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전자 치료로 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된 청각장애 아동들
리 신청(Li Xincheng), 일명 ‘이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한 아이가 집에서 엄마와 어떤 놀이를 하고 있다. 엄마가 말하는 내용을 듣고 그대로 따라 말하는 간단한 놀이다.
“구름이 뭉게뭉게 산 위로 피어오릅니다” 이이의 엄마 친 리쉬에(Qin Lixue)가 딸이 입술 모양을 읽을 수 없도록 입을 가린 채 말했다.
그러자 이이가 “구름이 뭉게뭉게 큰 산 위로 피어오릅니다”라고 따라 말했다.
놀랍게도 이이는 선천적으로 청각장애를 가지고 태어났다.
중국 둥관시의 고층 아파트에 사는 이이의 가족은 올해 이이를 새로운 유전자 치료 연구의 대상자로 등록했다. 그리고 의료진은 바이러스를 이용해 이이의 내이(內耳, 속귀) 세포에 대체 DNA를 추가하는 치료를 진행했다. 이 세포들은 진동을 감지하며 뇌로 소리를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치료 후 한 달도 되지 않아 이이는 난생처음으로 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됐다. 그 느낌을 정확하게 설명하긴 어렵지만 이제 이이는 학교에서 낮잠 시간이 끝날 때 나오는 종소리를 들을 수 있다. 이전에는 친구들이 알려줄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친 리쉬에 제공
중국 과학자들에 의하면 이이는 최초로 자연적인 청력 경로가 회복된 수 명의 청각장애 아동 중 한 명으로 유전자 치료의 새롭고 극적인 가능성을 보여준 사례다. 지금까지 어떤 약물과 치료법도 청력 회복에 효과가 없었기 때문에 이번 업적은 더욱 큰 주목을 받았다.
이번 임상시험을 이끈 상하이 푸단 대학교의 외과 전문의이자 과학자인 일라이 슈(Yilai Shu)는 “세계 최초로 진행된 치료였기 때문에 더 조심스러웠고 약간 긴장하기도 했다”라고 말했다. 지난 수년 동안 슈의 연구팀은 수많은 쥐와 기니피그를 대상으로 유전자 주입을 실험하며 관련 기술을 개발해왔고 마침내 지난해 12월 사람을 대상으로 임상치료를 시작했다. “내귀로 어떻게 유전자를 주입하느냐가 주요 과제였다”라며 슈는 당시의 고충을 토로했다.
미국과 유럽에서 유전자 치료는 유전적 요인으로 시각장애인이 된 사람들이 시력의 일부를 회복하는 등 큰 성공을 거두고 있다. 그리고 10명의 아동을 대상으로 한 슈의 연구는 중국 최초의 유전자 치료 성공 사례이자 잃어버린 감각을 돌려놓은 극적인 사례로 기억될 것이다.
보스턴의 하버드 대학교 연계 병원인 매스 아이 앤 이어(Mass Eye and Ear)의 조교수인 정이 첸(Zheng-Yi Chen)은 이번 연구의 설계와 계획을 도운 인물이다. 그는 “이 아이들은 치료 전에는 시끄러운 영화관에서도 아무것도 듣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정상적인 대화를 거의 다 들을 수 있고 그중 한 명은 속삭임처럼 작은 소리도 들을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엄청난 첫 성과
최근 슈는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유럽 유전자 및 세포 치료 학회(European Society for Gene and Cell Therapy)의 회의에서 1차로 치료를 받은 다섯 명의 청각장애 아동들에 대한 발표를 진행했다. 그 중 네 명은 치료를 통해 청력을 회복했지만 한 명은 그렇지 못했는데, 그 이유는 새로운 DNA를 전달하는 데 사용된 특정 바이러스 유형에 대한 면역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일 것으로 추정된다.
청력 치료를 연구하는 컬럼비아 대학교의 내과 전문의 로렌스 러스티그(Lawrence Lustig)는 “청력이 조금이라도 개선되고 고도의 청각장애가 중도 수준으로 완화된다면 그 자체로 큰 의미가 있다”라며, “치료 첫 단계에 거둔 이 성과는 엄청난 것”이라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러나 이 치료법이 모든 청각장애인에게 효과가 있는 것은 아니다. 이 치료법은 선천성 청각장애에 특정한 원인이 있는 경우, 즉 오토펠린(otoferlin) 단백질을 생산하는 유전자에 결함이 있는 경우에만 효과가 있다. 사람의 내이에는 16,000개에 달하는 유모세포(hair cell)가 있는데 이 세포가 가진 빗 모양의 확장 기관이 다양한 주파수에 반응해 진동하며 소리를 전달한다. 그러나 오토펠린이 없으면 유모세포는 정보를 뇌로 보내는 화학물질을 전달할 수 없다.
“이러한 유전적 장애를 가진 환자들은 기본적으로 유모세포에서 신호를 받지 못한다”라고 첸은 설명했다.
오토펠린 유전자 결함은 선천성 청각장애 중에서 1~ 3%에 해당하며 중국에서 매년 900명의 신규 환자가 발생할 정도로 드문 편이다. 그래도 이번 연구의 성공은 관련 유전자 치료법을 연구하는 사람들에게 큰 힘이 될 것으로 보인다. “다른 원인의 청각장애 연구 분야도 더 많은 투자금을 유치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 것”이라고 러스티그는 덧붙였다.
유전자 분할
이 새로운 치료법의 핵심은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모조 오토펠린 유전자를 추가하는 것이다. 오토펠린 유전자는 크기가 크기 때문에(DNA 문자열 6,000개 정도의 길이) 두 조각으로 분할된 상태로 인체에 무해한 어떤 바이러스에 개별적으로 삽입되었다. 그리고 슈는 이 바이러스를 아이들의 내이에 있는 림프액으로 채워진 달팽이관에 조심스럽게 주입했다.
슈는 일단 이 바이러스가 몸에 들어가면 DNA의 분할된 두 부분이 재결합해 오토펠린 단백질의 생성을 유도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사이렌 바이오테크놀로지(Siren Biotechnology)의 대표이자 이번 치료에 사용된 아데노 부속 바이러스(AAV) 분야 전문가인 니콜 폴크(Nicole Paulk)는 “이 방법은 재결합 과정에서 효율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보통 임상에서는 사용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만약 그들이 제시한 정보가 사실이라면 환상적인 결과라고 부를 만하다”라고 덧붙였다.
슈는 이 치료법이 더 개선될 여지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미 치료를 받은 아이들의 청력이 95 데시벨(오토바이 소음) 이하는 아예 들을 수 없는 수준에서 50~55 데시벨(일반적인 대화)을 들을 수 있는 수준으로 향상되었다고 설명했다.
“아이들의 청력이 일반인의 60~65%까지 회복됐다”라고 슈는 강조했다.
믿을 수 없는 효과
이번 연구의 대상자에는 소리의 첫 경험을 의사에게 설명할 수 없는 어린 아기들도 포함됐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부모들은 치료 후 변화를 확인할 수 있었다. 슈는 한 아기가 ‘아빠’와 ‘엄마’를 말하기 시작했는데 이 아기는 치료 전에는 한마디도 한 적이 없었다고 한다. 이어서 슈는 언어발달에 중요한 시기인 1세 정도에 치료를 받는 것이 이상적이라고 설명했다.
이이는 이 아기보다는 나이가 많고 임상시험에 참여한 몇몇 아이들처럼 과거에 인공와우(cochlear implant) 이식 수술을 받은 적이 있다. 인공와우는 수신기와 전극을 이용해 주요 청각 신경에 직접적으로 자극을 가해 들을 수 있게 해 주는 일종의 전기 장치다. 이이는 두 살 때 오른쪽 귀에 인공와우를 이식했고 말을 배웠지만 그것을 꺼 놓으면(수신기와 배터리는 외부에 있음) 아무것도 들을 수 없었다.
그러나 다른 쪽 귀에 유전자 치료를 받으면서 상황은 바뀌었다. 치료 후 불과 몇 주 후부터 자연스럽게 들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이의 어머니는 딸이 동네 친구들과 놀다가 가끔 인공와우를 빼놓는 것을 발견했다.
“처음 이 임상시험에 대해 들었을 때 그 가능성을 믿을 수 없었다. 그래서 청력학자들에게 문의했지만 그들 또한 진짜가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라고 이이의 어머니는 설명했다. 그러나 상하이로 가서 슈와 다른 의사들을 직접 만난 후 그녀는 딸을 임상시험 대상자로 등록하기로 결정했다. “아직도 이 치료법이 효과가 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는다”라고 그녀는 심정을 전했다.
첸은 유전자 치료가 인공와우보다 청력개선 효과가 뛰어나다고 믿는다. 그는 인공와우를 두고 “지금까지 개발된 가장 성공적인 신경 보철 장치”라고 말했지만 한계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음악을 들을 수는 있지만 미묘한 뉘앙스를 알아챌 수 없으며 그저 박자감을 느낄 수 있을 뿐이다. 그리고 우리는 나무 사이를 지나는 바람과 새가 지저귀는 소리를 들을 수 있지만 인공와우로는 여전히 들을 수 없다. 이러한 한계 때문에 오늘날 연구자들은 청력 손실을 되돌리는 데 연구를 집중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슈가 이이가 가진 특정한 청각장애를 대상으로 연구를 진행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청각의 유모세포는 유전자 치료에 상대적으로 잘 반응하며 새로운 DNA를 쉽게 받아들인다. 또한 유모세포는 평생 성장하거나 대체되지 않는다. 큰 소음으로 영구적인 청력손실이 오는 이유도 유모세포가 파괴됐기 때문이다. 그리고 교체된 유전자가 유모세포에 추가되면 평생 활성화된다. 그러나 슈는 유전자 치료의 효과가 얼마나 오래 지속될지는 아직 모른다고 덧붙였다.
경쟁에서의 승리
이번 성공을 통해 중국은 서양의 생명공학 기업 최소 세 곳과의 1차전 경기에서 승리를 따냈다. 지난해 일라이 릴리(Eli Lilly)가 5억 달러(약 6,800억 원)에 인수한 아쿠오스(Akouos), 리네제론(Regeneron)의 데시벨 테라퓨틱스(Decibel Therapeutics)이 여기에 포함된다. 두 기업 모두 오토펠린을 대상으로 한 유전자 치료 임상시험을 시작했으며 데시벨 테라퓨틱스는 한 명의 환자를 성공적으로 치료했다.
이 연구는 중국의 소규모 생명공학 회사인 상하이 리프레쉬진 테라퓨틱스(Shanghai Refreshgene Therapeutics)의 후원으로 진행됐다. 회사의 설립자 노바 리우(Nova Liu)는 이것이 합리적인 비용으로 유전자 치료법을 개발할 수 있는 전략의 일부라고 밝혔다. 청력이나 시력의 유전자 치료에서 주입하는 물질의 양이 정맥 투여 시 필요한 양의 1,000분의 1 수준이기 때문이다. 리우는 “중국에서 상업화 달성에 필요한 첫 번째 요소는 합리적인 가격”이라고 강조했다.
청력 회복은 이이에게 기적 같은 선물이었지만 약간의 단점도 있다. 이이의 가족은 아파트 15층에 살고 있는데 주변 교통이 혼잡해 창문으로 차량 소음이 들어온다. 유전자 치료를 받기 전에는 인공와우를 꺼 놓으면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었다.
이이의 어머니는 “이제는 딸이 너무 시끄럽다고 불평하곤 한다”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