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줄기세포로 만든 도파민생성세포를 뇌에 이식한 한 생명공학회사
최근 줄기세포를 이용한 재생의학의 발전에 있어 한 가지 중요한 임상시험 결과가 발표되었다. 임상시험을 주관한 생명공학 회사는 12명의 파킨슨병 환자의 뇌에 실험실에서 제작한 뉴런(신경세포)을 이식한 결과 환자들의 상태가 안정적이었으며 일부 환자들의 경우 증상이 완화된 것으로 보였다고 밝혔다.
파킨슨병은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의 결핍으로 인해 이상 운동을 비롯한 여러 치명적인 증상을 야기하는데, 이번 임상시험에서 이식된 세포들은 도파민을 생성하도록 의도된 것이었다.
이 연구를 이끈 캘리포니아 대학교 어바인 캠퍼스(University of California, Irvine)의 신경생물학자 클레어 헨치클리프(Claire Henchcliffe)는 “이식된 세포가 마치 기존의 세포들처럼 시냅스를 형성해 다른 세포와 상호작용하게 만드는 게 목표”라며 “이식한 세포가 환자와 ‘이야기’할 수 있게 된다는 점이 흥미롭다”고 말했다.
이 연구는 지금껏 있었던 배아줄기세포 기술과 관련한 임상시험 가운데 가장 큰 비용을 들여 최대 규모로 이루어진 것으로, 체외수정(IVF) 배아에서 채취한 줄기세포를 이용해 대체용 조직과 신체 부위를 생산하는 이 기술은 논란의 여지가 많으며 가능성이 상당히 고평가되어 있다.
이 접근법의 안전성 입증을 주된 목표로 두었던 소규모 임상시험의 경우 거대 제약회사인 바이엘의 자회사 블루록 테라퓨틱스(BlueRock Therapeutics)의 후원을 받아 진행됐다. 여기서 연구진은 체외수정으로 생성된 인간 배아에서 추출한 강력한 분화능을 지닌 줄기세포를 사용해 대체용 뉴런을 제조했다.
2023년 8월 28일 코펜하겐에서 개최된 국제파킨슨병및이상운동질환 학회(International Congress for Parkinson’s Disease and Movement Disorder)에서 헨치클리프를 비롯한 여러 연구자들이 발표한 데이터에서는 수술한 지 1년 후에도 이식된 세포가 생존해 환자의 증상이 완화하고 있다는 암시도 있었다.
이처럼 뉴런 이식이 환자의 증상 완화에 도움이 되었다는 단서는 뇌스캔을 통해 드러났다. 분석 결과 뉴런 이식 후 환자의 뇌에서는 도파민 세포가 증가하였을 뿐 아니라 하루 중 약효가 사라져 파킨슨병 증상을 겪는 시간을 뜻하는 ‘약효 소실 시간(off time)’이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연구에 참여하지 않은 외부 전문가들은 효과가 일관적이지 않다는 점에서 일부 결과가 치료 때문이 아닌 위약 효과일 수 있다며 해석에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케임브리지 대학교(University of Cambridge)에서 파킨슨병을 연구하는 로저 바커(Roger Barker)는 “이번 임상시험에서는 안전성 문제가 전혀 발생하지 않았고, 치료의 효과가 약간은 있는 것처럼 보였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바커는 이식된 세포가 계속해서 살아남았음을 뒷받침하는 증거에 대해서는 “다소 실망스럽다”고 평가했다.
세포를 환자 머릿속에 이식하고 나면 이를 육안으로 관찰할 수 없기 때문에 연구진은 그 대신 방사성을 띠는 도파민 전구체를 투여한 다음 PET 스캐너로 뇌에서 도파민이 흡수되는 것을 관찰하여 세포를 추적한다. 바커는 이러한 결과의 설득력이 약하다고 보며, 이식된 세포가 환자의 뇌에 제대로 자리 잡고 뇌를 회복시켰는지 여부를 판단하기에는 아직 너무 이르다고 생각한다.
법적 질문
최초의 인간 배아줄기세포는 1998년 위스콘신 대학교(University of Wisconsin)의 난임 클리닉에서 만들어진 배아로부터 분리되었다. 배아줄기세포는 실험실에서 배양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이론상 적절한 조건을 갖추면 인체의 200여 가지 세포 중 하나가 되도록 유도할 수 있어 시력 회복, 당뇨병 치료, 척수손상 회복을 위한 연구를 촉발하는 등 과학자들에게 유용하게 활용되고 있다.
하지만 지난 20년 동안 정부와 기업이 수십억 달러(수조 원)를 투자해 배아줄기세포를 연구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배아줄기세포를 기반으로 한 치료제는 시중에 나오지 못했다. 블루록의 연구는 이러한 상황을 반전시키기 위한 주요 시도 중 하나다.
그리고 줄기세포는 바이엘의 본사가 있는 독일에서 계속해서 민감한 이슈를 제기하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엄격한 법에 속하는 독일의 배아보호법에 의하면 배아에서 배아 세포를 추출하는 행위는 여전히 징역형에 처할 수 있는 범죄다.
다만 예외적으로 독일 밖에서 2007년 이전에 만들어진 기존의 줄기세포를 공급받는 것은 합법이다. 블루록의 사장이자 CEO인 세스 에텐버그(Seth Ettenberg)는 블루록이 미국에서 뉴런을 생산하고 있고, 이를 위해 위스콘신에 위치한 공급처로부터 지금까지 널리 사용되고 있는 기존의 배아줄기세포를 받아 사용하고 있다고 말한다.
바이엘의 대변인 아이구아벨라 폰트(Aiguabella Font)는 이메일에서 “블루록은 인간 배아를 대상으로 어떠한 작업도 하지 않기 때문에, 모든 부문에서 독일 배아보호법의 높은 윤리적, 법적 기준을 존중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오랜 역사
도파민 생성 세포를 이식해 파킨슨병을 치료한다는 발상은 1980년대에 의사들이 낙태된 태아의 신경세포를 이용해 시도했던 것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 연구의 결과는 모호했다. 몇몇 환자에게서는 효과가 있었을지 모르지만, 어떤 환자에서는 통제되지 않는 몸부림이나 경련처럼 ‘악몽같이 끔찍한’ 부작용이 나타나 경종을 울렸다.
태아의 뇌세포를 사용하는 것은 단지 윤리적으로 미심쩍은 일만이 아니었다. 연구자들은 또한 이러한 조직이 너무 가변적인 데다가 이를 구하기조차 어려워 표준화된 치료법으로 개발하지 못할 거라고 확신했다. 헨치클리프는 “세포나 조직의 일부를 뇌에 이식하려는 시도는 오래되었다”라고 말한다. 그녀는 “그러나 그중 어느 것도 결실을 보지 못했으며, 과거에는 세포의 작용 메커니즘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고 품질이 보장된 세포가 충분치 않았기 때문인 것 같다”라고 덧붙였다.
그럼에도 이식된 세포가 계속 생존할 수 있다는 증거는 있었다. 태아 세포 치료를 받은 일부 환자들의 사후 검사 결과, 수년이 지나도 이식된 세포가 여전히 존재한 것으로 나타났다. 파킨슨병에 대한 자체 임상시험을 계획하고 있는 줄기세포 회사인 아스펜 뉴로사이언스(Aspen Neuroscience)의 공동설립자 잔느 로링(Jeanne Loring)은 “태아 세포 이식에 관련된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항상 임상시험이 계획대로 되면 치료 효과가 있을지 알고 싶어 했다”라고 말한다.
배아줄기세포의 발견 덕분에 연구자들은 이전에 비해 시험의 조건들을 더 잘 통제할 수 있게 되었다. 배아줄기세포는 수십억 개까지 증식해 도파민을 만드는 세포로 전환될 수 있다.
이번 임상시험에서 도파민 생성 세포를 제조하는 초기 작업과 동물 실험은 컬럼비아 대학교(Columbia University)의 로렌츠 스터더(Lorenz Studer)가 수행했다. 2016년 그는 바이엘과 투자 회사인 버산트 벤처스(Versant Ventures)의 합작 투자로 설립된 블루록의 과학기술 창립자(scientific founder)가 되었다. 이 초기 작업에 참여했던 헨치클리프는 “이 분야에서 이처럼 관련 지식이 두터우면서도 품질이 균일한 세포를 가지고 작업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라고 말한다. 2019년 바이엘은 이 줄기세포 회사를 약 10억 달러(약 1조 3,310억 원)에 인수하여 경영권을 온전히 확보했다.
운동 장애
파킨슨병에 걸리면 도파민 생성 세포의 괴사로 인해 도파민이 결핍된다. 그 결과 떨림, 팔다리 경직, 그리고 몸 움직임의 속도가 전반적으로 느려지는 서동증이 발생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파킨슨병은 서서히 진행되며 레보도파(levodopa)라는 약물로 수년간 증상을 조절한다. 또한 뇌심부 자극술을 통해 일종의 뇌 임플란트를 이식해 증상을 완화할 수 있다. 그러나 진행성 질환이기 때문에 결국 언젠가 레보도파를 써서는 증상을 조절할 수 없게 된다.
2023년 배우 마이클 J. 폭스는 30년 전 파킨슨병을 진단받고 더는 대사를 기억할 수 없게 되면서 연기를 완전히 은퇴했다고 CNN에 털어놓았다. 그는 “거짓말하지 않겠다. 점점 더 힘들어지고 있다”라며 “매일 더 힘들어지고 있다”라고 말했다.
세포 치료는 의사가 환자의 증상을 치료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실제로 새로운 뉴런을 이식해 손상된 뇌 신경망을 실제로 바꿀 수 있다는 점에서 희망적이다.
블루록의 CEO인 에텐버그는 “재생의학의 잠재력은 단순히 질병을 지연시키는 것이 아니라 뇌 기능을 재건하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그는 “사람들이 스스로를 파킨슨병 환자로 생각하지 않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라고 덧붙였다.
에텐버그는 블루록이 내년에 더 많은 환자를 대상으로 더 큰 규모의 연구를 시작해 치료의 효과와 효능을 확인할 계획이라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