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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IST, 광컴퓨팅 핵심 ‘나노 레이저’ 직접 찍어낸다

머리카락보다 얇은 공간에 빛으로 정보를 처리하는 나노 레이저를 3D 프린팅으로 만들었다. 초고속 AI·양자 보안·AR 헤드셋 소재 개발에 돌파구가 열렸다.

광컴퓨팅(빛으로 정보를 처리하는 기술)의 핵심 부품인 초소형 레이저를 반도체 칩 위에 직접 프린팅하는 기술이 개발됐다. KAIST(총장 이광형) 기계공학과 김지태 교수 연구팀은 6일, 머리카락보다 얇은 공간에서 빛으로 정보를 처리하는 나노 레이저를 반도체 칩 위에 3D 프린팅으로 바로 제작할 수 있는 새로운 제조 기술을 개발했다고 밝혔다.

연구팀이 개발한 초미세 3차원 프린팅 기술은 1아토리터(10^-18 L, 10억분의 10억분의 1리터)를 정밀하게 제어해 빛을 수직으로 쏘아올리는 ‘수직형 나노 레이저’를 만든다. 기존 레이저는 기판 위에 눕혀진 수평 구조로 만들어져 공간을 많이 차지하고 빛이 옆으로 새어 나가 손실이 컸다. 이번 기술은 레이저를 세워서 만들어 칩 하나에 더 많은 레이저를 집적할 수 있고, 빛 손실도 줄였다. 연구 성과는 국제 학술지 ‘ACS Nano’ 12월 6일자 온라인에 게재됐다.

왜 빛으로 계산하려고 할까

전자 대신 빛(광자)으로 정보를 처리하는 광컴퓨팅은 차세대 컴퓨팅의 핵심 기술로 꼽힌다. 전자는 회로를 따라 이동하며 열을 내고 속도가 제한되지만, 빛은 빛의 속도로 이동하며 열도 거의 내지 않는다. 특히 AI 연산처럼 대규모 행렬 계산이 필요한 작업에서 광컴퓨팅은 전자 컴퓨터보다 훨씬 빠르고 에너지 효율이 높다.

광컴퓨팅의 핵심은 아주 작은 공간에서 빛을 발생시키고 제어할 수 있는 ‘나노 레이저’다. 나노 레이저는 머리카락 두께의 수천분의 1 크기로, 반도체 칩 위에 수백만 개를 집적해야 실용적인 광컴퓨터를 만들 수 있다. 또한 양자 암호 통신, 초고해상도 증강현실(AR) 헤드셋에도 나노 레이저가 필수적이다.

문제는 기존 반도체 제조 방식인 리소그래피(빛으로 회로를 새기는 기술)로는 나노 레이저를 만들기 어렵다는 점이다. 공정이 복잡하고 비용이 많이 들며, 무엇보다 대부분의 기존 레이저가 기판 위에 누워있는 ‘수평 구조’라 공간을 많이 차지한다. 수평 레이저는 옆으로 빛을 쏘기 때문에 다른 소자와 연결하려면 복잡한 광학 경로가 필요하고, 빛이 옆으로 새어 나가 효율도 떨어진다.

김지태 교수는 “이번 기술은 복잡한 공정 없이 빛으로 계산하는 반도체를 칩 위에 직접 고밀도로 구현할 수 있다”며, “초고속 광컴퓨팅과 차세대 보안 기술의 상용화를 앞당길 것”이라고 말했다.

페로브스카이트 나노 레이저 3차원 프린팅

1리터의 10억분의 10억분의 1을 찍어낸다

연구팀이 사용한 핵심 기술은 극도로 정밀한 잉크젯 프린팅이다. 일반 잉크젯 프린터가 피코리터(10^-12 L, 1조분의 1리터) 단위로 잉크를 뿌린다면, 연구팀의 ‘전기유체(電氣流體) 3D 프린팅’은 아토리터(10^-18 L, 10억분의 10억분의 1리터) 단위로 소재를 정량 제어한다. 100만분의 1 수준으로 더 정밀한 셈이다.

작동 원리는 이렇다. 먼저 빛을 내는 소재인 페로브스카이트(Perovskite, 특정 결정 구조를 가진 물질로 빛을 잘 내고 전기 전도성도 좋은 차세대 광소자 재료)를 액체 잉크로 만든다. 이 잉크에 강한 전기장을 걸면 표면 장력이 깨지면서 나노 크기의 작은 방울이 튀어나온다. 이 방울을 원하는 위치에 떨어뜨려 쌓으면, 마치 레고 블록을 쌓듯 원하는 형태의 나노 구조물을 만들 수 있다.

핵심은 이렇게 만든 레이저를 ‘세워서’ 배치한다는 점이다. 수직형 나노 레이저는 빛을 위로 쏘아올리기 때문에 여러 개를 빽빽하게 배열해도 서로 간섭하지 않는다. 또한 위쪽에 광소자(빛을 감지하거나 제어하는 부품)를 바로 연결할 수 있어 레이저 배열과 패턴도 제작할 수 있으며, 위조 방지 기술로서의 상용화 가능성도 확인했다.

연구팀은 프린팅 과정에 기계 설계와 제어 기술을 결합해, 경정이 거의 하나로 정렬된 고품질 구조를 구현했다. 그 결과 레이저의 손실이 적고 안정적으로 작동하는 ‘고효율 수직형 레이저’를 만들 수 있었다.

광컴퓨터 상용화, 아직은 멀지만

나노 구조물의 높이를 조절해 레이저가 내는 빛의 색을 정밀하게 바꿀 수 있다는 점도 확인했다. 이를 활용해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지만 특수 장비로만 확인할 수 있는 레이저 보안 패턴도 제작할 수 있으며, 위조 방지 기술로서의 상용화 가능성도 확인됐다.

물론 넘어야 할 산도 있다. 페로브스카이트는 습기와 열에 약해 장기 안정성이 떨어진다. 실제 제품으로 만들려면 보호막 기술이나 더 안정한 소재 개발이 필요하다. 또 아토리터 단위로 프린팅하는 속도가 느려 대량 생산에는 시간이 걸린다. 복잡한 광컴퓨터 회로를 만들려면 수백만 개의 나노 레이저가 필요한데, 현재 기술로는 하나하나 찍어내야 해서 현실적이지 않다.

그럼에도 이번 연구는 반도체 제조의 패러다임을 바꿀 가능성을 보여준다. 기존 반도체 공정은 수십 단계의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하지만, 3D 프린팅은 원하는 위치에 원하는 소재를 바로 찍어낼 수 있다. 특히 ‘맞춤형 광소자’가 필요한 연구 개발 단계에서는 즉시 활용할 수 있다.

광컴퓨팅, 양자 통신, AR/VR 기기 모두 ‘빛을 다루는 기술’이 핵심이다. 전자 대신 빛으로 정보를 처리하는 시대가 오려면, 나노 크기의 빛 부품을 싸고 빠르게 만드는 기술이 필요하다. KAIST 연구진이 개발한 초미세 3D 프린팅 기술은 복잡한 반도체 공정 없이도 원하는 위치에 광소자를 직접 제작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맞춤형 광소자 시장과 연구 개발 분야에서 즉시 활용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