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ur brains exist in a state of “controlled hallucination”

우리 뇌는 ‘통제된 환각’ 상태로 존재한다

우리가 세상을 같은 방식으로 인식하고 있을까? 한때 인터넷을 뜨겁게 달궜던 드레스 색 논란은 어째서 발생한 것일까? 왜 같은 드레스를 누군가는 파란색, 검은색으로, 누군가는 흰색, 금색으로 인식하게 됐을까? 세 권의 책을 통해 우리 뇌가 우리 주변 세상을 처리하는 이상한 과정을 살펴보자.

우리는 누군가와 같은 물체를 바라볼 때 그들도 우리와 같은 색을 보고 있을 거라고 가정한다. 정체성이나 사상이 무엇이든, 기본적인 단계에서 우리가 지각하는 현실 자체는 같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2015년, 인터넷에 퍼져나간 어떤 현상으로 인해 이러한 믿음이 완전히 깨지게 되었다. 그 사건은 ‘드레스 색깔 논란’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평범한 사람들은 인터넷에 올라온 드레스 사진을 보고 드레스 색에 대해 이견을 보였다. 어떤 이들은 드레스가 흰색과 금색 줄무늬라고 주장했지만, 다른 이들은 파란색과 검은색 줄무늬라고 주장했다. 이 사진은 한동안 온라인상에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그러다가 마침내 시각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이 드레스 색 논란의 비밀을 밝혀냈다. 논란의 원인은 컴퓨터 화면이나 우리의 눈 때문이 아니었다. 우리가 무언가를 볼 때 뇌에서 처리하는 일종의 보정 작업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 어떤 사람들은 무의식중에 드레스가 직사광선을 받고 있다고 판단했고, 자신도 모르게 사진에서 노란색을 제거한 상태로 사진을 인식했다. 그 결과 그들의 눈에는 드레스가 파란색과 검은색 줄무늬로 보였다. 또 다른 사람들은 푸르스름하고 강한 빛이 드레스를 역광으로 비추고 있다고 생각했고, 파란색을 제거한 채 사진을 인식했다. 그래서 그들은 사진에서 흰색과 금색 줄무늬 드레스를 보게 되었다.

현실을 인식하고 구성하는 뇌의 능력

사고는 현실을 걸러낼 뿐만 아니라, 들어오는 정보가 모호할 경우에는 외부 세계를 추론하며 현실을 구성하기까지 한다. 서섹스대학교의 신경과학자 애닐 세스(Anil Seth)는 자신의 저서 <당신이라는 존재(Being You)>에서 “주관적 경험이라는 내부 우주가 뇌와 신체에서 펼쳐지는 생물학적, 신체적 과정들과 어떻게 관련돼 있으며, 그러한 과정을 통해 어떻게 설명될 수 있는지” 이야기한다. 그는 “’당신’이라는, 또는 ‘나’라는 경험은 두뇌가 신체의 내부 상태를 예측하고 제어하는 방식에서 나온다”고 강하게 주장한다.

‘예측’은 최근 학계에서 유행해온 주제다. 세스와 그의 동료인 서섹스대학교의 철학 교수 앤디 클라크(Andy Clark)는 뇌의 예측을 ‘통제된 환각(controlled hallucinations)’이라고 부른다. 이는 뇌가 외부에서 들어오는 정보를 설명하고 예측하기 위해 항상 세상에 대한 모델을 구축하고 있다가, 감각 기관을 통해서 얻는 경험이 예측과 하나로 합쳐지는 순간 그 모델을 갱신한다는 생각이다.

책에서 세스는 이렇게 말한다. “의자가 빨간색이 아닌 것은, 그 의자가 이상하거나, 촌스럽거나, 혁신적이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이다. 빨간 의자를 볼 때 내가 경험하는 그 ‘빨간색’은 의자의 속성들뿐만 아니라 내 뇌가 가진 속성들의 영향도 받는다. 이는 특정 종류의 표면이 빛을 반사하는 방법에 관한 일련의 지각적 예측 내용과 부합한다.”

세스가 특별히 빨간색이나 어떤 색 자체에 관심이 있는 것은 아니다. 여기서 그가 주장하는 바의 핵심은 의자의 빨간색을 지각하는 것과 동일한 과정이 우리가 다른 모든 것을 지각할 때도 똑같이 적용된다는 것이다. “전체적인 지각적 경험은 지각과 관련해 최선의 추측을 하고 통제된 환각을 만들어내는 지속적인 과정을 통해 세상과 계속 강하게 연결돼 있는 신경적 환상이라고 할 수 있다. 어쩌면 우리 모두가 항상 환각을 경험하고 있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가 그 환각에 동의하면, 그것이 우리가 생각하는 ‘현실’이 된다.”

인지 과학자들은 실제로 발생하는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 이례적인 예시에 의존할 때가 많다. 세스는 책에서 독자들에게 흥미로운 착시 현상들을 소개한다. 그가 소개한 착시 이미지 중에는 꽤 익숙하게 느껴지는 것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것들도 있다. 그는 사실 색이 같은 사각형이지만 색이 다르게 보이는 착시, 종이에 인쇄된 나선이 갑자기 회전하는 것처럼 보이는 착시, 알고 보면 여성이 말에게 키스하는 사진이지만 모르고 볼 때는 다른 식으로 모호하게 보이는 사진, 욕실에 나타난 얼굴이 가라앉는 것처럼 보이는 사진 등을 소개한다. 세스와 그의 등료들은 인공지능 기반의 가상현실 생성 장치로 우리 뇌가 가진 ‘환각을 일으키는 것’과 비슷한 능력을 재창조하기도 했다. 장치는 뇌가 현실을 지각할 때 사용하는 지각적 추론 능력을 극대화시켜서 서섹스대학교 캠퍼스의 어느 광장을 지나는 사람들과 그곳에 존재하는 물체에서 동물 모양을 찾아냈고, 모든 형상에서 동물 모양이 떠오르는 환각 같은 영상을 만들어냈다. 세스의 설명에서, 이러한 예시들은 “의식이 하나의 크고 무서운 해결책을 찾기 위한 하나의 크고 두려운 미스터리라는, 매력적이지만 도움이 되지 않는 직관을 약화한다.” 세스의 관점은 우리 눈에 보이는 것을 그대로 믿고 싶어 하는 이들에게는 불안하게 들릴지도 모른다. “자유의지의 경험도 인식의 결과이며, 시간의 흐름 역시 인식의 결과이다.”

세스는 비교적 확고한 근거를 가지고 철학자들이 말하는 의식의 ‘쉬운’ 문제, 즉, 뇌가 어떻게 경험을 형성하는지 설명한다. 여기서 ‘쉽다’는 것은 철학자들이 말하는 ‘어려운’ 문제(어째서 주관적 경험이 우주의 특징으로 존재하는가)와 비교해서 쉽다는 말이다. 여기서 그는 ‘실제’ 문제를 소개하며 다소 어렵게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그 ‘실제’ 문제란 ‘의식적 경험의 현상학적 속성을 설명하고 예측하고 통제하는 것’이다. 실제 문제가 쉬운 문제와 어떻게 다른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그는 실제 문제와 씨름하다 보면 어떤 식으로든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는 지점으로 향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제 이것이 훌륭한 묘책이 될 것이다.

낯선 감각

세스가 대부분 ‘비전형적인’ 자극과 씨름하는 전형적인 뇌를 가진 사람들의 경험을 설명했다면, 미국 마운트 홀리요크 칼리지(Mount Holyoke College)의 신경생물학 명예교수 수전 배리(Susan Barry)는 자신의 저서 <감각의 회복(Coming to Our Senses)>에서 일반적인 경우보다 다소 늦게 새로운 감각을 얻게 된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유아기부터 거의 시각장애인으로 살다가 열다섯 살에 몇 번의 수술을 통해 앞을 거의 또렷하게 볼 수 있게 된 리암 매코이(Liam McCoy)와 청력을 거의 잃은 채 살다가 상당히 늦은 나이인 열두 살에 달팽이관 이식을 받고 청력을 회복한 조흐라 댐지(Zohra Damji)의 이야기다. 배리의 설명에 따르면, 댐지를 담당한 의사는 댐지의 이모에게 “조흐라가 그렇게 오랫동안 심각한 청각장애를 앓았다는 사실을 자신이 알았다면 수술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배리의 연민 어리고 상세하며 관찰력 있는 설명과 묘사는 그녀 자신의 경험에서 우러난 것이다.

48세의 나이로 나는 시력을 극적으로 개선할 수 있었다. 그 덕분에 나는 자꾸만 아이 같은 즐거움을 느끼게 됐다. 어릴 때부터 사시가 있던 나는 세상을 주로 한쪽 눈을 통해 봤다. 그러다가 중년이 되어 시력 테라피 프로그램에서 양쪽 눈을 같이 사용하는 법을 배웠고, 그 이후로 무언가를 볼 때마다 눈앞에 보이는 모든 것들이 새롭게 느껴졌다. 나는 물체 사이의 빈 곳에서 입체감과 3차원 형체 같은 것을 볼 수 있었다. 나뭇가지들이 나를 향해 뻗어왔고, 조명 기구들은 위로 떠 올랐다. 슈퍼에서 농산물 코너에 가면 온갖 색과 3차원 형상들의 향연이 펼쳐져서 일종의 황홀감까지 느낄 수 있었다.

배리는 ‘새로운 방식으로 보는 것’이라고 묘사한 이런 새로운 능력을 얻고 나서 즐거움에 압도됐다. 그녀는 이것이 세상을 ‘처음으로 보는 것’과 어떻게 다른지 최선을 다해 설명한다. 시력을 갖고 성장한 사람은 눈앞에 보이는 상황을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물체와 사람으로 가득 찬 3차원 공간을 지각할 때, 새로 시각을 획득한 성인은 어떤 평면 위에 뒤죽박죽 한 선들과 온갖 색이 펼쳐진 광경을 보게 된다.” 매코이는 계단을 오르내리며 경험한 것을 배리에게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위층에는 빛과 어둠이 줄무늬처럼 크게 교차하고 있었고, 아래층에는 작은 선들이 여러 개 겹쳐져 있었다. 나는 선 하나가 아니라 그 선들 ‘사이’에서 균형을 잡고 걷는 데 집중했다. 물론 모든 선의 중심을 밟으면 아래층에 갈 수 있었지만, 위층에 가려면 다른 줄무늬들을 모두 건너뛰어야 했다. 그 와중에 내가 움직일 때마다 계단은 비스듬히 움직이면서 변화했다.

심지어 보도를 걷는 것도 처음에는 어려웠다. 그는 눈앞에 보이는 선이 나타내는 것이 “평평한 보도블록 사이의 이음부인지, 시멘트의 갈라진 부분인지, 지팡이의 윤곽선인지, 가로등 그림자인지, 계단의 존재인지” 판단해야 했다고 배리는 설명한다. “위로 올라가야 할까, 아래로 내려가야 할까, 아니면 선을 넘어야 할까, 그것도 아니면 선을 전부 무시해야 할까?”라는 매코이의 말처럼, 그가 경험한 복잡한 지각적 혼란은 아마도 원래 앞을 볼 수 있는 사람들에게 익숙한 방식으로는 완벽하게 설명할 수 없을 것이다.

물론 같은 내용이 청력에도 적용된다. 시각과 마찬가지로, 뇌의 처리를 거치지 않은 소리들이 마구 섞여 있다면 구분해내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배리는 일할 때 라디오를 들으면서 큰 노력 없이도 타자기 소리 같은 방의 배경음과 라디오에서 나오는 플루트와 바이올린 음악 소리를 구별할 수 있는 능력에 관해 설명한다. “물체 인식과 마찬가지로 소리 인식도 뇌의 낮은 감각 영역과 높은 감각 영역 사이의 소통에 의존한다. (…) 우리 신경은 주파수를 파악하면서 소리의 근원을 인식할 수 있다. 주방의 타일 바닥에 숟가락을 떨어뜨려 보면, 충격에서 발생하는 음파가 고주파인지 저주파인지에 따라 숟가락이 금속인지 나무인지 즉시 알아챌 수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능력을 유아기에 획득한다. 그러나 댐지는 아니었다. 댐지는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소리가 들리고 있는지 자주 물어보곤 했지만, 소리에 관해 혼자 상상하는 것을 더 편안하게 느꼈다. 그러다가 청력을 회복하고 감자칩 먹는 소리가 얼마나 시끄러운지 알게 됐을 때 그녀는 깜짝 놀라서 배리에게 말했다. “나에게 감자칩은 항상 섬세한 것이었다. 무게도 가볍고, 쉽게 부서질 정도로 약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나는 감자칩에서 부드러운 소리가 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감자칩을 깨물 때 나는 소리는 내 예상과 너무 다르다. 너무 시끄럽다.”

배리에 따르면, 댐지는 처음에 모든 소리가 무섭게 느껴졌다. 소리에서 어떤 의미도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자신의 새로운 능력에 점점 익숙해지면서 댐지는 소리를 ‘소음이 아니라 어떤 이야기나 사건 같은 것’이라고 느끼게 되었다. 처음 웃음소리를 들었을 때는 깜짝 놀랐지만, 그녀는 배리에게 이제 웃음소리가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소리가 됐다고 말했다. 배리는 책에서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배경음을 거의 의식하지 못하지만, 우리의 정서적 안정을 위해 그런 소음에 의존하고 있기도 하다.” 이 책의 한 가지 강점은 저자 자신이 매코이와 댐지를 깊이 이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녀는 그들이 직업을 찾고 안정될 때까지 몇 년 동안 이야기를 나누고 편지를 주고받았다. 매코이는 현재 워싱턴대학교 세인트루이스에서 안과학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고, 댐지는 의사가 됐다. 그들이 어떻게 보고 듣는 법을 배웠는지 상세하게 설명하면서 배리는 “세상과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는데도 우리가 모든 것을 인식할 수 있다는 것은 매우 놀라운 일”이라는 설득력 있는 결론에 도달한다.

하버드대학교의 심리학 교수 새뮤얼 거슈먼(Samuel Gershman)은 자신의 저서 <무엇이 우리를 똑똑하게 하는가(What Makes Us Smart)>에서 “인간의 지능을 지배하는 근본적인 원칙 두 가지가 있다”고 말한다. 거슈먼의 책은 접근하기 쉽지 않다. 책에는 부분마다 연결도 부족하고, 불완전하게 설명된 방정식으로 가득 차 있다. 그는 책에서 지능이 ‘귀납적 편향(inductive bias)’과 ‘근사 편향(approximation bias)’에 의해 좌우된다고 말한다. ‘귀납적 편향’이란 우리가 실제로 무언가를 관찰하기 전에 특정 가설을 더 선호한다는 의미이며, ‘근사 편향’이란 자원이 제한적일 때 우리가 정신적 지름길을 택한다는 것이다. 거슈먼은 이러한 아이디어를 통해 착시부터 음모론과 언어 발전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설명하며, 바보 같아 보이는 것이 때로는 ‘똑똑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뇌가 “제한적 데이터와 제한적 계산 능력이라는 두 가지 문제에 대한 진화의 해결책”이라고 말한다.

그는 마음을 “우리가 어떻게든 하루를 보낼 수 있도록 도와주는 부분들이 모인 요란한 위원회”라고 묘사한다. 그는 우리의 마음이 “그저 제한적인 정보를 서로 교환하는 학습과 의사결정을 위한 여러 시스템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설명한다. 그의 설명이 옳다면, 우리 중 가장 자기 성찰적이고 통찰력 있는 사람도 우리 머릿속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완전히 이해하기란 불가능하다. 댐지는 배리에게 보낸 편지에 이렇게 썼다.

내가 의대에서 환자와 의사소통을 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스와힐리어를 배우기로 했을 때, 나는 인간의 잠재력을 깨닫게 되었다. 특히 우리가 안전지대에서 벗어나면 우리 뇌는 어떻게든 필요한 것을 학습한다.

Matthew Hutson은 뉴요커(The New Yorker)의 기고 작가이자 프리랜서 과학 기술 작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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