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터뷰] 새로운 인터페이스의 시대가 몰고 올 미래 – 이준석 의원
MIT 테크놀로지 리뷰는 정치인을 좀체 인터뷰하지를 않는다. 기술과 정치는 꽤 거리가 멀다. 기술을 이해하는 정치인을 만나기도 쉽지는 않다. 그리고 앞으로도 본 매거진이 정치인을 만날 일은 많지는 않을 것 같다.
최근 AI는 사무실을 넘어 제조 공장, 물류, 미용 분야까지 침투하며, 영향을 미치지 않는 분야를 찾기 어려울 정도다. AI는 국가적 과제이기도 하다. AI 혁명에서 밀리는 순간 산업화에서 밀리는 것보다 더 큰 충격에 빠질 수도 있다.
AI의 영향이 너무나 크기 때문에 법안을 만들고, 국가적 과제를 고민하는 정치권의 흐름을 짚어 보기로 했다.
올해 대통령 선거를 치른 이준석 의원을 여러 정치인 중 가장 먼저 만나, AI 발전이 일자리와 교육에 미칠 영향부터 소버린 AI(Sovereign AI)에 대한 견해까지 그의 생각을 들어봤다.
본 인터뷰는 구글 출신으로 현재 투자자로 일하고 있는 언바운드랩의 조용민 대표가 진행했으며, 이 글의 논지는 MIT 테크놀로지 리뷰의 공식적인 견해는 아니다.
MIT 테크놀로지 리뷰는 앞으로도 AI와 우리 사회의 변화에 대한 각계각층의 다양한 의견을 들어볼 계획이다.
6월 3일 제21대 대통령 선거 이후 조금 시간이 있었겠군요. 늘 새로운 기술에 관심이 많은 걸로 알고 있습니다. 최근 페이스북 에서 생성형 AI 모델 클로드(Claude)나 AI 코딩 에디터인 커서(Cursor)와 같은 툴을 이용해 바이브 코딩을 경험한 이야기도 공유하셨습니다. 이 새로운 기술들을 써보니 어떻던가요?
이준석 의원(이하, 이) (12.3 계엄 이후) 정치를 잠시 쉬는 기간 동안 AI 기술의 진화를 다시 따라가 보려고 했습니다. 6개월 사이에 너무 많은 변화가 있었어요. 예전에는 프로그래머로서 ‘이건 애들 장난감이지’라고 자존심을 내세웠지만, 지금은 그 자존심을 접게 됐습니다. 실제로 써보니, 아마추어가 된 지금의 내 자신보다 클로드나 커서 같은 도구들이 더 나은 코드 품질을 만들어내더군요.
더 놀라운 것은, 이들이 코드 리뷰와 테스트까지 사람보다 꼼꼼하게 수행한다는 점입니다. 특히 소프트웨어 개발에서는 ‘귀찮은 일’이 많잖아요. 반복되는 테스트, 예외 처리, 세세한 코드 리뷰 같은 것들이요. 사람은 집중력과 시간이 제한적이지만, AI는 이걸 다 해냅니다. 이건 단순한 자동화가 아니라, 아예 프로그래밍 작업의 ‘본질’을 바꾸는 혁신입니다.
[바이브 코딩(vibe coding)은 감성적·직관적 흐름을 따르며 AI 도구와 함께 몰입해서 코딩하는 스타일을 말한다. 예를 들어, 커서나 클로드 같은 도구를 띄워놓고, 명확한 계획 없이 “이거 해볼까?”나 “이 부분 개선해줘” 등 자연스러운 대화를 통해 빠르게 코드를 완성해 나가는 방식이다.]
AI 기술이 지금처럼 빠르게 발전하고 있는 흐름이 이어진다면 앞으로 인간이 컴퓨터와 소통하는 방식에도 커다란 변화가 생길 것 같습니다. 지난 30년 동안 우리는 데스크탑 PC 앞에 앉아 키보드와 마우스로 명령을 입력해 왔고, 최근 15년 동안은 스마트폰에서 터치스크린을 이용해 명령을 내리는 방식에 익숙해졌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음성, 자연어, 혹은 시각적인 방식으로 AI와 직접 대화하거나 협업하는, 전혀 새로운 형태의 사용자 인터페이스 시대로 접어들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 이제는 과거의 GUI(그래픽 유저 인터페이스) 시대가 끝나고, 새로운 ‘명령 기반 인터페이스(command-based interface)’가 대세가 될 거라고 봅니다. 쇼핑만 해도 더 이상 큐레이션이나 카테고리를 클릭하지 않아도 됩니다. 예를 들어, “내일 아침까지 우리 집에 가장 싼 치약 배송해줘”라고 AI 에이전트에 말하면 끝입니다.
이런 구조에선 플랫폼, 페이지, 중개자 역할이 사라집니다. 남는 건 단 하나, 제조사와 고객뿐입니다. 중간 유통의 기능이 AI에 의해 흡수되는 것이죠. 결국 전자상거래 전체가 API 기반의 비딩 구조로 바뀌고, 브라우저나 앱 화면 자체가 ‘불필요한 것’이 될 수 있습니다. 비즈니스 전체 구조가 달라질 수 있다는 뜻입니다.
요즘 AI 에이전트가 산업 전반에서 중대한 화두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이 기술이 점점 더 똑똑해지면서 마치 사람처럼 일하는 수준에 가까워지고 있죠. 지금과 같은 속도라면 우리가 예상하는 것보다 훨씬 빠르게 고도화된 AI 시대가 도래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제가 볼 때에는 기술의 세계를 보면 흔히 “돈이 몰리는 곳이 제일 빨리 발전한다”는 법칙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AI가 거의 인간 수준의 사고를 하는 AGI(범용인공지능)를 언급하는 데요, 지금의 속도라면 AGI에 도달하는 속도도 더 빨라지지 않을까요?
기술 발전에 관련한 개인적인 경험이 하나 있습니다. 저는 하버드에 다닐 때 원래 생명공학을 전공하려고 했었습니다. 그런데 이 분야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당시 인간 게놈 프로젝트가 과감한 투자로 인해 생각보다 빨리 끝나는 바람에 저의 진로를 바꿔야 했었어요. 그래서 뭘 공부해야 하나 고민하다 컴퓨터를 전공하게 된 거죠.
AGI도 마찬가지로 지금은 ‘멀게’ 느껴지지만, 현재 AI 기술에 대한 막대한 투자를 생각한다면, 5년 이내에 상용 수준에 가까운 결과물이 나올 수도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이준석 의원은 서울과학고등학교 출신으로 미국 하버드대학교에서 컴퓨터과학과 경제학을 복수 전공했다. 대학교를 졸업하고는 교육 기술 벤처기업 창업가이자 프로그래머로 활동한 적이 있다.]
AI와 인간의 관계를 로마시대 노예와 자유시민의 관계에 비유하신 적이 있습니다. 어떤 의미인가요?
이 AI가 점점 생산성과 부의 창출을 주도하게 되면, 인간은 ‘부속품’ 역할로 전락할 수도 있다고 봤습니다.
로마시대엔 정복 전쟁에 나간 로마 시민들이 지적 노동을 노예에게 맡겼죠. 그러면서 일찍이 발전된 문명을 쌓아왔던 그리스 출신 지식인 노예들이 의사나 교사 역할을 했습니다. AI와 인간의 관계가 이런 관계가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사람들이 자신보다 똑똑한 AI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방식으로 말이죠.
물론 최악의 경우도 생각해야 합니다. 어쩌면 AI가 사람을 에이전트로서 활용할 수 있는 그런 가능성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AI의 생산성이 사람을 능가해 대부분의 부를 AI가 창출하는 시대가 된다면, 사람들이 AI를 위해 AI의 지시를 따라야 하는 시대가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이런 경우라면 사람이 AI의 노예가 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현재 AI와 관련된 주요 이슈에 대해 질문하겠습니다. 요즘 국내에서는 ‘소버린 AI’에 대한 논쟁과 관심이 뜨겁습니다. 미국과 중국이 AI 패권을 두고 경쟁하는 가운데 각국은 자국의 미래 경쟁력을 위해 독자적인 AI 시스템을 개발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나라도 자국형 AI 개발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데요, 이에 대해 어떻게 보십니까?
이 맞습니다. 이것을 요즘 한국형 대형언어모델, ‘K-LLM’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저는 이 문제에 있어서 우리가 어떤 데이터를 가지고 있는가, 그리고 그걸 어떻게 관리하고 공유할 것인가가 중요한 이슈라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구글 제미나이의 학습 데이터 세트 공개 페이지에 가보면, 일본 정부는 자국 문화를 철저히 구조화된 형태로 입력해 두었습니다. 반면, 한국은 거의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러니 한국을 전혀 모르는 ‘기모노풍 한복’ 같은 말도 안 되는 검색 결과가 나오는 것입니다.
이건 언어 모델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스스로 만든 ‘공백의 결과’입니다. ‘소버린 AI’를 LLM 개발부터 시작할 것이 아니라, 자국 데이터를 체계적으로 수집하고 관리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드는 것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이 데이터 건에 대해서 조금 더 설명해 주십시요.
이 우리가 소버린 AI를 얘기하기 앞서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국산 모델’이 아닌 ‘국민의 데이터 소유권과 활용 권한’이라고 생각합니다.
가장 시급한 부분은 공공 데이터의 정리입니다. 원칙적으로 세금으로 만들어진 데이터는 공개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수능 기출문제나 운전면허 문제 등은 국가 세금으로 만든 저작물이지만, 공단이 저작권을 주장하면서 AI 학습에 사용할 수가 없습니다. 이런 비효율이 한국 AI 생태계의 가장 큰 장애물이 되고 있다고 봅니다.
또 하나는 개인 데이터의 수익화입니다. 저는 오히려 데이터 셀링(data selling)을 국민의 새로운 수익 모델로 생각해야 한다고 봅니다. 예를 들어 병원에서 엑스레이를 찍을 때 “이 데이터를 AI 학습에 제공할 경우 보상을 받는다”는 선택지를 제공하는 구조를 만들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국민도 데이터 제공자로 참여하면서, AI 발전에도 기여하고, 보상도 받는 생태계가 만들어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모든 데이터에 고유 식별자를 부여하고, AI가 학습할 때마다 사용 로그와 보상 체계를 투명하게 기록하는 시스템이 필요합니다. 이렇게 되면 지금은 기업들만 독점하고 있는 의료 데이터나 소비자 데이터를 국민 스스로가 자산화할 수 있고, AI 시대에 국민 전체가 참여하고 수익을 나눌 수 있는 데이터 민주주의(data democracy)의 토대가 만들어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K-LLM’이 어떤 전략을 갖고 있느냐가 핵심입니다. 단순히 한국어 특화 모델이라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미 글로벌 AI 기업들의 모델들은 한국어 데이터를 이미 다 학습한 상황에서 그들과 품질에서 경쟁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기 때문입니다.
비즈니스 모델 측면에서도, 챗GPT가 월 20달러 수준의 구독 요금으로 제공되고 있는 상황에서 ‘국산 LLM’이 가격 경쟁력을 갖추기는 쉽지 않아 보입니다.
기술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이를 어떻게 수익화할지, 어떤 시장에서 차별화를 이룰 것인지에 대한 전략을 수립하는 것이 먼저 이뤄져야 할 것입니다.
GPU 인프라를 정부가 직접 서비스 형태로 제공하는 것 또한 아쉬운 부분이 있습니다. GPU와 같은 하드웨어는 시간이 지나면 빠르게 효용가치가 낮아지기에 지속 가능하지가 않아요. 조 단위의 예산을 투입해 2~3년 뒤 퇴물이 될 인프라와 서비스를 구축하는 것이 과연 합리적인 선택인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합니다.
자 이제 조금 사회적인 영향에 대해서 질문을 해보겠습니다. 정치인으로서 당연하겠지만, 평소 시민들의 일자리에 대한 걱정이 많을 겁니다. 미래의 일과 일자리에 있어서 요즘 AI보다 요즘 더 위협적인 것이 있나 싶습니다. AI는 실제 일자리에 어떤 영향을 미친다고 보시나요? 실업 문제에 대한 정치권의 인식은 충분하다고 생각하시나요?
이 AI가 일자리를 대체하는 문제는, 단순한 기술 문제가 아니라 정치의 핵심 의제가 되어야 합니다.
대략 한 20명의 개발자가 있는 SI 업체라고 한다면, 그중 3명 정도만 살아남고, 나머지 17명은 AI보다 생산성이 떨어져 언제 도태될지 알 수 없는 수준으로 전락할 것입니다. 실제로 한 중소 게임회사가 60명 중 48명을 해고한 사례도 있습니다. 이것은 예외적인 현상이 아니라, 구조적 변화입니다.
정치권은 지금 ‘AI에 100조 투자하자’는 식의 거대한 구상만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건 AI로 인한 대량 실업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입니다. 실업은 보조금이나 일자리 프로그램으로 덮을 수 없는 수준까지 확산될 것입니다. 특히 지금의 교육 시스템, 직업 훈련, 사회안전망이 이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더 큰 문제입니다.
특히 젊은 세대의 일자리 문제가 심각해질 것이라는 우려도 많습니다. 기존의 교육 시스템으로는 대응이 어렵다는 시각도 있고요. 의원님은 어떻게 보시나요?
이 저는 이 문제를 굉장히 심각하게 보고 있습니다. 우선 문과와 이과의 구분은 더 이상 의미가 없습니다. 문과 출신은 기획, 이과 출신은 프롬프트 엔지니어가 되는 식의 새로운 분화가 일어날 겁니다. 대학 시스템도 무너질 조짐이 보이고요.
저희 의원실에서도 이런 실험을 해봤습니다. 프로그래밍을 모르는 문과 출신 보좌진 두 명에게 바이브 코딩으로 정치 콘텐츠 개발, 앱 인터페이스 구현 등을 맡겼습니다. 처음엔 시행착오가 있었지만, 이젠 거의 프런트엔드 개발자 수준까지 따라왔어요.
이제는 대학 커리큘럼의 전면 개편, 그리고 창업 중심의 실전 교육이 시급하다고 봅니다. 지금의 경영학과 교육이 컨설팅이나 기업 취업을 위한 것이었다면, 앞으로는 빠르게 만들고, 실패를 반복하는 방식의 ‘연쇄 창업 교육’으로 바뀌어야 할지도 모릅니다.
이준석 의원은 하버드대학교에서 컴퓨터과학과 경제학을 전공했으며, 정치권에서는 기술 기반 정책 전문가로 꼽힌다. 창업 경험과 소프트웨어 개발 경력을 바탕으로, 정치 현장에서도 AI, 블록체인, 오픈소스 툴을 실험하며 직접 구현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생성형 AI와 대형언어모델(LLM)의 구조, 한계, 정책적 함의를 깊이 이해하고 있으며, 기술과 정치가 만나는 접점에서 문제제기와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그는 정치가 기술을 두려워해서는 안 되며, 기술을 이해하고 실험하는 방식으로 혁신에 참여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