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중한 낙관론’이 지배한 빌 게이츠 개최 기후 콘퍼런스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빌 게이츠(Bill Gates)가 설립한 기후 벤처 펀드인 ‘브레이크스루 에너지(Breakthrough Energy)’가 10월 시애틀에서 ‘에너지 서밋’을 열었다. 이 행사에 참석한 게이츠와 존 케리(John Kerry) 미국 기후변화 특사, 제니퍼 그랜홈(Jennifer Granholm) 미국 에너지 장관은 모두 기후 문제에 관해 약간의 경고를 곁들인 신중한 낙관론을 제시했다.
미국 정부가 청정에너지 프로젝트를 가속화하는 정책을 펼치고 있는 가운데 재생에너지 생산 비용은 계속해서 하락하고 있다. 또 대규모 민간과 공적 자본이 기후 변화 대응 기술들에 투입되는 중이다. 하지만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온실가스 공해의 급격한 감소로 이어지지는 않고 있다. 이런 가운데 지정학적 갈등과 세계 경제에 불어닥친 역풍은 지구 기온의 상승을 억제하려는 노력을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
게이츠는 서밋에서 그가 관측해왔던 유망한 에너지 관련 투자 분야와 산업 동향을 주로 말했다. 그는 투자자들과 10억 달러 규모의 초기 펀딩에 투자했었다. 그 가운데는 제프 베이조스(Jeff Bezos) 아마존 창립자와 존 도어(John Doerr) 클라이너 퍼킨스(Kleiner Perkins) 회장도 있었다. 그런데 게이츠와 투자자들이 2015년에 또 다른 펀드 브레이크스루 에너지를 출범시켰을 때 투자를 할만한 유망한 스타트업들을 찾지 못할까 우려했었다. 그러나 이제 브레이크스루 에너지는 에너지 장기 저장용 기술, 육류 대체품, 에너지 효율적인 빌딩, 청정 철강뿐 아니라 탄소 배출량을 줄이는 방법들을 연구하는 기업 100여 곳에 투자하고 있다.
게이츠는 지난 7년 동안 기후변화와 관련한 가장 어려운 기술적 과제 중 일부에서 자신이 목격한 엄청난 진전에 “놀라고 있다”고 말했다.
브레이크스루 에너지는 2021년 두 번째 10억 달러 펀드 조성을 마쳤으며 게이츠는 회사가 투자금 조성을 ‘몇 번 더’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브레이크스루 에너지는 또한 정책을 밀어붙이고 연구비 지원 사업을 추진하고 다른 기후 노력까지 지원하면서 투자 외에도 임무를 확장해왔다.
게이츠는 2015년을 전후해 쇠퇴기에 근접했던 청정에너지에 대한 벤처캐피털 투자가 다시 활기를 되찾았으며 풍력, 태양광, 리튬이온배터리 비용이 계속해서 하락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행사의 후속 세션에서 미국 에너지 장관 제니퍼 그랜홈은 인플레이션감축법(Inflation Reduction Act), 반도체와 과학법(CHIPS and Science Act), 인프라 투자 및 일자리법(Infrastructure Investment and Jobs Act) 등 미국의 새로운 법률 세 가지를 자랑스럽게 소개했다.
그랜홈은 이러한 법률들이 미국의 청정에너지 전환을 가속화하고 미국 경제를 밀어 올릴 수 있는 ‘게임체인저(game-changer)’라고 설명하면서 이미 미국 제조 시설들에 수십억 달러 규모의 민간 자본 투자가 촉진되기 시작했다고 덧붙였다.
그랜홈은 미국 에너지부가 현재 저탄소 수소 허브 건설, 그리드 에너지 저장 프로젝트, 대기 중 이산화탄소를 흡입하는 공장 건설을 시작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이러한 신흥 사업들이 자금을 확보할 수 있도록 가교 역할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런 모든 진전에도 불구하고 기후변화가 초래할 최악의 위험을 피할 수 있을 정도로 빠르게 배출량을 줄이는 데는 여전히 큰 장애물들이 있다.
게이츠는 각국이 파리협정에 따른 단기적인 배출량 감축 목표를 얼마나 달성하고 있는지 살펴보면 “매우 우울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세계 탄소 배출량은 지난해 신기록을 세웠고 2022년 내내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다.
미국은 풍력 및 태양광 프로젝트에 수백억 달러를 배정했고, 청정 전력망 구축은 바이든 행정부의 명시적인 목표이다. 그러나 게이츠는 미국이 2035년까지 청정 전력망을 구축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매우 우스운 일’이라고도 말했다.
게이츠는 이와 관련해서 미국에서 ‘장거리 송전선로’ 허가와 승인을 받는 데 심각한 어려움이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각종 연구에 따르면 주로 재생에너지를 이용하는 현대적이고 신뢰할 수 있는 국가 전력망을 구축하려면 장거리 송전선로가 필수적이다. 그러나 미국에서 장거리 송전선로는 여러 도시, 카운티, 주 관할지역을 가로지르기 때문에 프로젝트 승인을 받는 데 10년 이상도 걸릴 수 있다. 많은 장기 송전선로 프로젝트는 탄소 배출량을 줄이거나 가정에 더 저렴한 전기를 공급할 수 있다고 약속한다고 해도 전면적으로 거절당하곤 한다.
이러한 승인 과정을 간소화하기 위한 조항을 포함한 최근의 연방 법안은 의회에서 통과되지 못했다. 미국 대통령 기후 특사 존 케리는 18일 종반에 언론 브리핑에서 이러한 우려를 다시 언급하며 의회가 재개되면 해당 법안을 통과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그런 프로젝트 승인에 10년 이상이 걸린다면 목표를 달성할 방법이 없다”고 지적했다.
다음 달 이집트에서 열리는 유엔기후회의를 앞두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한 인플레이션 상승, 세계 경제 약화, 에너지 위기 등이 각국의 탄소 배출량 감축 목표 달성 노력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느냐는 질문에 케리는 “푸틴이 불법적으로 타국을 침략했기에 전 세계적 경제 전반에 영향을 미쳤다”고 말했다. 그는 그로 인해 에너지 가격이 상승하고 인플레이션이 악화되면서 국가들이 ‘힘든 상황’에 빠지게 되었다고 언급했다.
여러 국가들이 직면한 에너지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앞다투어 대책을 마련하는 가운데 전쟁으로 천연가스 공급은 제한되었고 석탄 수요는 10년 만에 최고치로 되돌아갔다. 기온이 점점 떨어지면서 다가오는 겨울 몇 달 동안 유럽인들이 어떻게 살아갈지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비용 상승과 공급 긴축으로 인해 유럽연합(EU)의 야심찬 기후 목표 달성은 늦춰지게될 것이라고 우려한다.
그러나 케리는 이러한 위기는 일시적이며 최근 관련 정책의 발표와 청정 에너지에 투입된 막대한 벤처 자금이 긍정적 신호를 주고 있다고 말했다.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케리도 단서를 많이 달고 있기는 하지만 전반적으로는 낙관론을 피력했다.
케리는 “나는 우리가 저탄소 또는 무탄소 경제, 청정에너지 경제에 도달할 것이라고 확신한다”며 “하지만 우리가 기후 위기의 결과로 지구에 벌어질 최악의 결과를 피할 수 있을 정도로 제시간에 그러한 경제에 도착할 것이라고는 확신할 수 없다”고 말했다.
게이츠는 케리보다는 긍정적인 어조로 끝을 맺었다. 그는 민간 부문과 정부가 계속해서 청정 기술에 소요되는 비용을 낮추고 있으므로 향후 몇 년 동안 전 세계가 배출량 감소를 상당히 가속화하기 시작할 것이라는 희망을 품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활동가, 사업가, 연구자 등이 계속해서 큰 문제 해결에 참여하게 하려면 기후와 관련해서 실질적인 성과를 거둘 수 있는 분야에서 우리가 이루고 있는 진전에 주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게이츠는 “사람들이 포기하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