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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GIST, 충전 없이 수십 년 쓰는 ‘베타전지’ 효율 6배 높였다

방사성 물질이 방출하는 전자를 전기로 바꾸는 베타전지의 효율을 10.79%로 끌어올렸다. 외부 충전 없이 수십 년 작동하는 자립형 전원의 상용화 가능성을 높였다.

방사성 물질에서 나오는 전자를 전기로 바꾸는 ‘무충전 배터리’의 효율이 기존 대비 6배 향상됐다.

DGIST(총장 이건우) 에너지공학과 인수일 교수 연구팀은 7일, 페로브스카이트(특정 결정 구조를 가진 차세대 광전 소재)를 이용해 베타전지(방사성 동위원소가 내뿜는 베타선을 전기로 바꾸는 장치)의 에너지 변환 효율을 10.79%까지 끌어올렸다고 밝혔다. 이는 기존 페로브스카이트 기반 베타전지 최고 기록(1.83%)의 약 6배에 달하는 수치다. 베타전지는 방사성 동위원소의 반감기(방사능이 절반으로 줄어드는 시간)에 따라 수십 년에서 수천 년까지 외부 충전 없이 작동할 수 있어, 배터리 교체가 어려운 우주 탐사 장비나 인체 삽입형 의료기기 등에 활용될 수 있다. 연구팀은 페로브스카이트 제조 과정에서 첨가제와 반용매 공정을 적용해 결정 크기를 키우고 내부 결함을 줄였다. 그 결과 베타입자 1개가 약 40만 개의 전자를 생성하는 ‘전자 눈사태’ 현상을 실험적으로 구현했다. 연구 결과는 국제 학술지 ‘Carbon Energy(IF 24.2)’에 게재됐다.

연구팀이 개발한 MACl 첨가제와 IPA 반용매 기반 결정화 개선 기술로 구현된 페로브스카이트 베타전지의 모식도이다. 방사성 동위원소(14CNP/CQD)에서 방출된 베타입자는 흡수체에 도달해 전자와 정공을 생성한다. 생성된 전하는 소자 내부에서 분리·이동하여 외부 회로를 통해 전류를 형성한다.

방사성 물질이 수십 년 전기를 만든다

베타전지는 일반 배터리와 작동 원리가 완전히 다르다. 리튬이온 배터리는 화학 반응으로 전기를 만들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 물질이 소모되고 성능이 떨어진다. 반면 베타전지는 방사성 동위원소가 자연적으로 붕괴하면서 방출하는 베타선(고속으로 날아가는 전자)을 포착해 전기로 바꾼다.

방사성 동위원소는 원자핵이 불안정해 스스로 붕괴하며 방사선을 내뿜는 물질이다. 이 붕괴 속도는 외부 환경에 영향을 받지 않고 일정하다. 예를 들어 이번 연구에서 사용한 탄소-14(Carbon-14)는 반감기가 약 5,730년이다. 즉, 탄소-14를 전원으로 쓰면 5,730년이 지나도 처음 출력의 절반을 유지한다는 뜻이다.

베타전지의 장점은 명확하다. 외부 충전이 필요 없고, 극한 환경(극저온, 극고온, 진공)에서도 작동하며, 화재나 폭발 위험이 없다. 하지만 치명적 약점이 있었다. 바로 낮은 에너지 변환 효율이다. 방사선 에너지를 전기로 바꾸는 과정에서 대부분의 에너지가 열로 손실됐다.

연구팀은 이 문제를 페로브스카이트로 해결했다. 페로브스카이트는 태양전지 소재로 주목받는 물질로, 빛을 받으면 전자를 효율적으로 생성한다. 연구팀은 이 성질이 방사선에도 적용될 수 있다고 착안했다.

핵심은 페로브스카이트의 품질을 극대화하는 것이었다. 연구팀은 연세대학교 화공생명공학과 박종혁 교수팀과 공동으로 제조 공정을 개선했다. 페로브스카이트를 만들 때 메틸암모늄 클로라이드(MACl)를 첨가제로 넣고, 이소프로판올(IPA)을 이용한 반용매 공정(용매와 반대로 작용하는 액체를 부어 결정 성장을 제어하는 방법)을 적용했다.

이 공정으로 페로브스카이트 결정 크기가 커지고 내부 결함이 줄어들었다. 결함이 적으면 베타선이 충돌해 생성된 전자들이 재결합(전자와 양전하가 다시 만나 소멸하는 현상)되지 않고 외부로 빠져나갈 수 있다. 그 결과 베타입자 1개가 약 40만 개의 전자를 생성하는 ‘전자 눈사태(Electron Avalanche, 한 개의 입자가 연쇄적으로 수십만 개의 전자를 만들어내는 증폭 현상)’ 효과를 실현했다.

최종적으로 연구팀이 개발한 베타전지는 10.79%의 에너지 변환 효율을 기록했다. 이는 기존 페로브스카이트 기반 베타전지 최고 기록(약 1.83%)을 6배 뛰어넘는 수치다. 15시간 이상 연속 구동 시험에서도 성능 저하 없이 안정적인 전력 출력을 유지했다.

연구팀은 MACl 첨가제와 IPA 반용매를 활용해 결정 품질을 개선한 페로브스카이트 베타전지의 성능을 평가했다. 단위 방사능당 전력밀도(nW/cm2‧mCi)를 기준으로 기존 베타전지와의 성능을 비교하였으며, 본 연구에서 개발한 소자가 방사능량 대비 가장 높은 전력밀도를 보였다.

심장박동기부터 화성 탐사까지

10%대 효율이 높아 보이지 않을 수 있지만, 베타전지에서는 획기적인 수치다. 태양전지는 햇빛이 있을 때만 작동하고 날씨의 영향을 받지만, 베타전지는 24시간 365일 일정한 출력을 수십 년간 유지한다. 이 안정성과 긴 수명이 핵심 가치다.

가장 유력한 응용 분야는 인체 삽입형 의료기기다. 심장박동기는 현재 리튬 배터리로 작동하는데, 보통 5~10년마다 수술로 배터리를 교체해야 한다. 베타전지를 쓰면 한 번 삽입으로 환자 평생 사용할 수 있다. 방사선 우려가 있지만, 탄소-14 같은 저준위 베타선원은 수 밀리미터만 차폐해도 방사선이 완전히 차단되어 인체에 안전하다.

우주 탐사 분야에서도 베타전지는 필수적이다. NASA의 화성 탐사선 큐리오시티는 플루토늄-238을 사용하는 방사성동위원소 열전기 발전기(RTG)로 구동된다. 태양전지로는 화성의 먼지 폭풍이나 극지방의 긴 밤을 견딜 수 없기 때문이다. 이번에 개발된 고효율 베타전지는 RTG보다 경량화되고 안전해, 소형 우주 탐사 장비나 달 기지의 센서 네트워크 전원으로 활용될 수 있다.

AI 기반 사물인터넷(IoT) 센서도 주요 응용처다. 교량, 터널, 원자력 발전소 같은 사회기반시설에는 수천 개의 센서가 설치되는데, 이들의 배터리를 하나하나 교체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베타전지를 쓰면 한 번 설치로 수십 년간 유지보수 없이 작동할 수 있다.

물론 해결해야 할 과제도 있다. 현재 효율은 10%대지만 상용화를 위해서는 20% 이상으로 끌어올려야 한다. 또한 방사성 물질 사용에 대한 규제와 대중 인식 문제도 넘어야 할 산이다. 탄소-14는 자연계에도 존재하고 의학 분야에서 이미 널리 쓰이지만, ‘방사성’이라는 단어 자체가 거부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제조 비용도 고려해야 한다. 방사성 동위원소 정제와 나노입자 합성, 페로브스카이트 제조까지 복잡한 공정이 필요해 현재로서는 대량 생산이 어렵다. 하지만 우주 탐사나 의료기기처럼 배터리 교체 비용이 막대한 분야에서는 충분히 경제성이 있다.

인수일 교수는 “이번 연구는 페로브스카이트 소재를 활용해 기존 베타전지의 낮은 효율 한계를 극복하고, 10% 이상의 고효율을 실증적으로 달성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며 “향후 에너지 자립이 요구되는 4차 산업과 미래 AI 기술 분야에서 독립 전원으로 상용화할 수 있도록 후속 연구를 지속하겠다”고 말했다.

배터리 없이 수십 년 작동하는 전자기기는 더 이상 SF 소설 속 이야기가 아니다. 베타전지가 상용화되면, 충전이나 교체 걱정 없이 평생 사용하는 의료기기, 수십 년간 유지보수 없이 작동하는 우주 탐사선, 한 번 설치하면 끝인 스마트 시티 센서망이 현실이 될 수 있다. 이번 연구는 그 가능성을 한층 가깝게 만들었다.
이번 연구는 DGIST 일반사업,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차세대 동위원소전지 핵심소재기술 고도화 사업, 4대 과학기술원 InnoCORE 사업, 한국연구재단(NRF) 개인기초연구사업(중견연구)의 지원을 받아 수행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