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bpx

고려대, 항생제 장내 유익균 변이…비만·당뇨 유행 촉발 가능성 제시

항생제가 장내 유익균을 돌연변이 형태로 바꿔 전 세계 대사질환 유행을 촉발했을 가능성이 제기됐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항생제 사용 확대와 비만 증가 시점이 일치한다는 점이 주목된다.

항생제가 장내 유익균의 기능을 변화시켜 전 세계적인 대사질환 유행을 촉발했을 가능성이 제기됐다.

고려대학교(총장 김동원) 바이오시스템의과학부 김희남 교수는 12일, 항생제가 장내 핵심 유익균인 아커만시아(Akkermansia, 장 점막 보호와 대사 균형 유지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대표적인 유익균)를 단순히 감소시키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유익 기능을 손상된 돌연변이 형태로 바꿔 놓았을 가능성을 제시했다. 연구팀은 동물 모델을 활용한 선행 연구를 통해, 정상 아커만시아가 대사질환에 대한 보호 효과를 보인 반면, 항생제 노출로 내성을 획득한 균주는 이러한 기능을 상실한 것을 확인했다.

특히 이러한 변이 균주는 체내에서 안정적으로 유지되며 개체 간 및 세대 간 전파도 가능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변이 균주들이 세계적으로 확산되면서 인류 전반의 대사질환 위험을 높였을 수 있다는 것이다. 연구 결과는 의과학 분야 국제 학술지 <Gut Microbes(IF 11.0)> 1월 7일자에 게재됐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항생제 사용과 비만 증가가 겹친다

비만과 제2형 당뇨병(인슐린 저항성으로 인해 혈당 조절이 안 되는 당뇨병으로, 주로 성인기에 발병) 등 대사질환(체내 에너지 대사가 비정상적으로 작동해 발생하는 질환으로, 비만·당뇨병·고지혈증 등을 포함)은 지난 수십 년간 전 세계적으로 꾸준히 증가해 왔다.

특히 이러한 증가 시점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항생제가 대규모로 사용되기 시작한 시기와 겹친다는 점이 오래전부터 주목돼 왔다. 페니실린이 1940년대 대량 생산되기 시작한 이후, 항생제는 감염병 치료뿐 아니라 가축 사료에도 광범위하게 사용됐다. 같은 시기 선진국을 중심으로 비만과 당뇨병 유병률이 급격히 증가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항생제 사용과 대사질환의 세계적 유행을 직접적으로 연결하는 과학적 근거는 명확하지 않았다. 상관관계는 있지만 인과관계를 증명할 수 없었던 것이다.

또한 지금까지 항생제의 문제는 장내 미생물(장 속에 사는 수백조 개의 세균, 바이러스, 곰팡이 등 미생물 집단으로, 소화·면역·대사 조절에 중요한 역할)을 일시적으로 파괴하고 균형을 무너뜨린다는 측면에서 주로 논의돼 왔다. 항생제를 복용하면 나쁜 균만이 아니라 좋은 균도 함께 죽어 장내 미생물 생태계가 무너지고, 이것이 각종 건강 문제를 일으킨다는 설명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설명만으로는 몇 가지 현상을 충분히 설명하기 어렵다. 첫째, 임신 중이나 영유아 시기의 항생제 노출이 장기간 대사질환 위험을 높이는 이유다. 일시적인 미생물 파괴라면 시간이 지나면 회복되어야 하는데, 실제로는 수년~수십 년 후까지 영향이 지속된다. 둘째, 저용량 항생제가 가축의 체중 증가를 유도하는 현상이다. 가축 사료에 소량의 항생제를 넣으면 같은 사료를 먹어도 체중이 더 빠르게 증가하는데, 이는 1940년대부터 축산업에서 널리 활용돼 온 방법이다.

항생제 노출로 인한 장내 유익균 아커만시아(Akkermansia)의 기능 변화와 돌연변이 균주의 전 세계적 확산이 대사질환의 세계적 유행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개념적으로 나타낸 모식도

유익균을 죽이는 게 아니라 ‘변이’시킨다

김희남 교수는 이 공백을 메울 수 있는 새로운 해석을 제시했다. 항생제가 유익균을 단순히 제거하는 데 그치지 않고, ‘기능적으로 결함이 있는 형태로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연구팀이 주목한 것은 아커만시아라는 장내 유익균이다. 아커만시아는 장 점막층을 두껍게 유지하고, 장벽 기능을 강화하며, 인슐린 민감성을 개선해 혈당 조절을 돕는 등 대사 건강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김 교수의 가설은 이렇다. 항생제에 노출되면 아커만시아가 단순히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항생제에 저항하기 위해 유전자 변이를 일으킨다. 이 과정에서 항생제 내성은 얻지만, 원래 가지고 있던 유익한 기능을 잃어버린 돌연변이 형태로 바뀐다. 연구팀은 동물 모델 실험을 통해 이를 확인했다. 정상 아커만시아를 투여한 동물은 대사질환 보호 효과를 보인 반면, 항생제 노출로 내성을 획득한 균주는 이러한 기능을 상실했다.

이는 매우 중요한 발견이다. 장내 미생물 구성이 회복된 것처럼 보이더라도, 실제로는 유익 기능이 손상된 균이 잔존할 수 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아커만시아가 정상 수준으로 돌아왔지만, 실제로는 ‘고장 난’ 아커만시아일 수 있다.

이 가설은 앞서 언급한 미스터리들을 설명할 수 있다. 영유아기 항생제 노출 시 변이 균주가 자리 잡아 평생 대사질환 위험을 높이고, 저용량 항생제로 가축 체중이 증가하는 현상도 설명된다. 더 나아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항생제 사용 확산과 함께 기능 손상된 아커만시아 변이 균주가 사람 간, 세대 간 전파되면서 인류 전반의 대사질환 감수성을 높였을 수 있다.

김희남 교수는 “동물 모델 연구 결과에 의하면 유익 기능이 손상된 아커만시아가 장내에 존재할 경우 대사질환 위험이 증가할 수 있다”라며 “이러한 현상이 인간 코호트 연구를 통해서도 확인된다면, 항생제로 유도된 아커만시아 돌연변이는 새로운 주요 질병 위험 인자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연구는 동물 모델 기반이므로 실제 사람에게도 같은 현상이 일어나는지 확인하는 것이 다음 과제다. 만약 인간 연구에서도 확인된다면, 항생제 사용 지침 재검토와 변이된 아커만시아를 정상 균주로 대체하는 새로운 치료법 개발이 가능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