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R&D 투자, GDP 대비 5% 돌파…세계 2위 유지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지난 12월 29일, 2024년 한국의 총 연구개발(R&D) 투자가 131조원으로 전년 대비 10.1% 증가했다고 밝혔다. 국내총생산(GDP, 한 나라에서 1년간 생산된 모든 재화와 서비스의 가치) 대비 연구개발비 비중은 5.13%로 이스라엘(6.35%)에 이어 세계 2위를 기록했다. 주목할 점은 민간 투자가 103조원으로 전체의 78.8%를 차지하며 성장을 견인했다는 것이다. 반면 정부·공공 재원은 27조원으로 전년 대비 2.4% 감소했다. 취업자 1,000명당 연구원 수(17.6명)와 인구 1,000명당 연구원 수(9.8명)는 세계 1위를 유지했다. 이번 조사는 공공연구기관, 대학, 기업 등 총 69,042개 기관을 대상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선진국 경제협력 국제기구) 가이드에 따라 실시됐다.

GDP 5% 투자의 이중성
한국의 GDP 대비 R&D 투자 비중 5.13%는 단순한 숫자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OECD 회원국 중 이스라엘을 제외하고 5%를 넘는 나라가 없다는 점에서 한국의 혁신 투자 강도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하지만 이 수치의 내면을 들여다보면 복잡한 그림이 드러난다. 전체 131조원 중 민간·외국 재원이 103조원(78.8%)으로 압도적이다. 특히 통신 및 방송장비 제조업 등 대기업의 연구개발 투자가 전년 대비 12조원 이상 증가했다. 매출액 상위 10개 기업의 R&D 투자는 50조원으로 전년(35조원) 대비 40% 급증했다.
반면 정부·공공 재원은 27조원으로 전년 대비 3,604억원 감소했다.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21.2%로 쪼그라들었다. 민간 기업이 당장 수익으로 연결되는 개발연구(86조원, 66.0%)에 집중하는 동안, 장기적 기초연구(19조원, 14.7%)의 비중은 상대적으로 낮다.
기초연구는 당장 제품이나 기술로 이어지지 않지만, 10년 후 20년 후의 혁신을 만드는 씨앗이다. 예를 들어 mRNA 백신 기술은 수십 년간의 기초연구가 축적돼 COVID-19 팬데믹 때 빛을 발했다.

우리나라를 제외한 OECD국가 통계는 `23년 기준으로 향후 해외 국가별 `24년 통계 발표에 따라 국가순위가 달라질 수 있음.
MIT 테크놀로지 리뷰의 칼럼니스트이자 캘리포니아공대(Caltech) 재료과학 교수인 줄리아 R. 그리어(Julia R. Greere)는 최근 칼럼에서 트랜지스터 발명 사례를 들어 이 점을 강조했다. “벨 연구소 과학자들이 반도체에서 전자가 어떻게 움직이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며 게르마늄 결정을 실험했을 때, 그것은 당시로서는 지나치게 기초적이고 학문적이며 수익성이 떨어진다고 여겨질 수 있는 연구였다. 하지만 그들의 노력은 결국 오늘날의 정보화 시대의 시작을 알리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그리어는 “단기적 성과와 즉각적인 수익만을 좇는 시대에 수십 년 후에야 결실을 맺을지도 모르는 연구를 정당화하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그런 연구야말로 미래 기술을 확보하기 위해 반드시 지원해야 하는 영역”이라고 지적했다.
한국의 R&D 구조가 단기 성과 중심으로 편중되면, 장기적으로 근본적 혁신 역량이 약화될 수 있다.
세계 1위 연구 인력 밀도의 함정
한국의 취업자 1,000명당 연구원 수는 17.6명으로 세계 1위다. 인구 1,000명당 연구원 수(9.8명)도 마찬가지다. 총 연구원 수는 61만 5,063명으로 전년 대비 1.9% 증가했다.
상근상당 연구원(FTE, Full Time Equivalent) 개념으로 보면 더 명확하다. FTE는 연구개발 업무에 전념하는 정도를 반영한 수치다. 예를 들어 한 사람이 업무 시간의 50%만 연구에 투입하면 0.5명으로 계산된다. 한국의 FTE 연구원 수는 50만 3,346명으로 이 역시 세계 최고 수준이다.

우리나라를 제외한 OECD국가 통계는 `23년 기준으로 향후 해외 국가별 `24년 통계 발표에 따라 국가순위가 달라질 수 있음.
하지만 이 높은 밀도가 반드시 높은 효율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연구원의 72.7%가 기업에 집중돼 있고, 대학(19.7%)과 공공연구기관(7.6%)의 비중은 상대적으로 낮다. 학위별로는 박사급 연구원이 13만 626명(21.2%)에 불과하고, 학사급이 28만 4,597명(46.3%)으로 가장 많다.
여성 연구원 비중은 24.2%(14만 8,922명)로 지속 증가 추세지만, 여전히 4명 중 1명 수준이다. 2022년 23.0%에서 2024년 24.2%로 올랐지만, OECD 평균(약 30%)에는 여전히 못 미친다.
대기업 중심, 개발연구 중심, 남성 중심의 연구 인력 구조는 한국 R&D 생태계의 구조적 편중을 보여준다. 양적 팽창은 분명하지만, 질적 다양성과 균형은 여전히 과제로 남아있다.
한국의 R&D 투자가 GDP의 5%를 넘어섰다는 것은 분명 성취다. 하지만 민간 주도의 단기 성과 중심 투자 구조가 장기적으로 지속 가능한지, 기초연구와 공공 부문에 대한 투자 축소가 미래 혁신 역량을 약화시키지 않을지는 면밀히 살펴봐야 할 문제다.
그리어는 “트랜지스터 기술 발전을 이끈 기초 지식의 상당 부분은 연방정부가 지원한 대학 연구에서 비롯되었다”며 “성공을 위한 전제 조건에는 변함이 없다. 그것은 탄탄한 기초 지식, 충분한 연구 자원, 호기심과 협력을 기반으로 한 자유로운 탐구, 그리고 무엇보다도 위험을 감수할 가치가 있다고 믿는 이들의 재정적 지원”이라고 강조했다.
이번 조사 결과는 OECD에 제공돼 국가별 연구개발활동 비교자료로 활용된다. 보고서는 2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및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누리집을 통해 공개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