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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IST, 햇빛만으로 바닷물을 식수로 바꾸는 증발기 개발

전력 없이 태양광만으로 바닷물을 가열해 식수로 만드는 고성능 증발기가 개발됐다. 1m² 크기로 시간당 4.1L 식수를 생산하며, 산화물 소재 기반 장치 중 세계 최고 수준이다.

전력 공급 없이 태양광만으로 바닷물을 가열해 마시는 물로 바꿀 수 있는 기술이 개발됐다.

UNIST 에너지화학공학과 장지현 교수 연구팀은 12일, 태양광 해수 담수화(햇빛으로 바닷물을 증발시킨 뒤 이를 다시 응축시켜 소금을 제거하는 기술)에 쓸 수 있는 고성능 증발기를 개발했다고 밝혔다. 연구팀은 내식성이 강한 망간 산화물에 구리와 크롬을 함께 넣은 광열변환 소재(태양광을 흡수해서 열로 바꾸는 소재)를 개발했다. 이 소재는 일반적인 망간산화물과 달리 흡수할 수 있는 태양광 파장 범위가 근적외선 영역까지 확장됐으며, 흡수된 태양광이 열로도 잘 바뀐다.

이 증발기를 1m²(제곱미터) 크기로 만들면 시간당 약 4.1L의 식수를 생산할 수 있다. 이는 자연적인 해수 증발 속도의 7배 가까이 되며, 현재까지 학계에 보고된 산화물 소재 기반 장치 중 세계 최고 수준의 증발 속도다. 연구 결과는 재료과학 분야 국제 학술지 <Advanced Materials> 지난달 16일자에 게재됐다.

태양광을 열로 바꾸는 비결

전 세계적으로 담수 부족 문제가 심화되면서, 풍부한 태양광을 이용해 해수를 증발시키는 태양열 기반 담수화 기술이 대안으로 거론되고 있다. 일반적으로 바닷물은 잘 증발하지 않기 때문에, 태양광을 흡수해 고열을 만들어 바닷물을 데워낼 수 있는 증발기가 필요하다.

이 과정에서 태양빛을 흡수해 열로 전환하는 광열 재료(PTM, Photothermal Material)는 증발 성능을 좌우하는 핵심 요소다. 우수한 광열 재료는 자외선부터 근적외선을 아우르는 광대역 흡수(250~2,500나노미터), 낮은 열손실, 대면적 제조 가능성, 비용 경쟁력을 함께 갖춰야 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제시된 탄소계, 고분자, 에어로겔·하이드로겔, 플라즈모닉 소재(금속 나노입자가 빛을 흡수해 열을 내는 소재), 반도체, MXene(2차원 금속 탄화물) 계열의 광열 재료들은 내구성이나 장기 안정성, 제조 공정의 복잡성, 비용 측면에서 한계를 보여 왔다. 예를 들어 탄소 기반 소재는 광흡수는 우수하지만 장기간 사용 시 산화되거나 분해될 수 있고, 플라즈모닉 소재는 고가의 금속을 사용해 비용이 높다.

연구팀은 가혹한 조건에서도 구조적으로 안정적인 스피넬 산화물(AB₂O₄, A 자리와 B 자리에 서로 다른 금속 이온이 들어가며 규칙적인 결정 격자를 이루는 재료)에 주목했다. 하지만 기존 망간 산화물(Mn₃O₄)은 넓은 밴드갭(전자가 차지할 수 있는 에너지 상태 사이의 간격으로, 물질이 어떤 파장의 빛을 흡수할 수 있는지를 결정하는 지표) 때문에 태양광 흡수가 제한적이었다.

연구팀은 망간 산화물에 구리(Cu)와 크롬(Cr)을 치환하는 ‘전이금속 치환(결정에서 특정 자리에 있는 금속을 다른 전이 금속으로 일부 바꾸는 것)’ 방법을 사용했다. 이렇게 만든 CuMnCrO₄(CMCO) 삼원 스피넬 산화물은 전자 구조가 변화하며 밴드갭이 1.49eV까지 줄어들었고, 그 결과 가시광과 근적외선 영역에서의 태양광 흡수가 강화됐다.

밴드갭을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면, 흰색 물체는 대부분의 빛을 반사해 잘 흡수하지 않는 반면, 검은색 물체는 많은 파장의 빛을 흡수해 쉽게 달궈진다. 밴드갭이 큰 물질은 흡수 가능한 빛의 범위가 좁아 밝게 보이는 경우가 많고, 밴드갭이 작아질수록 더 넓은 파장의 빛을 흡수해 어둡게 보이거나 열로 잘 전환되는 특성을 보인다. 연구팀이 개발한 소재는 태양광 영역을 ‘편식’하지 않고, 일단 흡수한 태양광은 잘 소화시켜 열로 바꿀 수 있다.

3원계 스피넬 산화물 기반 태양광 해수 담수화 시스템의 작동 원리와 구조.
(a) 기존 망간 산화물(왼쪽)은 흡수한 빛 에너지 중 일부가 다시 빛으로 새어나가 열 전환 효율이 낮다. 반면 구리(Cu)와 크롬(Cr)을 넣은 3원계 산화물(오른쪽)은 흡수한 빛 에너지를 빛으로 내보내지 않고 대부분 열로 바꿔 효율이 높다.
(b) 맨 위에는 투명한 석영 유리창이 있어 햇빛을 통과시킨다. 가운데에는 검은색 광열 재료가 코팅된 증발면이 있어 물을 데운다. 바닷물은 천 같은 스트립을 타고 증발면으로 올라오고, 물이 증발하면서 남은 소금은 가장자리로 밀려나 쌓인다. 증발한 수증기는 차가운 석영 유리창에 닿아 물방울로 맺히면서 깨끗한 담수가 된다.
(c) 해수 정화를 위한 확장형 부유식 장치.

세계 최고 수준의 증발 속도

연구팀은 이 광열변환 소재를 실제 증발기로 만들기 위해 독특한 구조를 고안했다. CMCO 분말을 잉크로 만들어 면 스트립 위에 스크린 프린팅(분말 잉크를 망을 통해 원하는 영역에만 코팅하는 공정) 방식으로 인쇄하고, 그 아래에 소수성(물을 밀어내는 성질) 폴리에스터 부직포 스트립을 배치한 역U자형 이중 물 수송 구조를 도입했다.

이 구조는 증발면으로의 물 공급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동시에, 증발 과정에서 생성되는 소금이 표면에 축적되지 않도록 유도한다. 바닷물이 증발하면 소금이 남는데, 이 소금이 증발기 표면에 쌓이면 성능이 떨어지고 결국 막히게 된다. 연구팀의 구조는 이 문제를 해결했다.

해당 시스템은 1 sun 조건(태양광 시뮬레이터로 맑은 날 정오 무렵 태양광 세기인 1kW/m²를 재현한 표준 조사 조건)에서 4.1kg/m²·h의 증발률을 기록했다. 즉, 1m² 크기 증발기로 시간당 약 4.1L의 식수를 생산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는 자연적인 해수 증발 속도의 약 7배에 달하며, 산화물 소재 기반 장치 중 세계 최고 수준이다.

더 인상적인 것은 내구성이다. 이 시스템은 3주 동안 성능 저하 없이 안정적으로 작동했다. 염 농도가 1%에서 20%까지 증가해도 증발 성능 변화는 크지 않았고, 20% 조건에서도 3.3kg/m²·h의 증발률을 유지했다. 일반 바닷물의 염분 농도가 약 3.5%인 것을 고려하면, 이 증발기는 매우 높은 염분 농도에서도 작동할 수 있다.

또한 생성된 응축수의 주요 이온 농도는 세계보건기구(WHO) 권고치 이하로 낮아졌으며, 염료나 오일이 섞인 오염수와 강산·강염기 조건에서도 담수 생산 성능이 유지되는 것이 확인됐다. 즉, 단순히 깨끗한 바닷물뿐 아니라 오염된 물에서도 식수를 만들 수 있다.

이 기술의 가장 큰 장점은 전력이 전혀 필요 없다는 점이다. 햇빛만 있으면 작동한다. 이는 전력 인프라가 부족한 개발도상국이나 도서 지역의 식수난 해결에 큰 도움이 될 전망이다. 또한 스크린 프린팅 기반의 직물 코팅 공정을 사용해 대면적 제조가 가능하고, 비용도 저렴하다.

연구팀의 접근법은 기존 광열 소재들이 가진 한계를 동시에 극복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높은 광흡수 성능, 우수한 내구성, 염축적 억제, 대면적 제조 가능성, 저비용을 모두 갖췄다. 특히 산화물 소재를 사용해 구조적 안정성과 내식성을 확보하면서도, 밴드갭 엔지니어링을 통해 광흡수 성능을 크게 높였다는 점이 핵심이다.

이 기술은 향후 실제 제품화를 위한 추가 연구가 필요하지만, 태양광 담수화 분야에서 중요한 진전을 이뤘다고 평가된다. 특히 기후변화로 인한 가뭄과 담수 부족 문제가 심각해지는 상황에서, 재생에너지인 태양광을 활용한 지속가능한 담수 공급 방법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