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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병청, ‘항생제 안 듣는 슈퍼박테리아’ 내성률 높은 수준 지속

국내 항생제 내성률이 전반적으로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가운데, 요양병원에서 치료가 어려운 내성균이 2016년 이후 지속 증가하며 고령 환자 치료를 위협하고 있다.

국내 병원에서 항생제가 듣지 않는 슈퍼박테리아의 실태를 파악한 2024년 조사 결과가 공개됐다. 질병관리청(청장 임승관)은 6일, 2024년 국가 항균제 내성균 실태조사 결과를 분석한「2024 국가 항균제 내성균 조사 연보」를 발간했다고 밝혔다. 조사 결과 메티실린내성황색포도알균(MRSA, 메티실린이라는 항생제에 내성을 가진 황색포도알균) 등 일부 내성균은 소폭 감소했으나, 전반적으로 높은 항생제 내성률을 유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요양병원의 내성률은 종합병원이나 중소병원에 비해 훨씬 높았으며, 치료가 가장 어려운 카바페넴내성폐렴막대균(CRKP, 최후 수단 항생제인 카바페넴조차 듣지 않는 폐렴균)은 2016년 이후 지속적으로 증가 추세를 보였다. 이번 연보에서는 WHO 항생제 분류 기준(AWaRe)을 도입하고 지역별 내성 현황을 통합 분석해 현장 활용도를 높였다.

요양병원, 슈퍼박테리아의 온상

항생제 내성은 환자 치료 성과와 의료 안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세균이 항생제에 저항성을 갖게 되면 기존 치료제로는 감염을 막을 수 없어, 환자는 더 강한 항생제를 써야 하거나 최악의 경우 치료 방법이 없어질 수 있다.

질병관리청은 종합병원 중심의 Kor-GLASS(국내 항균제 내성균 조사), 중소·요양병원 및 의원 중심의 KARMS(국내 항균제 내성 정보 모니터링), 법정감염병 조사 등 국가 항균제 내성균 감시체계를 운영하며 2017년부터 매년 연보를 발간하고 있다.

이번 조사에서 가장 우려되는 결과는 요양병원의 높은 내성률이다. 혈류 감염을 일으키는 주요 병원균의 항생제 내성률을 의료기관 종별로 분석한 결과, 요양병원의 내성률은 종합병원, 중소병원, 의원 등 다른 의료기관에 비해 현저히 높았다.

특히 심각한 것은 CRKP(카바페넴내성폐렴막대균)다. 카바페넴은 대부분의 항생제가 듣지 않을 때 사용하는 ‘최후의 수단’ 항생제다. 이마저 듣지 않는 CRKP는 치료가 극히 어렵다. 요양병원에서 이 균의 내성률은 2016년 이후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요양병원에 입원한 고령 환자들은 면역력이 약하고 기저질환이 많아 감염에 취약하다. 게다가 장기 입원으로 항생제에 반복 노출되면서 내성균이 생기기 쉬운 환경이다. 한 번 내성균에 감염되면 다른 환자에게 쉽게 전파될 수 있어, 요양병원은 슈퍼박테리아의 온상이 되고 있다.

종합병원의 경우 MRSA(메티실린내성황색포도알균)가 2017년 53.2%에서 2024년 44.6%로 감소하는 등 일부 개선이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44.6%라는 것은 황색포도알균 감염 환자 10명 중 4~5명은 1차 항생제가 듣지 않는다는 의미다. CRAB(카바페넴내성 아시네토박터바우마니균, 중환자실에서 흔한 폐렴균)는 75.8%로 여전히 높은 내성률을 보였다.

WHO 기준 도입해 현장 활용도 업

이번 2024년 연보는 내용뿐 아니라 형식도 크게 개선됐다. 질병관리청은 종합병원, 중소병원, 의원의 내성 자료를 통합 분석해 주요 병원균에 대한 지역별 내성 현황을 제시했다. 이를 통해 각 지역 의료기관이 자신들의 상황에 맞게 항생제 사용 전략을 세울 수 있게 됐다.

또한 WHO 항생제 분류 기준인 AWaRe(Access-Watch-Reserve) 체계를 도입했다. 이 체계는 항생제를 내성 위험도에 따라 세 그룹으로 나눈다.

접근(Access) 항생제는 내성 위험이 낮아 1차 치료제로 우선 권장되는 항생제다. 아목시실린, 1세대 세팔로스포린 등이 여기 속한다.

주의(Watch) 항생제는 내성 위험이 높아 특정 감염에만 제한적으로 사용해야 하는 광범위 항생제다. 2~3세대 세팔로스포린, 플루오로퀴놀론 등이 포함된다.

보류(Reserve) 항생제는 다제내성균(여러 항생제에 동시에 내성을 가진 슈퍼박테리아) 치료 등 중증 감염에서 최후 수단으로만 사용해야 하는 항생제다. 콜리스틴, 리네졸리드 등이 해당한다.

WHO는 전체 항생제 사용의 70% 이상을 ‘접근’ 항생제로 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하지만 내성률이 높을수록 의사들은 더 강한 ‘주의’나 ‘보류’ 항생제를 쓸 수밖에 없고, 이는 다시 내성을 악화시키는 악순환을 만든다.

임승관 질병관리청장은 “이번 연보가 국내 항균제 내성균 현황의 이해를 돕고, 항생제 내성 관리를 위한 기초자료로 유용하게 활용되어 항생제 내성 감소에 기여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물론 과제도 있다. 요양병원의 높은 내성률을 낮추려면 감염 관리 인력 확충, 항생제 처방 가이드라인 준수, 환자 격리 시설 개선 등 종합적 대책이 필요하다. 또한 연보에 담긴 데이터가 실제 현장에서 항생제 처방 패턴을 바꾸는 데 얼마나 활용될지는 미지수다.

항생제 내성은 이미 전 세계적 보건 위기다. WHO는 2050년까지 항생제 내성으로 연간 1000만 명이 사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국내에서도 고령화가 가속화되면서 요양병원 입원 환자가 늘고 있다. 슈퍼박테리아 확산을 막기 위한 체계적인 감시와 관리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