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균의 유전자를 조작해서 암과 맞서 싸울 수 있다
우리 몸속과 피부 위에는 수조 마리에 달하는 미생물이 살고 있다. 미래에는 어쩌면 이러한 미생물의 유전자를 조작해서 질병을 치료하는 데 도움을 받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과학자들은 피부 위에 살고 있는 이러한 세균(bacteria) 중 일부의 유전체, 즉 게놈(genome)을 변형시켜서 암을 예방하거나 치료할 수 있는 미생물을 만들고자 했다. 쥐를 이용한 실험에서 이러한 미생물은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인간을 대상으로 하는 임상시험도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 메릴랜드주 베데스다에 있는 국립인간유전체연구소(National Human Genome Research Institute)의 유전학자이자 피부 생물학자 줄리 세그레(Julie Segre)는 이번 연구에 참여하지 않았지만, 해당 연구 결과에 대해서 “엄청난 잠재력을 가진 대단한 발견”이라고 말한다. 세그레는 미생물을 이용해서 암이나 잠재적으로는 다른 질병까지 치료하는 아이디어가 인체 내의 미생물을 총칭하는 “마이크로바이옴(microbiome)을 활용하는 매우 흥미롭고 새로운 방법”이라고 설명한다.
지금까지 마이크로바이옴에 대한 연구는 대부분 우리 내장 안에 사는 수조 마리의 세균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그러나 우리 피부 위에도 다양한 미생물이 거주하고 있다. 우리 겨드랑이에 사는 미생물들의 생태계는 우리의 눈썹에 사는 미생물들의 생태계와 상당히 다를 수 있다. 이러한 미생물들이 정확히 어떤 역할을 하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완전히 파악하지 못했지만, 미생물들은 우리의 분비물을 섭취하고 스스로 유익한 분비물을 생산하여 인간을 감염으로부터 보호하는 것으로 보인다.
미생물들은 또한 우리의 면역체계가 작동하는 방식에도 영향을 주는 것으로 보인다. 감염이든, 종양이든, 심지어 양성 종양이든 상관없이 다양한 방식으로 우리에게 해를 끼칠 수 있는 무언가에 대한 면역반응을 우리 몸속 또는 피부 위에 사는 미생물들이 증폭시키거나 감소시킬 수 있다는 결과를 보여주는 연구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어떤 미생물을 동물의 피부에 단순히 접촉시키는 것만으로도 면역반응을 유발할 수 있다. 물론 미생물로 인한 이러한 면역반응에는 일반적인 감염에 나타나는 통증이나 열, 메스꺼움 같은 증상이 동반되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해도 스탠퍼드 대학교(Stanford University)의 마이클 피시바흐(Michael Fischbach)는 이것이 다소 놀랍다고 말한다. 이러한 미생물들은 보통 동물에게 해롭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그런 미생물들은 우리의 친구다”라고 말하며, 예를 들어 쥐의 피부에 어떤 미생물을 접촉시키는 것은 쥐에게 백신을 접종하는 것과 유사한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설명한다.
미생물 변형
피시바흐와 동료 연구원들은 이러한 효과를 모방해서 면역반응을 실제로 조절할 수 있을지 궁금했다.
연구팀은 인간의 피부에서 흔히 발견되는 미생물 중 하나를 선택해서 조사를 시작했다. ‘표피포도상구균(Staphylococcus epidermidis)‘라는 이름의 이 미생물은 인간의 마이크로바이옴에 속한 미생물로 여겨지며, 일반적으로 질병을 일으키지 않는다. 피시바흐에 따르면 연구팀은 실험에 사용한 이 미생물을 인간 자원자의 귀 뒤쪽에서 채취했다.
연구원들은 새로운 유전자를 삽입해서 이 미생물들을 변형시켰다. 미생물에 삽입한 유전자는 일부 암세포 표면에 있는 단백질을 부호화한다. 연구팀은 면역체계가 해당 미생물을 인식하는 세포를 생성하면 이 세포들이 종양도 인식할 것이라고 가정했다.
연구팀은 그러고 나서 면봉에 이 ‘디자이너 세균’을 묻혀서 쥐의 머리에 문지르는 방식으로 미생물을 쥐의 피부로 옮겼다. 그렇게 한쪽 쥐들에게는 유전자 조작 미생물을 묻히고, 다른 쪽 쥐들에게는 유전자를 변형하지 않은 일반적인 미생물을 묻혔다. 피시바흐는 두 경우 모두 미생물들이 쥐의 피부 위에 쉽게 정착했다고 설명한다.
동시에 쥐들에게는 피부암 세포가 주입됐다. 이 세포들은 암에 걸린 다른 쥐에서 채취한 것이어서 표면에 표적 단백질을 가지고 있었다.
종양 표적
그 후로 며칠에서 몇 주 동안 이 암세포들은 유전자를 조작하지 않은 일반 미생물을 받은 쥐들의 몸에서 종양으로 성장했다. 그러나 유전자 조작 미생물을 받은 쥐들에게서는 암의 진행 속도가 현저하게 느렸다.
피시바흐는 “유전자를 조작하지 않은 일반적인 표피포도상구균을 묻혀 놓았던 쥐들 쪽에서는 거대한 종양이 자라는 것을 볼 수 있었다”고 당시 상황을 회상한다. 그러나 그는 “유전자 조작 미생물을 묻혀 놓았던 쥐들 쪽에서는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고 말한다. 그는 이 특정 유형의 암이 쥐에게 매우 공격적이고 치료하기 어려운 것으로 악명 높은 암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피시바흐는 “우리는 미생물로 인한 면역반응의 중대한 차이를 보고 깜짝 놀랐다. 미생물을 피부에 묻혀 놓는 정도의 가벼운 치료만으로 놀라울 정도로 강력한 결과를 얻었다”고 말한다. 이 치료법은 이미 종양이 있는 쥐에게도 효과가 있었다. 유전자 조작 미생물을 묻힌 쥐에게서는 종양의 크기가 줄어드는 것처럼 보였다. 이번 연구 결과는 <사이언스(Science)> 저널에 발표됐다.
이제 사람을 대상으로 유전자 조작 미생물을 이용한 임상시험을 진행하려면 피시바흐와 동료 연구원들이 해야 할 일이 있다. 우선 연구팀은 임상실험에 사용하기에 적합한 미생물 후보를 찾아야 한다. 연구팀은 표피포도상구균이 사람에게서도 똑같은 면역반응을 유발할지 아직 알 수 없다. 어쩌면 다른 미생물이 더 효과적일 수도 있다.
연구팀은 또한 표적으로 삼을 만한 적당한 암 단백질을 선택해야 할 것이다. 이는 암에 대한 메신저RNA(mRNA) 백신을 개발하는 과정에서도 어려운 부분인 것으로 드러났다. mRNA 백신 또한 암 단백질에 대한 면역반응을 유도하는 방식을 사용하기 때문에 표적으로 적합한 암 단백질 선정 과정이 필요하다. 그러나 연구에 사용할 만한 확실한 후보가 없는 경우가 많다.
연구팀이 유전자를 조작할 미생물을 선정해서 조작 방식까지 파악하고 나면 해당 미생물이 안전한지 확인하기 위해 동물을 대상으로 실험을 진행할 것이다. 피시바흐는 향후 몇 년 안에는 암에 걸린 사람들을 대상으로 디자이너 미생물 임상시험을 시작할 계획이다.
해당 연구와 관련하여 <사이언스>에 발표된 논평에서 뉴욕 록펠러 대학교(Rockefeller University)의 일레인 푹스(Elaine Fuchs)와 동료 연구원들은 “연구팀은 암에 초점을 맞추겠지만 유전자 조작 미생물은 알레르기는 물론이고 다른 질병을 치료하는 데도 활용될 수 있다”고 말한다. 해당 논평에서 이들은 “유전자 변형 미생물 활용에 대한 더 많은 연구가 이루어지면 더 안전하고 효과적이며 널리 적용할 수 있는 치료법이 탄생할 기반이 조성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피시바흐는 “우리를 흥분시키는 부분은 미생물을 그냥 누군가의 귀 뒤에 문지르고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는 점이다. 그러고 나서 열흘이 지나면 원칙적으로는 무기한 지속되는 강력한 면역반응을 볼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