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첨단 카메라가 심해 생명체 연구 돕는다
깊은 바닷속, 조류가 닿지 못하는 곳이지만 해저보다는 한참 위에 있는 그곳에 새로운 세계가 있다. 이곳은 무서울 정도로 잔잔한 중층수와 그곳을 지배하는 외계인 같은 모습의 젤리 같은 생명체들로 이루어진 세계다. 이곳에서 빗해파리들(ctenophores)은 반짝이는 빗 모양의 다리들을 이용해서 유영하고, 관해파리들(siphonophores)은 30m 길이로 뻗어 있다. 또 몸의 구조가 미색류에 속하는 올챙이멍게 유생인 거대한 라바신들(larvacean)은 점액을 분비해 정교한 점액 구조물을 만든다.
희미한 빛이 간신히 도달하는 바닷속 약광층 또는 황혼 지대(twilight zone)라고 불리는 이 신비로운 중층 원양대에 서식하는 생명체들은 연구하기 매우 어려운 것으로 악명이 높다. 이곳에 사는 생명체들의 몸은 거의 실체가 없는 수준이어서 이들을 붙잡는 것은 마치 그물로 안개를 잡아서 병에 보관하려고 하는 것에 비유될 정도다. 이들 생명체의 표본을 온전한 상태로 붙잡는 데 성공한다고 해도, 보존제에 닿으면 쉽게 녹아버린다.
그러나 미국 캘리포니아의 몬터레이만 수족관 연구소(Monterey Bay Aquarium Research Institute, MBARI) 소속 연구팀이 개발한 새로운 두 가지 이미징 처리 시스템이 이렇게 손에 잡히지 않던 생물들을 포착하는 데 도움을 줄 것으로 보인다. ‘DeepPIV’와 ‘EyeRIS’라는 이름의 이 두 시스템은 젤리 같은 심해 생물들의 3D 이미지를 만들 수 있다. 두 시스템은 심해 생물의 내부 장기 구조나 심지어 먹이가 소화관을 지나 움직이는 모습까지 모든 특징을 밀리미터(mm) 단위로 포착할 수 있다. MBARI 연구팀은 이번 시스템이 민감한 심해 생물들에 처음으로 학명을 부여하고 제대로 연구할 수 있도록 연구자들에게 도움을 줄 것이며, 어쩌면 생물을 처음 발견해서 과학계에 제대로 소개하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도 단축시켜 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2012년의 한 연구에서 계산한 바에 따르면 생물을 처음 발견해서 학명을 부여할 때까지 평균적으로 21년이 걸린다고 한다.
2021년 8월 슈미트 해양 연구소(Schmidt Ocean Institute)가 샌디에이고의 먼바다로 나선 탐험에서 MBARI는 DNA 샘플링 전문 장비와 함께 두 시스템을 수백 미터 아래 바닷속으로 보내 중층을 탐험했다. 연구원들은 MBARI의 카메라로 아직 이름이 없는 새로운 생물 두 종 이상을 포착했다. 새로운 종류의 빗해파리 하나와 관해파리 하나였다.
생물 이미지를 성공적으로 포착하게 되면, 생물 표본 수집이 불가능해서 물리적 표본이 아닌 디지털 표본을 ‘정기준표본’(holotype, 새로운 ‘종(species)’을 정의하는 기준이 되는 표본)으로 사용하려고 하는 경우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역사적으로 어떤 종의 정기준표본은 세심하게 포획하고 보존하여 목록으로 만든 물리적 표본을 의미했다. 예를 들어, 포르말린으로 채워진 병 안에 떠 있는 아귀, 빅토리아 시대 책 안에 압착되어 있는 양치식물, 자연사박물관 벽에 고정된 딱정벌레 같은 것들이 이에 해당한다. 연구자들은 이러한 표본을 바탕으로 연구하고 이것들을 다른 표본과 비교할 수 있다.
‘가상 정기준표본’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3D 모델 같은 디지털 표본이 해양 생물의 다양성을 기록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주장한다. 무엇보다도, 실물 표본을 획득하기 어려운 그런 해양 생물 중 일부는 영원히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다. 생물을 제대로 연구하여 학명을 기재하지 못하면, 과학자들이 개체들을 관찰하거나 잠재적인 위험 요소를 파악할 수 없고, 당연히 생물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도 취할 수 없다.
미국 국립 해양대기청(National Oceanic and Atmospheric Administration, NOAA)과 스미스소니언 국립 자연사박물관(Smithsonian National Museum of Natural History)에서 근무하는 해파리 전문가 앨런 콜린스(Allen Collins)는 “바다는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온도가 상승하고 산소가 감소하고 있으며 산성화되고 있다. 바다에는 아직 우리가 명명하지 못한 수십만, 어쩌면 수백만에 달하는 종들이 살고 있고, 우리에게는 기다릴 여유가 없다”고 설명했다.
4차원에 있는 해파리
바닷속 중층원양대에 있는 젤리 같은 생물들을 연구하는 해양과학자들은 모두들 새로운 종이 자신들의 눈앞에서 사라지는 걸 목격할지도 모른다는 공포심을 품고 있다. 콜린스는 플로리다 해안 멀리 떠 있던 NOAA 연구선의 습식실험실에서 빗해파리들을 촬영하려고 했던 때의 일을 떠올렸다. 그는 “몇 분 만에 온도 때문이었는지 빛 때문이었는지 압력 때문이었는지 모르겠지만, 빗해파리들이 무너져내리기 시작했다. 해파리가 조각나서 떨어지기 시작했는데, 정말 끔찍한 경험이었다”고 말했다.
MBARI의 생명공학자이자 DeepPIV와 EyeRIS 개발을 이끈 카카니 카티자(Kakani Katija)는 처음에 이러한 중층 연구자들의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나선 것이 아니었다. 그녀는 “DeepPIV는 유체의 물리적 특성을 관찰하기 위해 개발했다”고 설명했다. 2010년대 초반에 카티자와 그녀의 연구팀은 해면이 먹이를 걸러서 먹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었다. 그들은 물에 떠 있는 미세한 입자들의 3차원 위치를 기록하는 방식으로 물의 움직임을 추적하려고 했다.
연구팀은 나중에 자신들이 고안한 시스템을 젤리 같은 생물들을 비침습적으로 관찰하는 데 사용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원격으로 조정되는 장치 위에 올려진 강력한 레이저를 이용해서 DeepPIV는 생물의 몸을 한 번에 한 단면씩 조명한다. 카티자의 실험실에서 DeepPIV를 개선하는 작업에 집중하고 있는 공학자 주스트 대니얼스(Joost Daniels)는 “이 시스템은 영상을 촬영한다. 그리고 각 영상 프레임이 이미지로 저장된다”고 말하며, “일단 그렇게 이미지를 확보하면, CT나 MRI 스캔 이미지를 분석하는 방식과 비슷한 방식으로 이미지를 분석한다”고 설명했다.
궁극적으로 DeepPIV는 정지된 3D 모델을 만든다. 그러나 해양 생물학자들은 중층에 사는 생물들이 움직이는 모습을 관찰하고 싶어 했다. 그래서 카티자와 MBARI의 공학자 폴 로버츠(Paul Roberts), 그리고 연구팀의 다른 팀원들이 EyeRIS라는 라이트필드(light-field) 카메라 시스템을 개발했다. 이 시스템은 한 장면에서 빛의 강도뿐만 아니라 정확한 방향성까지 감지한다. 카메라 렌즈와 이미지 센서 사이에 있는 마이크로렌즈 어레이(microlens array)가 파리의 다중 시야처럼 필드를 여러 개의 시야로 나눈다.
PAUL ROBERTS ⓒ 2021 MBARI
가공을 거치지 않은 EyeRIS의 원본 이미지는 영화를 보다가 3D 안경을 벗었을 때 물체가 여러 개 겹쳐 있는 듯이 보이는 화면 속 모습과 비슷하다. 그러나 일단 깊이에 따라 분류되고 나면, 영상은 정교하게 표현된 3차원 비디오로 바뀌고, 이를 통해 연구원들은 제트 추진에 능한 해파리들의 행동과 움직임을 세세하게 관찰할 수 있다.
이러한 이미지의 가치는?
수십 년 동안 과학자들은 전통적인 정기준표본을 획득하지 못한 상태로 새로운 종에 학명을 기재하려고 시도하곤 했다. 예를 들어, 고해상도 사진들을 이용했던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어떤 재니등에, 사진과 울음소리 녹음본을 이용했던 수수께끼의 부엉이 등이 그런 사례에 해당한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는 일부 과학자들의 분노를 유발할 수 있다. 일례로, 2016년에는 수백 명의 과학자들이 전통적인 정기준표본의 신성함을 옹호하는 서신에 서명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2017년에 학명을 기재하는 국제 기준을 공표하는 관리 기관인 국제 동물명명법 심의회(International Commission on Zoological Nomenclature)가 이 부분에 대한 규칙을 명확하게 발표했다. 심의회는 표본 획득이 실현 가능하지 않은 경우라면 실물 정기준표본이 없어도 새로운 종을 구분할 수 있다고 명시했다.
2020년에 콜린스를 포함한 과학자팀이 고해상도 영상을 바탕으로 빗해파리의 새로운 속(genus)과 종(species)을 명명했다. (이들이 정한 학명은 두오브라키움 스파크세이(Duobrachium sparksae)로, 이 빗해파리는 다리 뒤에 장식용 끈을 매달고 있는 투명한 추수감사절용 칠면조처럼 생겼다.) 여기에 관해서는 분류학자들의 불평이 없었다. 디지털 정기준표본을 옹호하는 사람들이 승리한 것이었다.
콜린은 MBARI팀의 시각화 기술 덕분에 디지털 정기준표본 활용이 가능해졌다고 설명했다. 그들이 개발한 시스템 덕분에 실물 표본에 수행하는 것과 비슷한 수준의 상세한 해부학적 연구를 디지털 이미지로 수행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기존의 물리적 정기준표본을 디지털화하려는 움직임도 힘을 얻고 있다. 캐런 오즈번(Karen Osborn)은 스미스소니언 국립 자연사박물관의 중층 무척추동물 연구원이자 해파리들보다 훨씬 단단하고 수집하기 쉬운 환형동물과 낭하상목(peracarid)을 담당하는 큐레이터이다. 오즈번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정확도가 높은 고해상도의 디지털 정기준표본의 유용성이 드러났다고 말하면서, 여행 제한 때문에 수많은 현장 탐험이 무산되었고, 환형동물과 낭하상목 연구자들은 표본을 연구하러 실험실에 갈 수가 없다고 설명했다. 그 결과 디지털 수집을 통한 연구가 인기를 끌고 있다.
마이크로CT 스캐너를 사용해서 스미스소니언 과학자들은 전 세계 연구자들에게 ‘매우 상세한 부분까지 살펴볼 수 있는 3D 재구성’ 형태의 표본을 제공하고 있다. 오즈번은 매우 귀중한 정기준표본을 손상이나 분실 위험을 무릅쓰고 우편으로 보내달라는 요청을 받으면, 우선 표본의 디지털 버전을 제공한다고 밝혔다. 처음에는 대부분의 연구자들이 디지털 표본이라는 것에 회의적인 태도를 보이지만, 오즈번은 “디지털 표본을 받은 모든 연구자들이 나중에는 원하는 정보를 모두 얻었으니 실물 표본은 보내줄 필요가 없다고 말하며 만족한다”고 밝혔다.
오즈번은 “EyeRIS와 DeepPIV 덕분에 우리는 모든 것을 ‘본래 존재하는 장소’에서 문서화할 수 있게 되었다. 표본을 만드는 것보다 이것이 훨씬 멋진 방법”이라고 덧붙였다. 연구 탐험 중에 오즈번은 이 방식이 거대 라바신(giant larvacean)에 적용되는 모습을 목격했다. 소형 무척추동물인 라바신은 점액을 분비하여 만든 복잡한 ‘점액 궁전’에 살고 있어서 과학자들이 이 점액 궁전을 훼손시키지 않은 상태로 연구를 진행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DeepPIV 덕분에 상황이 달라졌다.
카티자는 MBARI팀이 새로운 종을 발견하는 것을 ‘폴드잇(Foldit)’처럼 게임화하는 방식을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폴드잇은 ‘플레이어’들이 비디오 게임 같은 플랫폼을 이용해서 단백질 구조를 밝히는 인기 있는 시민 과학 프로젝트 게임이다.
그와 비슷한 방식으로 시민 과학자들이 무인 시스템이 촬영한 이미지와 스캔을 분석하는 것에 도움을 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카티자는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했다. “포켓몬고는 사람들이 화면에 보이는 가상의 포켓몬을 찾아 동네를 돌아다니게 만들었다. 그렇다면 우리가 그런 에너지를 활용해서 사람들이 과학에 알려지지 않은 것들을 찾으려고 돌아다니게 만들 수 있지 않을까?” (By Elizabeth Anne Brow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