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류인플루엔자 팬데믹 다음은 무엇일까?
조류인플루엔자의 위험성은 어느 정도일까? 일각에서는 조류인플루엔자가 또 다른 심각한 팬데믹을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반면 조류인플루엔자의 위험성이 몇 년 전과 달라지지 않았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최근 몇 달 사이 조류인플루엔자 바이러스 감염이 조류에 심각한 피해를 입혔으며, 발병 양상이 과거보다 훨씬 더 심각하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조류인플루엔자는 고양이, 여우, 수달, 물개, 바다사자 등 다양한 포유류에 전염되었다. 스페인의 한 밍크(족제비과 포유동물) 농장에서도 발견되었고 소수지만 사람에게 전이된 사례도 목격되었다.
이러한 상황은 분명 우려스럽다. 하지만 크게 겁먹을 필요는 없다. 아직까지는.
치명적인 조류인플루엔자 발병에 대한 책임은 인류에게서 일부 찾을 수 있다. 첫 번째 원인은 가금류 사육과 관련이 있는데, 비좁은 공간에서 사육하거나 닭장에 가둘 경우 바이러스가 확산되기 쉬운 환경이 조성될 수 있다. 영국 리즈 대학교(University of Leeds)의 야생 생물학자인 앨러스터 워드(Alastair Ward)는 “오늘날 유행하는 조류인플루엔자 변종은 가금류에서 발생한 것이 분명해 보인다”고 말한다.
추가 연구가 필요한 부분은 조류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야생 조류와 양식 조류 사이에서 전파되는 경로이다. 이러한 전파는 철새가 국경을 넘어 이동하며 세계의 한 지역에서 다른 지역으로 바이러스를 옮긴 후 복귀함에 따라 매년 발생하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지난해는 달랐다. 워드는 조류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의 감염이 특정 계절에 급증하는 대신 장기화되는 양상을 보인다고 말했다. 조류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아마도 환경이나 조류 안에 남아 오랜 기간 기생했을 가능성이 높다.
이번 감염 사태는 그 자체로 충격적이다. 수백만 마리의 새가 죽었다. 미국에서는 2022년 초부터 5,800만 마리 이상의 조류가 바이러스 피해를 입었다. 일부는 바이러스 검사에서 양성 반응을 보였고, 나머지는 감염된 개체들과 동일한 무리에서 생활했다. 이들 중 대다수는 상업용으로 양식된 가금류였지만, 야생 조류의 피해도 심각했다. 예를 들어 멸종 위기에 처한 달마시안 펠리컨(Dalatian pelican)은 2022년 조류인플루엔자 바이러스로 인해 전체 개체수의 10%를 잃었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워드는 조류인플루엔자 바이러스에서 이미 더 많은 조류로 확산될 수 있는 일종의 변이가 진행된 것 같다고 말한다. 미래에 조류인플루엔자 변종이 사람들 사이에 확산된다면 어떻게 될까?
서로 다른 포유류 간의 바이러스 확산은 조류 사이의 전염이 사람 사이의 전염으로 발전하는 중간 단계일 수 있다. 2023년 1월 스페인의 한 밍크 농장에서 조류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검출되었다는 보도가 경각심을 일깨운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이 밖에도 미국의 곰, 스컹크, 너구리, 바다표범, 살쾡이, 붉은 여우, 영국의 여우, 수달, 바다표범을 포함한 수많은 포유류 종에서 조류인플루엔자 감염 사례가 보고되었다.
워드는 바이러스가 서로 다른 종의 장벽을 ‘뛰어넘을’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라고 설명한다. 첫 번째는 예를 들어 최근 보도기사에서 언급된 것처럼 감염된 조류의 사체를 통해 바이러스에 감염되었을 수 있다. 워드의 표현에 따르면 조류인플루엔자로 인해 목숨을 잃은 한 무리의 조류 사체는 “바이러스로 가득 차 있을 것”이다. 어떤 여우가 이 새들을 먹었다면 바이러스가 여우의 면역 체계를 마비시켰을 수 있다. 이 경우 감염된 여우의 생명이 위태로울 수 있지만, 반드시 다른 여우에게 바이러스를 옮기는 것은 아니다.
더욱 우려되는 부분은 두 번째 확산 유형이다. 현재 조류인플루엔자가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는 경우는 드물다. 그러나 바이러스는 빠른 속도로 변이할 수 있다. 다양한 바이러스 변종은 서로의 유전자 서열을 파악하여 이를 생존 또는 확산에 이용할 것이다. 새로운 변종이 인간을 포함한 포유류에 강한 감염력을 보인다면 조류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포유류 사이에서도 확산될 수 있다.
이러한 확산은 우려를 낳고 또 다른 팬데믹을 촉발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아직까지 확산되었을 가능성이 보이는 결정적인 증거는 없다.
워드는 밍크 농장의 감염 사태도 사람을 감염시키는 대규모 바이러스의 또 다른 예일 수 있다고 말한다. 이 농장에서는 줄지어 늘어선 금속 우리에 약 5만 2,000마리의 밍크를 가둬 놓고 키웠다. 밍크들이 감염되기 직전에 해당 지역의 야생 조류가 조류인플루엔자 바이러스로 죽었다. 우리는 바이러스가 어떻게 농장에 침투했는지 또는 동물들 사이에 바이러스가 어떻게 확산되었는지 알지 못한다.
감염된 동물들은 모두 살처분되었다. 기시감이 든다면 2020년 과학자들이 코로나19의 원인이 되는 바이러스의 한 종류가 밍크와 밍크 간, 더 나아가 사람에게 확산될 수 있다는 사실을 밝혀낸 이후 수백만 마리의 밍크를 살처분한 전례를 살펴보기 바란다. 사람들은 두 차례의 밍크 살처분에서 새롭게 밝혀진 사실이 있기를 희망할 것이다. 안타깝게도 추가로 밝혀진 사실은 없다.
다시 인간의 감염 가능성에 집중해 보면, 스페인 밍크 농장의 직원 중 조류인플루엔자에 감염된 사람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콧물 증상을 보인 직원이 한 명 있긴 했지만, 검사 결과 음성이었다.
이 결과가 사람들이 조류인플루엔자에 걸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1990년대 홍콩에서는 심각한 전염병이 발생해 수백 명이 사망했다. 2022년에는 영국의 한 가정에서 오리 20마리를 키운 남성과 미국에서 가금류의 살처분에 참여한 작업자 한 명을 포함하여 몇몇 사람이 바이러스 양성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사람의 감염에 관한 한 적어도 지난해에는 커다란 변화가 없었다. 과거에 비해 현재 조류인플루엔자가 인간의 대규모 감염을 발생시킬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주장을 뒷받침할만한 새로운 증거는 나오지 않았다.
지난 몇 년 동안 우리가 얻은 교훈은 경계를 늦추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이다. 우리는 동물 속에서 조류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어떻게 진화하고 있는지 면밀히 관찰하고 인간의 감염 가능성에 대처할 준비를 해야 한다. 하지만 지레 겁먹을 필요는 없다. 적어도 아직까지는.