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전자 편집 기술로 에이즈를 치료할 수 있을까?
유전자 편집 기술인 크리스퍼(CRISPR) 유전자 가위는 인간 아기의 유전자를 바꾸고, 동물을 변형시키고, 낫적혈구병(겸상적혈구병)을 가진 사람을 치료하는 데 사용되어 왔다.
이제 과학자들은 새로운 시도에 도전하고 있다. 바로 크리스퍼를 이용해서 에이즈의 원인 바이러스인 HIV를 영구적으로 치료하는 것이다.
샌프란시스코에 본사를 둔 생명공학 기업 익시전 바이오테라퓨틱스(Excision BioTherapeutics, 이하 ‘익시전’)는 이 놀라운 실험을 통해 HIV 감염자 세 명의 신체에 크리스퍼를 사용해서 바이러스가 숨어 있는 곳을 잘라내고 파괴하도록 명령했다고 밝혔다.
익시전의 궁극적인 목표는 유전자 편집 약물을 정맥에 주사해서 단 한 번의 주사로 HIV 감염을 치료하는 것이며, 이번 초기 단계 연구는 그러한 목표 달성을 위한 조사 단계에 해당한다. 익시전에 따르면 첫 번째 환자는 약 1년 전에 이 치료를 받았다.
해당 연구에 참여한 의사들은 10월 25일 브뤼셀에서 열린 회의에서 이 치료법이 안전하고 큰 부작용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고 보고했다. 그러나 치료 효과에 대한 초기 데이터는 공개하지 않았기 때문에 외부 전문가들은 치료 효과에 대해서 추측할 수밖에 없다.
캘리포니아 대학교 버클리 캠퍼스(University of California, Berkeley)의 유전체(genome) 편집 전문가 표도르 우르노프(Fyodor Urnov)는 이 실험에 대해서 “매우 야심 차고 중요한 임상시험”이라면서 “효과가 없을 가능성도 포함해서 이 치료법의 효과에 대해 곧 알게 되면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HIV에 익숙한 사람은 이번 시험이 실패했다고 해도 놀라지 않을 것이다. 1983년에 바이러스가 발견되고 나서 40년이 흘렀지만 아직까지도 백신이 없을 만큼 HIV는 상대하기 힘든 바이러스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약회사들은 바이러스의 자가 복제를 막는 항레트로바이러스(antiretroviral) 약물을 개발했다. 이 약을 복용하면 HIV 감염자가 정상적인 삶을 살 수 있다. 그러나 복용을 중단하면 바이러스가 빠르게 재활성화되며, 그대로 방치하면 에이즈라는 치명적인 질병의 원인이 될 수 있다.
숨겨진 바이러스
약물만으로 HIV를 완전히 제거할 수 없는 이유 중 하나는 이 바이러스가 우리 세포의 DNA에 유전물질을 삽입해서 감염을 다시 일으킬 수 있는 숨겨진 복제본을 남기기 때문이다.
익시전의 설립을 도운 카멜 칼릴리(Kamel Khalili) 템플 대학교(Temple University) 교수는 “세포에서 바이러스 조각이 발견된다면 그 안에 바이러스 유전자 전체가 들어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백신 제조사들도 어려움을 겪어왔다. HIV는 감염을 막아야 할 면역세포 자체를 죽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10년 전, 칼릴리는 크리스퍼를 사용하면 바이러스가 숨겨진 장소에서 바이러스 유전자를 제거할 수 있으므로 면역체계의 개입 없이 HIV 감염을 치료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떠올렸다.
칼릴리는 “DNA에 HIV 유전자가 포함되어 있으면 유전병처럼 작용할 수 있다. 그렇다면 유전자 도구를 사용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자연에서 빌린 기술
크리스퍼 기술은 2012년에 처음 개발됐으며, 세균, 즉 박테리아가 신체에 침입하는 바이러스를 찾아내서 파괴하는 데 사용하는 파지(phage)라는 분자의 발견을 기반으로 한다. 크리스퍼 기술은 곧 인간 DNA를 자르는 데 사용되기 시작했고, 그러면서 현재의 인간 유전체 편집 시대가 열리게 되었다.
오늘날 주목받고 있는 대부분의 유전자 편집 연구는 결함이 있는 DNA를 가지고 태어난 사람에게 발생하는 유전 질환을 치료하기 위한 것이다. 크리스퍼를 사용하면 그러한 결함 있는 유전자를 교정하거나 제거할 수 있다. 이러한 치료법 중 하나는 낫적혈구병을 치료하기 위한 방법이며, 해당 치료법은 올해 말에 승인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익시전의 연구는 유전자 편집 기술을 바이러스 제거에 적용했다는 점에서 이례적이다. 올해 MIT 테크놀로지 리뷰가 집계한 인간 지원자 대상 유전자 편집 연구 50여 건 중 감염병 관련 연구는 단 2건에 불과하다.
유전자 편집 임상시험

(위에서부터: 암, 유전성 혈액 질환(낫적혈구병과 베타지중해빈혈), 기타 유전 질환, 바이러스 감염)
출처: Clinicaltrials.gov, 유전자 편집 방법이 공개된 임상시험 포함
그러나 칼릴리는 바이러스를 제거하는 것이 크리스퍼의 원래 목적이었다고 지적한다. 그는 “크리스퍼를 바이러스에 사용한다는 개념이 참신해 보이지만, 이는 이미 자연에서 일어나고 있던 일을 기반으로 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칼릴리는 초기 실험실 테스트에서 크리스퍼가 세포 내의 HIV 유전자를 찾아내서 파괴할 수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고, 이후에 유전자 편집 약물을 정맥에 주입한 HIV 감염 쥐 중에서 약 20%를 기능적으로 치료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익시전은 인간 임상시험에 대한 허가를 받았으며, 지금까지 세 명이 이 치료를 받았다. 각각의 감염자는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를 만들기 위한 DNA 지침이 담긴 수십억 개의 무해한 바이러스를 정맥 주사를 통해 주입받았다.
익시전에 따르면 이 치료에 지금까지 큰 부작용은 없었다고 한다. 이에 따라 익시전은 치료법이 안전하다고 판단했고, 내년에는 추가로 6명의 환자에게 지금까지 투여했던 양의 10배에 달하는 치료제를 투여하는 식으로 연구를 계속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효과가 있는가?
아직 확실하지 않은 부분은 치료에 효과가 있었는지에 대한 데이터다. 연구에 참여한 환자들은 항레트로바이러스 약물을 복용하고 있었지만, 의사들은 환자들이 유전자 편집 치료 12주 후에 항레트로바이러스 약물 복용을 중단하고 바이러스가 재활성화되는지 확인하는 ‘분석적 치료 중단(analytical treatment interruption)’ 단계를 계획하고 있었다. 바이러스가 재활성화되지 않으면 크리스퍼가 바이러스의 유전자를 제거했다는 의미일 수 있다.
환자 중 두 명은 몇 달 전에 치료를 받았기 때문에 바이러스 재활성화 여부에 대한 데이터가 이미 회사 측에 알려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익시전의 임상 개발 담당 수석 부사장 윌리엄 케네디(William Kennedy)는 세 번째 환자는 최근에서야 치료를 받았으므로 세 환자에 대한 전체적인 치료 결과는 2024년에 보고될 것이라고 말했다.
유전자 편집의 빠른 변화 속도를 고려하면 이는 기다리기에 긴 시간일 수 있다. 하지만 우르노프는 유전자 편집 기업들이 어려운 재정 환경으로 인해 특히 조심스러워졌다고 말했다. 일부 기업은 주가가 하락했고, 그중에서 빔 테라퓨틱스(Beam Therapeutics)는 10월 셋째 주에 직원의 20%를 해고하고 조직을 재편할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칼릴리는 익시전의 임상시험에 참여하지 않았고, 따라서 임상시험 결과도 알지 못한다. 그는 이 연구가 치료법을 향한 긴 여정의 한 단계에 불과할 수 있고, 결국 완전한 치료를 위해서는 여러 전략을 결합해야 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칼릴리는 “HIV를 완전히 치료하지 못하더라도 바이러스의 재활성화를 상당히 지연시킬 수는 있을지도 모른다”며 “그렇게 되면 1세대와 2세대가 있는 다른 약물들처럼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