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흔들리지 않는 홍콩인들의 암호화폐 긍정론
이곳은 샘 뱅크먼-프리드(Sam Bankman-Fried)가 7가지 혐의에서 유죄 판결을 받은 법정에서 지리적으로 한참 떨어져 있는 곳임에도 불구하고 그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대단했다. 그리고 이곳에서 진행되는 논의의 분위기는 미국과는 완전히 상반된 느낌을 주었다.
뱅크먼-프리드가 유죄를 판결을 받은 다음 날인 11월 3일 필자는 홍콩 정부가 주최하는 연례행사인 ‘홍콩 핀테크 위크 2023(Hong Kong FinTech Week 2023)’에 참석했다. 뱅크먼-프리드의 재판을 암호화폐 시장의 장기적인 침체를 보여주는 한 사건으로 보는 미국 사람들과 달리 홍콩 사람들은 웹3(Web3)를 훨씬 긍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홍콩의 행정장관 존 리(John Lee)는 홍콩이 어떻게 기술의 중심지로 거듭날 수 있을지, 지난해 이뤄진 블록체인과 암호화폐에 대한 투자로부터 무엇을 얻을 수 있을지 논의하기 위해 이 행사에 참여했다. 그리고 홍콩의 웹3 스타트업인 아니모카 브랜드(Animoca Brands)는 이틀간의 행사에서 가장 큰 주목을 받았다. 이 회사의 창립자인 얏 시우(Yat Siu)는 “암호화폐 시장의 암흑기가 끝나가고 있다. 이제 앞으로 나아갈 일만 남았다”라고 밝혔다.
필자는 토큰화된 자산, 중앙은행 디지털 화폐, NFT 등의 미래를 논의하는 패널 토론에 연이어 참석했다. 미국과는 달리 이곳은 희망에 가득 차 있어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크립토.com(Crypto.com), 보어드 에이프 요트 클럽(Bored Ape Yacht Club)과 같은 국제적인 암호화폐 대기업의 임원들이 토론에 참석했고, 코인베이스(Coinbase)의 CEO도 화상을 통해 원격으로 참석했다. (동시간대 열린 부대 행사인 보어드 에이프 요트 클럽의 파티에 참석하지 않은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이 파티에 참석한 많은 사람들이 눈에 심각한 화상을 입었다고 한다)
홍콩은 이러한 암호화폐 기업의 임원들을 정부 차원에서 환영하는 흔치 않은 곳이다. 지난해 FTX의 파산과 블록체인 프로젝트 테라(Terra)의 붕괴로 암호화폐 시장이 크게 흔들렸고, NFT가 가치가 없다는 보고서들이 발행되면서 많은 국가 정부와 규제 기관들이 암호화폐 산업을 경계하고 있다. 그러나 홍콩은 이 새로운 디지털 산업을 오히려 경제를 회복할 수 있는 기회로 보고 있다.
과거 홍콩은 금융과 무역을 통해 부흥을 이뤘지만 최근 이 분야에 대한 중요성이 떨어지고 있다. 그리고 지리적으로 매우 인접한 선전(深圳)에서 기술 산업이 폭발적으로 성장할 때 홍콩은 그 추세에 편승하지 못했다. 하지만 암호화폐가 있다면 이 상황을 쉽게 전환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지난해 핀테크 위크에서 홍콩 정부는 자체 개발한 NFT와 토큰화된 채권을 선보였다. 홍콩의 웹3 스타트업인 터미널3(Terminal3)와 아티팩트 랩(Artifacts Lab)의 창립자인 게리 리우(Gary Liu)는 그 이후부터 전 세계의 웹3 프로젝트 기획자들이 홍콩을 방문해 투자 기회를 탐색하고 있다고 말했다. “모든 곳에서 암호화폐 시장이 하락세지만 홍콩에서는 한창 떠오르는 중”이라고 그는 덧붙였다.
전 세계의 암호화폐 관계자들이 가장 주목한 부분은 홍콩 정부가 그들이 합법적으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지난 5월 홍콩은 암호화폐 소매 거래소를 위한 라이센스 제도를 도입했고 이미 두 회사가 운영 승인을 받았다. 올해 핀테크 위크에서 발표를 진행한 연사들은 홍콩이 곧 스테이블코인(stablecoin) 관련 법안을 도입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스테이블코인은 법정화폐와 암호화폐를 연결하는 다리 역할을 하면서 향후 많은 웹3 서비스의 기반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홍콩은 암호화폐 법안 제정에서 다른 정부들보다 빠르게 움직이고 있으며 암호화폐에 대해 우호적인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물론 홍콩이 이 분야에서 최초는 아니다. 2020년 유럽은 가상자산시장 규제법안(Markets in Crypto Assets Regulation)을 도입했고 싱가포르와 일본도 수년 전 관련 법안을 도입했다. 그러나 워싱턴 DC의 암호화폐 혁신 위원회(Crypto Council for Innovation)의 글로벌 웹3 전략 책임자 린다 젱(Linda Jeng)은 홍콩이 작년 한 해 동안 이들을 상당 부분 따라잡았다고 말했다.
린다 젱은 필자에게 “홍콩이 유럽에 앞서 모든 법적 기반을 마련하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며 “말 그대로 암호화폐 분야에서 유럽을 뛰어넘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렇게 되면 홍콩은 더 많은 웹3 기업 및 투자자들을 유치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러나 빠르게 움직이는 만큼 위험성도 높다. 암호화폐가 예상과 달리 큰 변화를 가져오지 못할 수도 있고 의도치 않은 사기 행각이 만연할 가능성도 있다. 홍콩의 암호화폐 시장은 지난 9월 JPEX가 붕괴하면서 크게 흔들렸다. 이 암호화폐 거래소는 투자자들로부터 1억 9,200만 달러(약 2,540억 원) 상당의 자산을 가로챈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나 현재까지 홍콩 정부의 입장은 변함이 없다. 홍콩의 금융 및 재무장관 크리스토퍼 후이(Christopher Hui)는 핀테크 위크의 기조연설에서 “많은 사람들이 JPEX의 붕괴가 우리의 웹3 성장 정책에 영향을 줄지 물었지만, 그 대답은 ‘아니오’다”라고 밝혔다.
암호화폐에 대한 중국 중앙정부의 태도는 또 다른 위험 요소다. 중국 중앙정부는 암호화폐를 금지하고 있지만 홍콩의 기술적인 실험에 대해서는 암묵적으로 동의한 듯 보인다. 지금처럼 홍콩을 웹3의 잠재력을 보기 위한 실험 장소로 이용할 수 있겠지만, 갑자기 마음을 바꿔 홍콩의 모험을 중단시킬 가능성도 없지 않다. 샘 뱅크먼-프리드와 달리 핀테크 위크에서 표면적으로 논의되진 않았지만 여전히 중요한 문제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