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원자력연구원, 방사성 콘크리트폐기물 줄이는 기술 상용화
원자력발전소 해체 과정에서 발생하는 방사성 콘크리트폐기물을 가열·분쇄해 오염된 시멘트와 깨끗한 골재로 분리함으로써 방사성폐기물의 양을 절반 이하로 줄이는 기술이 세계 최초로 상용화됐다.
한국원자력연구원은 방사선 관리·폐기물 처리 전문기업 ㈜오르비텍과 함께 한국수력원자력의 ‘콘크리트 방폐물 시멘트·골재 분리처리’ 용역을 수주했으며, 이것이 방사성 콘크리트폐기물 감용(減容, 폐기물의 부피나 양을 줄이는 것)기술 상용화에 성공한 세계 최초 사례라고 12일 밝혔다. 이 기술을 원전 해체 폐기물에 적용하면 1호기당 수백억 원의 처분 비용을 절감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원전 해체의 골칫덩이: 방사성 콘크리트폐기물
원자력발전소는 수십 년의 운전을 마치면 해체 과정을 거쳐야 한다. 이 과정에서 가장 처리하기 까다로운 것 중 하나가 방사성 물질로 오염된 콘크리트폐기물이다. 발전소 1호기를 해체할 때 나오는 방사성 콘크리트폐기물은 최소 수천 드럼(200리터 기준)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를 별도 처리 없이 그대로 방사성폐기물로 분류해 처분하면 넓은 처분장 부지와 막대한 비용이 필요하다.
문제의 핵심은 콘크리트의 구조적 특성에 있다. 콘크리트는 크게 두 가지 성분으로 이루어진다. 하나는 자갈이나 모래 같은 ‘골재’이고, 다른 하나는 골재를 서로 붙이는 접착제 역할을 하는 ‘시멘트’다. 원전이 가동되는 동안 코발트-60 등의 방사성 핵종(핵반응에서 생성되는 방사성 원소)이 콘크리트에 침투하는데, 이 방사성 물질은 촘촘한 골재가 아니라 작은 구멍이 많아 흡수력이 높은 시멘트 부분에 주로 집중된다. 즉, 골재 자체는 오염되지 않은 경우가 많다.
이 구조적 특성은 역으로 기회이기도 하다. 오염된 시멘트와 깨끗한 골재를 효과적으로 분리할 수만 있다면, 방사성폐기물로 처분해야 하는 양을 대폭 줄이고 골재는 일반폐기물로 처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굳어진 콘크리트에서 시멘트와 골재를 선택적으로 분리하는 것은 기술적으로 매우 까다로운 과제여서, 해외 선진기관들도 상용화에 번번이 실패해 왔다.

10년의 도전: 가열분쇄로 시멘트와 골재를 가르다
한국원자력연구원 원자력시설청정기술개발부 이근영 박사 연구팀이 개발한 해법은 ‘가열분쇄 처리’ 기술이다. 콘크리트폐기물을 적정 조건으로 가열하면 시멘트가 부드럽게 변성되는데, 이 상태에서 분쇄하면 골재와 시멘트를 효과적으로 분리할 수 있다는 원리를 이용한 것이다. 오염된 시멘트만 골라 방사성폐기물로 처분하고, 오염되지 않은 골재는 일반폐기물로 처리하면 전체 방사성폐기물의 양을 절반 이하로 줄일 수 있다.
원천기술 개발 이후 실용화까지는 민간기업과의 협력이 결정적이었다. ㈜오르비텍은 2017년부터 연구원과 함께 이 기술을 공동 개발해 왔으며, 2018년에는 원천기술 이전 계약을 체결하고 실제 현장에 투입 가능한 상용 규모의 처리 장치 개발에 집중했다. 이번에 수주한 용역은 그 결실로, 한 배치(batch, 1회 처리 분량)당 200킬로그램을 처리할 수 있는 상용 규모 설비가 실전에 투입된다.
이번 성과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원자력연구개발사업을 통해 2021년 원천기술을 확보한 이후, 2023년부터는 기후에너지환경부(前 산업통상자원부) 원전해체경쟁력강화기술개발사업의 지원을 받아 상용 규모 장치 개발까지 이어졌다. 원천기술 연구부터 기업 기술이전, 산·연 공동 개발, 상용화까지 10년 이상의 국가 연구개발사업이 뒷받침된 결과다.

세계 최초 상용화가 여는 시장: 국내를 넘어 글로벌로
이번 용역 수주의 의미는 단순한 기술 검증을 넘어선다. 해외 선진기관들조차 상용화에 실패한 기술을 국내 연구진이 독자적으로 완성해 세계 최초로 실제 사업에 적용한 사례이기 때문이다. 이근영 박사는 “정교한 공정과 완벽한 이차폐기물 제어로 세계 최초 상용화에 성공했다”며 “국내 원천기술이 사업화로 이어져 방사성폐기물 문제를 해결하는 성공 사례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차폐기물이란 폐기물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새로 발생하는 폐기물을 가리키며, 이를 최소화하는 것이 처리 기술의 완성도를 가늠하는 핵심 기준 중 하나다.
경제적 파급 효과도 상당하다. 이 기술을 원전 해체 시 발생하는 대량의 콘크리트폐기물에 적용하면 1호기당 수백억 원의 방사성폐기물 처분 비용을 절감할 수 있을 것으로 연구팀은 기대하고 있다. 국내에는 이미 설계 수명이 다했거나 수명 종료를 앞둔 원전들이 있어 향후 해체 수요가 본격화될 전망인 만큼, 이 기술의 국내 적용 가능성은 구체적이다.
도은성 ㈜오르비텍 대표는 “이번 기술 상용화는 국내 원전 해체사업은 물론 글로벌 시장까지 확장을 기대할 수 있는 발판”이라며 후속 사업 확대를 추진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전 세계적으로 노후 원전 해체가 증가하는 추세 속에서, 국내에서 검증된 이 기술이 글로벌 원전 해체 시장에서도 경쟁력을 가질 수 있을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