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AIST, 15나노미터 막으로 리튬 금속 배터리 수명 문제 해결
KAIST는 2일, 생명화학공학과 이진우·임성갑 교수팀이 리튬 금속 대신 구리 집전체만 사용하는 ‘무음극 리튬 금속 배터리’의 수명을 획기적으로 늘리는 데 성공했다고 밝혔다. 무음극 리튬 금속 배터리는 기존 리튬이온전지보다 에너지 밀도(배터리가 저장할 수 있는 에너지량)가 30~50% 높아 전기차와 드론의 주행거리를 크게 늘릴 수 있지만, 충전을 반복하면 배터리가 빠르게 망가지는 치명적 약점이 있었다. 연구팀은 전극 표면에 두께 15나노미터(nm, 10억분의 1미터)의 초극박 고분자층을 입혀 리튬이 고르게 쌓이도록 유도했다. 이를 통해 배터리 내부에서 리튬이 뾰족한 가시처럼 자라 성능을 떨어뜨리는 ‘덴드라이트(dendrite)’ 현상을 억제했다. 이번 연구는 LG에너지솔루션과 공동 설립한 ‘프론티어 리서치 랩’에서 수행됐으며, 2025년 12월 10일 에너지 분야 최고 권위 학술지 ‘줄(Joule)’에 게재됐다.
리튬 금속 배터리의 숙명적 한계
리튬 금속 배터리는 차세대 고성능 배터리 후보로 오래전부터 주목받아 왔다. 기존 리튬이온전지가 흑연 음극에 리튬을 저장하는 방식이라면, 리튬 금속 배터리는 리튬 자체를 음극으로 사용해 이론적으로 더 높은 에너지 밀도를 확보할 수 있다.
무음극 리튬 금속 전지는 여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간 구조다. 리튬 금속 음극마저 제거하고 구리와 같은 집전체만을 사용한다. 충전 과정에서 전해질에 녹아 있던 리튬 이온이 집전체 표면에 직접 석출돼 음극을 형성하고, 방전 시에는 다시 용해돼 양극으로 이동한다. 구조가 단순해 제조 공정이 간소화될 수 있고, 에너지 밀도 역시 기존 리튬이온전지 대비 30~50% 높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반복 충전 과정에서 리튬이 집전체 표면에 고르게 쌓이지 않고 특정 지점에 집중적으로 성장하면서 덴드라이트가 형성된다. 이 구조물이 성장해 반대편 전극과 접촉할 경우 내부 단락이나 급격한 성능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 또한 성장 과정에서 떨어져 나온 리튬은 다시 활용되지 못해 배터리 수명을 단축시킨다.
이 현상의 핵심 원인으로 지목돼 온 것이 SEI(Solid Electrolyte Interphase, 고체 전해질 계면)다. SEI는 전해질이 분해되며 전극 표면에 형성되는 보호막으로, 구조와 조성이 불균일할 경우 리튬 증착을 불안정하게 만든다. 기존 연구들은 전해질 조성을 바꾸는 방식으로 SEI를 제어하려 했지만, 이는 배터리 전체 반응계에 영향을 주어 예측하기 어려운 부작용을 동반할 수 있었다.

15나노미터 고분자막의 정교한 설계
KAIST 연구팀은 전해질을 바꾸는 대신 문제가 시작되는 전극 표면 자체를 설계하는 전략을 택했다. 이를 위해 iCVD(initiated Chemical Vapor Deposition) 공정을 활용해 집전체 표면에 두께 15nm의 고분자층을 균일하게 증착했다. 이는 머리카락 두께의 수천 분의 일에 불과한 매우 얇은 층이다. 이는 사람 머리카락 두께(약 100,000nm)의 6,000분의 1에 불과한 얇은 층이다.
이 고분자층의 두 가지 역할을 수행한다. 첫째, 전해질 속 리튬 염(리튬 이온을 공급하는 화합물) 성분이 전극 표면에 상대적으로 풍부하게 분포하도록 유도한다. 연구팀은 배터리가 실제로 작동하는 상태에서 분석하는 오페란도 라만(Operando Raman) 라만 분광법(배터리가 실제로 작동하는 동안 내부를 실시간으로 관찰하는 기술)과 분자동역학(MD, Molecular Dynamics) 시뮬레이션을 통해 전극 표면의 염 농도가 높은 화학적 환경이 형성된다는 점을 확인했다.
둘째, 자연적으로 형성되는 SEI는 주로 용매(전해질에서 리튬 이온을 녹이는 액체) 분해에 의해 형성되는 유기물 구조인 데 반해, 이번 연구에서는 염 성분이 우선적으로 분해되며 무기물 기반 SEI가 형성된다. 무기물 SEI는 기계적 강도가 높고 리튬 이온 이동에도 유리해, 장기 충·방전 과정에서 계면 안정성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된다.
이러한 계면 제어를 통해 집전체 전반에 걸쳐 보다 균일한 SEI가 형성됐고, 리튬 증착 역시 안정적으로 유지됐다. 연구팀은 특히 전해질 조성을 바꾸지 않고 전극 표면 처리만으로 효과를 확인했다는 점에서, 기존 배터리 제조 공정과의 호환성이 상대적으로 높다고 설명했다. iCVD 공정 역시 대면적 균일 증착이 가능해, 공정 확장성 측면에서 검토할 여지가 있다는 평가다.
이진우 교수는 “이번 연구는 새로운 소재를 추가하는 접근이 아니라, 전극 표면의 화학적 환경을 정밀하게 제어함으로써 전해질 분해와 계면 반응을 조절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며 “무음극 리튬 금속 전지의 구조적 한계를 이해하고 개선하는 데 중요한 설계 원리를 제시했다”고 밝혔다.
다만 실제 상용화를 위해서는 대량 생산 공정에서의 재현성, 공정 비용, 장기 충·방전 신뢰성 등 추가 검증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이번 연구가 LG에너지솔루션과 공동 설립한 산학협력 연구소에서 수행됐다는 점은 기초 연구와 산업 적용 사이의 간극을 줄이기 위한 시도가 본격화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무음극 리튬 금속 전지가 가진 잠재력이 실제 제품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 그 가능성을 한 단계 구체화한 사례로 평가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