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AIST(총장 이광형) 물리학과 양용수·이성빈·양희준·김용관 교수팀이 미국 스탠퍼드대학교와 공동으로 양자물질 내 전하밀도파(Charge Density Wave)의 형성과 소멸 과정을 세계 최초로 영상화했다고 20일 밝혔다. 전하밀도파는 양자물질을 극저온으로 냉각했을 때 전자들이 일정한 간격으로 늘어서며 만드는 줄무늬 또는 그물무늬 패턴이다. 즉, 초전도를 실용화하려면 전자들의 집단 행동을 제어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전자 무늬가 언제 어떻게 생기고 사라지는지 알아야 한다.
연구팀은 액체헬륨으로 냉각한 특수 전자현미경과 4차원 주사투과전자현미경(4D-STEM, 전자빔이 시료의 나노미터 영역을 스캔하면서 각 지점에서의 회절패턴을 정밀하게 측정해 전자 무늬의 세기를 지도처럼 재구성하는 기법)을 이용해 약 –253℃ 극저온에서 전자 무늬의 변화를 실시간으로 관찰했다. 특히 전하밀도파를 이루는 전자들이 서로 얼마나 멀리까지 영향을 주는지를 세계 최초로 정량적으로 밝혀냈다. 이번 연구는 물리학 분야 세계적 학술지 <Physical Review Letters> 6일 자에 게재됐다.
물처럼 부분적으로 얼고 녹는 전자 무늬
전류가 손실 없이 흐르는 초전도 현상을 비롯한 물질 내부 양자현상의 비밀은 전자들이 언제 함께 움직이고 언제 흩어지는지에 있다. 초전도 상태는 에너지 손실 없이 전류가 100% 흐르는 상태로 아주 낮은 온도에서 특정한 물질에서만 나타난다. 전하밀도파는 이러한 초전도 현상과 밀접하게 연관된 양자 질서 상태로, 초전도와 때로는 서로 경쟁하고 때로는 서로를 돕는 관계로 알려져 있다.
초전도 현상을 양자컴퓨터 등에 활용하기 위해서는 물질 속 전자들을 원하는 대로 정밀하게 제어하는 기술이 필수적이다. 하지만 극저온 환경에서 전자들이 만들어 내는 전하밀도파의 무늬 패턴이 어떻게 생기고 사라지는지 직접 관측하기 어려워 많은 부분이 베일에 싸여 있었다.
연구팀은 국제적으로도 소수의 연구팀만 수행할 수 있는 액체헬륨 기반 극저온 전자현미경 실험과 4D-STEM을 결합했다. 전하밀도파가 나타나는 상전이 온도(약 –243℃) 아래와 위의 여러 온도에서 4D-STEM 회절패턴을 연속적으로 측정하는 데 성공했다.
이번 연구는 물이 얼면서 얼음 결정이 자라는 모습을 초고배율 카메라로 촬영하는 것과 비슷하다. 다만 물 대신 약 –253℃의 극저온에서 전자들이 배열되는 모습을 관찰했고, 카메라 대신 머리카락 굵기의 10만 분의 1까지 볼 수 있는 전자현미경을 사용했다는 점이 다르다.
연구 결과, 전자 무늬는 물질 전체에 균일하게 나타나지 않았다. 어떤 영역에서는 선명한 무늬가 보이지만 바로 옆에서는 전혀 나타나지 않았다. 이는 마치 호수가 한 번에 얼지 않고 얼음과 물이 섞여 있는 모습과 같다.
연구팀은 이러한 현상이 물질 내부의 아주 미세한 변형(strain, 외부 힘이나 온도 변화로 인해 물질 내부 원자 배열이 살짝 뒤틀리거나 늘어난 상태)과 깊이 연결돼 있다는 사실도 밝혀냈다. 눈으로는 거의 느낄 수 없는 작은 압력이나 뒤틀림이 전자 무늬의 형성을 방해하는 것이다.
반대로 일부 영역에서는 온도가 올라가도 전자 무늬가 쉽게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는 현상도 관찰됐다. 이는 작은 섬처럼 고립된 ‘양자 질서’가 고온에서도 유지되는 모습으로, 기존 이론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웠던 결과다.

전자 질서의 공간적 상관성 세계 최초 정량화
연구팀의 또 다른 중요한 성과는 전하밀도파 전자 무늬를 이루는 전자들이 서로 얼마나 멀리까지 영향을 주는지를 세계 최초로 정량적으로 밝혀낸 것이다.
4D-STEM은 전자빔이 시료의 나노미터 영역을 스캔하면서 각 지점에서의 회절패턴을 정밀하게 측정해 전자 무늬의 세기를 지도처럼 재구성할 수 있다. 연구팀은 이 기법을 이용해 각 온도에서의 전하밀도파 세기 지도를 얻고, 개별 영역에서 무늬가 얼마나 강하게 나타나는지, 공간적으로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정량적으로 분석했다.
또한 이 전하밀도파 지도를 기반으로 전하밀도파의 공간적 상관성(correlation, 한 지점에서의 전자 무늬가 얼마나 멀리 떨어진 다른 지점의 전자 무늬와 연결되어 있는지를 나타내는 지표)을 세계 최초로 독립적으로 계산함으로써, 기존 기술로는 분리해서 관측할 수 없었던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이는 단순히 ‘무늬가 있다, 없다’를 넘어서 전자 질서가 어떻게 연결되고 유지되는지를 이해할 수 있게 해 양자물질 연구에 새로운 분석 틀을 제시한 성과로 평가된다.
전하밀도파와 초전도 상태는 때로는 서로 경쟁하고 때로는 서로를 돕는 관계로 알려져 있으며, 이번 연구 결과는 고온 초전도체 연구와도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즉, 전자 무늬가 안정적으로 유지되는 조건을 알게 되면 초전도 전류가 더 잘 흐르는 재료를 설계할 수 있는 길이 열리는 것이다.
연구를 주도한 양용수 교수는 “그동안은 이론이나 간접 측정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던 극저온에서의 전자 질서와 양자상태의 미세한 변화를 이제는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게 됐다”며 “양자물질의 숨겨진 질서를 밝혀냄으로써 미래 양자기술의 재료 개발을 가속할 중요한 돌파구”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