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AI 로봇의 진정한 가치는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범용성에 있다”
일론 머스크가 이끄는 빅테크 기업 테슬라부터 현대차가 인수한 보스턴 다이내믹스와 피규어AI(Figure AI)처럼 새롭게 떠오르는 스타트업에 이르기까지 국내외 많은 기업들이 로봇을 차세대 먹거리로 주목하고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이런 주요 로봇 기업들과 경쟁하고 있는 한국의 대표적인 로봇 기업이 바로 레인보우로보틱스다.
레인보우로보틱스는 지난 2011년 국내 대표적인 로봇 공학자 중 한 명인 오준호 교수를 중심으로 연구팀이 독립해 설립한 회사로 주로 휴머노이드 로봇과 협동로봇 및 산업용 로봇 개발을 전문으로 한다. 특히 휴보(HUBO)라는 이름으로 잘 알려진 이족보행 로봇의 상업화에 성공한 것으로 유명하다.
레인보우로보틱스의 이정호 대표를 만나 실제 현업에서 경험하는 최근의 로봇 시장 트렌드와 많은 기업들이 집중적으로 투자에 열을 올리고 있는 AI 로봇과 휴머노이드 로봇에 대한 그의 생각을 들어봤다.
레인보우로보틱스는 2족 보행 휴머노이드로 시작했지만 폭넓은 로봇 제품군을 확보해 나가고 있다. 최근 집중하고 있는 분야는 어디인가?
레인보우로보틱스 특정 형태의 로봇만을 개발하는 회사가 아니라, 종합 로봇 회사를 지향하고 있다. 회사 내부에서는 로봇을 이동할 수 있으며, 환경을 인식할 수 있고, 그 기반으로 작업을 수행할 수 있는 기계장치라고 정의하고 있다. 현재는 그중에서 먼저 작업을 수행할 수 있는 기계 장치에 해당하는 협동로봇을 개발해 사업을 펼쳐 나가고 있다.
협동로봇의 뒤를 이어 2024년 말에는 창고 등 물류 현장에서 자율적으로 이동하며 물건을 나르는 자율이동로봇(AMR), 계단 등 바퀴로 이동할 수 없는 곳에서도 활동할 수 있는 4족 보행 로봇과 같은 이동형 로봇을 선보일 예정이며, 이동형 로봇에 협동로봇의 로봇 팔을 결합한 모바일 매니퓰레이터와 양팔형 작업 로봇도 선보일 예정이다.
또한, 로봇을 개발하는 데 필수적인 핵심 부품 기술(감속기, 구동기, 제어기, 센서 등)을 확보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외에도 주변 환경을 인식하기 위한 3D 카메라와 라이다(LiDAR) 등 다양한 센서를 개발하고 있으며 자체 개발한 로봇에 적극적으로 활용할 예정이다.
최근 사람과 같은 공간에서 협력해 작업하는 협동로봇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고객들은 어떤 용도로 협동로봇을 활용하고 있는가?
우선 협동로봇은 산업용 로봇의 한 분류로 안전 기능이 내장된 산업용 로봇이다. 따라서 주로 산업현장에서 물류나 공정간 이동을 위한 머신텐딩(machine tending), 용접, 검사 등에 활용이 되고 있다. 이외에 서비스 분야에서도 협동로봇이 일부 활용된다. 아직은 산업현장이 전체의 70%를 차지하고 있지만, 서비스 분야가 빠르게 성장하면서 이 비율은 역전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는 작업자와 같은 공간에서 로봇을 활용해야 하는 서비스 분야에서는 협동로봇밖에 답이 없기 때문이다. 현재 서비스 분야에서 협동로봇은 음식을 조리하는 데 활용되거나 치과 의사의 임플란트 시술을 보조하며, 3차원으로 얼굴을 스캔해 얼굴 형상에 적합한 안경테를 제작하는 등 다양한 서비스에 활용이 되고 있다.
개인적으로 많은 기대를 걸고 있는 분야는 양팔 협동로봇이다. 이는 제조 현장의 패러다임을 바꿀 수 있다. 기존의 제조 자동화는 주로 이송의 자동화였다. 부품을 이송하거나 검사를 하기 위해 제품을 들어 올리거나, 불량품을 가려 폐기하는 등 이송의 자동화가 주를 이뤘다. 하지만 앞으로의 자동화는 이런 이송의 자동화를 넘어서서 조립의 자동화로 변모할 것이다. 여러 개의 부품을 서로 조립해 완성품을 만드는 자동화이며 이런 자동화에 양팔 협동로봇은 필수적으로 활용될 것이기 때문이다.
로봇 시장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가운데 AI 로봇이나 휴머노이드 로봇 등에 관심이 집중되고 관련해 많은 투자와 발전이 이뤄지고 있다. 이런 기술이 로봇을 어떤 방향으로 발전시켜 나갈 것이라 예상하는가?
개인적으로 로봇의 활용 단계를 크게 3단계로 분류하고 있다. 첫 단계는 과거 1950년대에 처음 로봇이 시장에 선보이고 난 이후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데, 환경의 변화가 거의 없고 로봇이 수행할 임무가 한두 가지로 한정된 활용 단계다. 제조 현장, 즉 공장은 환경 변화가 거의 없으며, 로봇은 물건을 들어 다른 곳으로 이송하거나 용접을 수행하는 등 임무를 명확히 정의해 활용한다. 환경이 정적이고 로봇의 임무가 매우 한정적인 활용 단계다.
두 번째 단계는 환경은 동적으로 바뀌었지만, 여전히 로봇에게 주어진 임무는 한정적인 상황이다. 예를 들어 최근 일반 식당에서도 볼 수 있는 서빙 로봇이 대표적인 예다. 서빙 로봇이 운용되는 환경은 사람이 많이 오가고 장애물이 고정되지 않은 동적인 환경이지만 음식을 테이블로 이동시키는 기능만을 수행한다.
세 번째 단계는 환경이 동적으로 시시각각 변화하며 로봇은 일반화된 다양한 임무를 수행하는 활용 단계다. 즉. 일상생활 속에서 사람의 다양한 요구를 해소할 수 있는 궁극의 로봇 활용 단계다. 이런 활용 단계에 이르러서는 기존의 사회 인프라를 별도의 변경 없이 이용할 수 있으며 사람에게 친숙한 휴머노이드 로봇이 가장 적합한 형태라고 할 수 있다.
현재 AI 기술이나 휴머노이드 로봇이 로봇 분야에서 많은 관심을 받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는가?
사람들은 물리적인 형태 측면에서 인간과 형상이 유사한 휴머노이드 로봇을 가장 친숙하다고 느낄 수밖에 없으며, 이를 분신으로 인식하기도 한다.
이런 관점으로 보면 AI와 로봇, 특히 AI와 휴머노이드 로봇의 결합은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궁극의 로봇 형태(내적+외적)가 될 수 있다.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요소를 모두 갖추고 있다.
하지만 로봇 공학자의 입장에서 보면 AI와 휴머노이드가 아닌 전통적인 로봇은 그리 상관관계가 많지 않다. 전통적인 로봇은 주어진 명령을 정확히 수행하는 역할을 하는 기계장치이기 때문이다.
로봇이 임무를 수행하기 위한 명령을, AI를 통해 좀 더 간편하거나 효율적으로 생성하는 것이 가능해졌다는 수준에서 이해해야 한다. 결국 전통적인 로봇에 AI를 접목할 경우 좀 더 손쉽게 로봇을 운용할 수 있으며 전문가의 영역으로 인식되었던 로봇을 비전문가의 영역까지 확장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AI라고 말할 수 있다.
AI 전문가들이 로봇의 미래를 매우 낙관적으로 보고 있는 반면 로봇 하드웨어 전문가들은 해결해야 할 과제가 너무나 많다며 보수적으로 보는 경우가 많다. 과연 이런 시각 차이가 생기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AI는 만능이 아니며 AI가 잘 활용될 수 있는 부분이 있고 그렇지 못한 부분이 있다. AI가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것으로 생각하는 자세는 상당히 위험하다. 특히 로봇의 미래를 무조건 낙관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수많은 연구와 엄청난 규모의 투자에도 불과하고 아직 AI 기반 완전 자율주행 자동차가 등장하지 못하고 있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로봇 하드웨어 관점에서도 아직 인간의 근육만큼 효율적인 구동기를 개발하지 못했다. 예를 들어 인간은 위치를 유지하면서 힘을 줄 수 있다. 반면 로봇에 주로 활용되는 전기 구동기(모터)는 위치를 유지하면서 토크를 발생할 수 없는 구조다. 바로 이 차이가 일상생활에서 빈번히 발생하는 대상물과의 상호작용을 유지하는 과정에서 어려움을 만든다.
이런 여러 가지 이유로 로보틱스 하드웨어 분야에서는 좀 더 보수적인 시각을 가질 수밖에 없다.
전 세계적으로 로봇 시장의 경쟁이 점점 더 거세지고 있다. 과연 로봇 분야에서 우리나라가 앞서 있는 분야는 어디이고, 더 많은 투자가 필요한 분야는 어디라고 생각하는가?
다른 유사 산업과 마찬가지로 우리나라가 잘하는 분야는 응용 분야이며, 기초 분야는 선진국에 비해 뒤처져 있다. 더 나아가 중국과 같은 제조 강국이 등장하면서 이제는 제조 기술에 대해서도 점점 뒤처지고 있다.
국가 차원에서 보면 우리가 잘하는 분야 즉 응용 분야에 더욱더 집중적으로 투자해야 한다. 오랜 경험의 축적이 필요한 요소 기술 부분에서는 우리보다 수십 년에서 100여 년 이상 오랫동안 경험을 축적해 온 기업들이 있다. 이들을 넘어서기 위해 막대한 투자를 하는 것이 과연 현명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고민이 필요하다. 오히려 자원을 우리가 잘하는 분야에 더 투자함으로써 독보적인 기술 경쟁력을 확보하는 것이 유리하다. 전세계 기술 패권을 갖고 있는 미국의 경우를 보더라도, 미국이 모든 분야에 대해서 기술을 선도하고 있지는 않다. 70년대와 80년대를 거치면서 미국은 일본, 독일 등의 거센 도전에 의해 제조업의 몰락이 시작됐다. 하지만 제조업에 대한 부양책을 마련하기보다는 IT 등 새로운 분야를 적극적으로 지원해 지금의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X(구 트위터), 아마존 같은 기업이 만들어졌다.
확실히 잘하는 분야를 선점하고 이를 기반으로 기술적 저변을 확대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지난 5월 말 MIT 테크놀로지 리뷰가 개최한 글로벌 테크놀로지 컨퍼런스인 EmTech 행사에서 “AI 사용이 확산되면 ‘AI 경찰국가’가 될 수 있다”고 했는데, 당시 했던 말의 뜻을 더 자세히 설명해 달라.
만약 1만 개의 사탕 중 하나가 독약이 든 사탕이라면, 과연 쉽사리 사탕을 먹을 수 있을까? 성공 확률이 99.99%라고 하더라도 0.01%의 확률로 목숨을 잃게 된다면 사탕을 먹는 데 많은 용기가 필요할 것이다.
AI가 아무리 뛰어난 기능과 성능을 보여주더라도 실패할 확률이 전혀 없다고는 할 수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AI가 적극적으로 사회에 도입이 되기 위해서는 AI를 적용해야 하는 사회 인프라를 변경해 실패 확률을 더욱 낮추는 노력을 하거나, 위험성을 감안하고 사회적 합의를 통해 도입하는 방법이 있을 것이다. 전자는 막대한 비용이 들어가고 인프라를 구축하더라도 실패 확률을 0으로 만들 수는 없기 때문에 후자가 더 현실적인 방안이다.
그러나 사회적 합의를 했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해소되지 않는 문제가 있다. AI의 오류에 의해 사고가 발생할 경우 누구에게 책임을 물을 것인가? 또는 선택적으로 AI를 사용할 경우에 벌어질 문제에 대한 해결책은 무엇인가?
AI를 선택한 사람과 선택하지 않은 경우가 혼재할 경우 더 많은 사고가 발생하는 것은 피할 수 없다. 따라서 사회적 합의를 통해 AI 도입이 이뤄질 경우에는 AI 사용을 강제하는 방안이 시도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AI 경찰국가라고 표현한 이유다.
산업 현장에서 사용하는 AMR이나 협동로봇 등을 제외한 일상 속의 도우미 로봇이 우리 일상생활의 일부가 되기까지는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고 보는가?
로봇 기술은 과거에 비해 크게 발전된 것이 없다. 다만 로봇을 활용하고자 하는 사회의 인식이 변한 것이다. 과거 로봇이 제조 현장에서만 활용됐던 이유는 사람들이 원하는 로봇이 공장 자동화에 필요한 기능과 성능을 갖춘 로봇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노동 인구의 감소, 노령화, 근무 시간 감축 등 격심한 사회적 변화가 벌어지고 있다. 이런 변화가 로봇을 활용하고자 욕구로 표현된 것이 바로 일상 속의 도우미 로봇이라는 개념이다. 그리고 이는 우리에게 로봇 분야에 대한 더 많은 투자를 요구하고 있다. 더 큰 사회적 요구를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기술 개발의 속도가 더욱 빨라야 한다.
이런 문제는 로봇 분야만의 문제는 아니다. AI 분야도 과거 태동기인 50년대 비해 비약적인 발전이 이뤄진 것은 아니다. 과거에는 컴퓨터가 느려서 수행하지 못했던 것들을 컴퓨터의 발전에 따라 이제 가능해진 것일 뿐이다. 로봇 또한 마찬가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