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T 4족 로봇 석학 김상배 교수 인터뷰] “휴머노이드 로봇의 성공은 섬세한 손에 달려 있다”
로봇은 디지털 기술과 기계공학 기술의 결합을 통해 만들어진다. 로봇의 구동부를 제어하기 위한 디지털 기술은 물론, 기계공학 기술인 모터나 유압과 같은 구동계 기술 또한 로봇의 성능과 활용도를 판가름하는 기준이 된다.
로봇은 이 때문에 우리가 흔히 사용하고 있는 AI인 가상지능(Virtual Intelligence)과 함께 실제 현실 속에서의 물리적인 움직임을 다루는 운동지능까지 함께 갖춰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사람이나 물체의 물리적이면서도 무의식적인 움직임을 재현하는 운동지능이 로봇의 동작 제어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음식을 씹고 삼키는 동작이나 바구니에서 사과를 집어 드는 것과 같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행하는 행동은 사람들은 누구나 쉽게 하는 움직임이지만 실제 로봇으로 이를 구현하는 것은 굉장히 까다롭고 어려운 일이다. 운동지능은 사람들이 무의식적으로 행하는 이런 지능적인 행동을 로봇에게 적용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모터를 이용한 4족 보행 로봇을 처음으로 만들어 유압 방식 로봇이라는 기존의 패러다임을 완전히 바꾼 김상배 MIT 기계공학부 교수는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하는 간단한 동작은 많은 부분들이 무의식적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이 또한 하나의 지능, 즉 운동지능이라는 것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간과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한다.
김 교수를 만나 최신 로봇공학 분야의 가장 큰 관심사인 AI와 휴머노이드를 비롯해, 앞으로 로봇공학이 나아갈 길, 그리고 그가 연구에 집중하고 있는 운동지능 등과 이런 기술들이 우리에게 미칠 영향에 대해 들어봤다.
4족 보행 로봇인 치타(Cheetah)를 개발한 장본인을 잘 알려져 있습니다. 치타의 개발이 갖는 의미에 대한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4족 보행 로봇 치타를 개발한 것으로 유명세를 탔지만, 실제로 더욱 중요한 것은 이 로봇의 구동부를 기존의 유압 방식에서 전기 모터로 대체하는 기술을 개발한 것입니다.
기존 로봇공학 분야에서는 큰 힘을 낼 수 있는 유압이 대세였습니다. 기존 산업용 로봇들은 주로 모터를 사용하는데 산업용 로봇이 정밀도와 속도, 힘에만 치우쳐 있어 인터랙티브한 작업에 부족하다는 인식이 팽배했습니다. 그런데 사실 이것은 모터의 문제가 아닌 감속기의 문제입니다.
로봇의 구동부를 유압에서 모터로 바꿈으로써 구조를 단순화해 로봇의 가격을 크게 낮출 수 있었으며, 무게도 가벼워지고, 힘 센서(force sensor) 없이 힘 제어가 가능해졌습니다.
이런 모터의 장점을 이제는 모두가 알고 있습니다. 그동안 유압시스템을 끈질기게 잡고 있던 보스턴 다이내믹스였지만, 올해 4월 발표한 신형 아틀라스가 기존의 유압시스템을 포기하고 전기 모터로 변경된 것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입니다.
교수님이 최근 가장 많은 관심을 두고 연구 중인 분야는 어떤 것입니까?
2018년부터 4족 보행 로봇을 연구해 왔기 때문에 이제는 원하는 동작을 거의 다 구현했습니다. 그래서 최근에는 휴머노이드에 관심을 갖고 연구를 진행 중입니다.
특히 많은 관심을 두고 있는 부분은 손입니다. 사실은 아직 미래의 로봇을 위한 손을 어떻게 만들어야 할 지 감도 못 잡고 있는 상황입니다. 일반적으로 손 연구를 위해서는 사람의 행동을 그대로 모사하는 행동 복제(behavioural cloning)를 많이 사용하기는 합니다만, 이것이 궁극적인 해결책은 될 수 없다고 보고 있습니다.
최근 동영상으로 공개된 휴머노이드가 온갖 어려운 작업을 수행하는 모습을 보고, 휴머노이드가 사람이 하는 것을 모두 대체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착각을 하게 만들지만, 실제로는 현재의 휴머노이드 로봇은 아직 걸음마도 제대로 못 하는 상태라고 생각하는 것이 옳습니다.
예를 들면 디지털 세상에서는 문제의 답을 찾는데 1초의 지연이 발생하더라도 큰 문제가 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하지만 현실 세상에서는 물 컵을 옮기는 간단한 동작에서도 0.1초의 지연조차 허용되지 않습니다. 바로 이런 부분이 휴머노이드 로봇과 같은 기술을 실제로 구현하는 데 장벽이 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강화학습(Reinforcement learning)이나 모방학습(Imitation learning) 등이 로봇 AI의 학습 기술로 주목받고 있지만 이 또한 현실 세계의 모든 불확실성에 대한 대비책을 마련할 수는 없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사람들은 어떤 행위를 하기 위한 맥락과 콘셉트를 이해하고 동작하지만, 모방학습에는 이런 맥락이나 콘셉트가 없습니다. 물리적인 현실 세계에서는 이해를 못 하면 사고가 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고 사고가 발생할 수 있는 모든 상황에 대해 미리 대비한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렇다고 이 휴머노이드 분야를 비관적으로만 보고 있을 수는 없습니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많은 나라에서 이미 노동력 부족은 현실로 다가오고 있는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한시라도 빨리 운동지능을 구현하기 위한 로봇 언어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 위에 실제로 어떤 업무에 활용하기 위한 기능을 추가해야 합니다. 최근에는 이런 로봇 언어를 만드는 연구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휴머노이드 로봇 개발에서 가상지능보다 운동지능이 더 중요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운동지능은 우리가 무의식 속에서 행동하는 다양한 행위의 알고리즘을 말합니다. 우리는 대부분의 물리적인 움직임을 무의식 속에서 수행하지만 이에 대해 깊이 생각하는 경우는 거의 찾아볼 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 주머니 속에서 손을 꺼내기 위한 행동을 의식적으로 하나씩 인식하면서 근육에 명령하는 방식으로 행동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주머니 속에서 손을 꺼낸다’는 어떻게 보면 막연한 콘셉트를 무의식적으로 수행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운동지능입니다. 기존의 우리가 관념적으로 이해하고 말로 표현하는 가상지능과 구분하기 위해 이를 운동지능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정리하자면 물리적인 부분을 다루기 위한 지능을 운동지능이라고 하고, 실제 로봇은 이런 운동지능 없이는 성립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로봇의 운동지능은 아직 초보적인 수준에 불과합니다. 많은 로봇 관련 기업들의 화려한 동영상으로 자신들의 기술을 뽐내고 있지만 말입니다.
치타가 모터를 이용한 로봇의 가능성을 보여줬고, 결국 보스턴 다이내믹스 또한 기존의 유압을 포기하고 모터로 옮겼다는 점에서 미래는 모터 방식의 로봇이 주류로 자리 잡을 것으로 생각하십니까?
앞으로 대세는 모터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로봇을 위한 구동부에서 모터가 정답이기 때문입니다. 처음 치타를 모터로 구동한다고 했을 때 사람들은 전부 의심의 눈초리로 쳐다봤습니다. 하지만 치타가 점프해서 착지하는 영상이 공개되면서 사람들이 모터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 것입니다.
물론 유압이 단점만 있는 것은 아니지만 모터는 가격이 저렴하고 구조가 단순해지기 때문에 구현하기 쉽고 가격도 많이 저렴해집니다. 그리고 정교한 제어가 가능하다는 것 또한 장점입니다.
여기에 유지보수 측면에서도 모터가 압도적인 장점을 갖고 있습니다. 이런 많은 장점이 유압의 장점을 모두 상쇄하고도 남기 때문에 로봇의 구동부로는 모터가 대체 불가능한 정답입니다.
최근에는 산학협력도 활발히 진행하고 계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관련해 기업들은 로봇에서 어떤 미래의 기회를 찾고 있습니까?
기업마다 조금씩 다른 이유로 인해 로봇에 관심을 보이고 투자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현대자동차는 로봇을 자동차의 뒤를 잇는 차세대 먹거리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자동차 분야에서의 경쟁이 치열해짐에 따라 새로운 매출원을 찾고자 나서고 있으며, 두 가지 새로운 사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도심항공교통인 UAM(Urban Air Mobility)이고, 다른 하나가 바로 로봇입니다.
자동차 제조에는 이미 수많은 로봇이 사용되고 있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필요한 로봇을 개발하고 적용해 생산 효율을 높이려는 의도도 있을 것입니다.
반면 전자 분야의 기업들은 로봇 시장의 성장에 따라 로봇에 들어가는 모터나 배터리, 전자장비 등 부품 공급에서 새로운 시장을 창출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합니다.
로봇 시장의 성장 가능성은 이미 충분히 검증된 상태입니다. 하지만 국내 기업들 같은 경우는 아직 로봇에 대해서 어떤 명확한 비전을 갖고 있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휴머노이드 로봇은 이제 걸음마를 시작하는 수준에 불과합니다. 따라서 우리 삶을 크게 바꾼 AI 같은 수준의 거대한 변화는 일어나기 힘듭니다. 디지털 세상과 달리 물리적인 세상에서는 중간 과정을 건너뛰는 퀀텀 점프(quantum jump)와 같은 극적인 발전이 이뤄지기 어렵습니다.
따라서 당분간은 AMR(Autonomous Mobile Robot)과 협동 로봇이 로봇 분야에서 큰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특히 협동 로봇은 지금까지의 산업용 로봇과는 달리 사람 작업자와 로봇이 한 공간 안에서 작업을 공유할 수 있는 수준의 작고 과도하게 빠르지 않은 로봇입니다. 이런 협동 로봇의 가격이 빠르게 내려가고 있어 이제는 많은 기업들이 도입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AI와 휴머노이드가 로봇 분야에서 가장 높은 관심을 끌고 있습니다. AI와 휴머노이드가 로봇 분야에서 이처럼 많은 관심을 받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인간은 로봇에게 자신이 잘 알고 있는 어떤 개념을 투영합니다. 예를 들어 4족 보행 로봇이라고 하면 포유류, 즉 개나 고양이와 같은 친숙한 존재를 떠올립니다. 그리고 그렇게 행동하기를 기대합니다.
마찬가지로 휴머노이드 로봇에 대해 사람들은 사람처럼 생겼으니, 사람과 같은 능력을 갖추고, 그렇게 행동하기를 기대합니다. 그리고 로봇 관련 기업들이 보여주고 있는 동영상이 이런 사람들의 기대감을 충족시키면서 휴머노이드 로봇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을 두도록 만들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 휴머노이드 로봇은 가야 할 길이 너무나 멀고 험합니다.
예를 들면 사람들은 AI가 사람처럼 생각하고 사람을 이해한다고 느낍니다. 그리고 여기에 몸체만 만들어 붙이면 휴머노이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빠진 고리가 바로 운동지능, 피지컬 AI의 필요성입니다.
하지만 LLM(Large Language Model)처럼 대량의 데이터를 학습하는 방식으로는 운동지능을 구현할 수 없습니다. 가상지능에서는 불확실성 자체도 낮고 정의되지 않은 상황에 직면하더라도 큰 문제가 발생하지 않지만, 물리적인 세상에서는 매우 높은 불확실성이 발목을 잡습니다. 결국 LLM 처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무한대에 가까운 피지컬 데이터를 수집해야 간신히 해결의 실마리를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운동지능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로봇이 우리의 세상에 대해 어느 정도 수준 이상으로 이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
로봇 분야에서 AI가 낯선 것은 아닙니다만 최근에는 눈부시게 발전하고 있는 AI 기술이 로봇 분야에도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현재 AI는 로봇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 설명 부탁드립니다.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로봇 분야에서 AI의 발전은 질적인 발전이기보다는 양적인 부분에서의 발전입니다. 다시 말해 컴퓨팅 성능의 향상, 그리고 데이터의 양이 급격히 증가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발전으로 더 고차원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됐습니다. 예를 들면 부엌에서 물병을 가져오라고 지시했을 때, 물병이 무엇이고 부엌이 어디인지에 대해서는 일일이 설명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고차원적인 부분보다는 그 아래쪽의 동작을 제어하고 구현하는 운동지능의 연구에 집중해 왔습니다. 사람과 로봇이 공존하기 위해서는 고차원적인 부분과 그 아랫단에 해당하는 부분 모두 발전이 이뤄져야 합니다. 현재 고차원적인 부분에 있어서는 AI의 발전과 궤를 같이하면서 빠르게 발전하고 있지만, 그 아랫단의 운동지능의 발전은 아직 부족한 상황입니다.
다시 말해 어떤 작업을 위한 고수준의 지능은 일부 해결이 되고 있지만, 저수준의 지능은 아직도 준비가 덜 된 것입니다. 물론 고차원적인 지능이 물리적인 성질에 대한 많은 부분을 해결해주기 때문에 특정 부분에서 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물컵을 흔들면 물이 쏟아진다거나, 휴지는 뜯을 수 있다는 등의 상식에 해당하는 부분까지 일일이 프로그래밍할 필요는 없어진 것입니다.
AI로 인해 로봇의 적용 분야가 크게 확장되고 있습니다. 이전에는 불가능하다고 여겨지던 가사와 같은 부분에도 로봇의 활용이 기대되고 있는데, 이외에 로봇이 어떤 용도로 활용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모방학습이 보여주는 결과물이 사람들에게 오해를 심어주고 있습니다. 사실 가사 로봇, 혹은 범용 로봇의 발전 수준에 대해 과대평가되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단기적인 예측은 과대평가하고 장기적인 예측은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는데, 가사 로봇이나 범용 로봇에 대해서도 비슷한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이런 작업을 대체하는 로봇이 등장하기까지는 아직도 너무나 먼 길입니다. 많은 기업이 로봇의 발전이 기대되니 미리 준비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맞는 것 같습니다.
예를 들면 지금 공장에서 사용되고 있는 산업용 로봇들은 아마도 AI가 적용될 가능성이 적습니다. 도장용 로봇이나 용접 로봇은 이미 사람이 할 수 없는 정확도와 속도로 지치지 않고 작업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AI 로봇이 이런 로봇을 대체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AI 로봇이 대체하는 것은 지금 사람들이 하는 일이 될 것입니다. 주로 사람들이 힘들어하는 부분이 타깃이 될 것입니다. 다만 차량 내부의 전선 연결과 같이 판단이 필요하고, 섬세한 수작업이 필요한 작업을 수행할 수 있는 로봇이 등장하기까지는 좀 더 시간이 걸릴 것입니다.
결국 로봇의 발전은 민첩성, 혹은 정교함과 같은 손재주 문제로 귀결될 것입니다.
- 김상배 교수는 MIT 기계공학부 교수로 세계적인 생체 모방 로봇인 ‘치타’를 만든 로봇 분야 최고 권위자이며, 로봇의 구동부를 유압에서 전기모터로 바꾸면서 패러다임의 변화를 이끈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