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 배터리 제조사, 튀르키예 전기차 시장에 진출하다
2023년은 튀르키예에 있어 중요한 해다. 올해가 튀르키예 공화국 건국 100주년이며 중요한 선거가 예정돼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테크 산업에서 보면 올해는 튀르키예의 미래 경제 성장을 상징하는 자국 최초의 전기차가 판매를 시작하는 해다.
2018년, 튀르키예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5개 회사가 튀르키예 최초의 전기차 제조사 ‘토그(Togg)’를 설립했다. 몇 차례 일정이 연기됐지만 올해 드디어 토그의 전기차가 시장에 출시된다. 토그는 이미 엄청난 인기를 끌고 있다. 첫 생산 분량을 구입하기 위해 거의 18만 명의 지원자가 몰렸고 이 중 2만 명만이 추첨을 통해 선발됐다. (1호차는 토그를 중요한 정치적 프로젝트로 추진한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Recep Tayyip Erdoğan) 튀르키예 대통령에게 주어졌다)
중국이 어떻게 세계 전기차 시장을 선도하게 됐는지에 대한 기사를 보면 중국과 튀르키예의 행보에서 많은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두 나라 모두 자동차 제조업 강국이지만 공급망의 하위 단계에서 만족하지 않았다. 전기차는 빠르게 성장 중인 신규 시장의 진입 기회를 제공한다. 전기차 시장은 전통적인 자동차 산업을 뒤흔들고 있으며 세계의 에너지 전환에 필수 요소가 됐다. 한 가지 차이점은 중국은 이미 전기차 경쟁에서 앞서 나가고 있지만, 튀르키예는 이제 막 출발선에 섰다는 점이다.
중국과 튀르키예 두 나라는 많은 부분에서 실질적인 협력을 진행하고 있다. 전기차 사업을 처음부터 시작하는 것은 쉽지 않고 가장 중요한 부품인 배터리의 제조는 더더욱 어려운 부분이다. 그 때문에 튀르키예는 ‘파라시스(Farasis)’와 파트너십을 체결했다. 파라시스는 CATL, BYD, CALB의 뒤를 잇는 중국 최고의 배터리 제조사 중 하나다. 2019년 토그와 파라시스는 각각 50% 지분을 투자한 합작 회사 ‘시로(SIRO)’를 설립했다. 시로를 통해 두 회사는 튀르키예 게브제에 배터리 제조공장을 세우고 토그에 탑재할 리튬 이온 배터리를 생산할 계획이다.
파라시스가 튀르키예에 진출한 유일한 중국의 테크 회사는 아니다. 지난 1월 튀르키예의 한 신문사는 알리바바(Alibaba)가 10억 달러(약 1조 3,300억 원)를 투자해 튀르키예에 데이터 센터와 물류 센터를 설립할 계획이라고 보도했다. 현재 알리바바는 튀르키예에서 가장 큰 전자 상거래 회사 ‘트렌디올(Trendyol)’을 보유하고 있고, 해외 쇼핑 앱 ‘알리익스프레스(AliExpress)’는 튀르키예의 구글 플레이 스토어 무료 부문에서 가장 많이 다운로드 된 앱이다. 중국의 패스트 패션 회사 ‘쉬인(Shein)’도 튀르키예로 눈을 돌렸다. 지난해 12월 <월스트리트저널(Wall Street Journal)>은 지난 10년간 중국에서 독점적으로 제품을 생산했던 쉬인이 최근 튀르키예에서 생산을 시작했다고 보도했다.
두 나라가 그동안 경제적으로 긴밀히 협력해 온 점을 고려하면 중국 회사들이 튀르키예를 선택하는 것은 놀라운 결과가 아니다. 튀르키예는 중국의 ‘베이징 일대일로(Beijing’s Belt and Road Initiative, 중국-중앙아시아-유럽을 연결하는 육상 및 해상 실크로드)’ 정책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리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러시아를 통과하는 철도 물류의 의존도가 낮아지면서 튀르키예의 역할은 더 중요해졌다.
지리적으로도 튀르키예는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유럽과 아시아의 교차로에 있기 때문에 유럽 시장 진출을 목표로 하는 중국 테크 회사들의 진출 거점이 될 수 있다.
전기차 산업은 두 나라 간 협력의 좋은 예시다. 중국 배터리 제조사들은 미국 진출을 시도하고 있지만 강력한 저항에 부딪혔다. 예를 들어 지난 2월 중국의 거대 배터리 회사 CATL이 미국의 자동차 제조사 포드(Ford)와 미시간주에서 전기차 배터리를 생산하는 협약을 체결하자 마르코 루비오(Marco Rubio) 상원의원은 바로 미 외국인투자심의위원회(Committee on Foreign Investment in the United States)에 이 협약을 재검토해 달라고 요청했다. 더욱이 루비오 상원의원은 전기차 제조사가 중국의 기술을 사용할 경우 세액공제 혜택에서 제외하는 법안도 함께 추진하고 있다.
유럽 시장은 미국보다는 사정이 나아 보이지만 역시 만만치 않은 곳이다. 2019년, 메르세데스-벤츠(Mercedes-Benz)는 전기차 배터리 공급을 위해 파라시스의 지분 3%를 전략적으로 인수했다. 두 회사는 독일에 배터리 공장을 설립할 계획이었으나 일정이 심각하게 지연됐고 결국 취소된 것으로 알려졌다. 튀르키예는 파라시스에 있어 독일의 대안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우리가 중국 테크 회사들의 세계화를 논의할 때 그 관심은 보통 미국에 쏠리고 틱톡이나 쉬인 같은 회사들의 미국 시장 성공 여부에 초점을 맞추곤 한다. 그러나 중국 회사들은 세계의 여러 나라로 진출하고 있으며 튀르키예와 같은 일부 나라들은 적극적으로 그들의 유치에 나서고 있다.
현재 미-중 관계가 과열됨에 따라 중국 테크 회사들이 미국 진출을 포기하고 다른 시장으로 눈을 돌리는 경향은 더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경향이 테크 산업과 세계의 지역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지켜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