에 이용할 수 있는 다른 다양한 방법도 언급했다. 그러나 이것들은 대체로 아직 검증되지 않은 방법들이다.
4. 대규모 탄소 포집에는 자금과 정책 결정이 필요할 것이다.
이번 보고서의 저자들은 탄소를 대규모로 제거하려면 상당한 연구개발 투자를 통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을 찾아내고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해야 하며 현실 세계에서 빠른 속도로 프로젝트를 실행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탄소 제거 연구에 연구비를 제공하는 ‘기후사업재단(ClimateWorks Foundation)의 프로그램 담당자 프랜시스 왕(Frances Wang)은 MIT 테크놀로지 리뷰의 질문에 “우리는 모두 힘을 합쳐서 탈탄소를 실현하고 이산화탄소를 제거할 수 있는 다양한 선택지를 탐구해야 한다”고 답했다.
탄소 제거 산업을 구축하는 데 가장 큰 난관은 ‘비용’일 것이다. 매년 그렇게 많은 이산화탄소를 제거하는 데 필요한 수천억에서 수조 달러에 달하는 비용을 누가 낼 것인가?
보고서는 탄소 제거에 관한 연구개발을 가속하고 사업체들이 탄소 제거 사업을 진행하게 하려면 정부의 ‘정치적 약속’이 필요할 것이라고 밝혔다. 즉 탄소 제거를 의무화하거나 장려하는 정책을 마련하고 이를 통해 실제로 기후변화 문제가 개선되고 있음을 확실히 하는 방식을 시행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의 역사를 바탕으로 미루어보면 이번 IPCC 보고서가 암울한 전망을 내놓았다고 해도 무언가가 급격하게 변하지는 않을 것이다. 전 세계는 2014년에 지난번 대규모 보고서가 발표됐을 때보다 매년 이산화탄소를 60억 톤씩 더 배출하고 있다. 그래도 기후변화에 맞서는 데 탄소 제거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것이 점점 더 명확해지면서 탄소 제거에 관해 더 많은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 우리가 희망을 품을 수 있는 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