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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IST, 폐PET 분해 기술 개발…“내가 분리수거한 페트병이 다시 생수병 원료로”

버려진 페트병을 100℃ 저온에서 분해해 투명 페트병 원료와 수소를 동시에 얻는 기술이 나왔다. 기존 화학 분해 대비 비용도 최대 46% 낮다.

폐페트(PET) 플라스틱을 저온에서 화학적으로 분해해 고품질 페트병 원료를 회수하는 동시에 수소와 포름산까지 생산할 수 있는 다기능성 촉매 기술이 개발됐다.

UNIST(울산과학기술원) 에너지화학공학과 류정기 교수와 오태훈 교수팀은 폴리옥소메탈레이트(PMA) 촉매를 활용해 100℃의 온화한 조건에서 페트 폐기물을 화학적으로 분해하고 청정 수소나 전기를 생산하는 통합 공정을 개발했다고 11일 밝혔다. 이번 연구는 국제 학술지 ‘그린 케미스트리(Green Chemistry)’의 2026년 8호 후면 표지 논문으로 게재됐다.

연구팀의 페트병 재활용 기술을 묘사한 그린 케미스트 저널 표지 이미지

페트병을 분자 단위로 쪼개는 ‘화학적 재활용’…100℃에서 원료 회수까지

페트(PET, Polyethylene Terephthalate)는 음료수병이나 식품 포장재에 널리 쓰이는 플라스틱으로, 열을 가하면 녹아 형태를 바꿀 수 있어 재활용이 용이한 소재로 꼽힌다. 그러나 현실에서 페트병이 다시 페트병 원료로 사용되는 비율은 20% 안팎에 그친다. 현재 대부분의 재활용은 폐페트병을 잘게 부수고 녹이는 ‘기계적 재활용’ 방식에 의존하는데, 이 과정에서 열과 물리적 힘이 반복적으로 가해지면서 플라스틱의 고분자 사슬이 점진적으로 손상돼 투명도를 잃게 된다. 결국 수거된 폐페트병 대부분은 다시 생수병 원료가 되지 못하고 솜이나 부직포 같은 저급 섬유나 충전재로 만들어진 뒤 수명을 다하고 폐기된다.

이러한 한계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방식이 ‘화학적 재활용’이다. 화학적 재활용이란 플라스틱을 녹여 형태만 바꾸는 물리적 재활용과 달리, 화학 반응을 통해 플라스틱을 아예 처음의 기초 원료 상태로 완전히 쪼개는 기술이다. 품질 저하 없이 재활용이 가능해 궁극적인 플라스틱 순환경제 구현을 위한 핵심 기술로 꼽히지만, 기존 화학적 재활용 공정은 200℃ 이상의 고온이나 강염기성 조건이 필요하고 생성물 분리에 과도한 에너지가 소모돼 석유화학 공정으로 생산된 원료보다 비싸다는 문제가 있었다.

연구팀이 개발한 공정은 이 문제를 한 번에 해결한다. 분쇄한 페트병을 물과 용매(DMSO), 폴리옥소메탈레이트(PMA) 촉매와 섞어 100℃에서 가열하면, 페트를 구성하는 에스테르 결합이 끊어지면서 고체 형태의 테레프탈산(TPA)과 액체 형태의 에틸렌 글리콜(EG)로 분해된다. 테레프탈산은 페트 플라스틱을 구성하는 두 가지 핵심 원료 중 하나로, 이 공정에서는 단순한 여과(체거름)만으로 고순도로 회수해 새로운 페트병 원료로 곧바로 재사용할 수 있다. 여기서 핵심 역할을 하는 촉매 PMA는 금속과 산소로 이루어진 화합물로, 페트의 결합을 끊는 산성(가위 역할)과 전자를 머금었다가 전달하는 산화환원 특성(배터리 역할)을 동시에 갖춘 다기능성 촉매다.

촉매에 저장된 전자를 활용해 친환경 수소와 전기를 생산하는 시스템(상단) 및 실증 데이터

촉매가 ‘건전지’로 변신…포름산·수소·전기까지 한 공정에서

이 공정의 핵심 차별점은 분해 과정에서 발생하는 에틸렌 글리콜을 단순 부산물로 버리지 않고 고부가가치 물질로 전환한다는 점이다. 에틸렌 글리콜은 페트를 구성하는 또 다른 원료로 액체 상태의 물질인데, 이 에틸렌 글리콜이 PMA 촉매와 반응하면서 포름산(Formic acid)으로 선택적으로 산화된다. 포름산은 개미산이라고도 불리며 제약, 섬유, 가죽 산업 등 다양한 화학 공정에서 널리 쓰이는 고가의 화합물로, 이 공정에서는 약 85%의 높은 전환율로 생산된다. 이 산화 과정에서 PMA 촉매는 에틸렌 글리콜로부터 전자를 추출해 내부에 저장하는 ‘건전지’ 기능을 동시에 수행한다.

전자를 저장한 촉매는 수소 생산이나 전력 생산에 재활용된다. 전자를 품은 촉매를 수소 생산 장치로 보내면 일반적인 물 전기분해보다 낮은 전압에서 수소를 만들어낼 수 있고, 레독스 연료전지의 연료로 활용하면 저장된 전자를 뽑아내 전기를 생산하는 것도 가능하다. 실제 실험에서는 물 전기분해 전압보다 최대 25% 낮은 1.2볼트(V) 전압에서 수소를 만들어냈으며, 연료전지는 전극 1cm²당 12.5밀리와트(mW)의 전력을 생산했다.

경제성 평가(TEA, Techno-Economic Analysis) 결과도 긍정적이다. 경제성 평가란 연구실 수준의 기술을 실제 산업 규모로 확장했을 때의 비용과 수익을 종합적으로 따져보는 분석 기법이다. 이번 공정으로 생산된 재생 테레프탈산의 최소 판매 가격은 kg당 0.81달러로 추산됐다. 이는 기존 화학 분해 재활용 기술 대비 최대 46% 저렴한 수준이며, 원유에서 뽑아낸 테레프탈산 원료의 시장 가격과 비교해도 더 낮은 수준이다. 저온 공정과 단순 여과 분리로 생산 비용을 낮추고, 포름산과 수소 생산을 통해 수익성을 높인 덕분이다. 류정기 교수는 “폐페트병에서 고품질의 플라스틱 원료를 얻어내고 동시에 수소 생산까지 이어지는 공정 개발을 통해 원유에서 뽑아낸 원료에 버금가는 가격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었다”며 “플라스틱 순환 경제를 구축하고 친환경 수소 생산 비용을 절감하는 데 크게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이번 연구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한국연구재단(NRF) 및 UNIST 하이드로 스튜디오(hydro*studio) 이노코어(InnoCORE) 사업, 교육부와 울산광역시의 지역혁신중심 대학지원체계(RISE), 지역혁신선도연구센터(RLRC) 사업의 지원으로 수행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