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구를 떠나지 않고도 우주인처럼 살고 있는 과학자들
2023년 1월 타라 스위니(Tara Sweeney)의 비행기가 남극대륙 서쪽에 위치한 약 19만㎢ 크기의 거대한 얼음덩어리인 스웨이츠 빙하(Thwaites Glacier)에 착륙했다. 스위니가 이곳에 온 이유는 국제 연구팀과 함께 스웨이츠 빙하의 지질과 얼음 구조에 대해 연구하고, 이 빙하가 녹았을 때 해수면 상승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지구의 거의 최남단에서 스위니는 계속 달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전직 공군 장교였으며 현재 텍사스 대학교 엘파소 캠퍼스(University of Texas at El Paso)에서 달 지질학(lunar geology) 박사 과정 중인 스위니는 “내가 우주 탐험가가 된다고 상상할 때 느껴지던 모든 감정을 그 빙하 위에서 그대로 느낄 수 있었다. 모든 자원이 갖춰진 상태에서 직접 나가서 탐험하고 연구할 수 있다는 건 아주 멋진 일이었다”고 말한다.
이처럼 지구의 외딴곳에 머물면서 연구하는 것과 우주 탐사 사이에는 유사성이 있다. 이 점에 주목하여 우주 과학자들은 남극과 같은 외딴 지역의 연구 기지에 머무는 사람들의 생리와 심리를 연구한다. 약 25년 동안 사람들은 지구를 벗어난 다른 세계에서의 삶이나 다른 세계로 향하는 과정에서의 삶이 어떤 모습일지 연구해 왔다. 어떤 면에서 극지 탐험가는 외계 행성에 착륙하는 우주비행사와 비슷하다. 엄밀히 말해서 스위니는 지상에서 우주와 유사한 환경을 조성하여 실제 우주인처럼 모의 탐사와 훈련을 진행하는 ‘아날로그 우주인(analog astronaut) 임무’를 수행한 것이 아니었지만(남극에서 스위니의 주요 목표는 지구 지질 탐사였다), 스위니의 일상은 우주 탐험가의 일상과 거의 동일했다.
스위니와 동료 연구자들은 16일 동안 빙하 위 텐트에서 생활했는데, 폭풍으로 텐트에 눈이 쏟아졌기 때문에 그곳에서 보낸 시간 중 거의 절반은 텐트 안에 갇혀 있어야 했다. 날씨가 괜찮을 때면 스위니는 스노모빌을 타고 지진계 관측소와 텐트 사이를 오갔다. 그러다가 한번은 눈 때문에 주변이 온통 하얗게 보이는 화이트아웃(whiteout) 상태에 빠지면서 탁구공 안에서 움직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빙하 위에서 스위니는 항상 추웠고, 때로는 지루했고, 자주 좌절감을 느꼈다. 하지만 동시에 살아 있다는 느낌을 받으며 큰 기쁨을 느끼기도 했다. 그리고 원래 살던 곳에서와 달리 목표에만 더 강하게 집중할 수 있었다. 스위니는 “나에게는 세 가지 목표가 있었다. 좋은 팀원이 되는 것, 좋은 연구를 하는 것, 살아남는 것. 내가 해야 할 일은 그 세 가지뿐이었다”고 말한다.
물론 그중 어느 것도 쉽지 않았다. 하지만 이 세 가지 목표가 임무를 마치고 엘파소의 일상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보다는 더 쉬운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스위니는 “나는 임무를 마쳤고 모든 게 끝났다. 그런데 내가 느끼고 있는 이 모든 감정은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 것일까?”라고 말한다.
5월에 스위니는 ‘2023 아날로그 우주인 콘퍼런스(Analog Astronaut Conference)’에 참석했다. 이 행사는 실제 우주보다는 비교적 안전하고 편안한 지구에서 진행된 장기 우주여행 시뮬레이션에 참여한 사람들의 모임이었다. 스위니는 요르단에 있는 아날로그 시설에 방문했을 때 이 행사의 창립자 중 한 명인 재스 퓨어월(Jas Purewal)을 만나 행사에 초대를 받으면서 이 행사에 대해 알게 되었다.
이 퍼런스는 애리조나 사막에 있는 유리 패널의 자족적인 거주 시설인 ‘바이오스피어2(Biosphere 2)’에서 열렸다. 1980년대 공상과학 소설에 나오는 우주 정착지를 연상시키는 이 시설은 적대적인 환경으로 이루어진 외계 행성에 인간이 거주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할 수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건설된 최초의 모의 거주지 중 한 곳이다.
UNIVERSITY OF ARIZONA
콘퍼런스에서 러시아 모스크바에 있는 모의 우주 거주지에 8개월 동안 갇혀 지냈다는 한 연사는 임무를 마친 이후에 얼마나 힘든 시간을 보냈는지 이야기했다. 임무를 마친 후에 사회에 다시 적응하는 단계를 의미하는 ‘사회 재통합(reintegration)’ 과정에 동반되는 심리적 고통은 콘퍼런스 내내 화두가 되었다. 스위니는 혼자가 아니었다.
전 세계 약 20곳의 아날로그 우주 시설에는 연구 대상자가 되겠다고 자원한 사람들이 머물고 있으며, 이들은 극지 탐험 기지, 사막 연구 기지, 심지어 미 항공우주국(NASA) 센터 내의 밀폐된 거주 시설에서 몇 주 또는 몇 달 동안 고립된 채로 생활한다. 이러한 장소들은 화성이나 달, 또는 우주정거장에서의 생활을 모방하기 위한 것이다. 과학자들은 이러한 연구를 통해 의료 도구 또는 소프트웨어 도구를 테스트하고, 실내 농업을 개선하며, 스위니처럼 ‘임무’가 끝난 후에 발생하는 문제를 포함해서 아날로그 임무를 수행한 우주비행사들이 직면하게 되는 어려움을 해결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말한다.
최근에는 어떤 연구자들이 이 분야를 조금 더 공식화하기 위한 노력을 시작했다. 이들은 연구 결과를 비교할 수 있도록 표준을 마련하고, 연구자들이 이전 연구를 기반으로 연구를 심화할 수 있도록 연구 논문들을 단일 데이터베이스에 수집하며, 과학자, 연구 참여자, 시설 책임자가 모여서 연구 결과와 연구를 통해 이해한 내용을 서로 공유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러한 결속을 바탕으로 우주 아날로그 분야가 점점 더 널리 알려지고 있으며 우주 기구로부터 신뢰를 높이기 위한 노력도 계속되고 있다. 이 분야의 공식화 작업을 주도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는 퇴역 공군 장교 제니 헤스터먼(Jenni Hesterman)은 “아날로그가 과소평가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아날로그 임무를 단순한 우주 캠프로 여기는 사람들이 많다”고 말한다.
아날로그 우주인 시설은 실제 우주로 갈 때처럼 비용을 들이지 않고 우주 임무를 미리 시험해 볼 수 있는 방법으로 처음 등장했다. 예를 들어 과학자들은 도구가 제대로 작동하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아날로그 우주비행사를 통해 우주복부터 극한 환경을 위한 의료 장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비를 시험해 볼 수 있다.
연구자들은 우주비행사가 고립된 상황에서 어떻게 지내는지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기 때문에, 우주비행사의 타액, 피부, 혈액, 소변, 배설물 샘플을 채취하여 마이크로바이옴(microbiome) 변화, 스트레스 수치, 면역반응 같은 특성도 추적한다. 이탈리아 성심 가톨릭 대학교(UCSC)의 심리학 교수 프란체스코 파니니(Francesco Pagnini)는 “아날로그 임무를 통해 우리는 어떤 문제에 대해서 개인이나 팀, 또는 다양한 유형의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한다. 파니니는 유럽과 이탈리아의 우주국과 협력하여 인간의 행동과 수행 능력에 관해 연구해 왔다.
일부 아날로그 시설은 휴스턴에 있는 NASA의 존슨 우주 센터(Johnson Space Center) 내부에 위치한 NASA의 헤라(HERA: Human Exploration Research Analog, 인간 탐사 연구 아날로그)처럼 우주 기구에서 운영한다. 존슨 우주 센터에는 차피(CHAPEA: Crew Health and Performance Exploration Analog, 승무원 건강 및 수행력 탐사 아날로그)라고 불리는 3D 프린터로 제작한 거주 시설도 있는데, 여기서 우주인들은 일 년에 걸친 화성 탐사 임무를 시뮬레이션할 예정이다. 시설의 구조는 인공지능(AI)이 이케아(IKEA) 가구들을 사용해서 만들어 낸 우주 생활 공간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스위니는 “나는 임무를 마쳤고 모든 게 끝났다. 그런데 내가 느끼고 있는 이 모든 감정은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 것일까?”
라고 말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아날로그 시설은 민간 기관에서 운영하며, 우주 기구, 대학 연구자, 때로는 일반인으로부터 연구 제안서를 받아서 신청 절차를 통해 연구 프로젝트를 선정한다.
이러한 작업은 수십 년 동안 계속되어 왔다. NASA의 첫 번째 공식 아날로그 임무는 1997년 데스밸리에서 4명이 일주일 동안 화성 지질학자인 것처럼 행동하며 수행한 프로젝트였다. 2000년에는 우주 탐사를 지지하는 연구 단체이자 비영리단체인 마스 소사이어티(Mars Society, 화성학회)가 캐나다의 누나부트(Nunavut)에 플래시라인 화성 북극 연구 기지(Flashline Mars Arctic Research Station)를 건설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유타에 화성 탐사 연구 기지(Mars Desert Research Station)도 건설했다(NASA의 연구원들도 두 시설을 사용했다). 그러나 이러한 프로젝트가 시작되기 훨씬 이전에도 정확한 용어나 영구적인 시설은 없었더라도 이와 유사한 연구는 이미 이루어지고 있었다. 아폴로 시대에 우주비행사들은 애리조나와 하와이에서 다양한 과학 기술과 함께 탐사차와 우주 유영을 시험해 보곤 했다.

THE MARS SOCIETY
NASA의 비행 아날로그 프로젝트(Flight Analogs Project) 수석 과학자였던 로니타 크롬웰(Ronita Cromwell)에 따르면 아날로그 시설이 위치한 장소는 대체로 극한 환경 또는 통제된 환경이라는 두 가지 유형으로 분류할 수 있다. 우선 극한 환경에는 남극 또는 북극의 연구 기지가 있으며, 이러한 연구 기지는 수면 패턴이나 팀 역학 같은 주제를 연구하는 데 주로 사용된다. 밀폐된 시뮬레이션 거주 시설을 의미하는 통제된 환경은 주로 임무 수행 중 인지 능력 변화 같은 인간 행동 연구나 우주비행사가 관제센터와 통신하지 않고도 의사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소프트웨어 같은 장비 테스트에 유용하다. 특히 관제센터와 통신하지 않고도 의사 결정을 내릴 수 있는 능력은 우주비행사에게 꼭 필요하다. 지구에서 멀어질수록 통신 지연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NASA의 임무 시뮬레이션에 대해 연구하면서 크롬웰은 아날로그 임무의 가치를 깨달았다. 크롬웰은 “지상에서 우주비행과 비슷한 상황을 만들어서 우주비행 과정에서 일어나는 인체의 변화를 연구할 수 있다는 점이 매우 흥미로웠다. 심리적 변화든 인지적 변화든 생리적 변화든 모두 연구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일례로 펜실베이니아 대학교(University of Pennsylvania)의 정신의학 연구진은 최근 헤라(HERA) 시설에서 생활하는 승무원들이 임무를 수행할수록 화면에 무작위로 나타나는 사각형을 클릭하거나 3차원 물체를 외우는 등의 인지 과제를 수행하는 능력이 향상됐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노스웨스턴 대학교(Northwestern University)와 드폴 대학교(DePaul University)의 과학자들이 주도한 또 다른 헤라 연구에서는 시간이 지날수록 승무원들이 함께 물리적 과제를 수행하는 능력은 향상됐지만, 주어진 사물의 다양한 용도를 브레인스토밍하는 것 같은 창의적이고 지적인 과제를 함께 수행하는 능력은 더 악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두뇌와 행동 변화를 통해 과학자들은 지루하고 스트레스가 많은 외딴곳에 배치된 팀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다. 파니니는 “우주 심리학을 연구하면 우리의 일상에 대해서도 많은 것을 알 수 있다”고 말한다.
물리적인 측면에서는 NASA의 과학자를 포함한 국제 연구팀이 최근 화성 탐사 연구 기지를 이용하여, 화성에서 또는 의료시설에서 멀리 떨어진 지역에서 작동하는 장치를 사용해서 아날로그 우주인이 부러진 뼈를 고치는 방법을 신속하게 배울 수 있는지 테스트했다. 자급자족적이고 지속가능한 삶에 관해 연구하면 지구에서 자원이 부족한 상황일 때 어떻게 대처해서 생활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그리피스 대학교(Griffith University)의 의학 연구진이 이끄는 또 다른 연구팀은 비상시에 대비해 광물에서 물을 추출하는 실험을 수행했다.

NASA의 모의 화성 거주 시설에는 화성의 풍경을 모방하기 위해 붉은 모래로 채운 약 111㎡ 크기의 모래 구역이 조성됐다. 이 구역은 아날로그 임무 중에 모의 우주 유영이나 모의 ‘화성 유영’ 임무 수행에 사용될 것이다.
BILL STAFFORD/NASA
일반적으로는 우주에서 실제로 이루어지는 과학 연구가 주목을 받지만, 대중의 찬사를 받지 못하더라도 인간을 포함한 모든 시스템에 대한 지상 테스트는 필요하다. 크롬웰은 자신이 수행한 NASA의 아날로그 프로그램 연구에 대해서 농담으로 “내가 마치 깊고 어두운 비밀을 책임지고 있는 것 같았다”고 말한다.
사실 인접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조차도 이 분야에 대해 들어본 적이 없는 경우도 있다. 천체물리학자인 퓨어월도 2020년이 되어서야 아날로그 우주 연구에 대해 알게 되었다. 하지만 당시 코로나19로 인해 대부분의 시설이 새로운 임무를 중단해야 했다. 퓨어월은 아날로그 시설에 갈 수 없다면 직접 만들어서 시도해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영국 워릭에 있는 부모님 집 뒷마당에 드리워진 버드나무 가지와 잘 다듬어진 울타리 사이에서 퓨어월은 빗자루 손잡이와 텐트 같은 재료로 지오데식 돔(geodesic dome)을 만들었다. 퓨어월은 그 안에서 일주일 동안 격리된 채로 지내면서 화장실을 이용할 때만 밖으로 나왔고 그 외에는 계속 모의 우주복을 입고 있었다. 퓨어월은 20분의 통신 지연이 있는 것처럼 돔 밖의 사람들과 통신했고, 동결 건조 식품, 밀웜과 메뚜기로 만든 곤충 단백질을 먹었다(실험을 진행하면서 동결 건조 식품은 싫어하게 됐고 곤충 단백질은 예상보다 훨씬 더 좋아하게 됐다).
퓨어월은 스스로 수행한 개인적인 아날로그 임무의 ‘충실도가 낮았다’고 인정했지만, 이 경험을 통해 더 엄격한 연구를 추진할 수 있게 되었다. 2021년에 퓨어월은 스페이스X(SpaceX)의 민간 우주비행사 시안 프록터(Sian Proctor)와 함께, 스위니가 참석했던 아날로그 우주인 퍼런스를 공동 창립했다. 이 행사에는 스위니 외에도 1,000명이 넘는 사람들로 구성된 관련 온라인 커뮤니티가 참석했다. 퓨어월은 2022년 11월에 유타주 트러스트랜드(Trust Lands)에 둘러싸인 ‘다른 뒷마당’에서 진행된 아날로그 임무에도 참여했다. 마스 소사이어티가 후원한 이 임무에는 화성에 갈 경우 필요한 정신건강, 지질학 연구 도구, 지속가능한 식량 공급에 대한 연구가 포함됐다.
이 연구를 위해 퓨어월과 동료들은 유타주로 향했다. 암석을 파서 만든 주유소 편의점 ‘할로 마운틴(Hollow Mountain)’이 있는 행크스빌(Hanksville)이라는 작은 마을에서 5분 정도 지나면 화성 탐사 연구 기지로 들어가는 길이 나온다. 그 비포장도로를 약 5km 정도 지나면 마스 소사이어티가 운영하는 화성 탐사 연구 기지에 도착할 수 있다. 시설 주변에는 버섯 모양의 암석, 굵은 모래가 깔린 땅, 침식된 붉은 암석 언덕 등 초자연적인 풍경이 펼쳐져 있다.
BILL STAFFORD/NASA
그런 언덕으로 둘러싸인 평평한 곳 위에 위치한 연구 기지에는 2층 높이지만 지름은 8m에 불과한 원통형 생활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거주 시설은 지상에 있는 ‘터널’을 통해 온실과, 퓨어월의 초기 뒷마당 구조물과 유사한 지오데식 돔으로 연결되며, 제어센터와 실험실을 갖추고 있다.
2022년 11월 퓨어월은 헤스터먼이 이끄는 팀을 데려와서 2주 동안 이곳에 머물렀다. 거주 시설에서 어떤 우주생물학 전공 학생은 팀원들의 음식물 쓰레기에서 식용 버섯을 재배하려고 했다. 또 다른 팀원은 분유와 세균으로 요구르트를 만들 수 있는지 알아보고자 했다. 한편 퓨어월은 파로(PARO)라는 AI 반려 로봇을 이용해 실험을 진행하고 있었다. 새끼 하프물범을 닮은 파로는 일반적으로 의료와 관련한 상황에서 스트레스를 완화하는 데 사용된다. 팀원들은 심박수 등을 측정하는 생체모니터링 스트랩을 착용한 채로 파로와 상호작용했다.
임무를 마치고 그들은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하면서 소화기의 유효 기간이 지났다거나 전문 기술과 생명 유지 시스템을 사용할 참가자를 위한 안전 교육이 부족하다는 등의 문제에 대해 들었다. 그들은 전직 항공기 사고 조사관인 에밀리 아폴로니오(Emily Apollonio)에게 자문을 구했다. 아폴로니오는 2022년 하와이로 건너가 마우나로아 화산의 해발 2,500m상에 위치한 111㎡ 규모의 아날로그 연구 기지 하이시스(HI-SEAS: Hawaii Space Exploration Analog and Simulation)에서 생활했다. 아폴로니오는 하이시스 임무에 사실상 해결할 수 있는 여러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다. 예를 들어, 화장실에는 소변볼 때는 사용할 수 없는 자연발효식 변기 하나와 남성용 소변기 하나뿐이어서 여성들도 남성용 소변기를 사용해야 했다.
올해 6월에 공개한 표준 초안을 통해 퓨어월과 동료들은 아날로그 임무 참가자들을 위한 여건을 개선하고자 하며, 이를 위해 아날로그 시설이 건축법을 준수하고 적절한 의료 지원을 제공하도록 보장하고자 한다. 그들은 또한 아날로그 연구 참여자들이 연구 모범 사례를 준수하여 엄밀한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장려하고자 한다. 예를 들어 해당 표준은 각각의 임무가 연구 책임자와 거주 시설 책임자의 사전 검증을 받은 연구 계획과 연구 완료 일정을 갖춰야 하며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실험에 필요한 연구윤리심의위원회(Institutional Review Board)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고 제시한다. 연방 정부나 기관에서 연구 보조금을 받는 프로젝트는 어떤 식으로든 이러한 단계를 거치게 되지만, 그 형식은 전반적으로 균일하지 않다.
NASA
일부 아날로그 임무들은 참가자를 보호하기 위한 엄격한 규약을 이미 가지고 있지만, 동료들에게 들은 안전과 포용성 격차에 관한 문제를 바탕으로 아폴로니오는 예비 아날로그 우주비행사의 임무 시작 전 준비를 도와주는 교육 및 컨설팅 회사 인터스텔라 퍼포먼스 랩(Interstellar Performance Labs)을 설립했다. 아폴로니오는 퓨어월, 헤스터먼 등과 함께 ‘우주 아날로그에 대한 국제 지침 및 표준(International Guidelines and Standards for Space Analogs)’이라는 문서도 작성하기 시작했다.
이 표준에는 연구 데이터베이스를 만들어서 아날로그 프로젝트에 관한 모든 글(동료 검토를 거친 논문 및 기타 자료)을 한곳에 모으기 위한 방법도 자세히 설명되어 있다. 연구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면 버섯 재배자처럼 연구 결과의 복제 가능성을 테스트하려는 목적이 아닌 이상 같은 연구를 똑같이 반복할 필요가 없어진다. 또한 우주 기구의 필요에 더 부합하는 연구를 진행함으로써 현실 세계에 더 직접적으로 도움이 되는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아폴로니오는 “어디를 봐야 할지, 어디로 가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내 생각조차 들리지 않았다”고 말한다.
이러한 노력의 일환으로 퓨어월, 아폴로니오, 헤스터먼 및 동료들은 ‘세계 최대 아날로그(World’s Biggest Analog)’라는 아날로그 임무를 준비하고 있다. 전 세계 10개 이상의 고립된 연구 기지에서 한 달 동안 동시에 진행되는 이 임무를 통해 미래 우주 생활에 대한 대규모의 협력적인 시뮬레이션을 진행할 것이다.
하지만 관련 커뮤니티를 결집하고 일관성을 부여하려는 다양한 시도들은 많은 참가자에게 어려움을 주는 아날로그 임무의 한 가지 측면, 바로 ‘임무 종결’ 이후의 문제를 아직 완전히 해결하지 못했다. 아폴로니오는 자신의 경험을 회상하며 “아날로그 임무를 시작하는 것보다 임무에서 빠져나오기가 더 힘들었다”고 말한다.
하이시스 임무를 마친 직후에 아폴로니오는 남편과 함께 와이키키 거리를 걸었다. 거리의 불빛과 소음 등 모든 것을 감당하기 힘들었다. 아폴로니오는 “어디를 봐야 할지, 어디로 가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내 생각조차 들리지 않았다”고 말한다. 저녁 식사를 위한 레스토랑을 선택하고 직원이 메뉴를 건네자 아폴로니오는 얼어붙었다. 아폴로니오는 “내가 음식을 직접 골라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한다. 아폴로니오는 압도되는 듯한 느낌을 받았고, 그 느낌은 사라지지 않았다.
한편 헤스터먼은 그런 경험을 이해해 주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고 말한다. 헤스터먼은 “집에 돌아오면 매우 흥분해서 모든 사람에게 내 경험에 대해 말하고 싶어지지만, 모두에게 한 번 얘기하고 나면 끝이다. 그 후에는 공과금을 내고 잔디를 깎는 것 같은 일상으로 돌아가야 한다. 하지만 계속 얘기하고 싶은 느낌은 해소되지 않는다”고 설명한다.
퓨어월은 함께 임무를 수행했던 팀과 공동의 목적의식이 그리웠고, 시뮬레이션 밖에서도 그런 감각을 찾기 시작했다. 퓨어월은 “일상생활에서도 같은 느낌을 찾아야 한다. 우리 모두에게는 팀이 필요한 것 같다”고 말한다.
파니니는 임무 후 경험에 대한 연구가 거의 없다고 말한다. 2023년 3월 파니니는 유럽우주국(European Space Agency)의 의뢰를 받아 우주에서의 인간의 행동과 수행 능력에 대한 연구 현황과 격차 정리를 목표로 하는 리뷰 논문을 공동 집필했다. 그의 연구에 따르면 우주비행사가 ‘임무 후’ 상황에 어떻게 반응하고 대처하는지에 대한 연구는 특히 소홀히 다루어져 왔다. 아날로그 우주 임무를 마친 이후에 관한 연구도 마찬가지이다.
파니니는 이 연구가 아날로그 우주비행사나 실제 우주비행사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우주에서의 생활은 (각종 어려움을 포함해서) 지구에서의 생활과 유사하다. 예를 들어 이탈리아에서 장기간에 걸쳐 극심한 코로나19 봉쇄 조치가 내려졌을 때의 상황은 우주 임무를 수행하는 것과 비슷했다. 그는 “봉쇄 상태에서 벗어났을 때 다른 사람에게 연락하는 것이 약간 이상하게 느껴졌다”고 말한다. 지구에서의 일상적인 생활에서 많은 부분이 낯설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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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낯선 느낌은 군 파병 이후에 가정으로 복귀하는 것 같은 다른 경험에서도 특징적으로 나타난다. 일리노이 대학교(University of Illinois)의 커뮤니케이션 전공 교수이며 군인 부부를 대상으로 대규모 사회 재통합 연구를 수행한 리앤 노블로크(Leanne Knobloch)는 “일단 가족과 재결합한 후에는 가족이 행복하게 잘 살 것이라는 기대가 있다. 그래서 사회 재통합은 간과되기도 한다. 하지만 사회 재통합이 힘든 시기이며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처럼 항상 동화 같은 결말은 아니라는 사실을 인식하기 시작한 연구자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고 말한다.
THE MARS SOCIETY
노블로크의 연구에는 사람들이 겪을 가능성이 큰 문제에 미리 대비할 수 있도록 준비시키는 일처럼, 임무 후 사회에 다시 적응하는 과정을 용이하게 하기 위한 제안들이 포함되어 있다. 노블로크는 “이러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을 예상하고 대비하면 그렇게 큰 스트레스를 받지 않을 것이다. 그런 문제가 일반적인 일이라는 것을 인식할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아폴로니오의 인터스텔라 퍼포먼스 랩은 이에 따라 사람들이 임무 후에 일상생활로 복귀하는 과정과 그 영향에 대해 교육하는 ‘사후관리’ 교육을 포함하려고 이미 계획하고 있다.
스위니가 스웨이츠 빙하를 떠날 날이 되자 외딴 연구 기지가 번잡한 공항으로 변하기라도 한 것처럼 항공기가 하늘에서 갑자기 나타나는 것처럼 보였다. 스위니는 기지를 떠나면서 팀원 절반이 아직 남아있는 캠프를 내려다보았다. 스위니는 “우리의 작은 발자국이 얼마나 사소한지 알 수 있었다”고 말한다. 발자국은 끝없이 펼쳐진 하얀 공간의 한가운데에 남은 작은 점과 같았다.
북미에 도착한 후에 스위니는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적응은 쉽지 않았다. 스위니는 “복귀한 후에 하루하루가 지날 때마다 다른 방향으로 끌려가는 듯한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멘토링, 강연, 박사 과정 연구 등 수많은 일들이 진행되면서 스위니는 자아가 분열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남극에서 스위니는 매끄럽고 단일하고 온전한 존재였다.
하지만 5월에 열린 아날로그 우주인 콘퍼런스에서 스위니는 적응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다른 우주비행사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신이 느끼는 감정이 정상적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서로를 지지하고 도움을 주는 공동체가 있으면 임무 후 어려움을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새로운 데이터베이스와 표준화 노력을 통해 추가 연구가 이루어지면 성공적인 승무원 역학, 스트레스 유발 요인과 완화 요인, 임무 수행에 도움을 주는 도구 및 설계와 더불어 최상의 대처 전략을 알아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누군가 데이터베이스를 보고 과학적 격차를 발견해서 이를 메우려고 노력할 수도 있다.
이러한 연구는 스위니처럼 일상생활 적응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을 것이다. 스위니는 “우리는 일터로 돌아가고, 가족을 만나고, 이전에 진행하던 프로젝트를 다시 시작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가 최근에 겪었던 엄청난 경험을 감당할 공간도 마련해야 한다. 그러면 그 경험에서 서서히 빠져나올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