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년 안에 노화를 거꾸로 되돌리는 시대 도래한다
정희원 교수는 의과대학 시절, 응급실에 실려 온 환자가 처방 약 중 일부를 빼자 며칠 만에 멀쩡해지는 모습을 보고 노인의학에 매료되었다. 그는 “성인 중심의 전문 진료과가 약을 추가해서 환자를 치료하는 게 일반적이라면, 노인의학은 환자의 약을 빼면서 환자를 치료할 수 있다는 것이 굉장히 신선하게 느껴졌다”고 말한다. 나이가 들면 장기나 기관의 기능이 저하되는 노쇠가 온다. 정희원 교수는 “노쇠는 사람의 회복 탄력성이 떨어져 있다는 의미인데 이런 사람들이 약을 계속 추가할 경우, 예측할 수 없는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덧붙였다. 노년내과 같은 노인의학과(geriatics)에서는 노인의 특징적인 문제에 깊이 관여하여 환자의 전체적인 상태와 먹는 약, 신체와 인지 등 전반적인 기능을 고려해서 ‘환자 중심’ 치료 계획을 세운다. 보통 질병에 따른 진단과 치료 중심 의학과 구별되는 점이다.
여기서 노화 연구와 노인의학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 정희원 교수는 “노화과학 (geroscience, 노화 지연)은 생애주기 중간 부분의 과잉을 낮춰서 삶을 길게 뽑는 방법이나, 반대로 노화 시계를 거꾸로 돌리는 방법을 연구합니다. 노년이 되었을 때의 만성 질환이 젊을 때부터 쌓여간 고장의 축적으로 벌어지며, 노화를 느리게 만드는 노력을 하면 질병과 노쇠를 예방할 수 있다는 노화 과학 가설(geroscience hypothesis)이라는 개념이 중요한 기반을 이룹니다. 노인의학(geriatrics, 노인병학)은 젊었을 때의 과잉이 이미 없어지고 에너지 수지가 음이 되는, 한마디로 근손실이 쉽게 오는 노쇠의 시기에 몸을 잘 돌보고 질병과 치료를 효과적으로 하는 학문이다. 이 두 가지를 합친 개념이 노년의학(medical gerontology)이다”라고 설명한다.
안녕하세요. 노년내과 전문의 외에 노인의학 학술지 <AGMR>에서 부편집장을 맡고 계신데요. 최근 1년 동안 업계에서 가장 큰 화두는 무엇입니까?
정희원 교수(이하, 정) 노년학 전반에 걸쳐서 두 가지 정도가 굉장히 중요하다고 보는데요. 첫 번째는 레카네맙(lecanemab), 도나네맙(donanemab)이라는 치매 약이 이번에 3상 임상시험 결과가 잘 나와서 레카네맙은 ‘레켐비’라는 약으로 미국 식품의약청(FDA) 승인을 받고 7월 출시가 되었습니다. 인지 기능 저하 속도를 30퍼센트 정도 느리게 만들 수 있는 약이에요. 도나네맙은 아직 FDA 승인을 받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의미가 있는 건 과거에는 ‘아밀로이드 가설’에 의해 개발된 치매 신약들이 계속 실패했어요. (편집자 주: 아밀로이드 가설은 알츠하이머 환자의 뇌에서 아밀로이드 플라크 및 타우단백질(Tau protein) 등이 일반적으로 관찰되는데, 이런 물질에 의해 알츠하이머가 생기고 심화된다는 가설) 2021년 아두카누맙(Aducanumab)이 ‘아두헬름(Aduhelm)’이라는 약으로 나왔는데 효과에 비해 위험하고 가격은 비싼 데다가 부작용도 있어서 실패한 약으로 간주되었죠. 그러다가 최근 레켐비가 나오고 도나네맙이 좋은 결과를 보여주면서 치매 자체를 제어할 수 있는 약이 생긴 거예요. 다시 말해 치매 질환의 궤적을 개선하는 질병 조절(disease-modifying) 약이 처음 나온 거라서 굉장히 흥미롭습니다.
두 번째는 노화 시계(aging clock)라는 개념이 확고한 연구 방법론이 되었습니다. 숫자 나이가 아닌 생물학적 나이를 측정하는 방법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올해 초 큰 관심을 모았던 논문이 데이비드 싱클레어 랩에서 나온 건데, 양재현 박사가 저자로 참여한 노화 시계 관련한 <포유류 노화의 원인으로서의 후생유전학적 정보의 손실>입니다. 노화는 후생유전학적 정보(epigenetic information)의 손실로 일어난다는 거죠. 이 후생유전학적 변화를 바탕으로 생물학적 노화 정도를 측정하려는 노력들이 노화 시계의 개발로 이어졌습니다. 해당 논문에서는 DNA를 일시적으로 깨끗하게 절단했다가 다시 붙이는 것 만으로 노화 시계가 급격히 진전되는 가속 노화(accelerated aging)가 발생할 수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야마나카 인자를 주사하면 다시 가속 노화를 어느 정도 원상복귀 시킬 수 있다고 말합니다. (편집자 주: 야마나카 신야(Yamanaka Shinya) 캘리포니아 대학교 교수는 피부세포에 레트로바이러스(retrovirus)를 운반체로 이용하여 Oct3/4, Sox2, c-Myc, Klf4 등의 유전자를 도입해 발현시킴으로서 체세포에서 유도 만능 줄기세포를 만들었고, 이 네 가지 유전자를 ‘야마나카 인자(factor)’라고 부른다.) 올해 나온 논문 중, 사람과 동물이 갑작스레 수술, 감염 등 스트레스에 노출되면 노화 시계가 가속되고, 스트레스가 해소되면 다시 노화 시계가 되돌려지는 것도 흥미로웠습니다. 이처럼 노화 시계 도구를 활용해 노화를 개선하는 연구가 노화 또는 생물학적 노화 연구(biogerontology) 분야에서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심지어, 미국에서는 이 노화 시계를 일반 소비자를 대상으로 측정해주는 기업들도 여럿 생겼습니다.
미국에서는 노화 방지 테크놀로지(reprogramming)에 대한 관심이 높습니다. 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이조스, 오픈AI CEO 샘 올트먼, 페이팔 창업자 피터 틸 등 기술 대기업에서 관련 스타트업에 많은 투자를 해서 이슈가 되었습니다. 국내 의학계에서는 이런 기술에 어떻게 대응하는지 궁금합니다.
정 우리나라의 노인의학에서는 합법적으로 진료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닙니다. 기본적으로 병원에서 진료하려면 그 대상이 질병이어야 합니다. 신의료기술 등재도 되어 있어야 하고요. 노화 시계를 예로 들면, 사람의 피를 뽑아서 검사하는 것 자체가 의료 기술이 되어야 하는 데 노화 자체가 질병이어야 하는 거죠. 그런데 앞서 말한 치매 예방약 매켐비나 도나네맙은 빨리 들어올 가능성이 높습니다. 치매는 진단명이 있으니까요. 노화 방지 테크놀로지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어요. 첫 번째는 대사 속도를 늦추는 거죠. 노화 예방약으로 유명해진 메트포르민(metformin, 당뇨병 치료제)이나 라파마이신(rapamycin, 면역억제제)이 있죠. 이 외에 괜찮은 효과를 보이는 알파 글루코시다제 억제제(α-Glucosidase Inhibitor, 탄수화물 흡수 조절), SGLT2 억제제(탄수화물을 콩팥으로 배출)처럼 노화 속도를 늦춰서 마치 세라밴드를 잡아당기듯 얇고 길게 만드는 것이 있습니다. 두 번째는 , 역노화(rejuvenation)입니다. 시간을 되돌리는 것인데요, 대표적으로 세놀리틱(senolytic)처럼 노화 세포를 터뜨려서 없애는 것이 있어요. 리프로그래밍 즉, 야마나카 인자를 쓰거나 줄기세포를 활용하거나 다양한 방법으로 노화 시계를 되돌리는 것도 역노화에 해당합니다.
미국 국립보건원(NIH)의 ITP(The Interventions Testing Program)가 좀 더 확실합니다. 노화를 지연(aging retardation)시키는 실험을 독립된 기관에서 쥐 대상으로 검증하는 프로그램인데, 적어도 이 ITP 프로그램을 통과한 물질은 사람의 노화를 지연시킬 가능성이 있다는 겁니다. 하지만 이 ITP 프로그램조차 통과하지 못한 물질이라면 일단 아닐 가능성이 높습니다. 너무 많은 사람이 ITP 프로그램에서 실패한 약이나 건강식품을 효과가 있다고 믿고 먹고 있어요. 그리고 역노화 관련해서는 아직 임상 연구에서 촉망되는 효과를 보인 물질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기술적인 해결 외에 노화를 늦출 수 있는 다른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요?
정 생활 습관을 교정하면 생물학적인 나이를 젊게 만들 수 있습니다. 절식은 25~70%의 노화 속도를 낮추고, 수면, 절식, 운동, 스트레스 감소 등 건강한 생활습관은 8주 중재 시 3년 이상 노화 방지의 효과가 있습니다. 또 20세 기준으로 충분한 운동, 건강한 영양 섭취, 절주, 금연 실천 시 약 18년의 수명에 영향을 준다고 해요. 그 밖에도 많은 사람의 수명이나 노화 속도에 대한 연구들이 있는데, 기본적인 생활습관을 개선하면 라파마이신 정도의 효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라파마이신은 쥐에서 약 20% 정도의 수명 연장 효과가 있기 때문인데(거의 평생 투여해야 합니다) 이만큼의 효과를 약 없이도 볼 수 있는 것이죠. 그러나 현재 노화 시계와 관련된 테크놀로지가 발전하고 있기 때문에 2030년까지 많은 변화가 있을 거라고 봅니다. 역노화나 세놀리틱 등의 임상 실험이 적극적으로 이루어지고 있고 투자도 활발해서 의미 있는 결과가 향후 10년 안에 나올 것 같습니다.
노화의 속도를 결정하는 삶의 이유
세계보건기구(WHO)는 2020년, 60세 이상의 인구가 5세 미만 인구수를 넘어섰으며, 2030년에는 세계 인구의 약 17%, 2050년이 되면 25%가 60세 이상이 될 거라고 보고했다. 장수는 노인과 가족뿐 아니라 사회 전반에 영향을 미친다. 세계 인구의 이같은 변화에 잘 적응하고 건강한 노후를 맞는 것은 모두에게 주어진 과제다. 정희원 교수는 “우리나라는 지금 베이비붐 세대와 자식 세대가 같이 늙어가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사람들이 건강하게 나이 드는 것이 중요하다”라며 “통계 자료는 암울한 현실을 보여준다. 나이 든 다음에 문제가 생기면 후회해도 소용이 없다”고 강조한다.
내재역량은 2015년 WHO가 제시한 개념으로, 얼마나 건강하게 노화가 이뤄지는지 계산하는 척도로 알고 있는데요. 건강한 노후를 맞을 수 있는 방법으로 내재역량((intrinsic capacity)을 강조하셨습니다. 설명 부탁드립니다.
정 예를 들어 나이가 20대 중반인 한 사람이 잘 성장해서, 평균적으로 한 100만 원 정도 계좌에 쌓인 채로 시작한다고 칩시다. 그때부터 시간이 지나면 돈이 저절로 깎여 나갑니다. 그 깎여나가는 속도는 자신의 노화 속도로 결정할 수 있어요. 앞서 노화 시계(aging clock)에 대해 말했는데, 또 다른 개념이 있어요. 자신의 노화 속도(aging pace)를 볼 수 있는 바이오마커들입니다. 노화 시계와 같은 방법으로 해요. 속도는 0.5배속이 될 수도 있고 2배속이 될 수도 있는데요. 보통 1년에 1만 원, 2만 원씩 깎여 나가는데 그 속도가 남들보다 빠르면 100만 원의 잔고가 빨리 떨어지겠죠. 가령 60만 원 이하로 떨어지게 되면 그때부터는 간병인이 필요한 삶을 살아야 한다고 보면 됩니다. 그때 인지 기능이 먼저 꺾여나가면 치매를 먼저 앓게 되는 거고 신체 기능이 먼저 깎여 나가면 침상 생활(와상, 臥牀)을 하게 되는 거라고 보면 됩니다. 결국 깎여 나가는 속도는 당장 눈에 보이지 않지만, 자신이 만들어 나가는 노화 속도에 의해서 결정이 되는 겁니다. 이게 지금까지 말씀드렸던 노화과학 가설이고요.
그렇기 때문에 노화 속도를 늦추면 됩니다. 그런데 노화 속도를 늦추는 방법은 라파마이신도 있고 알파 글루코시다제 억제제도 있지만, 노화 속도를 느리게 만들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앞서 말씀드린 생활습관, 그 중에서도 운동, 영양, 금연 절주 4가지입니다. 또 충분한 수면과 스트레스 덜 받는 라이프스타일을 통해 노화 속도를 늦추면 통상적으로 20% 이상까지도 수명을 늘일 수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느리게 나이가 드는 방법은 전면적인 라이프스타일의 개선이라고 보면 됩니다.
노화를 예방하기 위한 다양한 시도 가운데 발생할 수 있는 윤리적인 혹은 사회적인 문제나 고려사항이 있다면 무엇이 있을까요?
장 이런 점은 있을 수 있어요. 예를 들어 레켐비나 도나네맙 같은 약을 주사할 때 부작용이 따를 수 있어요. 보통 이런 약이 마케팅될 때 상당히 좋은 면만 부각됩니다. 우리나라에서 현재 뇌 영양제라고 많이 먹는 약만 하더라도 부작용이 따르는 의약품인데, 관련해서 효과는 아직 알려지지 않았거든요. 치매가 있는 분들이 복용하는 약에 더해지면 효과가 있을지도 모르는 일종의 보조제인데, 와전돼서 뇌 영양제로 입소문이 난 거죠. 그래서 역으로 의사에게 처방해달라고 요구합니다. 부작용이나 효과가 없을 수 있다는 말에 귀를 닫아버려요. 이런 모든 기술의 마케팅을 유니콘 기업들이 보통 하죠. 레켐비 전에 나온 아두헬름(aduhelm)이라는 약이 FDA 승인을 받았을 때 노인의학 분야에서 굉장히 이슈였어요. 효과는 굉장히 적어보이는데 위험도는 크고 게다가 비싸서 이 약을 사람들에게 권하는 게 옳으냐, 하는 문제로 성명을 내고 그랬거든요. 결국 FDA라는 전문가 집단도 아주 순수한 학문적인 면, 공중보건적인 접근으로 평가하기 어려운 시대가 된 겁니다.
노화 속도를 느리게 만들기 위해서 어떤 치료를 받는다는 것은 수명을 늘이기 위해 개인이 선택적으로 하는 거잖아요. 위험을 본인이 감수한다고 해도 이러한 의료 행위를 승인해주는 입장에서는 공중보건학적 손익과 경제적 편익을 엄밀하게 고려해야 해요. 우리나라처럼 아주 보수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바를 수 있죠. 해외의 사례들을 보면, 노화 지연 목적으로 장기간 라파마이신을 복용하는 경우는 항상 항생제를 가지고 있으라고 합니다. 라파마이신은 면연억제제인데 항노화 효과가 나오려면 꽤 많은 양을 먹어야 해요. 그렇게 되면 당연히 면역력이 떨어지고 세균 감염의 위험도 올라가죠. 그래서 피부나 여타 감염증이 생기면 빠르게 퍼질 수 있기 때문에 빨리 항생제를 먹으라고 할 정도입니다. 현재는 소규모지만 광범위하게 사용된다면 의학적인 여러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고령화 사회로 접어들면서 다양한 문제가 생길 수 있겠네요. 노인의학의 역할도 커질 것 같습니다. 현재 관심을 두고 진행하고 있는 연구나 앞으로의 계획이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장 노화 시계는 앞으로 노화와 노인의학 연구에서 접목이 될 가능성이 높고 개인적으로 관심이 많기도 합니다. 젊은 사람에서 ITP에서 유의미하게 효과가 있었던 약제의 조합을 활용하여 6개월 내지는 1년 정도 사용한 후에, 여러 가지 노화 관련 바이오마커뿐만 아니라 노화 시계가 어느 정도까지 개선되는지 보고 싶어요. 또 그런 것들을 더 자세히 볼 수 있는 노화 시계 알고리즘을 개발하는 것에 관심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저희 병원의 노화 연구 코호트 샘플을 이용해서 노화 시계에 대한 공동연구를 수행하고 있기도 합니다. 지금까지 말씀드린 것처럼, 젊은 사람들이 대사 과잉을 억제하는 좋은 생활 습관을 만들면 노화 속도가 느려질 가능성이 있죠. 반대로, 75세 이상의 고령이 되면 이러한 습관을 뒤집어야 할 가능성이 있다고 봅니다. 그때는 몸이 달라져서 오히려 고단백 식이나 근육을 늘리는 방향으로 라이프스타일을 만드는 게 좋을 가능성이 있어요. 사람의 몸은 노화의 시기에 한 번 크게 바뀌는데 언제 바뀌는지 그 지점을 찾는 것에 굉장히 관심이 많습니다. 그 지점을 알게 되면 생애 주기에 따른 운동 계획이나 올바른 내재역량의 중재도 달라질 겁니다. 그 지점을 노화 시계 연구로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에게는 두 가지 장기적 계획이 있습니다. 첫째는 노인의학이 전문 진료 영역으로 다른 나라처럼 인정받아서 노인의학적 사고 방식을 접목해 장기 요양이라든지, 여러 의료 돌봄과 관련된 정책이 마련되었으면 하는 거고요. 둘째는 노후에 기댈 국가적 차원의 시스템이 없다보니 건강하게 나이들 방법을 알려서 각자의 라이프스타일에 적용할 수 있도록 돕고자 합니다. 적어도 2030년까지는 이 두 가지를 이루기 위해 여러 활동과 연구를 계속 해 나갈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