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명연, 유전자 8개 동시 조립 기술로 미생물 설계 3일로 단축
한국생명공학연구원(원장 권석윤, 생명연) 합성생물학연구센터 이대희 박사 연구팀이 여러 유전자를 한 번에 빠르고 정확하게 조립할 수 있는 새로운 유전자 조립 플랫폼 ‘EffiModular’를 개발했다고 21일 밝혔다.
이 플랫폼은 커넥터(짧은 DNA 서열로, 각 유전자 단위의 경계에 위치해 효모 내에서 정해진 순서대로 조립되도록 하는 연결 부위)를 활용해 여러 유전자를 레고 블록처럼 한 번에 연결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단 한 번의 실험으로 최대 8개의 유전자를 동시에 조립하면서도 80% 이상의 높은 성공률을 확보했다.
연구팀은 이 기술을 바이오파운드리(생물학적 시스템의 설계-제작-검증-학습 사이클을 자동화한 첨단 시설) 자동화 시스템에 적용해 항산화 물질인 베타카로틴 생산 효모 균주 120가지를 단 3일 만에 제작했다. 이번 연구는 국제학술지 <Trends in Biotechnology(IF 14.9, JCR 1.4%)>에 14일 온라인 게재됐다.

커넥터로 유전자 연결, 중간 클로닝 과정 제거
미생물을 이용해 의약품이나 친환경 소재를 만들기 위해서는 여러 개의 유전자가 서로 균형을 이루며 작동하도록 설계하는 과정이 필수적이다. 그러나 그동안은 필요한 유전자를 하나씩 조립하고 일일이 시험해야 했기 때문에 많은 시간과 인력이 소요된다는 한계가 있었다.
기존에 널리 사용되던 골든 게이트 조립(GGA, Golden Gate Assembly, 단일 반응에서 여러 DNA 조각을 조립하기 위해 특수 효소를 사용하는 분자 클로닝 방법) 기반 방식은 단일 유전자에서 다중 유전자로 넘어가는 계층적 구조를 가졌다. 하지만 반복적인 박테리아 형질전환, 콜로니 스크리닝, 플라스미드 정제 단계가 필요해 노동 집약적이며 바이오파운드리 자동화 운영에서 시간과 비용을 증가시키는 주요 원인이 됐다.
효모 상동재조합(효모가 유사한 DNA 서열을 인식해 자연스럽게 연결하는 능력을 활용한 조립 방식) 기반 방식은 긴 길이의 DNA 단편을 효율적으로 연결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그러나 조립에 필요한 DNA 단편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PCR 증폭이 필수적으로 요구되며, 표준화된 모듈 방식의 구축이 어려워 재사용성과 확장성이 제한적이었다.
연구팀은 골든 게이트 조립의 모듈화 및 표준화 장점과 효모 상동재조합의 조립 능력을 결합한 새로운 하이브리드 조립 방법인 EffiModular를 개발했다. 짧은 상동성 커넥터 서열을 활용해 각 전사 유닛(TU, Transcriptional Unit, 프로모터-코딩 DNA 서열-터미네이터로 구성된 기능적 유전자 발현 모듈)들을 정해진 순서대로 조립되도록 설계했다.
이를 통해 중간 단계인 Level 1 플라스미드 제작 및 정제 과정을 생략하고, 전사 유닛 단편들을 효모에 직접 도입해 단일 공정으로 조립하는 데 성공했다. 박테리아를 이용한 클로닝과 정제 같은 수동 작업을 제거함으로써 균주 개발 기간을 획기적으로 단축시켰다.

A. 강도가 다른 프로모터 6개를 베타카로틴 생산 유전자 3개에 조합해 총 120종 균주를 설계했다.
B. EffiModular 플랫폼과 자동화 시스템을 결합해 96구멍 플레이트에서 유전자를 조립하고 효모에 주입했다.
C. 120종 균주의 콜로니 색깔(노란색~빨간색)로 베타카로틴 생산량 차이를 확인했다.
120종 비교 실험으로 생산 효율 결정 요인 찾아
연구팀은 EffiModular의 실제 활용 가능성을 검증하기 위해 바이오파운드리 자동화 시스템에 해당 기술을 적용했다. 대표적인 항산화 물질이자 기능성 식품 원료로 널리 알려진 베타카로틴 생산 과정을 모델로 하여 유전자들의 조합을 다양하게 바꿔보며 실험을 진행했다.
자동화 시스템을 통해 6종의 프로모터 조합을 이용한 120종의 베타카로틴 생산 균주 라이브러리를 단 3일 만에 구축했다. 이는 수개월이 걸리던 기존 미생물 설계 방식과 비교하면 연구 속도를 획기적으로 단축한 것이다.
또한 연구팀은 이렇게 만든 120종의 균주에서 베타카로틴 생산량을 비교 분석한 결과, 특정 유전자(crtI, 베타카로틴을 포함한 카로티노이드 생합성 과정에서 중간 물질을 다음 단계로 전환시키는 효소를 만드는 유전자)의 작동 정도가 전체 생산량을 크게 좌우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즉, 다른 유전자들이 충분히 활성화돼 있더라도 특정 유전자의 발현이 약할 경우 전체 생산량이 크게 제한된다는 사실을 대규모 실험 데이터를 통해 명확히 입증했다. 이는 소수의 실험 결과에 의존하던 기존 방식에서 벗어나 많은 데이터를 바탕으로 미생물 설계를 체계적으로 개선할 수 있음을 보여준 성과로 평가된다.
연구책임자인 이대희 박사는 “EffiModular는 자동화 연구 인프라와 잘 맞도록 설계된 기술로, 바이오파운드리 환경에서 고속·대량 실험을 가능하게 한다”며 “향후 인공지능 기반 설계 기술과 결합할 경우 차세대 바이오 연구의 핵심 플랫폼으로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고 밝혔다.
자동화 기반 실험을 통해 수백 개 이상의 유전적 변이체를 신속하게 제작할 수 있어, 최근 주목받는 AI 기반 대사 경로 최적화 모델 학습에 필요한 고품질의 대규모 데이터셋을 공급하는 강력한 도구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번 연구는 고부가가치 의약품, 건강기능식품, 친환경 화학 소재를 생산하는 복잡한 생합성 경로 구축을 가속화해 기존 석유화학 공정을 대체하고 지속 가능한 바이오 제조 산업의 상용화를 앞당기는 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